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AI도 이건 못할 걸

2017.10.16 01:38

성민희 조회 수:7525

인공지능 AI도 이건 못할 걸


성민희 / 미주수필가


  하늘나라 선녀 사이에 화젯거리가 생겼다. 인간 세상의 연못으로 목욕을 갔던 어느 선녀가 나무꾼에게 옷을 도둑을 맞고는 그 빌미로 결혼을 하여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다. 선녀 S는 그것이 부러웠다. 

  어느 날 아무도 몰래  S가 그 연못으로 내려왔다. 나무에 옷을 걸어놓고 푸드득 물소리를 내며 기다렸다. 정오가 훨씬 지난 시각, 나무꾼이 어기적거리며 나타났다. 옳다 싶은 선녀는 손을 길게 뻗으며 물을 몸에 끼얹었다. 낯 선 물소리를 들은 나무꾼이 고개를 디밀었다. 선녀는 뒤통수로 그의 시선을 느꼈다. 이제 그가 옷을 걷어 들고는 협박할 차례다. 아내가 되어달라고 사정도 할 것이다. 그녀는 어머, 어머, 내숭을 조금 떨다가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서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각본에 없는 일이 발생했다. 나무꾼이 멀뚱멀뚱 아무 표정 없이 쳐다보더니 휙 하며 고개를 돌리고 가버렸다. 황당했다. 어이가 없었다. 어여쁜 자기를 보고도 마음의 동요가 없다니. 자존심도 상했다. 선녀는 후다닥 나와서 옷을 마구 줏어 입었다. 옷섶을 펄럭이며 쫒아가 나무꾼의 등에서 덜렁거리는 지게를 붙잡았다. “아니, 왜 내 옷도 안 훔치고 프로포즈도 안 해요옷? ” 벌개진 얼굴로 씩씩대는 선녀에게 눈이 둥그레진 나무꾼이 손사래를 쳤다. “저는요... ‘나무꾼과 선녀’의 나무꾼이 아닌데요, ‘금도끼 은도끼’에 나오는 나무꾼인데요. SNS에 떠다니는 각색된 옛날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여름밤이면 마당에 깔린 평상에 둘러앉아 수박화채를 나누던 날이 생각난다. 물을 뚝뚝 흘리며 새끼줄에 매달려 온 얼음덩이는 굵은 바늘을 톡톡 두드리는 아버지의 망치에 의해 쩍쩍 갈라지고. 수박의 빨간 속살은 사이다와 설탕을 섞은 물 안에 첨벙 던져졌다. 한 사발씩 둘러 마시고 드러 누우면 밤하늘에 가득한 별이 제각기 이야기를 안고 쏟아져 내렸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노래에 이어 아련한 잠 속으로 빠져들게 해 주던 어른들의 옛날이야기. 나무꾼과 선녀. 금도끼 은도끼, 나무꾼과 사슴, 나무꾼과 도깨비. 어른들은 나무꾼만 가지고도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고 우리는 나무꾼이 아무리 많이 등장해도 헷갈리는 법이 없었다.

 아침 신문에 맥주의 맛과 향, 알콜도수는 물론 레시피 작성까지도 인공지능 AI로 대체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일본의 맥주회사 기린이 10년 이상의 경험자 '브루마스터(Brew Master)'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이제는 AI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시간당 겨우 10불을 지불하는 페스트푸드점에서도 인건비 절약을 위해 기계로 주문을 받던데, 이제는 오랜 세월 노력과 숙련이 쌓여야만 얻을 수 있는 장인의 몫마저도 빼앗길 시대가 왔다. 도대체 인간은 어디까지 편해져야하며 어디까지 일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나 싶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의 삶을 위한 일은 천박한 것이라고 했다. 물리적인 노동은 노예에게나 시키라는 것이다. 더구나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도구가 스스로 알아서 일을 해준다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이상적일까 하는 상상까지 했다. 사람의 노동력이 동원될 필요가 없는 세상을 2,400년 전에 상상한 것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덕분에 사라질 직업도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청소원, 주방 보조업, 주차요원이나 판매, 안내원 같은 단순 노동직은 물론 세무사나 교수 같은 전문직도 AI가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허기야 인간의 지능이 최대로 활용되는 바둑조차도 이미 알파고에 의해 석권 당한 상태이니 무슨 직업인들 감당할 수 없을까. 더구나 이제는 기계가 일만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서도 맹활약이다. 얼마 전 뉴멕시코 주에서 한 남성이 여자 친구 폭행 사건으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아마존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것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폭행하던 중에 ‘경찰에 신고했어?’ 하고 다그치는 소리를 AI는 ‘경찰’ ‘신고’ 란 단어를 인식하고 신고전화 911에 다이얼을 돌렸다.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들려주던 어른들의 옛이야기를 듣고 자란 우리 세대는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삶의 환경이 당황스럽다. 수동으로 끙끙거리던 운전대가 자동으로 바꿔졌다며 환호하던 일은 이제 고대 신화만큼이나 아득하다. 비퍼가 처음 나왔다며 실험으로 전화기 다이얼을 돌리던 일도,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 서서 전화를 받던 신기한 경험도 이제는 까마득하다. 컴퓨터 하나를 손에 들고 다니며 온갖 업무처리를 한꺼번에 하며 문명을 즐긴다. 하지만 식당이나 호텔 로비에서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에 눈을 박고 그 속으로 빠져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봐 진다.

 마당의 부겐베리아 꽃잎이 햇볕에 바싹 말라있다. 제아무리 AI가 유능해도 설마 옛이야기 각색까지는 못하겠지. 비록 아이에게 들려주지는 못하지만 오늘은 또 흥부와 놀부를 불러내어 뒤죽박죽 다시 엮어보는 재미로 더위를 식힐까 보다.  <한국산문> 2017.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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