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파트 3

2012.01.24 12:53

연규호 조회 수:552 추천:23

8장.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콜럼브스) 어떻게 보면 흑인 혼혈인 한스와 백인 혼혈인 수지의 고등학교 시절은 좌절과 고통, 그리고 분노로 점철된 세월이었기에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음은 물론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스는 더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야구선수로도 점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는데, 12학년 초에 치룬 10개 경기의 성적을 보면 타율 2할 9분, 타점(RBI)32, 홈런 7개를 기록하였다. 그러기에 잘만 하면 한스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콜럼브스)에 야구 특기자로서 입학을 할 수가 있을 거라고 코치는 말을 하였으나 그것 또한 힘든 일이었다. 반면, 한스의 어머니 김정희씨의 병세는 오락가락하였다. 항암 치료로 인해 식욕도 좋지 않았기에 나날이 수척해 지고 있었다. 김정희씨의 오직 한가지 소망은 아들 한스가 콜럼브스에 있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야구 선수로 입학을 하여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이었다. 며칠 전 김정희씨는 아들, 한스를 통해 ‘수지 의사가 1971년 5월, 10년만에 고국을 방문하여 푸대접을 받고 울고 돌아 왔던 눈물 나는 얘기’를 들었다. 문득 김정희씨도 고국 생각이 간절하였다.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가보고 싶구나! 한번만이라도!” 그러고 보니 김정희씨가 미국으로 이민 온지가 어느듯 16년이나 되었는데..... “죽기전에 한번만이라도 고향에 가보았으면..한번만,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고 죽었으면..” 김정희씨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설령, 한국에 간다고 해도, 흑인하고 결혼한 년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겠지...검둥이를 난 년이라고...” 김정희씨는 마침내 수지가 한국에 가서 받았던 그 치욕을 이해 할 수가 있었다. * 그날 저녁, 수지는 퇴근하는 길에 김정희씨의 집을 들렸는데, 그녀는 힘없이 멍하니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을 그리 생각하지?” “아- 그냥....” “그냥이라니?” “사실은 고향을 생각하고 있었오. 고향에 한번만 가보고 죽었으면...아니 그곳에 가서 죽어 묻히고 싶소.” “그렇다면 빨리 회복되어 나와 같이 고향에 가자구.” “같이 가자구, 수지?‘ “그렇다니까... 약속하지. 정희?.” “수지? 나는 갈 수가 없어. 너무 병이 깊어. 그리고 나, 나는 흑인의 아들을 낳은 년이란 말을 듣고 싶지 않아....고향에는 못 가...” * 도리켜 보면, 1989년에 만난 이 둘의 관계는 1990년 1991년 그리고 마침내 1992년 봄이 되었다. 봄이라고는 하나 오하이오의 봄은 아직도 싸늘하였다. 여기저기에 눈과 어름이 녹지 않은 채 길거리에서 뒹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12학년도 불과 3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콜럼브스에 있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으로부터 야구 특기자로서 입학을 허락 받았다. -데이톤 고등학교가 마침내 1991년도 오하이오 주 고등학교 야구 참피온이 되었으며 한스의 성적은 타율 3할 2분, 타점 63, 홈런 16으로 외야수로서는 최고의 성적을 가진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1992년 4월에 시작되는 12학년 2학기 야구 경기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계속하여야만 하는 조건이 있었다. 병중에 있는 어머니 김정희씨는 마침내 웃음을 띄고 즐거워하였다. “내 아들, 한스가 대학 야구 선수가 되었다. 야구 선수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김정희씨는 2년반 이상을 살고 있는 셈이었다. “많이 살았어. 많이...이젠 죽어도 한이 없어...” 김정희씨는 한숨을 쉬었다. 1992년 4월과 5월에 있었던 오하이오 교교 야구 대항전에서 한스는 발군의 실력을 계속하였으며 마침내 데이톤 고등학교는 지역 참피온 전에 출전하는 영광을 얻었다. 지역 참피온 전은 1992년 5월 21일 저녁에 영광스럽게도 전례대로 신시내티 리버프론트 구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5월 21일 아침부터 한스의 어머니는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혼수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앰뷰란스에 실려 굿 사마리탄 병원으로 실려가 중 환자 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스스로 호흡을 할 수가 없어 호흡기계를 통해 겨우 겨우 숨을 쉬고 있었기에 의사의 말로는 오늘을 넘기기가 힘들 것 같다는 언질을 주었다. “이모? 어머니는 오늘을 넘기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저 오늘 야구 결승전에 못 나갑니다. 아니 안갑니다. ” 한스는 이모, 수지의 손을 잡았다. “그래?” 수지는 작은 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 오후가 되니 어머니의 증세는 더 악화되고 있었다. 야구 코치가 다녀갔다. “어머니의 증세가 악화 된 것은 알겠으나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출전 시켜 주십시오.” 코치는 간절하게 부탁을 하였다. “..........” “저녁에 차를 보낼 테니 준비하고 있거라. 부탁이다.” 코치는 병실을 나가면서 또 한번 부탁을 하였다. “안되겠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 한스는 어머니의 임종을 보기 위하여 야구 경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었다. 갑자기 부 코치가 병실로 찾아 왔다. “한스! 가자! 우리학교는 네가 필요해. 네가 필요해! 가자!” “안됩니다. 어머니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안갑니다!” “한스! 너 없는 우리 학교는 신시내티팀을 못 이겨! 그러니 같이 가자!” “안됩니다. 어머니를 위해서....” “한스! 우리는 네가 필요해! 네가...” 부 코치는 큰 소리로 말하였다. “한스! 어머니는 내가 지키고 있겠다. 학교를 위해,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 출전하거라!” 뜻밖이었다. 밖에서 들려 온 목소리는 바로 수지의 목소리였다. “아니! 이모!” “그래, 가거라! 나를 위해, 그리고 어머니와 학교를 위해....” “어머니를 위해...” “............” “가거라! 한스. 가거라.” 수지는 말하였다. “이모! 가겠소. 그러니 어머니를...어머니를 부탁해요.” 마침내, 한스는 부 코치와 같이 신시내티 리버프론트 구장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고교 야구 결승전을 알리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한스는 가까스레 게임에 참여 할 수가 있었다. -고교 야구 결승전은 팽팽한 투수전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90마일 속도로 던지는 야구공을 때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9회초 신시내티 고교가 3:2로 데이톤 고교를 앞서고 있었으며 마지막 공격에 나선 데이톤 고교의 타선은 의외로 한 개의 히트와 훠 볼(Four Ball)한 개로 주자가 일루와 이루에 있었으며 아깝게도 2 아웃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선수가 바로 한스 던발이었다. 신시내티팀은 그들이 자랑하는 괴물 투수를 내 보내어 93-95 마일의 강 속구로 볼을 던지니 감히 공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결국 2 스트라익, 2볼의 유리한 상황에서 괴물 투수는 마음껒 95마일의 강 속구의 공을 던졌다. 