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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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K* 타운 외 4편

2019.01.14 17:10

전희진 조회 수:32

K 타운*

전희진

 

 

흐릿한 망막 저 뒤로 즐비한 흑백의 떡집과 소규모 식품점 빛바랜 음식점들, 그 자리에 들어선 총천연색 하늘이 빌딩과 호텔들을 올리고 선명한 간판들을 올리고

 

올림픽길 W 핫도그 가게의 한인 주인이  풋내기 알바생들의 엉덩이를 더듬기로 소문 난

그 알바 여고생들은 지금쯤 내 얼굴을 하기도 하고 은행장의 얼굴을 하기도 하고  지역 선교사들의  얼굴을 하거나

 

그해 그 여자애들을 남자애들을, 포물선 밖으로 튕겨 나간 빛나는 청춘들을

마리화나로 세상을 알아가던 대수롭지 않은 여자애들은 오렌지색 폭스바겐을 몰던 남자애들과 연애를 하거나 근처 시립대학으로 진학하거나

남자애들은 서둘러 군인이 되어 US 시민으로 안주하거나

 

그도 저도 못한 우리들은 유령처럼 무기력한 안개처럼 인근 몇몇 도시를 떠다니다 밸리로  세리토스로  타주로 흘러들어 차차 코리안아메리칸으로 유입되었고

 

이곳 엘에이 K 타운에 이민 보따리를 풀었던 부모세대들은 자신의 아들들이 꿈속에서조차  영어로 말하길 원했던  올드타이머들은 수많은 지면을 빌어 부고란의 천국민으로 유입되었고

 

이제 부모세대가 된 우리들은 다 큰 어른이 된 아이들의 등을 멀리서 지켜보거나 빈둥빈둥 데스밸리 사막을 굽어보거나 결혼식에 총총 불려가거나 아바의 댄싱퀸이나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히피 근성의 낭만을 되씹거나

 


*코리아타운




왜 진짜 슬플 땐 멀뚱멀뚱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거니?


 


감자껍질을 벗기다

엄지 손마디 살점까지 벗겼다

반창고를 가지러 가는 사이

부엌에서 거실을 지나 방 둘을 건너 화장실

비상약통에서 반창고 사이즈를 눈어림으로 맞추는 사이

그제서야 피가 흘러내렸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난 듯이


 엄마가 돌아가셨다는데 울음은 나오지 않고

백화점에 가서 처음으로 맘에 드는 검은색 장례복 정장을 샀다

아프진 않은데 뚝뚝 숨을 끊으며

엄마가 비에 떠내려갈 것 같아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 쭈그려 앉은 엄마가

비에 둥둥 떠내려갈 것 같아


 계단들의 귀가 아프도록

울음과 울음 사이는 무엇이 있길래

생각나면 우는 어린아이처럼

긴 생각 끝에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북진




갸르릉 갸르릉
갓난
아이의 오래된 기침소리가


아비의 심장을 관통할 때마다
아비의 굽은 등은
폭격을 맞은 움찔, 굽어졌다

일월의 매서운 추위도 경악하여
걸음 뒤로 물러나 후퇴를 하고


아버지 등에 업혀 나는 그때
먹은 목화솜처럼 쌔근쌔근

포대기에 싸여 한없이 젖어들었다

단순한 피난민들은 제각기

잃어버릴 신발짝들을 찾아


서울에서 부산으로
남에서 남으로 내려갔다

땅의 아버지 사람
솜이불을 뒤집어
다이아 찡*
알을 구하기 위해
북으로 북으로
영면에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북진 중이다



*이 약은 한국전 당시에 폐렴, 임질 설사 등 곪은 곳에 특효약이었다


 


 백년 동안 몸을 풀지 않는 드가의 한 소녀를 위하여



 잠깐 동작을 멈춘 소녀가


잠깐 동작을 멈출듯 소녀가


동작에서 멈칫멈칫 빠져나와


유연하게 팔과 허리를 구부리는,


사람들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들어간 그녀가


어느새 군중들 틈에서


미끄러지듯 흘러내려온


핑크빛 노을 한쪽을 잡아매는


 

가려움증

매일 저녁 귀를 판다
나팔꽃이 핀 넓은 마당이 나올 때까지
마당귀 밟고 젊은 엄마가 저녁 밥상을 들고
댓돌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을 때까지
툇마루에 달이 뜰때까지
그 달에 계수나무 그림자가 들어섰다가 사라질 때까지
신발 가득 달빛으로 출렁일 때까지
출렁이다가 밖으로 흘러 넘칠 때까지 그리고
며칠동안 귀를 앓았


-시와시학,2017년 겨울호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