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캘리포니아 드림 / 권태호

2012.06.09 15:03

김영교 조회 수:307 추천:14

무너지는 캘리포니아 드림 / 권태호  
    
미국의 캘리포니아주가 만성적인 재정 악화와 씨름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제리 브라운 주지사는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교육재정도 추가로 깎는 수정예산안을 발표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규모도 가장 크다. 캘리포니아만 떼어놓아도 경제규모가 세계 8위,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우리나라의 2배다. 온화한 기후, 풍부한 농산물, 발전된 산업, 명문대 등으로 이민자들이 꿈을 안고 뛰어들었던 풍요롭고 넉넉했던 곳이다.

그런데 경기침체가 계속돼 소득세 수입이 줄면서 50개 주 가운데 재정 악화가 가장 심각한 주가 되고 말았다. 재정적자는 교육·복지예산 축소로 연결된다. 캘리포니아는 교사를 끊임없이 해고해 이제 한 반의 학생 수가 50~60명에 이를 정도다. 학교급식은 점점 열악해진다. 수업 일수를 줄이고, 교사의 휴가를 늘리고, 여름학기 강의를 없애고, 수업료는 올리는 일이 연중행사로 일어난다. 로스앤젤레스 통합교육구는 최근 3년간 8000여명을 해고하고, 지난해 4억5000만달러의 예산을 삭감했지만, 해고와 교육예산 삭감 행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복지 분야에서도 저소득층과 노인 의료지원 혜택에서 치과 제외, 의사 면접 일수 및 보험 적용 의약품 축소 등 계속 줄여나간다. 저소득층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 아파트는 이제 짓지 않고, 임대료는 올리고, 노인연금은 줄인다. 주정부 공무원들의 근무시간은 주 40시간에서 38시간, 주정부기관의 업무 일수는 주 4일로 줄이고 있다.

‘풍요의 상징’ 캘리포니아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에 대한 원인 분석은 다양하지만, 1978년의 ‘주민발의 13호’를 근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석유파동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오르자,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당시 명목재산의 3%에 해당하는 재산세를 1% 이상 못 올리도록 하고, 세율을 높이려면 주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주민발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재정 악화, 부동산 가격 폭등, 그리고 복지분야 축소의 시발점이 됐다. 재산세를 못 올리니 주정부는 소득세, 판매세, 유류세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캘리포니아의 기름값이 미국에서 제일 비싼 이유다. 소득세가 오르니, 경제위기가 닥치자 기업들은 뉴멕시코, 애리조나, 네바다 등 인근 주로 빠져나가고, 그래서 재정이 악화되니 소득세를 또 올리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방만한 예산낭비도 한몫했다. 한 교민은 먹고살 만한 사람이 “소득이 거의 없다”고 신청해 ‘푸드 스탬프’(저소득층에게 제공하는 음식구매권)를 받았는데, 월 900달러가 나와 이를 소진하기 위해 이웃 사람들과 갈비 파티를 열기도 한다며 씁쓸해했다. 캘리포니아는 이를 행정력으로 교정하기보다 일괄삭감 또는 인력해고로 대처하고, 이는 공동체를 점점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브라운 주지사는 재정적자 타개를 위해 25만달러 이상 고소득자들에게 소득세를 더 물리는 ‘부자증세’안을 내놓았지만, 주의회 통과를 낙관하긴 힘들다. 캘리포니아를 보면 한국의 미래가 언뜻 엿보인다. 부동산 관련 세금 인하, 방만재정, 부자증세 논란 등. 10년, 20년 뒤 혹 ‘캘리포니아 부메랑’이 한국 땅을 향하진 않을지 우려된다. 한국은 캘리포니아처럼 풍요롭지도 않은데.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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