공을 기다리고 있는 한스의 귀에 문득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스야! 여기 어머니가 있어. 어머니는 너와 항상 같이 있어. 나는 너를 믿어...” “어머니!” 한스는 큰 소리로 외치면서 뱃트를 힘껒 휘둘렀다. ‘탁’ 소리가 나면서 공은 낮게 그리고 힘있게 일루와 이루 사이를 꿰 뚫고 날라가고 있었다. 비록 중견수와 우익수가 몸을 날려 공을 받으려고 하였으나 공은 펜스를 맞고 그 앞에서 빙그레 돌면서 우측으로 휘어졌다. 결국 깨끗한 이루타였다. “와-와-” 신시내티 구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찻으며 2루와 1루에 있던 주자가 홈으로 뛰어 들었으며 한스는 2루에서 세이프가 되었다. 결국 데이톤 고교가 4:3으로 역전승하였으며 오하이오 주의 고교 참피온이 되었다. “야구 참피온! 데이톤 고교! 데이톤 고교!” 장내 아나운서가 거듭 거듭 방송을 하였다. 그리고 선수들을 일일이 소개를 하였다. “오늘의 최우수 선수는 데이톤 고교의 한스 던발, 더어언바아알....”이라고 거듭 소개를 하며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오늘의 최 우수수 선수 한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자 마자 한스는 경기장을 빠져 나와 데이톤에 있는 굿 사마리탄 병원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한스가 어머니가 누어 있는 병실로 찾아 왔을 때, 어머니는 불과 몇 분전에 세상을 떠난 후였기에 어머니의 손목은 아직도 따슷하였다. “어머니! 어머니!” 한스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엉엉 울고 있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머니의 손목은 점점 싸늘해 지고 있었다. “한스? 어머니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 가셨어. 네가 거둔 승리를 어머니는 알고 갔어...” 울고 있는 한스의 손을 꼭 잡아 준 사람은 이모, 수지 의사였다. “어머니! 어머어니-----” * 다음날 아침, 데이톤 신문과 신시내티 신문에 실린 기사가 눈에 띄었다. -어머니의 한을 풀어준 고교 야구의 영웅, 한스 던발과 그의 눈물---- 어제 저녁 리버프론트 스태디움에서 벌어진 오하이오주 고교 야구 챔피온 전의 영웅, 한스 던발은 한국에서 한국 여인과 흑인 병사와의 사이에서 혼혈아로 태어나 불우한 유년기 그리고 소년기를 보내오던중 엎친데 곂친 격으로 어머니는 악성 난소암으로 인해 병석에 누었기에 한스는 더 이상 학교를 계속 할 수가 없게 되었는데, 너무나 고맙게도 굿 사마리탄 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개업하는 수지 디메트리우스(산부인과)의 도움으로 공부는 물론 야구를 계속하여 마침내 어제 저녁 결승전에서 2루타를 쳐 게임을 역전 시킴은 물론 고교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2루타를 치며 결승점을 올리던 그 시간 그는 숨을 거두고 있었다고 한다., 아들 한스는 어머니의 최후룰 알고도 야구장에 나가 최선을 다하였으며 어머니는 아들의 경기를 위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더 더욱 우리들을 눈물곂게 한 것은 한스의 어머니와 수지는 자매의 결의를 하였기에 한스는 수지 의사를 이모라고 부른다고 한다. 모래 정오에 데이톤 한인교회에서는 죽은 한스의 어머니를 위한 장례예배가 올려진다고 한다.- 신시내티 데일리 신문... * 비록 교교 야국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가 되었다고는 하나 난소암으로 고생하던 어머니의 운명을 지켜보지 못하였던 한스는 어머니의 무덤으로 찾아가곤 하였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허무하였다. -한국에서 흑인과 결혼을 하였기에 한국 사람들로부터 많은 모욕을 받았으며 미국에 와서는 사랑받아야 할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갖은 모욕을 받았음은 물론 집에서 쫒겨나기도 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어머니가 불쌍하여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그래도 어머니가 고마운 것은 한국말을 가르쳐 주었으며 한국의 전통과 풍습을 가르쳐 주려고 한 것이 한스의 마음속에 ‘나도 한국사람이다’라는 확고한 생각이었다. “나도 한국사람이다. 그래, 한국사람의 피가 나의 혈관에 흐르고 있다”- *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콜럼브스)는 학생수가 5만명이 넘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특별히 미식축구. 농구, 육상. 그리고 야구등 모든 분야의 전 경기에서 명문이었기에 이 대학에 입학하여 잘만 하면 직업 선수가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한스는 야구뿐만 아니라 공부에도 소홀하였기에 한스는 후보 선수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한 학년을 보낸다면 야구 선수의 자격도 취소 된다고 학교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엎친데 곂친 격으로 한스의 기숙사 방에서 담배꽁초와 마시다 남은 술병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니 수지 의사는 낙담이 되었다. “이건 아닌데, 아닌데...” 수지는 참다못해 어느날 콜럼브스의 기숙사를 방문하였다. 갑작스러운 이모의 방문을 받은 한스는 놀랐으며 부끄러웠다. “왜 그랬느냐?” 이모가 물었다. “어머니를 생각 할 때마다 나는 울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아무 것도...” 분명, 이것은 어머니를 잃고 난 후에 온 우울증이었다. 문득 수지는 그녀가 대학 일 학년이 되었을 때 겪었던 그 우울증을 생각해 보았다. -10년만에 찾아 간 한국에서 어머니를 만나지 못함은 물론 ‘이젠 한국이란 나라는 나의 조국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짖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 온 수지는 갑작스러운 우울증으로 인해 잠을 자기도 힘들었으며 말도 하고 싶지 않았었다.- “한스, 우울증이로군? 마치 이모가 겪었던 그 우울증....” “우울증이라구요? 이모.” “그래 한스 내가 겪었던 그 우울증. 한 때, 나는 자살을 생각해 보았어,” “자살을? 이모는 나보다 더 좋은 환경이었는데 자살까지? 이모의 아버지는 장교요 부자라고 하였는데...” “사실은 안 그랬어. 그리고 나는 극복하였어.” “극복하였다구요?” “그래. 한스! 그러니 너도 극복할 수가 있어.”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이모? 말해 주세요. 이모!” “그래, 한스, 나의 대학생활에 겪었던 그 우울증을 얘기하마. 듣거라... 한스” “예.” 9.꺼꾸로 도는 풍차(風車) 사실이 그러했다. 그녀는 그녀가 겪은 우울증과 고통을 한스에게 들려주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971년 8월이 되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어머니와 강석호 오빠를 못 만나고 켄터키로 돌아 온지도 어느듯 3개월이 지난 후였다. 마침내, 수지는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 강석호 오빠를 대신 포스터씨 부부와 아리스테 디메트리우스를 선택하였으며 루이빌 대학교를 버리고 코빙톤 초급대학으로 진학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포스터씨의 집을 나와 기숙사로 나가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온통 그녀의 머리 속은 혼돈이었으며 공부보다는 월남으로 간 아리스테를 생각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친구도 없었으며 학교 성적은 바닥이었다. 수지를 더 괴롭히는 것은 노스캐롤라이나를 거쳐 월남 다낭으로 가게 될 아리스테에게서도 소식이 없었는데 그것은 월남으로 가기 전에 받아야 하는 강력한 훈련 때문이었다. 1972년 3월, 다낭으로 떠나기 일주일전, 수지와 아리스테는 약혼을 하였다. 둘은 약혼 기념으로 루이빌에서 둘만의 하룻밤을 지내며 궂게 약속을 하였다. “기다리는 거다. 다른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당신과 나만을...” 