소설,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파트 2

2012.01.24 12:50

연규호 조회 수:507 추천:14

4장. 종이 한 장 차이의 인생. -잠시 독자들에게: 1952년에 한국에서 태어난 김정희씨와 김수자라는 두 여인의 운명적인 만남을 소개하였다. 안타깝게도 김정희씨는 난소암 수술을 받기 위한 환자로 그리고 김수자씨는 수술을 해 줄 산부인과 의사로, 180도 다른 야릇한 운명으로 만났지만 이 둘의 인생은 불과 종이 한 장의 차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였다.- * 다음날 아침, 김정희씨는 마취과 의사에 의해 마취가 되어 깊은 잠에 빠졌으며, 산부인과 의사 수지와 외과의사 로젠버거는 환자의 복부를 수술 칼로 째고 난소암을 제거하였음은 물론 그 주위에 있는 임파선도 모조리 제거하는데 4시간이나 걸렸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후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김정희씨의 가족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 제가 김정희씨의 아들입니다. 어머니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키가 훌쩍 크며 몸무게가 꽤나 나가는 건장한 흑인 학생이 물었는데 그가 바로 김정희씨의 아들이었다. 그는 10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아- 김정희씨의 아들이군요? 수술은 잘되었습니다. 곧 깨어 날 것입니다. ” 수지 의사는 정희씨의 아들을 바라다보며 대답을 하였는데 그는 분명히 흑인 소년이었으나 자세히 보니 동양 사람의 모습도 섞여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백인이시군요? 그렇죠?” 그는 엉뚱하며 황당한 질문을 수지에게 하였다. “아-학생! 나는...100% 백인이 아니고 한국사람 50% 그리고 백인의 피가 50%가 섞인 혼혈입니다.” “그래요? 나는 100% 백인이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50%만? 사람들은 의사 선생님의 아버지는 백인 장교 출신이며 켄터키의 부자라고 하던데요. 그렇죠?” “나의 아버지가 백인이며 부자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이곳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한스는 비웃듯이 대답을 하였다. 수지는 깜짝 놀랐다. 김정희씨의 아들 한스를 통해 수지는 막연하였던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흑인의 피를 받은 혼혈들은 백인의 피를 받은 혼혈들을 부러워하는구나...비록 같은 혼혈인데도....’ 수지 의사는 한스를 물끄러미 바라다 보았다. * 수술 결과는 좋았기에 김정희씨는 회복실을 거쳐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그러나 환자는 수술 부위가 아픈지 가끔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후 늦게 수지는 환자 병실을 찾아갔다. 환자 옆에서 아들 한스가 간호를 하고 있었다. 사흘 후에는 미음도 먹고 가까스레 일어나 침대에 앉기도 하였으며 머지 않아 퇴원을 하기로 예정되었는데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환자가 아파트로 퇴원을 하게 되면, 거동이 불펀한 어머니를 홀로 있게 할 수가 없기에 아들 한스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한스?” 수지는 근심스럽게 물었다. “예, 어머니를 돌봐야 하니까요. 어짜피 나는 공부로 출세하기보다는 야구 선수가 되고 싶으니까, 학교를 일년 쉬어도 괜찮겠습니다.”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한스?” “예. 야구 선수가 되어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고 싶습니다.” 사실이 그러했다. 흑인 혼혈들은 흑인이기에 멸시받으면서 공부를 하느니보다 차라리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 더 좋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덧부쳐 말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혼혈아인 나를 낳았기에 많은 고생을 하였지요. 게다가 무식한 흑인 할머니로부터 쫒겨난 후, 먹고살기 위해 밤낮으로 일만 하다가 난소암으로 죽게 되었으니 나는 어머니를 도와야 합니다. 나의 아버지와 할머니는 흑인이면서 인종 차별주의자 였지요. 흑인인 주제에 한국에서 온 어머니를 마치 하인처럼 부려먹었지요. 말도 안 되는 얘기이지요.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나의 조상, 던발을 보십시오. 그는 켄터키에서 백인 농장의 노예로 살다가 1860년대, 링컨 대통령에의해 해방이 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지요. 그리고 쫒기다시피 오하이오로 이사와 비로서 사람답게 살았는데, 한국에서 흑인과 결혼한 후 혼혈아를 데리고 미국으로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영어를 하나요, 운전을 하나요, 아무 것도 모르는 여인인데, 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머니를 쫒아 냈습니다. 그후 어머니는 거지처럼 구걸을 하며 나를 길렀습니다.“ “한스? 10학년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구?” “그렇습니다마는 어머니가 완쾌 될 때까지 보류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보류한다고?” “예. 보류하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완치되면 꼭 해 내겠습니다.” “그래-” 수지 의사는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 수술 10일후, 환자(정희)는 완연히 회복이 되어 음식도 잘 먹으며 대 소변도 스스럼 없이 하게 되어 자연스레 퇴원을 하게 되었다. 난소 암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되었기에 5년 생존율도 약 50%는 바라볼 수가 있는 편이었으니 환자 김정희씨는 모처럼 웃음을 띄우며 수지 의사에게 퇴원 인사를 하려고 진료실로 찾아 왔다. “정희씨? 퇴원을 하더라도 진료 스케쥴에 맞춰 찾아오세요. 아- 그리고, 아드님은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였는데,... 그리고 예의도 바른편이 아주 훌륭한 소년이군요....”수지는 진심으로 치하를 하였다. “아- 한스를 말하는군요? ” “예, 한스.” “한스는 아주 특별한 아이랍니다. 한국에서, 낳자마자 ‘깜둥이’‘혼혈아’라고 멸시받으며 살았지요. 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는 더 했답니다.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동네 사람들로부터 한국사람이라고 오히려 차별을 받으며 살았기에 한국 사람인 어머니를 기피하였답니다. ‘한국사람, 어머니는 오지마!’라고 소리를 쳤지요.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한스에게 한국말과 한국 전통을 더 가르쳐 주었답니다. 처음에는 반발을 하였는데 점차 그는 한국 사람의 피를 갖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던군요.” 돌이켜 보면 김정희씨는 미국으로 오던 그날부터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고 식모살이, 노예 생활을 하며 혼혈아인 한스를 양육하였다. 남편, 마이크 던발은 알콜 중독자였으며 시어머니는 한국 사람을 싫어하는 인종차별, 할머니였는데 몇 년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남편은 간경화증을 앓고 있었다. 한스는 어머니가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을 하였지만 어디에가서 도와 달라고 매 달릴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에게 가서 하소연을 한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자신도 추스리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결국 한스는 학교를 쉬고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아파트로 퇴원한 김정희씨는 학교를 쉬고 어머니를 돕고 있는 아들 한스로 인해 아주 난처하였다. “학교를 쉬다니? 