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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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분재 외 1편

2019.01.14 18:03

전희진 조회 수:38

분재

전희진

 

 

꺼지는 땅을 움켜 잡으려는듯

매점 안 텅 빈 의자들이

땅 속으로 아예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위에 철퍼덕

주저앉는 여자의 가느다란 몸에서도  

실낱같은  뿌리가 자란다

비 억수로 쏟아지고

땅 속으로 새어들지 못해

아스팔트 길 위에 미끄러지는 비의 긴 그림자

 

뚜껑 따놓은 지 오래된 청량음료처럼

그녀 말수의 위험수위와 몸 안의 물기가 점점 줄어들어

눈 가에 캄캄한 잎들이 돋아났다

거스름돈을 내어주는 그녀의 손에서

붉은 꽃망울 같은것들이 후두둑 떨어졌는데

 

앉은채로 그녀는 나무가 되어갔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간혹 옮겨지는 게 삶인듯

간혹 사랑의 한 순간이 일생이 되는 경우도 있다





뒷머리가 자꾸 뒷쪽으로 끌려간다




 누가 잡아채지도 않았는데


바람이 세게 분 것도 아닌데


뒷머리가 자꾸 뒷쪽으로 끌려간다


끌려가서는


애먼 사람의 통화 내역이나 엿듣다가


이웃집 앞마당이 펼쳐놓은


쓰레기 더미에 불 붙곤 한다


뒷머리는 없는 채 앞머리만 싸잡고


하루치 난간을 견딘다  알맞은 표정 관리를 하느라


괜한 힘을 뺀다


여행이 스트레스라고 스트레스를 생각하기 무섭게


스트레스가 발 빠르게 다른 스트레스와 손 잡고


말을 굴리며 저희들끼리 잘도 놀아난다


어디에고 정착을 못하는 중력 잃은 말들이


이국의 하늘을 이민자처럼 떠돈다


만리장성, 이층 연회장의 계단을 헉헉거리며


만리의 장성에 끝까지 오를 수 있을까


양쯔강을 바라보며 수십년을 무료하게 누워 있던 수많은


난징* 민간인들의 녹슬은 뼈들이  뼈들의 손이


내가 탄 배 위로 기어 오르지나 않을까


거울을 봐도 뒷머리가 보이질 않는다


 

난징 대학살중일전쟁 때 일본군이 중국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잔악한 방법으로

대량 학살한(20-30만명), 세계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잔혹한 사건


-시와시학 201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