그리고 아리스테는 월남의 다낭으로 갔다.- 약혼자 아리스테는 다낭에서 여러차례 편지를 보내 왔기에 수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월남에서의 군복무, 3년과 수지의 대학 생활 4년간을 무사하게 보내는 것이 이젠 최대의 문제였다. 세월은 흘러 어느새 수지는 코빙톤 대학(2년제)을 마치고 루이빌 대학교로 편입을 하게 되었으며 아리스테는 일년만 더 복무하면 공군에서 제대를 하게 됨으로 곧 이어서 루이빌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 수지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 그들의 인생 계획이었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풍차와도 같았는데 일년을 남겨두고 잘 돌아가던 풍차는 거꾸로 돌기 시작하였다. -꺼꾸로 돌아 가는 풍차(風車)----- 어찌된 셈인지 아리스테로부터 오던 편지가 뜸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아리스테, 어찌된거야? 왜 편지가 없어?” 지난 몇 개월 사이에는 전혀 편지가 없었다. “왜, 편지가 없지? 왜?” 참다 못해 수지는 켄터키로 가 시아버지가 될 아리스테의 아버지를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뜻밖의 사실을 항게 되었다. “수지? 아리스테가 병원에 입원을 하였어... 그래서 당분간 지켜 보는 중이야. 그래서 병원에서 편지를 통제하고 있다는 구나...” “예? 병원에요?” “그래.” 아리스테의 아버지는 힘없이 대답을 하였다. “얼마나 됐습니까?” “두달 정도...” “두달이나? 왜요? 부상를 당했나요?” 수지는 아리스테의 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말을 하다가 힘없이 땅에 쓸어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캄캄하였기 때문이었다. “수지야!” 아리스테의 아버지는 수지를 부축하였다. 한달 후 수지에게 배달된 한통의 편지가 있었는데 뜻밖에도 괌도(Guam)에 있는 미군 병원에서 근무하는 정신과 군의관에서 온 꽤나 두툼한 편지였다. 편지 요약: 월남 다낭에 있는 공군 기지에서 근무하던 공군 소위 아리스테는 끔찍한 장면들을 여러차례 보면서 마음에 동요가 일기 시작하였다. 월맹 폭격에 나갔던 조종사들이 월맹 상공에서 추락하였다가 천신만고 끝에 구출 되어 돌아 왔는데 그들의 모습은 폭격으로 나가던 그 때의 그 씩씩하고 건정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비참하고 쓸쓸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인 힘없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얼굴은 온통 화상으로 이글어 졌으며 팔 다리가 잘려 나가기도 하였다. 더욱이 일부 조종사들은 포로가 되어 월맹 TV에도 나타나곤 하였다. 해병대와 육군의 상황은 더더욱 비참하였다. 아리스테는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지 않을까?’하는 공포심에 사로잡히곤 하였다. 매일 저녁마다 잠이 오지 않았기에 매일 저녁 남몰래 수면제를 먹기도 하였으며 마약을 사서 먹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그의 손은 점점 떨리고 있었으며 허깨비같은 물체를 보기도 하였다. 그뿐인가 그의 귀에서는 요사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다른 동료들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서성거리기도 하였으며 혼자 웃기도 하였다. 헛 소리를 하기도 하였으며 엉뚱한 말을 하기도 하였다. “이것 보게! 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는데 나더러 말하기를 ‘아리스테! 너는 오늘 당장 하노이로 가서 호지민을 잡아 오거라’라고 하였다. ‘그뿐인가, 나는 나보다 네 살 더 어린 아가씨와 결혼을 하여 다낭으로 다시 올거다. 알겠느냐?’” 결국 그의 병명은 과대망상(誇大妄想), 피해망상(被害妄想)의 정신분열증(精神分裂症)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는 장교이기에 다낭에서 특별히 괌으로 후송되어 거기서 치료를 받다가 호전이 되면 칼리포니아에 있는 반덴버그 공군 기지로 보내지게 된다고 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 이 편지를 받은 수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가? 정신분열증에 걸리다니....아리스테? 아리스테! 제발 회복이 되소서....” * 그리고 2개월 후 수지는 또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역시 월남에 있는 공군 군의관이 보낸 아주 간단한 편지였다. -공군 소위 아리스테 디메트리우스의 병세가 호전 되었기에 칼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 기지로 전속이 되었으며 향후 통원 치료와 정신료법이 필요함. 공군 군의관 소령 밀러(Miller)- "아- 호전되었다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수지는 너무나 기뻐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 칼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 기지에서 거의 반년 동안 요양 치료를 한 후 칸사스에 있는 작은 공군 기지로 전속가면서 비로소 스스로 편지를 써 수지에게 보내니 수지는 비로서 마음이 평안하였다. “사랑하는 수지에게. 마침내 캔사스 기지로 전속을 오면서 오하이오가 가깝게 있음을 느끼게 되었어. 그리고 머지 않아 오하이오의 집으로 곧 돌아가 수지, 그대를 만나게 된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기쁘오. 수지, 당신이 믿던 안 믿던 나는 공군병원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어. 나는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절실하게 느꼈던 거야. 수지? 그런데 나는 삽시간에 그토록 무참하게 깨져 버린거야. 그리고 병원에 입원하여 동물처럼 이리 저리로 끌려 다니면서 주는 약을 먹어야 했어. 내가 생각을 해도 이해가 안가는 구나. 그런데 또 한가지, 내가 소스라치게 느낀 것은 바로 수지, 당신의 존재였어. 수지, 당신을 생각하면서 나는 나, 스스로를 강하게 지킬 수가 있었어. 왜, 그랬을까? 어쨋든 나는 당신, 그대를 사랑하오. 곧 캔사스 기지에서 제대를 하게 될거요. 제대를 하면 테이톤에 있는 라이츠-패터슨 공군 기지에서 전기 기술자로 일을 하게 될거요. 안녕, 수지...그리고 사랑해. 캔사스에서, 아리스테가-“ * “아리스테! 아리스테! 아, 이제야 완쾌되었군요. 설령, 완쾌가 안 된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만을...그리고 보고 싶었어요.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의 수지가.” 수지는 급히 답장을 써 보냈다. 수지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아리스테를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그 순간 수지의 눈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서울 어디에 있을 강석호 오빠였다. ‘3년전, 한국을 방문 하였을 때, 석호 오빠는 분명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이었으니, 지금쯤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당당한 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강석호 의사 그리고 아리스테 전기 기술자..... ‘아니? 의사와 전기 기술자...아니 정신병자....’ 순간 약혼자 아리스테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냐!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한국을 잊자고 하였지...그리고 석호 오빠를 잊는 다고 하였지... 석호 오빠? 오빠는 지금쯤 나를 잊었을거야. 까마득하게... 의사가 되었으니 지금쯤 어느 부잣집 딸과 결혼을 하였겠지. 나같은 혼혈아 따위하고는 격이 안 맞아. 그러기에 내가 끼어 들어 본다고 해도 그는 나를 모를거야. 그러니, 아리스테? 당신은 내 마음속에 더 이상 가치 없는 그림자가 아니오. 