한스! 안돼, 학교에 가거라!” 마침내 2주 후에 김정희씨는 수지의 진료실로 다시 찾아 왔다. “한스가 학교를 안간다고요? 그렇다면 낮에 집에 와서 빨래도 해 주며 밥도 해주는 도우미 간호원을 집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부족한 비용은 내가 부담하겠습니다. 김정희씨?” “예, 도우미를? 그리고 비용도 내겠다고요?”“ “그렇습니다. 몇 개월이면 완치 될테니까요.” “ 그런데 김정희씨?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같은 해에 오산과 공도와 같은 시골에서 태어나 흑인과 결혼한 국제 결혼 여성, 그리고 혼혈아라는 운명을 가지고 사람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온 희생자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같은 운명을 가진 자매, 쌍둥이라고나 할까요? ” “예! 자매? 쌍둥이?” “그렇다니까요, 쌍둥이라고요. 그러니 우리 손을 한번 잡아 봅시다. 정희씨.” “감사합니다. 수지씨” “정희씨? 사실 나의 과거도 힘들었습니다. 나는 백인 장교의 딸도 아니고, 켄터키 부자집의 딸도 아닌 인간 이하의 혼혈아였습니다. 그러기에 기억도 하고 싶지 않군요.” “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고요?” “그래요. 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 “수지 의사님, 그 기억도 하고 싶지 않다는 그 과거를 내게 들려주지 않겠습니까? 수지 의사는 백인 장교의 딸로 켄터키에서 부자로 살았기에 의사가 되었다고 우리 국제 결혼 여성들은 알고 있었는데...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겼던 나의 옛 얘기를 들었으니 그 답례로 이젠 수지씨가 얘기할 차례입니다.” “답례로? 나의 과거를 듣고 싶다고...그러지요. 이번 기회에 나의 진짜 과거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정희씨, 아니 자매님.” 뜻밖이었다. 수지 의사는 부자집 딸이 아닌 입양아 시절의 고달펐던 과거를 말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5.공도와 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 -말하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수지 디메트리우스(김수자)의 과거는 이러했다.- 마치 쌍둥이 자매가 10여년 만에 만나 지나온 각자의 옛일을 말해 주듯이 수지 디메트리우스는 ‘김수자(金秀子)’의 과거를 말하고 있었다. -“정희씨? 나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며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버림받았던 혼혈아입니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1952년 3월 어느날, 경기도 공도에서 태어났다는 것 뿐이지요. 원치도 않는 백인 남성과 한국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저주 받은 혼혈아로서 말입니다. 나를 보면 재수가 없는양귀(洋鬼)였기에 저주 받은 아이였지요.“ 수지 디메트리우스는 잠시 쉬었다고 결심한 듯이 그녀가 태어난 내용과 입양되어 온 경로를 말해 주었다. 수지의 어머니, 김옥녀(金玉女)씨는 1951년이 되던 해에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에 살았는데 그 때 그녀는 20 살 난 물오른 처녀였다. 일년전인 1950년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켜 남한을 침공하였다가 유엔군에 의해 북으로 쫒겨가 거의 망하기 직전, 중, 중공군은 북한을 돕기 위하여 1951년 1월 4일 압록강을 넘어 인해 전술로 남침을 하였기에 또다시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했다. 그러나 공도는 유엔군에 의해 곧 수복이 되기는 하였으나 치안이 극도로 불안하였다. 그러기에 젊은 처녀들은 밤이 되면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고 집에 숨어 있어야 했다. 이런 와중에 김옥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백인 병사와 성 관계를 갖고 임신을 하여 다음해인 1952년 3월에 백인 혼혈아를 낳았는데, 낳자 마자 그녀는 밖에 버려진 아이였다. 피 덩어리, 아기를 어머니, 김옥녀는 담요에 싸서 박에 버리고 송탄으로 도망을 간 것이 다행스럽게도 앞집에 사는 강씨 아주머니에 의해 발견되었기에 갖난 아이는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다. 더 불행한 것은 어린 수자는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시간보다 앞 집에 사는 강씨 부부의 손에 의해 길러진 시간이 더 많았다. 젊은 김옥녀는 미군을 만나는 일에 더 바빳으며 무질서한 생활로 아이를 포기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보다 못해 인정 많은 강씨 부부가 김수자를 길러 주었기에 목숨을 부지 할 수가 있었다. 그러기에 김수자의 머릿속에는 어머니보다 앞집에 살던 강씨 부부와 강씨부부의 아들 강석호가 한 가족으로 기억되었다. 강석호는 김수자보다 세 살이 더 많았기에 김수자는 오빠라고 불렀으며 때로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강씨 부부가 실질 적인 아버지 어머니였으며 석호는 오빠였다는 말이다.- 혼혈아에게는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심각한 문제가 직접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것은 김수자가 7살 되던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부터였다. 학교 가는 길에 많은 학생들과 동네 사람들이 김수자를 향해 “양키자식”“양갈보 자식”“양귀”“튀기”라는 이름으로 놀렸으며 심지어는 돌을 던지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김수자는 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무서웠다. 결국 오빠, 강석호는 김수자를 데리고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그러기에 석호 오빠가 없다면 수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석호 오빠와 수자는 안성천(安城川)에서 고기를 잡기도 하였으며 방죽에서 미역을 감기도 하였다. 김밥을 싸서 소풍도 같이 갔었으며 새해가 되면 강석호네 집에서 한 식구처럼 제사도 지냈다. 그러기에 김수자와 강석호는 영락없는 남매였다. “오빠와 누이 동생이었다.” 그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도 많이 있었다. (수자 나이 8살이 지나 9살이 되려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공도 면에도 추수가 끝나고 나니 노적가리가 여기저기에 서 있었다. 수자와 석호는 노적가리에서 메뚜기를 잡았으며 동래 아이들과 같이 술래 잡기 놀이를 하였다. 우연히도 석호 오빠가 숨어 있는 노적가리 속으로 수자도 숨기 위하여 몰래 숨어들어 오다가 수자는 석호 오빠를 발견하였다. “오빠!” “쉿! 수자. 조용, 조용. 술래가 듣는다.” 석호는 수자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술래가 잡으러 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술래는 이들을 찾지 못하고 가버렸는지 밖은 조용하였다. 석양이 되었는지 주위는 캄캄해 지고 있었다. 둘은 따슷한 노적가리 속에서 꼭 껴 안고 숨어 있었다. 수자의 가슴이 참새가슴처럼 벌렁거리고 있었으며 수자는 석호 오빠의 가슴이 따슷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수자? 네 가슴이 뛰고 있네? 그지?” “엉, 오빠도 그래.” “나도?” 석호는 참새 가슴같은 수자를 더 껴안았다. 기분이 좋았다. “오빠!” 수자는 뿌리치지 않았다. 