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마와 남자친구

2017.04.22 11:01

성민희 조회 수:161

[미주통신]헤이마와 남자친구

“아이 셋 딸린 흑인 이혼남이란다우리는 어이없는 편견에 사로잡혀철없는 그림을 마음 속에 그렸다”

2017.04.20

 

성민희 /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친구네 집에서 도우미를 하는 헤이마가 바람이 났다. 그녀는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월급을 모두 미얀마 가족에게로 보내며 가장 노릇을 하는 기특한 아가씨다. 요즘 들어 갓 피어난 복사꽃처럼 얼굴에 생기가 돌아서 보기 좋다 했더니 아무도 몰래 사랑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 물었다. “어떤 사람이니?”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아이가 셋이나 딸린 흑인 이혼남이란다. 같이 살긴 하지만 자식도 동생도 친척도 아닌 생판 남인지라, 아무 소리도 못 하고 끙 하며 일어났다고 했다. 친구는 둘의 연애를 방해할 방법으로 일요일 외출을 저녁 일곱 시 이전 귀가로 규칙을 바꾸었다. 남의 사생활을 간섭할 수 없는 처지에서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조기 귀가 명령을 내린 며칠 후, 앞마당을 빙 두른 울타리 한쪽 기둥이 피카소의 그림보다 더 난해한 그림으로 도배가 되었다. 당연히 헤이마의 외출 제재에 불만을 품었을 흑인 남자친구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울타리 기둥은 점점 더 요란해졌다. 남편이 페인트를 사다 부지런히 지웠지만, 무언의 협박은 날이 갈수록 노골적이 되었다. 친구는 해가 하늘 복판을 슬며시 비껴가는 시간이면 시커먼 시선이 어딘가에서 창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 커튼이 꼭꼭 닫혔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다고 했다. 시간이 가면서 불안에 떨고만 있을 게 아니라 뭔가 조처를 취해야 했다. 우선 낙서하는 현장부터 잡자는 생각으로 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일요일 오후 헤이마가 외출한 틈을 타 친구 부부는 서둘러 기둥이 잘 내려다보이는 지붕 한귀퉁이에다 카메라를 달고는 저녁마다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았다. 눈치라도 챈 걸까. 며칠 동안 낙서가 없었다. 범인을 기다리는 마음이 일주일을 넘기면서는 기다림이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어느덧 부부는 제발 오늘은 낙서 좀 하여라.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매일 우리들의 아침 문안 인사도 “낙서했다니?” 가 되었다. 친구는 이제 헤이마랑 단둘이 있는 낮시간도 무섭고, 집을 비워두고 나가기는 더욱 불안하다며 하소연을 했다.

 

드디어 범인이 밝혀졌다며 친구는 맥 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범인은 전혀 상상 밖의 인물이란다. 어이없을 거라는 말에 우르르 몰려갔다. 흥분한 우리와는 달리 친구는 모두의 얼굴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한 듯, 팔짱을 끼고 멀찍이 서 있다. 화면 속에 비춰진 거리는 며칠간의 연휴를 끝내고 일상에 복귀한 날이라 차분하다. 햇볕이 마당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메이플나무 가지에 걸린 시각. 책가방을 둘러멘 백인 여중생 둘이 재잘대며 지나간다. 그 꽁지 끝을 물고 히스패닉 남자 중학생 셋이 주춤주춤 울타리 기둥 옆에 섰다. 좌우를 둘러본 후 책가방 속에서 스프레이를 꺼내더니 기둥에다 신나게 쏘아댄다. 마치 테크노댄스를 추는 것 같다. 킥킥거리는 폼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친구 말대로 정말 어이가 없었다. 방금 칼에 잘린 무우속처럼 머릿속이 싸했다. 철없는 사춘기 아이 장난에, 어른이 경솔하게 남을 의심하는 죄를 지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커피와 과일을 차려서 들고 오는 헤이마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오해를 받았던 그 남자친구한테는 더욱 미안하다. 본 적도,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그를 ‘어떤 사람’으로 인식해버린 우리는 얼마나 잔인한가. 어쩌면 그는 새벽 일찍 일어나 아이들 아침밥을 먹이고 깨끗한 옷을 입혀 학교로 보내고. 그리고 도시락을 싸들고 일터로 가는 성실하고 따뜻한 아버지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흑인이든 이혼남이든 그들도 영혼과 인격을 가진 인간인데 우리는 어이없는 편견에 사로잡혀 중학생보다 더 철없는 그림을 마음속에 그렸다. 울타리 기둥의 스프레이 낙서야 페인트로 지우면 되겠지만, 우리가 그려내고 있는 이 어지러운 그림은 지우고 또 지워도 계속 새로이 그려질 것만 같다. 우리의 이성 사이를 불쑥불쑥 들쑤시며 일어나는 편견이, 살아가며 부딪치는 어느 순간에 또 어떤 ‘앵무새 죽이기’를 계속할지 두렵기조차 하다.

 

조르바의 말이 생각난다.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요즘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나는 사람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될 거니까요.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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