이제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를 조종하는 태양이요., 태양!“ 수지는 아리스테의 편지를 들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 아리스테는 그 해 가을에 공군에서 제대를 하여 데이톤으로 돌아 왔다. 데이톤으로 되 돌아 온 아리스테는 옛날처럼 아주 건전하였으며 약속대로 라이츠-패터슨 공군 기지에서 전기 기술자로 취직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착실히 일을 하여 돈을 모아 인근에 작은 집을 장만하였다. 그리고 그는 수지가 루이빌 대학교를 졸업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스스럼 없이 수지는 아리스테의 집을 찾아갔으니 한 가족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수지를 불안 하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경미하기는 하나 아직도 아리스테가 갖고 있는 망상의 증세였다. 마침내, 1975년 5월, 수지는 루이빌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그해 가을 서둘러서 수지와 결혼을 하였으며 준비해 둔 데이톤의 집으로 가 신혼 살림을 시작하였다. -결혼하기 전 날, 수지는 곰곰히 생각을 하여 보았다. “과연 나는 석호 오빠를 잊고 아리스테와 결혼을 하였는가? 아-, 석호 오빠와, 나는 안성에 있는 노적가리 속에서 손가락을 걸고 서로 약속을 하였는데...약속을. 비록 9살과 12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우리는 서로 서로 약속을 하였어. ‘우리 오래, 오래, 같이 살자꾸나. 같이 살자...평생을...’ 그런데, 나는 아리스테와 결혼을 하였어. 아리스테와...아- 석호 오빠가 아니고...“ 불길하였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 다음날, 거행된 수지와 아리스테의 결혼식은 아주 특이하였다. 평범한 시민들이 하는 평범한 결혼식이기는 하나 아리스테는 그의 조국, 그리스를 생각하여 옛 그리스의 풍습을 많이 강조한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이 끝나면서 수지 포스터의 이름은 수지 포스터 디메트리우스라는 긴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당연히 그들의 신혼 여행지도 그리스가 되었다. 알고 보니 아리스테도 이번이 그리스로 가는 처음 여행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로 신혼 여행을 가기로 했어, 수지!” “오빠, 아니, 여보! 나도 보고 싶어. 당신의 조국을....” 순간---수지는 4년전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고향에서 받았던 그 수모와 모욕이 떠오르고 있었다. * 그리스로 가는 길은 한국으로 가는 길보다 더 멀고 어려웠다. 신시내티를 떠나 뉴욕으로 가서 그곳에서 독일, 프랑크프르트를 경유하여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도착하였다. 그리스는 생각보다 가난한 나라였다. 아테네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지저분한 도시였다. 1970년대의 그리스는 정치적인 불안정으로 인해 종종 테러도 있었다. 아리스테의 옛 고향인 아그리니온(Agrinion)으로 가는 길은 험하여 무려 6시간이나 걸렸다. 미국 같으면 불과 2시간이면 될 그런 가까운 거리였다. 아그리온은 이오니아 바다가 가까운 곳이나 제법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서 만난 사람들은 염소와 양을 치며 채소를 가꾸는 순박하고 무식한 농민들이었다. 1900년경, 심한 홍수로 인해 그리스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하였는데 아리스테의 할아버지는 1925년경에 미국으로 이민해 왔다고 한다. 독일사람들과 그리스 사람들이 제법 많이 살고 있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근처로 이민으로 와서 역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그들의 자손들은 오하이오 강 건너 켄터키주 코빙톤으로 이주하여 역시 옥수수, 밀, 담배를 심어 근근히 살아 왔기에 그리스에는 별로 아는 친척도 없었다고 한다. 수지는 말로만 듣던 그리스의 유적지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수지를 감격케 한 것은 무려 50년 후에 찾아 온 이민 3세에 대한 그리스 사람들의 따슷한 대접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선조가 살았던 고향을 찾아 온 오하이오의 한 남자와 한국계 혼혈의 아내에 대한 그들의 긍지가 대단하였기 때문이었기에 수지가 한국에 찾아가서 받았던 그 모욕적인 대접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리스테? 당신의 조국은 너무나 친절하군요. 비록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은 나의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한국과 비슷하지만....너무나 자랑스럽군요. 눈물이 나는군요.” “수지? 부디 한국에서 받았던 그 모욕은 잊어버리시오. 이제부터 당신의 조국은 그리스라고 생각하시오. 어쨋거나 우리는 미국 사람이니까....” 그리스를 다녀 온 후 수지는 임신을 하였다. 아리스테의 양부모와 시부모들도 기뻐하였다. 그러기에 모처럼 이들 두 부부의 앞날은 밝고 환하였다. *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아니면 거꾸로 도는 풍차인가? -신혼 여행을 다녀 온지 얼마 안 되는 날이었다. 수지는 뜻밖의 편지를 데이톤에 사는 한인 목사님으로 전달받았다. “수지? 나에게 온 편지 속에 ‘목사님? 켄터키에 살다가 데이톤으로 이사온 김수자(金秀子)라는 분을 아시면 동봉한 이 편지를 그녀에게 꼭 전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의사 강석호 드림’이라고 쓰여 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 당신 같기에 이렇게 가지고 왔으니 뜯어 보시오.” 데이톤 교회 한국 목사님이 말했다. “예? 강석호라고요? 강석호?” “예.” 목사님은 간단히 대답을 하고는 축복 기도를 하여 준 후 총총히 사라졌다. 수지는 동봉한 편지를 떨리는 마음으로 일기 시작하였다. -보고 싶은 수자에게! 수자야, 너를 떠나 보낸지도 어느듯 14년이나 흘렀어. 손을 꼽어 보니 수자, 너도 금년에는 대학교를 졸업하였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 낫 설고 물 설은 미국 땅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였느냐? 너를 보내고 난 후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을 하였구나.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어. 몇 년뒤 너의 어머니에게 네가 어디에 갔는지를 또 물었으나 모른다고만 하였어. 그리고 너를 데리고 간 여행사 직원을 찾았으나 헛 수고였어. 모든 것이 모른다는 거였어. 그러다가 1971년 5월 어느날이었어. 네가 너의 어머니를 만나러 왔다가 못 만나고 돌아 갔다는 말을 듣고는 나는 울었어. 뿐만 아니라 네가 나를 찾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왔었는데 하필이면 나는 원주 기독병원에 가서 실습을 하고 있었기에 너를 못 만났으니... 이 사실을 2년이 지난 졸업식 때, 나의 친구가 그때서야 알려 주었어. “야, 석호야? 내가 깜빡 잊었는데 2 년전에 미국 켄터키에 산다고 하는 어느 백인, 아니 혼혈 여성이 너를 찾아 왔더라. 그런데 내게 주소도 전화번호도 주지 않고 그냥 가면서 켄터키에 산다고만 말해 달라고 하였어. 그리고 그녀는 너더러 잊어 달라고 부탁하였어. 그런데 내가 그만 깜빡 하였어.” “뭐라고? 수지가 왔었다고? 야 임마! 왜 이제서야 말하는거야! 왜!” 나는 소리를 쳤어. 그리고 나는 내 친구를 붖잡고 울고 말았지. 그뿐인가, 나는 너의 어머니가 재혼을 하였기에 너를 보지 못하고 도망을 갔다는 사실을 알고 너의 어머니를 붖잡고 말했어. “수자 어머니? 수자를 그렇게 울려 보내면 되나요? 수자를 또 한번 버렸군요!” “..........” 너의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더라. 물론 나는 너의 어머니를 이모라고 부르고 있지만.... 너의 어머니는 네가 미국으로 간 후 수원에 사는 김씨와 재혼을 하였는데 작년에 김씨가 죽고 나니 너의 어머니는 자주 나의 집으로 찾아오곤 한단다. 