순간, 밖에서 어머니가 “수자야! 석호야! 저녁 먹어야지!”라고 부르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당황하였으나 이내 밖으로 뛰쳐 나왔다. “아니? 너희들 그 안에 같이 있었니? 둘이서?” “예.” 둘은 동시에 대답을 하였다. “그래?”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 -다음해인 1961년, 추운 겨울이 지나고 3월이 되었다. 작년에 4.19 혁명이 있었는데 금년에는 웬일인지 정치적으로 불안하였다. (석호 오빠와 수자는 강씨 가족과 같이 읍내에 갔다가 가족 사진을 찍으면서 석호와 수자 둘이서 흑백 사진을 찍었는데 무엇이 좋은지 둘은 활짝 웃고 있었다.) * 혼혈 소녀 수자에게 불길한 일이 생기고 있었다. -3월초부터 수자의 어머니가 자주 공도에 나타났는데 그 때마다 신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같이 와서 사진을 찍기도 하였으며 몸무게도 재곤 하였다. 4월이 되더니 어머니가 수자에게 청천벽력같은 말을 하였다. “수자야! 너, 너는 네 아버지가 사는 미국으로 가는거다. 미국으로....” “예, 미국으로? 어머니도 같이?” “아냐, 나는 수속 관계로 조금 늦게 가게돼. 어쨋건 수자야, 너의 아버지는 미군 장교였는데 너를 찾고 있어. 그래, 그동안 수자야, 아버지 없이 고생 많았지? 미국에 가서 아버지하고 같이 살거라.” “미국에 아버지가 있어요?” 수자는 미국에 아버지가 있다는 말이 너무나 기뻣으며 여기 한국보다 미국에 가서 살면 더 좋으리라고 생각을 하였으나 순간 강석호 오빠와 떨어진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날 저녁 수자는 미국 지도를 놓고 바라다 보았다. 이 큰 나라의 어디로 간단 말인가? 덜컥 겂이 났다. 1961년 5월 9일은 수자가 미국에 사는 아버지의 집으로 입양되어 가는 날이었다. 건장한 남자와 안경을 낀 아주머니가 수자를 데리고 간다고 하며 공도의 집으로 찾아 왔다. 어머니는 수자의 짐을 챙겨 가지고 밖으로 나왔으며 수자는 강씨 아주머니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아줌마? 나, 꼭 가야해? 안가면 안돼?” 어머니보다 더 친근한 강씨 아주머니를 붙들고 떼를 쓰고 있었다. “울면 안돼!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데.” 보다 못해 어머니가 큰 소리로 말했다. “자- 갑시다. 늦겟소.” 여행사 직원은 수자의 짐을 짚차에 실으면서 말했다. “잠간만! 오빠? 석호 오빠? 어디 있어?” 수자는 강석호 오빠를 찾았으나 그의 모습은 어디에고 없었다. “학교 끝나는 대로 빨리 온다고 했는데, 아직, 어떻게 한담!” 강씨 아주머니는 죄송스러운 듯이 대답을 하였다. 몇 분을 더 기다렸으나 12살 짜리 강석호 소년은 나타나지를 않았기에 여행사 직원은 수자의 손을 잡고는 차로 향하였다. “잘 가거라. 엄마도 곧 따라가마!”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수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도 곧 미국으로 오는거지?” “그래!” 수자는 어머니가 미국으로 곧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며 아버지의 집에서 같이 살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 “아줌마! 석호 오빠를 못봐서...아- 오빠!” “수자야, 석호 오빠도 너를 보러 갈거야. 언젠가. 그러니 건강하라구. 미국에 가자마자 편지를 하거라.” 석호의 어머니와 석호도 수자가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고 믿고 있었다. * 어린 수자는 영행사 직원을 따라 김포 공항으로 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으나 미국의 어느곳으로 가는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수자를 데리고 갈 젊은 청년이 있었다. “수자라고 했지? 너, 이 아저씨하고 같이 로스앤젤스까지 가는거다. 알겠니?” “아저씨하고?” “그래.” 젊은 청년은 보스톤으로 신학 공부를 하러 가는 길에 고아를 데리고 가기 때문에 비행기 표를 할인 받았다고 하였다.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을 때, 그녀는 갖고 있던 흑백 사진을 들여 다 보며 울고 있었는데 정작 사진 속의 석호 오빠와 수자는 활짝 웃고 있었다. “사진을 보는구나? 그런데 여기 같이 있는 남자 애는 누구냐?” “오빠예요.” “오빠라구? 그런데 왜 너만 가니?” 신학생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되 물었다. 신학생은 백인과 한국여성의 혼혈아이기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간다고 알고 있었으며 로스앤젤스에서 그녀를 신시내티로 가는 비행기에 갈아 태워 줘야 하는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인 오빠가 있다니? 필경 무슨 사연이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수자는 석호와 찍은 사진을 보고 또 보곤 하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수자 나이 50이 넘은 지금까지도 꺼내 보고 또 보는 인생의 나침반이었으며, 사진 속의 주인공, 석호는 오빠요, 아버지요 동반자였다.) “석호 오빠. 오빠! 내 평생 오빠를, 오빠를....” 마침내 수자는 오빠를 통해 평안을 얻었는지 사진을 손에 들고 눈을 꼭 감고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잘 자거라, 수자야.” 신학생 아저씨는 고이 잠자는 수자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 9 살된 혼혈아 김수자가 로스앤젤스 공항에 있는 이민국에서 입국 허가서를 받았을 때 그 녀의 이름은 김수자가 아닌 “수지 포스터(Suzy Foster)"로 바뀌어 있었다. 신학생의 도움으로 공항 캠퍼스 안에 있는 다른 건물로 옮겨질 때 수자는 불안한 마음뿐이었다. ‘혹시 나를 여기에 버리고 가는게 아닌가?’라고. “수자야! 잘 가거라. 미국 아버지를 만나 잘 살거라. 너는 켄터키로 나는 보스톤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니까. 자, 수자야, 안녕.” 신학생은 수자가 비행기에 오르는 것을 확인 한 후 총총히 사라졌다.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 수자는 눈물을 흘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국인 스튜어데스의 도움으로 비행기에 오른 후 5시간을 비행하여 내린 곳은 ‘신시내티-켄터키’ 국제 공항이었으며 어떻게 하여 밖으로 나왔는지는 모르나 그녀를 마중 나온 사람들은 백인 ‘포스터(Foster)'씨 일가였다. “네가 수지로구나? 그렇지?” 영어로 물었으나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였으며 수자를 잘못하여 수지라고 부른다고 생각을 하였기에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35살의 다소 뚱뚱하며 배가 툭 튀어나온 백인 양아버지, ‘케빈 포스터(Kevin Foster)'와 신경질 적으로 바짝 마른 36세의 양어머니 앤지 포스터(Angie Foster), 비 정상적으로 뚱뚱하며 키가 작은 13세의 양 오빠, 샘 포스터(Samuel Foster)와 도수 높은 안경을 쓴 11살의 양 언니, 메리 포스터(Mary Foster)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느라고 수고 많았구나. 수지! 환영한다. 자, 자, 가자 우리 집으로...” 신시내티-켄터키 공항 북쪽으로는 오하이오 강이 구불구불 흘러가고 있었으며 우람하고 큰 다리가 그 강 위에 걸려 있었다. “수지? 여기는 켄터키이고 저기 저 강 넘어는 오하이오란다. 그리고 저 다리? 그게 바로 유명한 켄터키 다리고... 오늘부터 너는 켄터키에 사는 ‘포스터 가족’이란다.” 양 아버지(케빈)가 정식으로 수지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수자(수지)를 태운 초록 색깔의 포드(본 네빌)차는 오하이오 강을 끼고 남동쪽으로 달리고 있었으나 수자(수지)는 방향감각도 없었으며 모든 것이 피곤하기만 하여 눈을 감고 있었다. 