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시인, 독자와 시의 거리

2007.10.01 03:40

이기윤 조회 수:1241 추천: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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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인, 독자와 시의 거리



―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강인한


조선 사회에서 시는 정치 입문의 필수 과목이었다.
과거 시험이라는 것 그게 백일장이었고, 그 장원 급제자는 조정에 들어가는 티켓을
손에 움켜쥔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런 수많은 장원 급제의 시를 지금 우리는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으며 겨우 김삿갓이나
몇 사람 유학자, 실학자의 시(한시)를 접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조선 조정의 수많은 내로라 하는 실력자들은 사실 맨 처음 시인이 아니었던가.

그들의 시는 한갓 물거품이며 뜬구름이었다.
시를 쓰되 그것이 분명한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결과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에 무슨 섣부른 목적이 불순히 개입되면 그건 시가 아니다.
공자가 사무사(思無邪)라고 갈파한 시경의 시편들은
그러므로 순수한 시정신을 토로한 작품들일 것이다.
조선의 문인들, 아니 정치적 관료들은 자신의 시를 입신 출세의 도구로 삼고
손끝으로만 신기한 재주를 부린 시답지 않은 글로 자족한 자들이라 하면
내가 너무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탄받을는지



그런 시인들은 오늘의 우리 곁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손끝으로 신기를 희롱하는 걸출한 시인들. 정권의 냄새나는 시궁을 얼쩡거리거나
상업적인 베스트셀러 부근을 힐끔거리는 시인들은
조선시대의 그들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인다. 아니 또 있다.
시를 하나의 호구지책으로 삼고 적당히 뒷돈을 받고
어중이 떠중이를 시인의 반열에 올려주는 이들,
시를 하나의 값비싼 치장으로 알고 여생의 여가 위에 보란 듯이
시인의 직함을 걸고자 하는 이들.

차마 웃을 수도 없는 건 글쓰기, 논술 지도에 '시인 직접 지도'라는 해괴한 광고를 붙이고
큰길을 질주하는 차량을 내 눈으로 목도하는 일이다.
아 그럴 때 나는 차마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낯이 화끈거림을 느낀다.

최근 어느 원로 비평가는
우리 문학인 탄생 1세기를 맞아 1920년대의 시인들에 대한 검증을 하는 자리에서 김상용은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 말고는 내놓을 게 없는 '단벌 시인'이라고 평하였다.

또한 그 시대의 이상화, 이육사 시인들은 아마추어 시인에 불과한 게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는 우리 시에 있어서 그 무렵 김소월이 가장 위대한 시인이었고,
전문 시인의 출발점은 정지용 시인부터라고 하였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들린다.


따지고 보면 윤동주 시집 전체를 읽어보면, 몇 편을 제외하고서는
동시 수준에 머무는 치졸한 것이 많이 눈에 띈다.
오늘의 우리 시를 읽는 대중들은 김소월을 뛰어넘지 못하는 소박한 수준임에 비추어
정지용 이상의 수준은 잘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요즘의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시들을 한두 편 예로 들면 대체로 이런 부류의 시들이다.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그대를 만나던 날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착한 눈빛, 해맑은 웃음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에도
따뜻한 배려가 있어
잠시
동안 함께 있었는데
오래 사귄 친구처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중략)
오랜만에 마음을 함께
맞추고 싶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 한 다발을 받은 것보다
더 행복했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더 좋은 사람입니다

①은 류시화의 '소금인형'
②는 용혜원의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라는 시들이다.


그래도 류시화의 경우는 깊이 있는 명상을 동반하는 시이므로 나은 편이지만 용혜원의 경우는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겨냥한 얄팍한 감상주의의 옷을 입고 있으며 그것을 한 꺼풀 벗기면 에로틱한 연애편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글에선가 이승하 시인이 지적했듯이, 류시화의 시는

이 땅의 현실이 완전히 제거된 신비주의적 명상 내지는 잠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제가 있고,
목사 시인인 용혜원의 시는 소녀적인 감상을 포장한 것이라는 점에서,
둘 다 상업적인 전략의 차원에서 쓰여진 시라 할 것이다.



치열한 자기 부정과 고민이 없이 쓰여진 글들이 버젓이 시라고 행세하다 보니 유안진 시인의 수필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일부분도 시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의외로 많은 형편이다.

아마추어 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단의 공기라 하기 어려운 시잡지,
종합지 등의 범람으로 이 땅에 명색 시인이 수천 명을 헤아린다던가.
그런 형편임에도 좋은 시집이 이천 부를 못 넘게 팔리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리 나라에 시인은 많아도 시의 독자는 그보다 훨씬 적다.



젊은 시절 시에 자기 생의 전부를 걸고 피나는 습작을 하여 등단하던
순정한 시인들의 자리가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시는 상상력의 결정체이며 정서와 감동을 동반하는 언어 예술이다.

시 속에 함축된 비의가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은 머리와 가슴으로 시를 써야 한다.

가슴으로만 시를 쓰던 시대는 갔다.
오늘의 시는 가슴 외에 머리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군가 원로 시인의 축에 드는 어느 시인은
요즘 시인들이 술을 마시지 않고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시를 쓰므로 감동이 적다고 말하였다.


속으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시대를 역행하는 사고가 아닌가 웃음이 나왔다.
다음과 같은 시를 보면 딴은 머리로만 쓰여진 시가
독자를 얼마나 불편하게 할 것인지 짐작이 간다.


무덤 속 시체들이 벌떡벌떡
발기하는 동틀 녘 난 가끔씩 내 무덤에 알리움 한 송이 들고 찾아간다 (무덤에 다다르려면 낡은 나룻배를 타고 가야해 할머니 환한 주름 같은
서글픈 물결을 따라 강을 건너야 하지) 무덤에 다다르면 알리움 한 송이 무덤 앞에 내려놓고 내 이름이 적혀있는 묘비 앞에서 잠시 눈을 감는다
눈물샘에서 헤엄치고 있던 잉어 한 마리 파드득 몸부림 칠 때 눈물샘에 동글동글한 파장이 생겨 그 모습에 또다시 코끝이 찡해져 올 때 그제야 난
눈을 뜬다 나를 태우고 왔던 나룻배마냥 무덤도 강물 따라 소리 없이 흘러가고 내 몸에서 여문 꽃잎 하나씩 따다 무덤 위로 떨어뜨리니 꽃잎을 밟고
가는 무덤의 발자국 소리가 내 얼굴을 밟고 간다 강물 위를 떠돌던 하얀 물새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무덤은 붉은 열매처럼 빛나는데 내 집 담장
너머를 기웃거린 죄 한참을 서성이다 초인종을 누르고 냅다 도망친 죄 나보다 더 큰 내 원죄를 임신한 저 무덤이 내 얼굴을 밟고 간다


신인들 사이에 산문시가 이상한 유행병처럼 만연하고 있다.

필연성을 결여한
산문시도 적지 않다.
앞서 말한 시인의 '머리로만 쓴 시'가 바로 이런 시일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 시는 엽기적인 발상과 참신한 이미지만 돋보일 뿐,
감동도 아름다움도 재미도 없는
불편한 시이다.

과연 이런 종류의 시들이 소월시 수준에 머무는 대다수 대중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건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독자들을 진정한 시로부터 발길을 돌려 상업적이고
감상적인 시로 내쫓는 게 아닐는지 심히 우려된다.
우리 시의 발전이 마치 과거의 전통을 무시하고
변종이나 돌연변이 같은 방향으로 길을 잡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출처
: 비공개 카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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