수자, 나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세브란스 병원에서 외과 전문의사가 되려고 수련을 받고 있어. 4년 후에는 전문 의사가 되는 셈이지. 수자야! 나, 나는 아직도 너의 모습을 내 마음속에 그리고 있어. 수자? 너, 기억나니? 공도에 살 때, 우리집 앞에 세워둔 노적가리 속에서 너와 나, 손가락을 걸면서 약속했었지.. (‘우리 언제까지나 같이 살자! 같이...’‘그래, 같이 살아...’ 그리고 우리는 또 손가락을 걸었지.) 수자야, 나,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결혼하지 않았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너를... 나는 너만을 사랑한다. 너만을... 혹시 이 편지를 받으면 수자야 곧 전화를 해주거라. 전화 서울 02 516 9477 서울 세브란스 병원 외과 전문의 의국에서. 사랑해, 수자야. 오빠, 강석호. * “맙소사! 하나님!”수지는 마치 폭탄이 등뒤에서 터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 어머니는 재혼을 하였으며 재혼 한 그 아버지는 죽었다니...그리고,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석호 오빠가 아직도 나와 맺은 약속을 지키려고 아직도 결혼도 하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니...그런데 나는 아리스테와 결혼을 하였으니, 아- 나는 오빠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구나...나는 결국 배신자요, 오빠에게 큰 빗을 진 죄인이 되었어...오빠! 석호 오빠! 나, 어쩐담, 오빠를 버리고 이렇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였어...” 수지는 아리스테와 결혼을 한 것이 너무나 후회되었다. * 호사다마라(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정신적으로 안정되었다고 생각하였던 남편 아리스테는 수년 전, 월남전쟁터에서 얻었던 정신병 증세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수지가 잠자면서 가끔 잠꼬대를 하였는데 그 때마다 “석호, 석호 오빠!”라고 중얼대는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였다. “여보? 당신, 잠꼬대를 할 때마다 ‘석호’라는 사람을 부르는데 그 사람 혹시 여기 미국에 왔는거여? 아니면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거여?” “예! 석호 오빠가 여기에 있다구요? 당신 무슨 말을 하는거요? 당신 질투를 하는 군요...질투를...” 그후부터 아리스테는 수지를 더 의심하기 시작하였으며 뒤를 따라 다니는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소위 의처증(疑妻症)의 증세였다. 석호 오빠와 아리스테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수지는 몸과 마음이 점점 더 피곤하고 있었다.- -아리스테의 마음속에는 아내, 수지에 대한 배신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석호 오빠라고 하는 존재를 가슴속에 품고 아리스테를 사랑한다고 하였으니 마치 아리스테 자신을 허수아비나 빈 껍데기 같은 신세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호라는 남자, 그는 멀리 태평양 넘어 가난한 나라의 농촌에 사는 농사꾼 일뿐인데 내게는 어째서 이토록 버거운 존재인가? 나의 아내는 나보다 그자를 더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리스테는 홧김에 조금씩 조금씩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근자에 와서는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으며 술 주정도 하기 시작하였다. (‘수지? 너는 내게 버거워, 아주 버거워.’) 아리스테는 불평의 말을 하면서 침대에 누어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여보! 옷을 벗고 주무세요. 여보!” 수지는 남편, 아리스테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순간 누어 코를 골고 있던 아리스테는 큰 소리를 쳤다. “놔두소! 당신은 이제 내 아내가 아니란 말요!” 그리고 손을 내 저었다. 공교롭게도 아리스테의 주먹은 수지의 복부를 강타하였다. 그리고 코를 골면서 잠에 빠졌다. “아-아!” 배를 맞은 수지는 그 자리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가엾게도 수지는 심한 복통을 느끼면서 하혈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정신이 가물가물 거리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하여 수지는 현관문으로 기어갔는지는 모르나 마침 이웃 아주머니에게 발견이 되어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임신 3개월된 태아를 유산하고 말았다. -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리스테는 심한 죄 의식을 느끼게 되었으며 말이 없어지더니 다낭에서 발병하였던 ‘망상증(妄想症)’이 재발하고 말았다. 시아버지, 디메트리우스와 양 아버지 포스터씨는 보다 못해 아리스테를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키기로 하였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을 하고 보니, 수지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이르고 말았으며 먹기 살기 위하여 그녀는 직장을 가져야 했다. 잠시 그녀는 데이톤을 떠나 켄터키의 집으로 되 돌아 갔다. “웬일일까? 옛날에는 억지로 끌려와 자유가 없는 감옥 같은 집이었는데 이제는 달랐다. 마치 자유스러운 집이었다. 그뿐인가? 아리스테보다도 그를 통해 임신되었던 그 죽은 아이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문득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를 이해 할 수가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임신이 되었든 내 자궁속에 들어 있었던 그 아이가 이토록 소중할진대, 나를 나은 어머니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을 하였을 게다. 어머니! 어머니!” 수지는 1971년 5월, 조선 호텔에서 그녀를 뿌리치고 도망을 갔던 어머니가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 수지는 켄터키의 집을 나와 데이톤으로 가 정신병원에 있는 아리스테를 찾았다. 아무리 정신병에 걸려 있다고는 하나 그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2주 후에 아리스테는 정신병원에서 퇴원을 하여 집으로 돌아 왔으나 아리스테는 아내 수지를 점점 더 의심하였으며 수지가 가는 곳을 뒤따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리스테는 수지의 오빠라는 강석호가 미국에 와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수지에게 다구쳤다. “여보! 강석호란 사람, 여기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거야? 네 곁에?” 남편 아리스테의 병세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으며, 자신은 수지의 배를 강타하여 아이를 죽인 살인자라고 단정을 하였다. “수지, 나는 나의 아이를 죽였어! 죽였어!” * 오늘도 수지는 오하이오 강을 건너 켄터키의 옛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신시내티와 켄터키를 연결하는 존. 로브링(John Roebling) 다리는 150년의 역사를 가진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서스펜숀식( Suspension)의 다릴로 유명하다. 이 다리 아래로 오하이오강은 도도히 흘러가면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듯 하였다. -여러분들은 오하이오강이 미시시피 강을 이루는 작은 강들중에서 제일 길고 크다는 것을 모르실겁니다. 