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과 도덕률

2017.04.07 10:54

성민희 조회 수:8170

하늘의 별과 도덕률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많이 단순해지고 반응도 느려졌지만 어떤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는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상대방의 감정에 쉽게 이입이 된다. '도움이 얼마나 필요하면 부탁을 할까.' 싫은 일일지라도 이런저런 핑계거리가 나올 새도 없다. 머릿속에서 재빨리 떠오르는 생각에 휘둘려서 그만 승낙을 하고 만다. 그러고는 때로 후회를 한다. 이번에도 역시. 해야 할 역할도 부담이 되고 나름대로 준비도 많아야 할 것 같아 스트레스가 있었다. 그러나 아껴주고 싶은 후배라 패널 역을 허락했다. 첫 수필집 출간에 대한 축하와 격려의 마음도 컸다.

 

 이왕 맡은 일, 사회자의 질문에 성의껏 답변하여 알찬 행사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으로 무대 위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함께 앉은 남자 패널이 내가 하는 말 도중에 불쑥 밀고 들어와서는 자기 말을 늘어놓았다. 황당했지만 귀한 잔치자리를 기분 좋게 진행해야겠기에 표정 관리를 했다. 마무리 시간에는 또 사회자가 질문을 해 놓고는 한 마디만 더 하면 끝날 내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구색으로 사람을 앉혀 놓은 듯 말의 내용보다 시간을 재는 게 더 중요했다. 내용이야 어떻든 멋지게 꾸며둔 쇼윈도우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인 듯한 느낌이었다. 사회자는 진행상 그렇다치더라도 곁에 앉은 또 다른 남자의 행동은 기가 막히는 매너였다. 내 자리로 돌아오니 테이블에 앉은 동료들이 뭐 저런 인간들이~ 해가며 더 분개해서 야단이었다.

 

 내 기분이야 어떻든 북콘서트라는 시도가 신선했다는 칭찬도 있었고 주인공도 행복해 보였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고 돌아왔다. 행사를 잘 치렀냐며 궁금해 하는 남편에게 막 투덜거렸다. 그들이 얼마나 무례하고 몰상식했는지. 내가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내 말에 함께 흥분을 해주던 남편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슬쩍 얹는다. "당신 말이 조금 길지 않았나?" 그러지 않아도 그 생각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었는데... 남편의 한마디에 상대방에게 향하던 화살이 내게로 되돌아왔다. 얌전히 자신을 접고 앉는다. 맞아. 시간은 정해져있는데 내가 마치 문학 강연인양 떠들어대었으니 그 분들이 얼마나 조바심이 났을까. 그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았어야 했다.

 

 우리는 어떤 일로 인하여 비난을 받을 경우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왜 비난을 받을까 생각해보지 않고 상대방을 원망하고 억울해한다. 자칫 누군가의 뺨을 먼저 때려놓고 때렸다고 항의하며 반발하는 사람에게, 본질은 잊어버리고 대어드는 태도가 틀렸다며 꼬투리 잡고 더 화를 내는 격이 될 때도 있다. 내가 끼친 피해보다 방어하는 상대방의 반응을 더 크게 부각시키며 음해한다.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동물인가. 이번 일을 계기로 또 생각한다. 내가 말이 너무 장황했다고 단정을 하고보니 그들이 이해가 된다. 그렇다. 누군가와 충돌을 했을 때는 나를 돌아볼 일이다. 그 사건의 출발점을 내게로 돌려서 나의 행동을 먼저 들여다볼 일이다. 그리하면 상대방으로 갈 화살촉이 도로 내게로 겨누어지고 내 안의 용광로도 맥없이 가라앉는다.

 

 아침에 눈을 뜨니 또 생각이 난다. 남편의 말대로 내가 더 잘못한 것 같다. 그들이 얼마나 지루하고 마음이 급했으면 그런 행동을 했을까, 반성을 하고 보니 도로 미안해진다. 칸트가 말했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감탄과 함께 마음을 가득 차게 하는 기쁨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마음 속의 도덕률이다. 이 두 가지를 삶의 지침으로 삼고 나아갈 때 막힘이 없을 것이다. 항상 하늘과 도덕률에 비추어 자신을 점검하자. 그리하여 매번 잘못된 점을 찾아 반성하는 사람이 되자.'

 반성. 참 좋은 단어다. 마음을 더럽히는 오물을 주루룩 부어내 버리고 그 안에 신성한 기운을 담는 작업이다. 내 안에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 잡고 잠시 비틀거리며 벗어나려던 '사람의 길'에 바로 들어서는 작업이다. 마음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맵시를 다잡는 작업이다. 

 

 이 맑은 아침에. 나는 내 마음에서 빛나는 하늘의 별과 도덕률에 나를 비추며 그들을 정죄하던 마음을 반성한다.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7.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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