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혁명세대와 신세대

2018.05.03 04:10

janelyu 조회 수:8468

[미주통신]쿠바의 혁명세대와 신세대

“카스트로 시대가 막내린 쿠바에는 시장경제·사유재산제를 갈망하는 개혁을 기다리는 청년이 많다”

2018.05.03

성민희
재미수필가

쿠바에서 카스트로의 시대가 끝났다. 
1959년 쿠바 공산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피델 카스트로’ 이후 동생 ‘라울 카스트로’까지 무려 59년에 걸친 카스트로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쿠바의 국가 최고 통치기구인 전국인민권력회는 4월 18일 ‘라울 카스트로’ 후계자로 ‘마리오 디아스카넬’을 국가평의회 새 의장으로 인준했다. 
개혁 개방에 긍정적인 디아스카넬이 지도자가 되었으니 드디어 길고 긴 독재 체제가 끝이 나는가? 쿠바에 새 바람이 일 거라는 기대가 있을 법도 한데 국민의 반응은 시큰둥하다고 한다. 

작년 11월 쿠바여행 중 6박 7일 동안 우리를 가이드 해 준 청년 로베르토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 라울 카스트로가 85세이니 젊은이들은 모두 그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새로운 정치가가 나타나서 경제가 개방되고 국가가 부흥될 날을 기다리며 참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카스트로 시대가 막을 내린 지금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해야 하건만 그렇지 않다고 하니 새로운 지도자에게서도 희망을 읽지 못하는 것일까. 실망하는 국민의 마음이 느껴져서 안타깝다. 

쿠바는 189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미국은 그때 도와준 인연으로 5년간 미 군부를 주둔시켰고, 존슨 앤 존슨(Johnson & Johnson)과 같은 대기업들이 속속 들어와 제품을 생산하고 초콜릿 재료, 커피, 바나나, 사탕수수 등을 반출해 가는 등 쿠바의 모든 경제를 장악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의 마피아도 쿠바를 거점으로 활동을 하며 마약과 도박으로 사업을 번창시켰다.
덕분에 쿠바는 세계에서 8번째 되는 부자나라가 되었고 1939년부터는 유명한 트로피컬 쇼(Tropical Show)를 공연하는 세계 최고의 휴양지로 부상했다.
컬러 TV가 보급되고 자가용도 보유하는 등 프랑스와 일본보다도 국민총생산(GNP)이 높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인들의 생활일 뿐, 정작 자국민은 그들의 하수인으로서 공장이나 호텔에서 일하는 바닥 생활이었다. 
군대는 갈수록 타락하고 마약과 술에 찌든 사람이 늘어났다.
이에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폭발을 했다. 
더 이상 미국의 경제속국으로 있을 수 없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동부 농장 지주의 아들로 하바나 법대생이었던 카스트로는 민족주의자로서 ‘우리는 경제를 장악한 양키의 노예인가?’라며 혁명을 일으켰다. 
동생 라울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같은 동지들의 활약으로 혁명은 승리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봉쇄를 견디지 못하고 소련과 손을 잡은 것이 이 나라의 불행이었다.

버스를 타고 거리를 돌며 우리는 모두 한숨을 쉬었다.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을 때 지어졌던 유럽식 웅장한 건물이 하나같이 낡고 부서진 채로 1958년 그때의 그 상태인 채 정지되어 있었다. 
그나마 50, 60년대는 소련이 도와주어서 그런대로 살았는데 90년대 소련이 망한 이후로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퀴퀴하고 괴기스러운 외관의 주거지로 들락거렸다.
카스트로의 혁명 이후 공산화되면서 모든 집과 땅은 국가에 환수되어 가족 수 대로 배당이 주어진 임대 주택이므로 아무리 낡고 부서져도 보수할 생각은 전혀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고 있었다.

카스트로가 잘한 정책도 있었다. 
모든 국민에게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해주는 일이었다.
교육수준도 높을뿐더러 인성 교육을 잘했다고 한다. 
법이 엄중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도둑이나 강도 등 범죄가 없다.
특히 카지노는 절대로 용납이 되지 않는다. 
옛날 마피아 소굴이 있을 때 사회가 부패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쿠바는 외국인의 관광을 국가관광청에서 주관하므로 가이드나 운전기사 모두 공무원이었다.
나라의 역사와 관광지 안내를 영어로 할 수 있어야 하기에 반드시 대졸 이상이어야 했다.
우리 가이드 로베르토도 대졸 출신의 눈빛이 선한 29세 청년이었다.
그는 빈부격차를 없애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카스트로의 혁명을 고마워하는 구세대와는 달랐다.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의 의미를 알고 그것을 갈망하는 개방된 사회의 신세대였다.
그 옛날 카스트로와 젊은이들은 친미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지만 지금 쿠바에는 라울 카스트로의 퇴진이 가져다줄 개방과 개혁을 기다리는 청년이 많다. 

그러나 어쩌랴. 새 지도자 디아스카넬은 ‘인민이 부여한 명령은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쿠바 혁명의 연속성을 지키라는 것’ ‘쿠바의 외교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쿠바에는 자본주의의 복원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 존재할 공간이 없다’고 한다. 
더구나 라울은 통치 일선에서 물러나긴 하지만 2021년까지 공산당 총서기직을 맡아 수렴청정을 계속할 것이다. 
빠른 시장 개방과 경제적 풍요를 갈망하는 제2, 제3의 로베르토가 각처에서 언제까지 견디고만 있을지 불안하다. 
성민희
재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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