그리고 이 오하이오강을 경계로 하는 주가 무려 7개나 된다는 사실을.. (펜실바니아 주 서 북쪽에 있는 알리게니(Allegeheny)호수에서 흘러 나온 맑은 물은 울창한 산림을 가로 질러 흐르면서 알리게니 강이 되어 내려 오다가 피츠버그시를 마치 구렁이가 오동나무 고목을 감싸 안 듯이 구불구불 한바퀴 빙 돌게 됩니다. 그러나 공장 도시인 피츠버그 시를 지나면서 강은 오염되어 더러운 물이 되어 흘러 내려오다가 남쪽에서 흘러 올라온 모노가헬라( Monogahela)강과 함류되면서부터 비로서 오하이오강이라고 불리운다. 오하이오 강은 물살이 빠르고 급해지면서 웨스트버지니아,오하이오,켄터키, 일리노이, 인디아나르르 지나 마침내 미주리주에 이르러 미시시피강과 만나게 됩니다.)- 이토록 고색창연한 로브링(일명, 켄터키 다리)다리는 지난 150년간, 천둥과 번개 그리고 폭우로 인해 이끼가 끼고 녹이 슬어 퇴색되어 있었다. 굵은 강철로 다리위에 연결된 아치 모양의 다리를 바라보노라면 마치 산프란시스코의 골든 게이트(Golden Gate)와 뉴욕의 브르크린 다리(Brooklin Bridge)를 보는 듯 하다. 켄터키 다리의 다리 중간에 설치된 관광 포인트에 차를 세우고 잠시 고개를 돌려 지나온 오하이오를 바라보면 리버프론트 야구장의 둥그런 돔은 마치 로마 시대의 한 경기장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리고 눈을 들어 동쪽을 바라다 보면 오래된 증기선에 현대식 엔진을 단 유람선이 마치 톰 소야와 학클 베리 핀을 싣고 미시시피 강을 향해 내려가는 듯하며 눈을 서쪽으로 돌려 바라보노라면 구불구불 구렁이처럼 강은 흘러가고 있었다. -미라보 다리 아래로 세느강이 흐르듯이 로블링 다리 아래로 오하이오 강은 어제도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는 듯 하였다.- 다시 자동차를 타고 켄터키쪽으로 건너려고 하면 눈에 띄는 표시판이 눈에 띄였다. ‘켄터키로 들어오심을 환영합니다.’라는 표시판이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 도시로 들어서면 이곳이 바로 옛 켄터키풍의 건물들이 여기저기에 보이는 ‘코빙톤(Kovington)'이 된다. 코빙톤시를 벗어나 남쪽으로 조금더 달려가면 수지가 입양되어 살아 왔던 프랑클린 타운이 된다. “수지가 살던 켄터키 옛집”이 된다는 말이다. 이 집, 켄터키 옛집은 수지에게 있어서는 제 2의 고향이었으나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 온 이후부터는 제 1의 고향이 되었다. 그러기에 수지는 마음이 불편하거나 외로울 때마다 이곳에 와서 옥수수와 밀밭을 바라다 보며 “켄터키 옛집‘을 흥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켄터키 다리를 찾아가 서쪽으로 말없이 흘러가는 오하이오강을 바라다 보곤 하였다. 수지는 외로웠다. 그녀가 선택하였던 남편 아리스테의 정신병과 의처증도 문제였지만 더 마음이 불편한 것은 ‘갑작스레 받은 석호 오빠의 편지’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었다. 도리켜 생각해 보면 아리스테와의 결혼은 처음부터 잘 못 뀐 단추였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다시 갈아 끼우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오빠만을 생각하며 기다렸어야 했는데...조금만 더 참았으면 되었는데...오빠만을...내가 나쁜 년이었어.’ 수지는 크게 후회하고 있었다. * 불행 중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편 아리스테가 정신병에서 다시 정상으로 회복이 되고 있었으며 데이톤에 있는 공군 기지에서 전기 기술자로서 복직이 되었기에, 마침내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고 있었다. * 2년의 세월이 아무런 탈 없이 흘러갔다. 이젠 데이톤에 사는 수지와 남편 아리스테도 정상 사람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풍차(風車)란? - 이름 그대로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바퀴를 돌려 전기 에너지를 구하는 바람개비이다. 물의 힘이나 낙차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는 풍차 또는 수차도 이와 비슷하다고 하나 금세기에 와서는 풍차나 수차는 홀랜드와 같은 나라의 평화스러운 시골을 상징하는 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풍차도 때로는 거꾸로 돌기도 하였다. 1977년 여름이었다. -수지는 너무나도 뜻밖의 만남을 가졌다. 신시내티에서 열리고 있는 외과 학회에 참석한 한국인 외과 의사가 수지에게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뜻밖에도, 그 사람은 바로 오빠, 강석호 외과 의사였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외과 수련을 받고 있는 강석호 의사가 7일간의 짧은 외과 학회에 참석하였다가 수지에게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수지? 나, 오빠, 석호야, 석호.” “예? 오빠라구요? 석호 오빠?” “그래, 석호 오빠. 수지 너를 보고 싶어 여기까지 왔어. 수지야...” 의사 강석호가 한국에서 태평양을 넘어 멀리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까지 오게 된 경로는 이러했다. 의사 강석호는 언제부터인지 미국 지도를 놓고 켄터키와 오하이오를 바라다 보곤 하였다. 수년 전부터 수지에게 편지를 보내고자 하였으나 주소를 알 길이 없었기에, 어느날 그는 데이톤에 있는 한인 교회의 목사님에게 간곡한 편지를 보내었다. 뜻밖에도 김수자는 수지 포스터 디메트리우스 라는 긴 이름으로 데이톤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지난해 말이었다. (알고 보니 수지는 결혼을 하였으며, 남편 아리스테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어 정신병원에 입원도 한다는 것을 알고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비록 수지와 결혼은 못하였지만 그는 사랑하는 수지가 잘살아 주기를 바랬는데, 행복하지 못함을 직감하고 말았다.) 강석호 의사는 미국으로 가 사랑하는 수지를 먼 발치에서라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이미 결혼 한 수지를 만나게 되면 그녀의 가정에 풍파를 일으킬 것 같아, 단지 멀리서 그녀의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외과 수련의로서 마지막 해인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주어졌다. (“신시내티에서 열리는 미국 외과 학회에 여기 세브란스병원 외과 의사들을 대표해서 강석호? 자네가 가주겠나?” 외과 과장이 어느날 부탁을 하였다. “예? 외과학회에? 신시내티? 아! 예! 가겠습니다. 신시내티로...”) 강석호는 기꺼이 자원을 하였는데 그것은 신시내티에 가면 꿈에도 그리던 수지를 만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을 떠난 강석호 외과 의사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로 오기까지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별히 1971년, 5월, 어머니를 만나러 왔다가 어머니와 한국으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돌아 갔던 일과 석호를 만나러 세브란스병원에 찾아 갔지만 역시 만나지 못하고 울고 갔던 그 쓰라린 기억을 생각하니 석호의 마음이 쓰리고 아펐다. 그러나 더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얼마 전에 수지에게 보낸 석호의 편지에 대해 전혀 답장이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내가 보낸 편지를 못 받았는가?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채 하는가? 아마도 남편 때문에 편지를 보내기가 힘들겠지...”- * 신시내티로 간 강석호와 수지가 마침내 만난 곳은 오하이오강이 보이며 신시내티 레즈 구장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으나 아담한 식당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지가 한국을 떠난 지도 어느듯 16년이 지났다. 9살의 코 흘리개 수지는 26세의 결혼을 한 여인이 되었으며, 개구쟁이 강석호 소년은 29세의 결혼 하지 않은 완성된 전문의사였으나 그들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러나 강석호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9 살 짜리 수지와 12 살 소년 강석호, 그들은 어느 가을 노적가리 속에서 두 손을 잡고 약속을 하였었다. ‘우리는 같이 사는거다... 