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경매장을 다녀와서

2017.09.03 06:41

성민희 조회 수:8206

<퓨전수필> 2017년 여름호


미술품 경매장을 다녀와서

 

성민희

 

 한국 방문 때마다 정성을 다해 나를 돌보아주는 고마운 제자 L이 있다. 변호사인 그는 그림 수집이 취미라 집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유명 화가의 그림이 많다. 서울에서의 어느 날, 그는 느지막한 나이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옛 스승을 격려하느라 바쁜 시간을 쪼개어 경매 그림 전시장으로 나를 안내했다. 사실 그림 옥션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실제로 구경해보기는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실제 경매는 다음 주 수요일 오후 5시부터 시작이 된다고 했다. 몇 주 전부터 모든 작품이 전시되어 구입하고 싶은 사람은 미리 와서 가격을 대략 결정해 두었다가 당일 모여서 흥정을 하며 낙찰을 받는다. 출품된 작품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화가의 작품부터 1861년도의 목판 인쇄본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정조대왕의 어필첩, 백범 김구 선생의 글과 백사 이항복이 쓴 책도 있었다. 독특하고 기괴한 느낌을 주는 땡땡이 무늬의 일본화가 야오이 쿠사마, 자세한 묘사는 생략한 채 또렷한 윤곽선만으로 이목구비를 표현하는 인물화로 사랑을 받는 영국화가 줄리안 오피, 팝 아트의 대가 미국의 앤디 워홀과 이스라엘의 팝아트 조각가 데이비드 걸스타인 등 외국 작가의 작품까지 그날은 총 259점이 전시 되었다.

 

 그림마다 대략의 가치를 측정하고 어느 선에서 가격이 정해질 거라는 낙찰추정가가 있고 응찰을 시작하는 낙찰시작가격도 정해져 있었다. 그날 전시된 작품 중 가장 비싸게 낙찰추정이 된 작품은 178×110cm 사이즈의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김환기 화백의 ‘Dawn #3’ 였다. 캔버스 윗부분에는 동 트기 전의 하늘빛을 연상시키는 코발트색과 보라색의 작은 네모가 면을 만든 두 선을 따라 점점이 찍혔고 그 아래에는 연 하늘색을 배경으로 짙고 푸른 태양이 둥글게 올라오는 그림이었다. 후에 결과를 들어보니 이것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3억을 불러서 낙찰이 되었는데 이 금액은 미술관에서 구입한 역대 단일 작품 중 최고가라고 했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으로는 이것 외에도 ‘평온’, ‘산월’, ‘새’ 등 열 점이 출품되어 여덟 점이 팔렸다고 하는데 그 중 가장 낮은 가격이 천 팔백 만원이었다. 몇 년 전 검찰이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압류한 ‘전두환 컬렉션’ 중 5억 5천에 낙찰된 유화 ‘24-Ⅷ-65 South East’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한국 화가의 작품으로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 그의 그림은 과연 어떤 점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싶다. 단순히 점과 선의 조형요소들이 만드는 공간과 여백이 어떻게 조화가 잘 되었기에 각광을 받는지 그의 심미안과 재능의 한계가 궁금하다. 나의 그림 선생님은 항상 말씀하신다. 잘 그리는 것보다 감동을 주고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그리라고. 단순한 면을 독특한 색으로 채운 추상화에서도 울리는 감동은 분명이 있을 터인데 그것의 미학적인 깊이를 아직 나는 느끼지 못한다.

