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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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4회 시와정신시인상 수상작

2019.01.14 15:41

전희진 조회 수:50

제4회 시와정신시인상 수상작 발표| 시와정신 뉴스
주간 | 조회 121 |추천 0 | 2016.10.08. 16:14

         


                    “4회 시와정신시인상 수상작 - 전희진

                                    (2016년 <시와정신> 겨울호 발표)

 

      

          캘리포니아 킹사이즈* 2

 

 

                     전희진

 

 

결혼하고 십년이나 얻어맞고 살았죠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어요

문제는 밤이었지요

이불 속 그의 발 다리 무릎이 문제였죠

스포츠광이었던 그는 잠만 들면 스멀스멀

침실벽을 타고 거미가 기어오르듯 공이 굴러간다나요

상대편 수비수로부터 공을 빼앗아 와야 한다나요

관중석 가득 메아리쳐 오는 붉은 악마들의 함성

그를 붉게 타오르게 하는,

안절부절 그의 두 다리는

밤새도록 골문을 향해 황금의 기회를 엿보지요

멀쩡한 그의 발이, 벼락 맞을 그의 발이 슛!

공이 날아간 곳은 상대편 골문도

삼십 살 절정의 그곳도 아닌 이곳 저곳

부실한 나의 몸 언저리였어요

장차 우리의 두 아이가 들어설 배와

부러지지 않을 만큼 약한 정강이

영어도 모국어도 땀도 뱉어낸 등판

자카란다* 같은 허리였지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저 웬수 같은 공격수를 향해 프리킥을 안 날려본 줄 아세요?

마흔 후반전, 결국 생각해낸 것은

필드를 교체하는 것 뿐이겠더라구요

둘이 먹다가 하나가 퇴각 당해도 모를, 인 앤 아웃*의 더블더블

비좁은 더블 사이즈의 환상에서 벗어나

킹사이즈, 캘리포니아 해안 도로같이 넓고 길게 뻗은 캘리포니아 킹으로

그는 축구장처럼 넓어진 킹사이즈 침대 위에서

밤새 마음껏 구르고 소리치며 허공을 향해

영광의 킥을 날립니다, !

그의 왼편 허공이 무참히 늘어났다 튕겨져 오릅니다

 

*보통은 이 제일 큰데, 이보다 더 크고 넓은 침대 사이즈를 캘리포니아 킹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나무인데, 가로수로 5.6월에는 거리를 보랏빛으로 물들게 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꽃은 아카시아처럼 송이송이 매달린다.

* 햄버거 가게.

 

 

 

           시인과 늑대

 

 

세상을 바꾸어 놓을 것도 아닌데

세상이 바뀌어질 것도 아닌데

밤마다

전깃불이나 축내며

붉은 나무의 향과 심지를 축내며

책장에 쌓여가는

수천 장의 폐지들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쓴답시고

소쩍새 딱따구리 거미 과일나무와

하늘의 어머니를 줄줄이 불러내는,

푸르스름한 새벽별들을 홀짝 태워먹고 비로소

천개의 자신과 반목하는

 

시를 쓰지 않을 거라고,

듣는 둥 마는 둥 아침이면 커피를 내리는 가족들

늑대가 몰려올 것이라고,

저녁이면 부엌의 냉장고 문을 분주하게 여닫는 양 같은 손들

손 같은 양들

 

내 안에 기거하는 낡은 양치기 소년의 말을

늑대가 온다는 말을

시인이 시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그들은 더 이상 믿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로사네 집의 내력

 

 

로사네 집에는 대대로

만개한 꽃이라곤 없었다

꽃이 피기도 전에

촉수만 맞으면 남녀 간에 정분이

일사천리로 얼키고 설킨다

화장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언제부턴가

영주권의 헛꿈처럼 배가 불러온다

그녀, 멕시코 이민자들의 집엔

남편이 없다 아버지도 없다

고기잡이 나가 파도에 휩쓸려서도

전쟁에 나가서도 아니다

십오 세 성인식이 끝나기도 전에

애가 애를 낳고

애의 아빠는

나비처럼 다른 꽃을 찾아 길 떠나든지

달빛 없는 밤을 골라 월경越境을 하든지

뜨거운 여름날

달리는 트럭

닭장 속에 숨어들어 닭똥 같은 생을 마감하든지

그네 나라 고아원 뜰에는 낙엽처럼

버려진 사연들이 하늘의 별 무덤 같다

그들은 채 피기도 전에

그들 어버이처럼

꽃봉오리 아니면 이미 져버린 꽃이다

 

 

[전희진]

 

* 서울 출생

* 2011[시와정신] 신인상 당선

* 2015년 시집 [로사네 집의 내력](시와정신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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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위원 : 나태주, 송기한, 김홍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