평생을 같이...’ 그런데 어찌 된 셈인가? 수지? 너는 남의 아내가 되었어.. 아리스테라는 그리스사람의 아내가 되었어! 나는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데...너는 결혼을 하였어!‘) 그런데 왜 그럴까? 석호는 엉뚱하게도 마음에도 없는 반대의 말을 하였다. “수지? 좋은 아내가 되어 행복하게 살거라. 아리스테는 너의 영원한 사랑이니라.”라고. 수지를 위로하기 위하여 말은 그렇게 하였으나 석호는 마치 패잔병이 마지못해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정복자에게 아첨을 떠는 것과도 같았다. “아- 이것이 아닌데...” 그러나 현실은 이것이었다. 마치 잘 돌고 있던 풍차가 갑자기 거꾸로 돌고 있는 듯 하였다. 차라리 석호는 수지와 같이 오하이오강의 유람선을 타고 서쪽으로 흘러가 미시시피를 만나 뉴 올리엔스를 지나 카리브 해안으로 빠져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16년만에 만난 석호와 수지는 포옹도 없었으며 키스도 없었다. 단지 손이나 잡고 울고 있는 가엾은 두 젊은 연인이었을 뿐이었다. “좋은 의사가 되어야 해. 석호 오빠!” 수지도 이렇게 형식적인 말만 하고 있었다. “물론이지..” 석호의 대답도 고작 이것이었으며 그것이 진심이었다. “오빠? 나를 잊어 줘. 바보같은 나를. 그리고 부디 좋은 규수를 만나 결혼하세요...” “...................” 석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빠, 결혼을 하세요. 그리고 바보같은 수지는 잊어줘요.” “..............” 역시 석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혜어졌으니 바보같은 두 남녀의 만남이었다. -16년간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이들이 천신만고 끝에 만나 한 얘기가 고작 이것이었다는 말이다. 석호는 한국으로, 수지는 다시 데이톤으로 돌아가 그곳에 있는 각각 다른 세계에 동화되어야 했다. * 웬일일까? -데이톤으로 돌아 온 수지는 뜻밖의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아리스테와 결혼을 한 후 갖고 있었던 죄책감을 훌쩍 털어놓고 보니 역설적으로 그녀는 아주 자유스러워 졌기 때문이었다. “오빠, 석호 오빠? 나는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오...오빠...” *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였듯이 수지와 석호의 만남을 목격하고 의처증이 심한 아리스테에게 이들의 만남을 비밀리에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아리스테? 며칠전, 신시내티에서 당신의 아내가 어느 한국사람을 만나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소. 아시겠소?” “한국 남성? 그러면 강석호란 그 남자?.” 아리스테는 그 남자가 바로 강석호라고 단정을 지었으며 이일로 인해 그의 의처증은 마치 휘발류에 성냥불을 던진 듯 하였으며 밤낮 없이 그는 아내 수지를 감시하였다. ‘아-나의 아내 수지는 지금도 그 오빠라는 남자를 생각하며 만나고 있으니, 어쩐담....’ 그리고 일개 월 후 아리스테는 아내 수지에게 질문을 하였다. “여보, 당신은 나를 사랑하오? 나를?” “물론이죠. 여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수지는 불길한 예감을 가지며 대답을 하였다. “알고 있소.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아리스테는 씩 웃었으나 그 마음속에는 강석호를 생각하는 수지를 비웃고 있었다. “수지? 너는 네 마음속 깊이, 강석호를 품고 있어. 그 강석호를 나는 이길 수가 없어. 그러기에 나는 패배자야! 패배자.” 아리스테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다음날 저녁 늦게-, 데이톤 경찰서의 경관이 수지의 집으로 찾아와서 뜻밖의 말을 하였다. “수지씨? 당신의 남편, 아리스테가 던발 공원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매고 죽어 있었습니다.” “예? 내 남편이 자살을 하였다구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가 써 놓은 유서가 있습니다, 보십시오.” 경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편지를 전해 주었다. 유서: ( “사랑하는 수지, 나는 당신을 사랑하였소. 그러나 당신은 나보다 강석호라는 한국 사람을 더 사랑하였소. 그러기에 나는 당신에게 있어서는 빈 껍데기에 불과 했으며 잊혀진 남편이었어. 빈 껍데기 인생? 더 살아서 무엇을 하겠소.. 그래도 내 기억에 남는 당신과의 추억은 켄터키 옛집에서 같이 위로하며 살았던 그 철없던 검둥이 시절이었소. 옥수수가 자라고 담배가 익어 가던 그 켄터키의 검둥이 시절이 그립군. 그러나 당신은 이젠 나와는 먼 추억일 뿐....그러기에 수지? 나, 먼저 가오. 아리스테가 먼저.”) “아-아-아리스테, 당신은 오해를 하고 있었군요. 바보같이.. 석호 오빠를 두고 질투를 하였다니... 아리스테? 석호 오빠는 나의 연인이라기보다 나를 키워준 아버지였습니다. 비록 나보다 불과 세 살이 위기는 하나 그는 나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였소. 왜냐구요? 나는 그를 의지하며 살아 왔었으니까요. 여보! 부디 오해를 푸시고 잠드세요. 당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나의 남편입니다. 고히 잠드소서.” 수지는 죽은 남편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죽은 아리스테는 코빙톤 공동묘지에 묻혔으며 장례를 지낸 이후부터, 아리스테의 가족은 더 이상 수지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리고 데이톤에 있는 집과 재산은 법적으로 상속자인 부인 수지에게로 다 돌아갔다. * 마음이 울적하면, 수지는 오하이오강에 걸려 있는 켄터키 다리의 관망대를 찾아와 그곳에서 멀리 서쪽으로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오하이오강을 바라다 보았으며, 데이톤 한인교회를 찾아가 목사님을 만나 기도를 받았다. 오늘도 그러했다. 울적하였으며 허망하였기에 수지는 데이톤 한인교회로 달려가 목사님을 만났는 데 그로부터 그녀는 아주 뜻밖의 말을 전해 들었다. -“수지씨? 지난 얘기이지만 한국에 있는 강석호 씨가 내게 여러차례 편지를 보냈으며 당신의 죽은 남편 아리스테도 여러차례 나를 찾아왔었지요. 그런데 그는 분명히 우울하였으며 한국에 있는 강석호씨를 두려워 하였으며, 아내를 의심히였습니다.” “석호 오빠와 아리스테가?” “그랬소. 강석호씨는 내게 이런 부탁도 하였답니다. ‘수지는 영리한 여인이기에 목사님이 격려해 주어서 데이톤에 사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 큰 일을 하게 해 주십시요. 사회사업가나 의사같은 일을 하도록’” “사회사업가?, 의사?” “예.” 목사님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을 하였다. “석호 오빠가 나더러 의사가 되라구요? 말도 안되지요.” “예, 분명, 의사라고 편지에 썻습니다.” “그러면 아리스테는 무슨 부탁을 하였습니까?” “아- 아리스테? 그는 수지 당신을 사랑한다구요, 그러나 강석호씨는 너무나 버거운 상대라고요.” “버거운 상대라고요?” “예.” 목사님은 조용히 대담을 하였다. 말도 안 되는 편지였으며 대화였다고 수지는 단정을 지었다. -미국에서 의사가 되기 위하여 의과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요,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수지는 겨우 루이빌 대학을 졸업했으며 돈도 없었기 때문에 말도 안된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 온 수지는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석호 오빠가, 나더러 의사가 되라고 하다니...그리고 한인들을 도와 주라고..-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아닌데? 