켄터키주 코빙톤 남쪽에 있는 시골, 프랭클린 타운(Franklin Town)으로 들어서니 움푹 파진 포장 도로로 인해 차가 흔들렸으며 아주 옛날 풍의 켄터키 건물들이 가끔 눈에 띄이는 끝없이 넓은 옥수수 밭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녹색의 옥수수 밭이 끝나면서 우중충하게 퇴색된 빨간 벽돌의 이층집이 한 채 나타났는데 그 입구에는 영어로 ‘포스터 농장 그리고 정비소’라고 쓰여 있었지만 수지는 이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퇴락하였으나 꽤나 튼튼한 이층집이 있었으며 그 뒤로는 옥수수 밭과 담배 밭이 끝도 없이 널려 있었는데 모든 것이 푸른 초록색이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공터에는 온갖 고물의 자동차가 무질서하게 서 있었으며 기름방울과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녹슨 철 기둥으로 된 단층의 건물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햄머로 차를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이곳이 바로 한국 안성군 공도면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어 온 김수자, 아니 수지 포스터가 살집이었다. 켄터키의 한 시골에 사는 소녀가 되었다는 말이다. * 켄터키에서의 새 생활은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있었다. -“아버지? 코리아란 나라가 어디에 있나요?” 배가 뚱뚱한 의붓 오빠, 샘(Sam)이 아버지에게 신기한 사실을 발견한 듯이 큰 소리로 물었다. “아- 코리아? 거, 차이나 옆에 있는 나라야!” “그럼 차이나의 한 부분이란 말입니까? 아버지?” 이번에는 바짝 마르고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딸 매리가 물었다. “어, 코리아란 나라는 말이다. 한국전쟁으로 거지가 된 나라인데, 그래서 수지 같은 아이들을 미국으로 입양시키는 거란다.” 이번에는 양어머니, 앤지가 아는 채 하였다. “그런데, 아버지, 수지는 왜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거죠? 벙어리인가요? 아니면 귀머거리인가요?‘ 이번에는 샘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벙어리가 아니고, 코리아는 영어를 안 쓰는 나라이니...아마 차이나 말을 하는가? 아마 재팬 말을 쓰는가봐...” “그러게 말이요. 그러니까 내가 그랬잖아요. 코리아에서 온 고아보다 차라리 필리핀에서 고아를 데려 오는 편이 나을게라고..그래도 그들은 영어를 잘 하잖아요. ” 아내 앤지가 남편에게 짜증 섞인 말을 하였다. 그 뿐인가, 식사 시간에는 더 더욱 그러했다. “아버지, 저것 보라구요? 수지가 음식 먹는 것을..포크도 나이프도 모르는가 봐요. 숫가락만 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조금은 더럽구먼...“ 샘과 매리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마침 부엌 창가에 놓인 흑백 텔레비존에서는 월드 비존(World Vision)에서 외국인 고아들을 도와 달라고 하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인도,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필리핀등지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순간-, 앗뿔싸!. 한국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굶주린 전쟁 고아들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웃음도 없고 영양 실조로 인해 눈은 쑥 들어갔으며 배는 불룩 튀어나온 모습이 아주 비참하였다. 개중에는 흑인과의 혼혈 고아, 그리고 백인과의 혼혈 고아도 있었다. “아버지, 저것 보세요! 수지가 왔다는 나라, 코리아, 코리아! 와, 신기하다. 웬 거지가 저렇게 많나요?” 샘은 마치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듯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수지에게 주어진 방은 차고 바로 위에 있는 2층, 보너스 방이었는데 마침 서쪽을 향하고 있었기에 창문을 통해 서쪽 하늘을 바라다 보며 멀리 서쪽 하늘 끝에 있을 경기도 안성과 공도의 옛집과 어머니를 그리고 석호 오빠를 생각하곤 하였다. 서쪽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에서 찡그린 얼굴의 어머니와 활짝 웃고 있는 석호 오빠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였다. “엄마! 비록 매정하게 나를 미국으로 내 버렸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 수지는 울면서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 포스터씨의 집으로 입양되어 온지도 어느듯 2개월이 지났는데 수지에게 있어서, 미국은 지상의 낙원이라기보다 말도 안 통하는 부자유한 나라일 뿐이었다. “화장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야만인인가? 침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바닥에서 벌렁 잠을 자는 것은 또 뭐야! 동물처럼 말야. 목욕은 언제나 할까? 꾀죄제하고 냄새도 나고...에이, 더러워!” 처음에 샘과 매리의 불평은 대단하였으나 수지도 점점 미국생활을 익히고 있었다. -느글 느글한 소세지와 느끼한 우유도 이젠 부담 없이 먹었다. 밥 대신 먹어야하는 토스트와 옥수수 튀긴 시리얼도 이젠 익숙한 음식이 되었다. 차고 더운 물이 같이 나오는 샤워도 이젠 자유 자재로 사용하였으며 화장실의 변기도 세척액을 넣고 청소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수지가 처음 미국에 와서 체험한 몇 개월의 생활은 마치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문명의 세계로 잡혀 나온 어느 흑인 노예들과 비슷했다. 한가지 다른 것은 노예가 아니고 자유인이라는 것이었다. 9월이 되어 프랑클린 타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아침마다 노란 색깔의 스클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는데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서는 얼굴이 희다고 인종 차별을 받았는데 여기 켄터키에서는 완전히 희지 않고 노란 색이 같이 있기에 인종 차별을 받았다. ‘코리아에서 온 벙어리로군! 얼굴은 그래도 흰 편이군...그래, 검둥이는 아니구먼. 코리안들은 일본 사람들이나 중국 사람들보다 얼굴 색깔이 흰 모양이군....’ 그래도 켄터키 시골 아이들은 한결같이 친절하였으며 선생님들도 그러했기에 학교 가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처럼 그녀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 포스터씨가 경영하는 자동차 정비소는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포드, 지엠, 크라이슬러 그리고 닷지등 꽤 많은 차가 지저분하게 널려져 있었는데 교통 사고로 못 쓰게 된 고물차들의 부품을 분해하여 자동차 정비에 쓰고 있었기에 수입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러나 폐차장에는 빗물에 씻겨 내려온 기름과 흩어진 부속들이 여기저기에 무질서하게 뒹굴고 있었으며 망치로 두드리는 금속의 소리가 꽤나 요란하였다.- 수지는 이곳에 와서 양 아버지 뿐만 아니라 30살이 조금 넘은 “불랙 죠(Black Joe)"라는 흑인 아저씨와 50이 넘은 디메트리우스라는 그리스에서 온 이민 노동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다.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최근에 알고 보니 양 아버지는 겨우 고등학교를 나와 정비소를 운영하며 농사를 짖는 켄터키의 촌 사람이었을 뿐 ‘미군 장교도 켄터키 부자’도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더욱 수지를 놀라게 한 것은 양아버지는 그녀의 친 아버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친 아버지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친 아버지는 누구지?” 수지는 실망되었다. 