다음으로 높은 가격은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 그림이었다. 이것은 130.3×162.2cm 사이즈의 캔버스에 연필과 오일페인트를 를 함께 써서 그린 그림인데 얼핏 보기에는 아이들이 장난으로 사선을 슥슥 그어놓은 것 같았다. 세 살 난 아들이 네모난 칸에 한글쓰기 연습을 하다가 마음대로 안 되어서 그냥 연필로 그 네모를 메꾸고 있는 모습에 착상하여 만들었다는 ‘묘법(描法)’. 그 연작 시리즈 중 하나인 ‘묘법 No.3-75’는 9억으로 낙찰이 되었다고 한다. 묘법은 단색화로서 캔버스를 물감으로 덮은 뒤 연필로 선을 긋고 다시 물감으로 지우고 선을 긋는 행위의 반복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이다. 그리는 행위를 반복하며 마음을 끝없이 비우는, 흡사 도(道)를 닦는 수행자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하며 작업을 한다고 한다. ‘묘법은 물질과 행위의 관계에서 이미지를 지우고 가장 원초적 흔적만 남기는 행위의 기록이다.’ 라며 미술평론가 이일은 작품 세계를 평했다. 그의 작품도 후에 들려온 소식으로 일곱 점 중 여섯 점이 팔렸는데 가장 낮은 가격이 2천 1백만원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단색화의 거장이라는 정상화 화백 작품도 6점이 나와 있었다. 여든 네 살의 노구로 뉴욕 맨하탄에 있는 두 군데의 갤러리를 오가며 개인전을 열었다는 그의 작품은 모두 단색으로만 처리되었다. 130.3×97cm 사이즈의 캔버스에 베이지 색 아크릴을 그냥 흩뿌려둔 것 같은 그림이 4억 6천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언뜻 멀리서 보면 단순한 색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예사롭지 않았다. 고령토를 캔버스에 바른 후 마르면 규칙적인 간격으로 접어 균열을 만들고 갈라진 곳의 고령토를 떼어낸 후 그 공간에 아크릴 물감을 붓는 것이 그의 작업방법이라고 했는데 출품된 6점 중 가장 낮은 가격이 1억이었으며 모두 다 팔렸다는 소식이다.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의 작품은 네 점 중 가장 비싼 것이 1억 팔천, 싼 것이 8백 5십 만원으로 세 점이 팔렸다. 감나무 그림 화가 오치균 화백의 작품은 총 다섯 점 중 네 점이 구 천 만원에서 오천 만원 사이로 팔렸다. 경매에 나온 총 259점 중 가장 낮은 추정 가격은 2백 만원으로 24X21 cm 사이즈의 종이에 먹으로 쓴 조선 중기 문신 실학자 지봉 이수광의 시였다.

 

 몇 년 전 뉴욕에서 1억 7천 936만 5천 달러에 팔렸다는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에는 그 엄청난 가격을 믿을 수 없었으나 그건 고전작품이라는 것으로 수긍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존하는 화가의 그림도 비싼 값에 거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실 예술품의 가치를 꼭 돈으로 환산해서 비싼 값이라야 좋은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서양의 고호나 우리나라의 박수근씨 등 일부 화가의 작품이 그 시대에는 외면을 당하다가 사후에야 빛을 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고가의 작품은 현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반증이니 그 작가에게 주목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경매장을 다녀온 후, 그림을 배우면서도 관심이 없었던 그림에 관한 서적이나 화첩을 뒤적이게 되었다. 많은 유명화가의 작품을 보니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그림의 경향을 조금 알 것 같다. 그것은 사물이나 사람을 볼 때 자기만이 느낄 수 있는 직관을 독특한 자기의 기법으로 작품에 대입시키는 화법이 저마다 정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방울, 나무, 해, 혹은 농장이나 시골 풍경 등 한 가지 대상만을 고집하며 그리는 화가가 늘어난다는 것이 그 한 예이다. 또한 추상화로서 단색만으로도 있는 듯 없는 듯 어떤 독특한 느낌을 줄 수 있고, 단순한 선과 면으로도 얼마든지 감동을 주는 경지로 사람의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은 세밀한 형태를 사진처럼 묘사한 그림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대마다 예술 작품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도 변한다. 너무 시대를 앞서간 예술적 재능도 불행한 것이지만 예술에 대한 트렌드를 감지하지 못한 작가 또한 외면을 받는 고독한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다. 그림처럼 우리의 글쓰기도 이제 단순한 감정이나 사건의 안이한 기술로만 독자를 감동시키던 시대는 갔다는 것이다. 우리의 글도 현대미술처럼 경험의 특이한 재해석과 구성으로 나만의 독특한 글쓰기 기법을 개발해야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한국의 윤재천 교수님이 ‘실험수필’이라는 명제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사실은 이런 맥락이 아닐까.

 

김환기 화백의 ‘Dawn #3’
크기 :178×110cm
캔버스에 유화
가격 13억
국립현대미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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