수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 그러나, 참으로 우연한 행운과 인연이 수지 앞에 놓여 있었다. -신설된지 얼마 안되는 데이톤의 라이츠(Wrights)의과대학에 일단 입학 원서를 제출하였으나 합격이 될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데이톤 다운타운에 있는 몽고메리 카운티 사회사업국에서 직장을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1978년 3월경, 라이츠 의과대학에서 인터뷰를 하였으나 그후 도무지 소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불합격 처리가 된 듯하다고 생각을 하였으며 의사가 되는 것을 아주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뜻밖의 연락이 라이츠 의과대학으로부터 왔다. -급한 편지: “수지 디메트리우스씨! 입학을 허락 받은 학생이 동부에 있는 다른 의과대학을 선택하였기에 공석이 생겼으니 아직도 라이츠 의과대학에 입학하기를 원한다면 2-3일내에 연락을 주기 바랍니다. 라이츠 의과대학 교무처장.” “뭐라고? 나에게, 의과 대학 입학이 허락되다니...의과대학에... ”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데이톤 교회의 목사님, 포스터씨 양부모 그리고 아리스테의 부모님까지도 이 사실을 알고는 축하해 주었다. 의과대학에 입학 한 것은 8월 말이었으며 입학후 일주일 되던 날, 수지는 로브링 다리(켄터키)위에 있는 관망대에 서서 멀리 서쪽편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았다. 마치 한국의 고향이 바라다 보인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멀리 한국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하였다. “석호 오빠! 나도 오빠처럼, 아니 오빠의 충고대로 의과대학에 입학을 하였어. 비록 늦은 나이이지만 석호 오빠가 목사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럼, 의사가 될겝니다. 고맙습니다. 석호 오빠! 나, 오빠를 사랑합니다. 오빠를.....” * 수지의사는 여기에서 일단 그녀의 옛 날일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스의 손을 꼭 잡았다. “한스? 꺼꾸로 돌던 풍차는 마침내 제 방향으로 돌기 시작하였어. 거꾸로 돌던 풍차는 석호 오빠로 인해 제 방향을 잡기 시작하였어, 그리고 나는 마침내 의사가 된거야. 소수 민족으로서는 해 내기 힘든 의사가 된거야. 한스! ” “아- 이모?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군요. 그리고 그 사람은 이모의 인생을 이끌어 주던 나침반이었군요...” “그래, 석호 오빠는 나를 곁에서 늘 돌보아 주던 나침반이었어, 그리고 풍차를 돌려 주던 동력이었어. 비록 지금은 만날 수가 없지만 오빠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하고 있는거야.” “그랬군요? 이모도 나처럼 어렵고 가슴 아픈 과거를 가진 혼혈아였군요. 켄터기의 부자 장교의 딸이 아니었군요....” “그랬어, 나의 아버지는 백인 장교도 아니었으며 켄터키의 부자도 아니었어...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며 가난뱅이 였어. 그러나 나는 해 내었어, 마침내 산부인과 의사로 데이톤 사회에 우뚝 설 수가 있었어. ” “이모! 감사합니다. 내가 잠시 나의 갈 길을 잊고 있었군요, 한스라는 풍차도 거꾸로 돌다가 마침내 정신이 든거지요. 지켜보세요,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훌륭한 야구선수로 우뚝 서 보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을 하였다. 새로 시작하는 거다.” 마침내 한스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발군의 실력을 내기 시작하였다. 일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면서 그는 주전 선수로 뛰게 되었으며 일학년을 마치고 난 후의 기록은 타율 3할, 타점(RBI)도 50이 넘었으며 타율은 홈런 20개였다. 10장 야구 선수가 되는 길. 미국에 사는 흑인들은 어려서부터 인생의 목표를 운동선수(특히, 야구, 농구 미식축구, 권투)가 되는 것으로 정하고 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흑인들은 아무리 공부를 해 본들 피부색갈이 검다보니 판, 검사, 의사, 정치가 그리고 변호사가 되는데 많은 애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록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운동선수들에 대한 인종차별도 독버섯처럼 도사리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라고 한다. 수지의 격려를 받은 한스는 다시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거다! 조지 포스터와 같은 강타자가 되는 거다!” * 언제부터인지 한스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 아가씨가 있었다. -콜럼브스에 있는 전자 회사에서 조립공으로 일을 하고 있는 19살의 아가씨로 비교적 작은 키에 얼굴이 까무잡잡하였으나 마음씨는 고왔다. 그녀는 얼마 안 되는 주급을 가지고 홀로된 어머니를 봉양하며 남동생의 학비까지 대어주는 생활력도 강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자마이카 출신의 어머니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흑인 혼혈이었다.- “자마이카? 푸에르토리코?” 한스는 처음 그녀를 만나 소개받던 날 이렇게 물었다. “그게 어때서요?” 매기(Maggie Gonzales)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가씨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나는 한국 여성과 미국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입니다.” 한스는 미안한 마음으로 본인의 출생을 설명하였다. “한국? 그리고 흑인?” 매기는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이해 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좁고도 넓다고 한스는 생각하였다. 한국, 미국, 자마이카 그리고 푸에르토 리코....마치 지구를 한바퀴 돌고 온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점점 좁아짐은 물론 인간들은 서로를 사랑하다보니 서로 다른 피가 섞인 혼혈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그러기에 ‘지구는 하나의 큰 용광로라고’ 한스와 매기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매기는 어머니와 같이 한집에서 웃으며 살고 있으니 한스보다 매기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래, 비록 가난은 하지만 우리는 한 가족이 같이 살고 있어...” 매기는 한스의 마음을 이해 한다고 하였다. “우리, 같이 친구 할까? 나, 사실 외로워....” “외롭다구?” “그래!” 그리고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외로움을 서로 이해하면 사랑으로 바뀐다고 하였다. - 사실, 미국이란 나라에서 한국계 흑인 혼혈과, 자마이카-푸에르토 리코의 혼혈의 만남은 아주 자연스러운 만남이지만 데이톤에 사는 한국계 혼혈들에게는 다소 웃음 거리일수도 있었다. “자마이카? 푸에르토리코? 그거 어디에 있는건데? 아니? 자기 어머니가 죽은지 얼마나 된다고, 게다가 의사인 이모가 뒤를 보아주는데 뭐가 부족해서 자마이카에서 온 검둥이를 사귄담! 야구선수로 잘만 풀리면 백인 처녀와 결혼하여 떵떵거리며 살텐데...바보처럼...” 마치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 만난 것처럼 비웃는 듯이 말을 하였다. 사실 수지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한스, 아주 바보로군, 왜 하필이면 자마이카 출신의 흑인 여성을 좋아 한담...야구선수로 성공하면 백인과 결혼할 텐데...- 그러기에 수지는 한스의 애인, 매기를 만나는 것을 꺼리고 있었으며 깔보고 있었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59,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