뿐 만 아니라 양아버지는 아이들의 교육보다는 노동 후에 맥주나 마시며 하루를 지나는 단순한 사람이다 보니 입 언저리에서는 술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작업복에는 기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며 매캐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이층 창문이 열리면서 오빠, 샘이 큰 소리로 저녁 먹으라고 부르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음식이다. 알겠니?” 양 어머니 앤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과연 오늘 음식은 특별한 음식이었다. 갖 익은 옥수수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뒷밭에서 따온 오이를 숭덩숭덩 썰어 그 위에 간장을 뿌려 놓았으며 스파게티와 토마토 소스가 눈에 확 다가왔다. “와! 공도에서 먹던 그것이구나. 강씨 아주머니가 해주었던 그 국수...그리고 석호 오빠하고 같이 허겁지겁 맛 있게 먹었던 그 수제비를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먹어본 셈이었다. “수지? 너 오늘 학교에 안 갔지? 학교에서 너를 못 보았단 말야!” 오빠 샘이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였다. “............” “수지? 너 학교에 안 가려면 차라리 집에서 일이나 하거라. 부엌일도 하고, 세탁일도 하고....” 어머니, 앤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수지에게 말하였다. * 그러나 사실, 돌이켜 보면 수지의 미국 생활은 늘 고통스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백인 양부모인 포스터씨의 배려로 가족들과 같이 좋은 곳을 찾아 구경도 다니었기 때문이었다. 수지가 처음으로 맞은 켄터키의 여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뿐인가 그 가을은 더 더욱 아름다웠다. -한국에서 본 그 아름다운 단풍이 오하이오강가에 있는 나무에도 울긋불긋하였다. 모처럼, 포스터 가족은 켄터키와 테네시를 연결해 주는 “켄터키 호수”로 소풍을 갔었다. 안성과 공도에서 보던 그 호수(방죽)보다 수십 갑절이나 큰 켄터키 호수와 그 주위에 호화 찬란하게 펼쳐저 있는 단풍을 본 수지는 입을 닫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켄터키 호수는 마치 바다 같았으며 맑은 물의 연속이었다. 켄터키에서 가장 크고 높다는 컴벌렌드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참으로 맑고 아름다워 마치 하얀 비단을 보는 듯 하였다. 뿐만 아니라 무지개가 아치를 만들고 있었기에 마치 황금으로 된 동굴로 들어가고 있다고 착각을 하였다. 테네시주에 있는 작은 호수들이 합치는 곳에 수많은 땜을 만들어 홍수를 예방하며 그 물들은 켄터키주로 흘러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인공의 호수가 바로 ‘켄터키 호수’인데 인근에 있는 샌디강(Sandy River) 마저 합류되어 마치 바다와 같은 호수였다. 더욱이 켄터키 호수와 인근 샌디강의 계곡에 울긋불긋 수놓은 가을 단풍은 한국의 금강산이나 유타의 그랜드 캐년보다 더 아름답고 웅장하여 수지는 그 황홀함에 넋을 잃고 멍하니 서서 생각을 하였다. (석호 오빠가 여기에 같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래도 안성천에서 고기 잡으며 놀던 때가 생각에서 떠 올랐다. ‘석호 오빠? 도와줘요! 거머리가 나를 물었어! 여기 허벅지를’....순간 석호 오빠가 뛰어오더니 허벅지에 붙은 거머리를 손으로 떼어버렸다.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 피가...’ 그 순간 석호 오빠는 그의 입으로 허벅지의 피를 빨아내더니 다시 뱉고 있었다. 독이 들어가면 죽는다고 하면서... ‘아니? 오빠가 내 허벅지의 피를 빨아내다니.....’) “야! 수지? 너 무엇을 그렇게 골돌히 생각을 하고 있니? 멍청하게 중얼거리면서...” 옆에 있던 미국 오빠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 “너, 벙어리니? 말도 못하고?” “........” 샌디강의 계곡에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보면서 수지는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에 살았던 김수자와 강석호를 생각하고 있었다. 무지개 저편에 있을 그녀의 고향, 공도를 생각하며..... * 켄터키로 입양되어 온지 어느듯 한해가 지났다. 미국에서는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법석이었는데, 일년 뒤 텍사스 달라스에서 암살을 당하였다. 반면 떠나온 한국에는 군사혁명이 일어나 정권이 바뀌었으며 월남전쟁은 점점 더 치열해 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달라진 것은 수지의 입에서 영어가 점점 수월하게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한국말은 점점 잊어 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뿐인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어머니의 얼굴도 그리고 석호 오빠의 얼굴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한 해가 지나고 또 가을이 왔다. 옥수수, 밀, 그리고 담배 농사도 끝나고 보니 빈들에는 니코틴 냄새가 코를 진동시키고 있었으며 쌀쌀한 바람에 낙옆이 흩날리고 있었다. -켄터키의 가을이 오고 있었다- 오늘도 수지는 폐차장에 나와 고물 자동차 위에 앉아 끙끙대며 차를 부수고 있는 흑인, 불랙.죠 아저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불랙 죠. 아저씨의 할아버지는 아프리카에서 잡혀와서 노예가 되었다고 하던데...그렇다면 저 아저씨와 나는 무엇이 다른가? 저 아저씨의 할아버지도 처음 미국에 와서는 나처럼 영어도 못하고 일만 하다가 죽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나는 그의 할아버지보다는 나은 처지로구나...”- “아저씨? 아저씨의 할아버지가 왔다고 하는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는 어디에 있나요?” 수지는 불랙 죠 아저씨에게 물었다. “어- 아이보리코스트? 여기서 아주 멀단다. 수지야. 사실 나는 한번도 못 가보았어. 설령 가본들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단다. 너는 그래도 코리아에서 입양되어 왔으니 나보다 나은 셈이지. 그러니까, 너는 자유인(自由人)이야. 자유는 그만큼 좋은 거야. 그래서 흑인들은 해방이 된 후 아프리카로 되 돌아 가서 스스로 독립국가를 만들었어, 그 나라가 바로 리베리아(Liberia)라고 하지. 자유의 나라. 수지? 너는 백인처럼 얼굴도 희고...그러니 너는 백인이나 마찬가지야. 얼마나 좋으냐, 수자야?“ “내가 백인이라고요, 아저씨?” “그렇다니까...” 불랙 죠 아저씨는 웃으면서 수지의 볼을 만져 주었다. “불랙 죠, 아저씨!” “수지야? 너의 이름, 포스터(Foster)는 우리 흑인들이 사랑하는 이름이란다. 수지야? 스티븐 포스터가 작곡한 노래, ‘오 수잔나’‘켄터키 옛집”을 나는 좋아한단다. -멀고 먼 알라바마 나의 고향은 그곳, 벤죠를 메고 나는 너를 찾아 왔노라. 오 수잔나- -켄터키 옛 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 마루를 구르며 노는 어린 것, 세상을 모르고 노나. 잘 쉬어라 쉬어. 우지 말고 쉬어...- 어떠냐? 수지! 이들 노래는 놀랍게도 너와 같은 성을 가진 스티븐 포스터가 지은 노래란다. 알겠니, 수지?“ “와! 포스터가 그렇게 유명한 음악가인가요?” “그렇다니까..수지야.” 불랙 죠 아저씨는 큰 쇠 망치를 땅에 내려놓으면서 말하였다. “아저씨도 고향 생각을 아나요?” “물론이지...그러나 나는 고향도 없어. 켄터키가 나의 고향이야...노예였으니까...노예는 갈 곳도 그리고 생각할 고향도 없어.”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강자는 약자를 잡아 노예로 삼았으며 노예는 언제고 고향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같이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는 말이다. 바빌론으로 노예가 되어 잡혀갔던 유태인들이 고향을 생각하며 불렀던 그들의 노래를 들어보자. ‘내 마음아- 황금 날개에 실어 고향 땅 언덕으로 날아가라. 산들바람 맑은 샘물 흐르는 곳, 내 고향의 노래를 부르자. 요단강에 인사하고- 예루살렘, 불타 무너진 것을 보라! 오- 내 조국- 언제나 다시 찾으리. 내 마음속에 사무치네. 소망의 앞 일을 알려 주는 하프 소리. 정다운 가락을 들려다오. 가슴속에 사무쳐 오는 추억. 정답게 나에게 말해 주오. 구슬픈 하프의 울림 소리. 마의 마음에 사무치네. 나의 마음에 사무치네.’ *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예들의 노래는 아프리카, 유태인 아니 한국 사람에게도 같은 심정이었나 보다.- * 참으로 수지의 운명을 바꾸어 줄 남자가 나타났다. -“하이! 네가 수지냐? 아버지한테 들어서 알고 있어. 반갑다. 오늘, 이렇게 만나다니...” 키가 훌쭉하며 얼굴이 길쭉한 백인 소년이 수지에게 가까이 와서 물었다. “그래 내가 수지야. 그런데 너는 누구냐?” “아- 나, 나는 아리스테야. 아리스테 디메트리우스(Ariste Demetrius).” “디메트리우스? 그러면, 폐차장에서 일하는 아저씨의 아들이군요?‘ “그래, 그래, 나는 11학년이야. 너, 한국에서 왔다고 하던데. 너, 참 예쁘구나. 예뻐.” “예쁘다구, 아리스테?” “그래, 그런데 나의 조상은 그리스에서 이곳으로 이민으로 왔다고 하던데, 나는 한번도 못 가봤어.” “그리스? 그리스라고!” “응, 옛날에 올림픽을 개최하였던 나라고...많은 철학자들이 살았던 나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에서 내 이름이 나온거야. 아리스테라고...” “아리스테? 아리스토텔레스?” “그렇다니까, 수지야. 그런데 너 그동안 몰라보게 영어가 늘었나보구나. 꽤 잘하는구나...” “아리스테, 칭찬해 주어서 고마워. 마치 석호 오빠처럼.” “석호 오빠? 누군데?” “어-한국에 있는 오빠야. 늘 날 보호해 주었고, 도움도 주었어. 그래서 오빠만 곁에 있으면 나는 늘 편했어.” “좋은 오빠였구나. 부럽다. 수지야! 나도 좋은 오빠가 될 수 있을까?” “물론이지. 아리스테! 나를 늘 감싸 줘! 부탁이야.” “그래, 수지야.” 아리스테는 가볍게 수지를 감싸 안아 주었다. (아-웬 일일까? 고향에 있는 석호 오빠를 다시 만났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 켄터키, 시골에서...). * 포스터씨는 수지 때문에 마음 고생을 많이 하였다. -입양으로 미국에 온 수지의 학교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음은 물론 행실도 나쁘다는 경고성의 편지를 여러 차례 받았으며 학교에도 자주 불려 다니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 수지가 미국으로 온지도 어느듯 6년..... 매달 생리도 하였으며 유방도 제법 통통해 지기 시작하니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10대들의 유행병인 마리화나를 피면서 성에대한 호기심도 갖고 있다고 포스터씨는 추측을 하였다. 근래에 와서는 오빠, 샘이 입양 동생인 수지를 농락하려고도 하였다. * 비가 내리는 1967년의 켄터키의 여름은 습도가 높다보니 피부가 찐득거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수지는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먹은 것을 토하며 몸에는 열이 나고 있었다. 마침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음을 하면서 겨우겨우 기어서 일층으로 내려 왔으나 수지는 너무나 힘이 들어서 그 자리에 쓸어지고 말았다. 오후가 되어서야 언니가 되는 매리가 집으로 돌아와서 쓸어져 있는 수지를 발견하였다. “수지! 수지!” 매리는 수지를 흔들어 깨웠는데 대답이 없었다. 다급한 매리는 박으로 뛰어 나와 폐차장에서 일하고 있는 디메트리우스 아저씨에게 말하여 구급차의 도움을 받아 코빙톤에 있는 병원으로 갈 수가 있었다. 급성 맹장이 터져서 심한 복막염과 패혈증을 일으켰기에 응급 수술을 하여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다. 병원에 무려 일주일을 누어 수술 경과를 보아야 했는데 정작 입양 부모는 고작 네 번만 병실로 찾아 왔을 뿐이었기에 어린 수지는 외로웠으며 무서웠다. 샘과 매리는 무엇이 그렇게도 바쁜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수지는 너무나 서글펐으며 상대적으로 한국인 오빠, 강석호가 더 생각났다. “오빠!-석호 오빠! ” 수지는 여러 차례 멀리 안성군에 있을 강석호 오빠를 부르고 또 불렀다. “고생하는 구나, 수지야!”순간 누군가가 수지를 부르고 있었다. “엉- 석호 오빠?” 수지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강석호라고 생각을 하였다. “뭐라고? 나, 아리스테야. 아리스테.” “예? 아리스테 오빠?” 석호 오빠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뜻밖에도 아리스테였다. 루이빌에서 코빙톤까지 찾아와 준 것이었다. “석호 오빠? 왜 이제 오는거야?” “석호 오빠라고? 나, 아리스테라니까...아리스테.” “어머, 아리스테 오빠.” 수지는 그제서야 아리스테라는 이름을 불렀으나 석호 오빠가 아닌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나, 어제도 왔었어.” “어제도?” “그래! 수지야. 어쩌거나 빨리 회복이 되거라. 병원에서 퇴원하면 나, 너를 데리고 루이빌에 가려서 구경을 시켜 주려고 해. 그곳에 있는 처칠다운스(Churchill Downs)에 가서 켄터키 더비(The Kentucky Derby)를 구경하고 맘모스 동굴(Mammoth Cave)에도 가려고 해, 알겠니? 수지?” “고마워. 아리스테 오빠. 바즈타운(Bardstown)에 있다는 켄터키 옛집이랑, 허젠빌(Hodenville)에 있는 링컨 대통령의 생가에도 가보고 싶어.” “그래? 약속하마. 그러니 부디 건강하거라. 어차피 나도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나도 대학을 졸업하게 되니까...그 때, 월남 전쟁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그 조건으로 대학 장학금을 받았으니까...물론 공군 장교로 말여.” “월남 전쟁에? 그럼 2년 후가 되겠네?” “그래, 수지.” 복막염에서 회복되어 집으로 퇴원하였을 때, 수지를 데려다 준 사람도 바로 아리스테였다. “고마워. 아리스테 오빠.” “수지? 언제고 네가 필요하면 나를 부르거라. 언제고...” 아리스테는 대답하였다. “오빠...” 수지는 눈 물을 흘리고 말았다. 너무나 고마웠는데, 그것은 마치 강석호 오빠라고 착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 약속대로 수지는 아리스테 오빠와 같이 루이빌에 있는 켄터키 주립대학을 거쳐 켄터키 더비를 구경하러 간 것은 다음해 5월이었다. 아리스테는 대학 3학년, 그리고 수지는 11학년이 되었으며 이 두 사람이 전격적으로 사랑하게 된 기회가 되었다. -루이빌은 온통 켄터키 더비로 인해 온 도시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아니 온 미국이 들 떠 있었으며 같이 온 수지도 그러했다. 불과 4분도 안 되는 경마를 위해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며 전 미국에 테레비존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수지? 켄터키 더비를 잘 보라구. 누군가가 이기게 되지. 누군가가...아참, 나도 내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월남 전쟁터로 가게돼. 물론 공군 기술장교이니까...그래도 살아서 돌아 오라고 수지? 나를 위해 기도해 줘.” “기도를 하면 살아와?” “물론이지. 그리고 나를 기다려 줘.” “........................” 순간 와! 와!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 왔으며 미국에서 가장 빠르다고 하는 8마리의 말들이 시원하게 펼쳐진 경마장 트랙을 힘차게 돌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각각의 말에게 건 돈의 행운을 바라면서 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순간, 옆에 앉아서 소리치고 있는 아리스테를 바라다 보니 마치 안성에 있는 석호 오빠처럼 보였다. 어느 가을날 타작을 하려고 쌓아 놓은 노적가리 속에서 서로 쳐다보며 포옹을 하였던 그 강석호 오빠였다. “석호 오빠?” 수지는 조용히 불러 보았다. * 맘모스 동굴을 거쳐 링컨 대통령의 생가를 찾아 간 것은 그 다음 주였다. 맘모스 동굴은 수정같은 고드름이 온통 동굴의 벽을 덮고 있었으며 링컨 대통령의 생가는 생각보다 더 초라하여 공도면에 있는 집보다도 못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아_ 석호 오빠도 열심히 공부를 하여 대통령이 되었으면.....”수지는 석호 오빠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수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돌하게 해?” 아리스테는 물끄러미 서있는 수지에게 물었다. “아-석호 오빠를. ” 수지는 무심코 대답을 하였다. “석호 오빠? 아- 한국에 있다는 그 오빠를? 수지는 그 오빠를 사랑하나봐, 그렇지? 그 오빠, 이젠 못 만나잖아, 그러니, 그 오빠는 이제는 잊고 여기에 있는 이 아리스테 오빠를 사랑하면 안될까?” 아리스테는 석호라는 남자를 질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리스테는 수지를 가만히 포옹하였다. 그뿐인가, 아리스테는 코빙톤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 휴계소에 정차한 자동차 안에서 수지에게 뜨거운 키스를 하였으며 마침내 그녀의 젖 가슴을 파고 들었다. “사랑해, 수지!” “...........” 수지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마치 석호오빠의 손길이 그녀의 가슴을 더듬고 있다고 착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하는대로 온 몸을 맡겼다. “수지, 내년에 졸업하면 나는 월남으로 가게돼. 그리고 수지 너는 대학에 입학하고...사랑해 수지야. 기다려둬! 수지야!” “...........” 6장. 신시내티 레즈 야구팀과 조지 포스터 중견수. * -수지는 이 대목에서 말을 멈추고 김정희씨의 손을 꼭 잡았다.- * “어려운 유년기를 보내셨군요. 오히려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소녀 시절을 보내셨군요. 데이톤에 사는 많은 여성들은 수지 의사는 백인 장교의 딸이라고 들었는데...그게 아녔군요.“ “나의 아버지가 백인 장교라고요?” “그렇습니다. 더구나 켄터키의 부잣집 딸이라고...” “켄터키의 부자라고?” “그렇습니다. 부잣집 딸이라고.” “아- 알겠습니다. 사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채 켄터키로 입양되어 왔답니다. 결코 부자도 아닌 시골 농사꾼의 집으로 말입니다.” “그랬군요. 그런데 남들은 그 반대로 알고 있었으니...” “어쩌겠습니까? 그건 오해인 것이지요. 정희씨? 나도 외로움과 눈물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같은 해(1952년)에 태어 낫으니 큰 인연이군요. 아주 큰 인연...” “인연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리, 한 자매처럼 지냅시다. 서로 울고 돕고 ...그리고 한스도 내가 돕겟습니다. 나의 아들이라고 생각을 하며....” “수지씨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해준다면...정말로 감사하군요.” 김정희씨는 마침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외로움을 같이 나누며 한스를 자기의 아들처럼 생각해 주겠다니... (‘진정한 친구는 비오는 날, 우산을 씌어 주는 친구가 아니라, 같이 비를 맞아 주는 친구라고 하였듯이....’) 김정희(미세스 던발)와 김수자(수지 디메트리우스)는 두 손을 꼭 잡았으며 자매가 되었다. 언니 동생이라고 부르는 자매가 되었다. * 그러나 김정희(미세스 던발)의 난소암 치료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화학 요법으로 인해 부작용도 꽤 심하여 간호원을 집으로 보내어 가사를 돌보아 주었으나 효성이 깊은 아들 한스 던발은 어머니를 위해 자주 학교에 결석하였기에 그만큼 학교 성적도 떨어지게 되니 학교로부터 경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들은 수지의사는 김정희씨의 아파트를 찾아 갔다. 과연 아들 한스는 효자였다. 어머니를 위하여 헌신하고 있었다. “한스? 어머니의 병 치료는 우리 의사-간호사가 책임지고 할터이니, 한스! 너는 학교에 가서 공부나 하거라. 그리고 야구를 하거라. 너의 어머니는 내가 돌보아 주마. 네 대신...” 수지는 한스에게 말하였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하겠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들어보니 수지 의사님도 켄터키에서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수지 의사는 백인과 마찬가지이기에 나는 도움 받고 싶지 않습니다.” 한스는 어머니로부터 수지의사의 과거를 들은 듯 하였으나 흑인 특유의 백인에 대한 열등 의식이 있는 듯하였다. (같은 혼혈이라고는 하나 흑인과의 혼혈은 백인과의 혼혈에 대해 열등 의식을 품고 있는 듯 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집요한 수지 의사의 설득과 새로운 제안 때문에, 한스 던발은 마음은 내키지 않았으나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결국 수지는 가정부를 두 사람 고용하여 24시간 김정희씨를 돌보게 하였으며 한스를 훌륭한 야구 선수로 키우기로 약속을 하였다. “정희! 마음 놓고 치료를 받으시게나. 한스는 내가 나의 아들처럼 키우겠어.” “아들처럼?” “약속할게. 반드시 신시내티 레즈의 강타자로 키우겠어. 죠지 포스터 처럼....” “죠지 포스터? 부탁하오. 수지. 내가 죽더라도... 내가 죽더라도...” “죽다니? 정희! 반드시 회복 될거야. 반드시.” 수지는 정희씨의 손을 꼭 잡았으나 내심으로는 불길하였다. -며칠전, 수지에게 보고된 병리 검사결과가 악성 난소암이었으며 임파선으로도 전이가 되어 있었기에 5년간 살 확률은 고작 5-10%밖에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1년 내에 죽을 확률이 거의 80%나 되기 때문이었다.- ‘꼭 살려야 하는데. 그리고 한스를 훌륭한 야구 선수로, 그래, 데이톤이 자랑하는 조지 포스터 처럼 길러야 하는데....’ 수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 1989년 9월이 되었다. 한스는 11학년이 되어 데이톤 고등학교의 야구팀에서 외야수로 활약하는 선수가 되었다. 6피트 3인치의 키에 200파운드의 몸 무개가 돋보였다. 그렇지만 정작, 코치의 말에 의하면 한스는 의욕이 없어 후보로 전전하고 있다고 하였다. 항암 치료를 받고 있어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어머니 걱정을 하느라고 자주 연습에도 빠진다고 하였다. 9 월 중순에 벌어진 데이톤 고등학교와 콜럼브스 고등학교와의 야구 경기에 수지는 모처럼 관전할 기회가 있었다. 듣던대로 한스는 후보선수로 등록이 되었으며 7회에 중견수를 대신하여 타석에 대신 들어 섰으나 가엾게도 3진으로 아웃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비중에 한번의 실수도 하였다. 물론 데이톤 고등학교는 콜럼브스고등 학교에게 11대 2로 패하고 말았으니 큰 실망이었다. 정말로 낭패였다. 며칠 후 한스는 수지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모처럼 야구 경기를 구경하였는데 실망 시켜드려서 미안하군요. 아무래도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을 포기하여야 할 것 같군요. ” “뭐라구? 포기하다니? 너의 어머니의 희망이요, 꿈이었는데...” “그러니까요. 아무래도 야구 체질이 아닌 것 같군요.” “아냐!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어. 그리고 포부가 없었어. 어쨋거나, 내일 나하고 신시내티 레즈의 게임에 같이 가자! 나하고!” “아니, 수지 의사님도 야구를?” “그래, 한스. 그리고 이제부턴 수지 의사라고 부르지 말고 이모라고 부르거라. 나와 네 어머니는 자매관계이니까...” “이모라구요? 이모?” “그래. 이모라구. 그리고 나, 신시내티 빅 레즈 머신(Big Reds Machine), 그리고 조지 포스터를 좋아해. ” “레즈를? 그리고 포스터를 좋아한다구요? 놀랍군요.”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내일 저녁에 나하고 같이 가는거다. 알겠어. 내가 내일 너를 데리러 올테니까, 기다리거라.” “예. 이모!” 마침내 한스는 이모라고 불렀으며, 내일 저녁 신시내티 레즈와 로스앤젤스 다저스와의 게임을 같이 가서 보기로 하였다. * -잠시, 수지가 좋아 하는 신시내티 레즈라는 직업 야구팀을 소개하려고 한다. 오하이오강은 오하이오와 켄터키 그리고 인디아나를 갈라 놓았지만 신시내티 레즈 야구만큼은 오히려 오하이오, 인디아나 그리고 켄터키를 하나의 주로 끈끈하게 묶어 주었다. 신시내티 레즈는 1869년에 창단 되었으며 그 구장은 오하이오 강을 바라다 보고 있기에 리버후론트(River Front)라고 부른다. 레즈팀은 뉴욕 양키와 맞 먹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월드 시리즈의 우승팀이다. 특히 1970년대에는 스파키 앤더슨(Sparky Anderson)감독의 지휘하에 월드 시리즈 우승 3회(75,76년에는 연속으로) 그리고 내쇼날 리그 우승 5회를 하였다. 이 기간 중에 레즈는 ‘피테 로즈, 조니 벤치, 조 몰간, 토니 페레즈, 데이브 콘셒시온, 켄 그리피, 그리고 조지 포스터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로 인해 막강한 팀이었기에 ’빅 레즈 머신(Big Reds Machine)'이라고 불리웠다. 신시내티 레즈의 게임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신시내티, 데이톤, 콜럼브스, 인디아나폴리스 그리고 오하이오 강 건너 켄터키의 코빙톤과 루이빌이었기에 야구 인구가 무려 600만명이 넘었다. 2003년, 리버프론트 구장은 다시 건설되어 그레이트 아메리칸 파크(Great American Park)라고 부르는 100% 야구구장이 되었다.(옛날에는 미식 축구도 했으니까..) 특히 1970년대의 야구 선수들은 이곳에서 그리고 전 미국에서 영웅으로 불리우는데 이들 중 특히 조지 포스터(George Foster)는 수지의 성과 같으며 데이톤에 살았기에 수지는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 생각을 하였으며 한스 던발을 조지 포스터 처럼 만들고 싶어 한 것은 아주 당연하였다.- * 다음날, 저녁. 수지는 한스를 차에 태우고 신시내티로 갔다. 고속도로-75번을 곁에 두고 흘러가는 마이아미 강은 신시내티 외곽에서 오하이오강 본류와 만나 오하이오강은 더 큰 강이 된다. 오하이오와 켄터키를 갈라 주는 켄터키다리에서 바라다본 리버프론트 구장은 마치 웅장한 성곽, 아니 옛날, 로마의 콜리세움과도 같았다. 서부의 명문 로스앤젤스 다저스와의 한판 승부를 가르는 게임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중들로 인해 구장은 입추의 여지도 없이 빽빽하였기에 수지와 한스는 지정석으로 찾아 가는데도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와! 크군요! 커.” 한스는 큰소리로 감탄하였다. “처음인가?” “예. 처음입니다. 데이톤에 있는 구장에는 가보았지만...돈이 없어서...여기는 처음이지요.” “아- 그랬구먼. 한스? 저기를 보라구! 저기 연습하는 투수와 그리고 공을 때리는 선수들을... 저기 중앙에 있는 선수가, 바로 베리 라킨(Barry Larkin)이야.” “와! 이모. 저기 보이는 저 배너가 바로 조 몰간, 조니 벤치, 그리고 조지 포스터군요. 이모!” “그래.” 한스는 흥분이 되었는지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으며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날 저녁의 게임은 로스앤젤스 다저스의 승리로 끝났으며 자동차를 타고 데이톤으로 올라 오니 어느듯 밤 12시가 다 되었다. “한스? 바로 저기 저 큰 집이 조지 포스터가 살던 집이야. 시인 던발이 살던 그 동네란 말야.” “던발? 던발?‘” “그래. 너도 알다시피 던발은 흑인 노예였어. 그러나 데이톤으로 이사를 와 그 아들은 시인이 되었어. 그리고 라이츠 형제들과 친구가 되었어. 자! 한스 너도 포스터 보다 더 훌륭한 강타자 야구 선수가 되거라.” “예? 포스터 처럼?” “그래. 한스 너는 할 수 있어. 조지 포스터도 너와같은 키를 갖은 사나이였어. 6피트 3인치, 190파운드였어. 너하고 다를 바가 없어. 그러니 너도 할 수 있어. ” “나도? 할수 있다구요?” “그래. 잘 들어가거라. 그리고 굿 나이트!” 수지는 한스를 집 앞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주: 조지 포스터는 칼리포니아 엘 카미노 대학을 나와 산프란시스코 자이안츠를 거쳐 신시내티 레즈에서 중견수로 1975년부터 4번 타자로 활약하였는데 레즈는 75년, 76년 내리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되었으며 1977년에는 최고 수훈 선수가 되었다. 그는 6피트 3인치에 타율 3할 2푼, RBI 149, 홈런 52개를 기록하였다. 조지 포스터는 늘 겸손하였으며 데이톤에 사는 흑인들을 위해 많은 자선 사업도 하였기에 신시내티 사람들 뿐만 아니라 데이톤의 영웅이었다. 수지는 그녀와 같은 성을 가진 조지 포스터를 좋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아파트로 들어 와 보니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나, 조지 포스터처럼 그리고 시인 던발 처럼 되겠습니다.” “조지 포스터? 그리고 던발?” “예. 어머니!” 미국 역사를 모르는 어머니는 한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러나 조지 포스터는 알고 있었기에 그와 같은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하는 뜻을 이해하였다. “그래, 이 에미를 위해 부디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되거라. 미국 최고의 선수가...” “예.” 한스는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를 크게 포옹하였다.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7장. 어머니는 왜 나를 버리셨나요? 김정희씨의 난소암은 생각보다 빨리 다른 장기로 전이(轉移)가 되었기에 빈혈, 탈수 어지러움증 그리고 거듭되는 염증으로 인해 여러차례 병원에 입원을 하였으며 하루하루 나빠지고 있었다. 아무리 한스가 마음을 궂게 먹고 야구 선수가 되고자 하였으나 어머니를 볼 때마다 그는 절망에 빠지곤 하였다. 그리고 돈이 필요하였기에 생각다 못해 한스는 흑인 아버지 던발을 찾아가서 도와 달라고 하소연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대답은 “할수 없다”는 말과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라는 무책임한 대답이었다. 아버지는 다른 흑인 여성과 이미 결혼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한스는 데이톤의 흑인가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크게 결심을 하였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오로지 어머니뿐... 아버지 없는 아들이다.” 며칠 후 수지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너의 아버지이다. 용서하거라. 용서하거라.” “예? 용서하라구요, 이모?” 한스는 실망한 듯이 그리고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수지에게 되 물었다. “한스, 너의 아버지는 잠시 정신이 나간거야. 그래도 너는 아버지가 있잖아. 나는 아버지가 없어.” 수지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모? 그래도 이모의 아버지는 백인이며 장교라고 했지요. 그뿐인가요, 이모의 어머니는 멀리 안성에 계시니까...” “아- 한스? 아니라니까..아냐..나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채 태어 낫어.” 수지는 한스의 손을 꼭 잡았으나 한스는 이모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 어느듯 한스는 12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한스는 야구 선수를 계속하기 위하여 어느 대학으로든지 스카우트가 되어야 했다.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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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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