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여행 단상

2012.08.25 16:04

김영교 조회 수:218 추천:16

비극적이리 만큼 조숙했던 Tocqueville/美州여행 斷想 9 김창현 비극적이리 만큼 조숙했던 Tocqueville--美州여행 斷想 사실 나는 이 Newport에 와서 뇌리를 스치는 인물은 비극적이리 만큼 조숙했던 프랑스의 천재 Alexis de Tocqueville이다. 1831년 25세의 나이로 미국의 행형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보몽과 함께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곳이 여기다. 9개월간 미국을 시찰하고 돌아가 쓴 책이 19세기의 고전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De La Demo- critie en Amerique)'다. 이때 벌써 또끄빌은 노예제도 폐지를 에 워싼 미국의 분열을 예견했고 나아가 미국과 러시아가 초강대국 으로 대립할것 이라고 보았다. 또끄빌은 행형제도를 통해 미국 사회의 성격이라던가 사회의 은밀한 작동방식을 분석 했는데 이 러한 사상은 니체와 미셀 푸코로 내려가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 된다. 푸코의 첫 저술 ‘감시와 처벌’은 이러한 철학적 천착의 연속선상에서 나온 책이다. 또끄빌이 미국을 다녀간지 173년뒤 미국의 고급 지성지 ‘월간 애 틀랜틱’이 프랑스의 뛰어한 저술가 베르나르 레비를 시켜, 또끄빌의 발자취를 그대로 밟게 했다. 그래서 쓴 책이 ‘American Vertigo'-- 이책에 보면 레비가 미시간주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급해서 들판 기 슭에 차를 세웠다. 막 볼일을 볼려는 찰라, 어느새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나 돌아보니 경찰 차였다. “지금 뭐 하는거요?” “바람 좀 쐬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람쐬는 건 금지되어 있소.” “그래요, 사실은 소변을 좀 보려고요.” “소변 보는것도 금지되어 있소.” “그럼 도대체 허락된 게 뭐죠.” “아무것도 없소” “그런줄 몰랐습니다.” “당신이 알고 모르고는 내 알 바 아니오.” “난 프랑스 사람입니다만.” “당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내 알 바 없소” “나는 다니엘 펄에 관한 책을 한권 쓴적이 있습니다.” “다니엘 누구?” “잊혀진 전쟁에 관한 책도 한권 썼죠.” “무슨 전쟁?” “지금 또끄빌의 발자취를 쫓는 글을 집필중이요.” 순간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친밀감어린 표정으로 완전히 바뀐것이다. “알렉시스 드 또끄빌 말이오?. “그렇소, 170여년전 또끄빌은 분명 이 근처 어디를 지나갔소. 나는 그 발자취를 찿아 나선 중이오“ 노상방뇨미수, 고의에 의한 배회등 죄목으로 막 티켓을 작성 중이던 교통경찰은 모든 행동을 접었다. “또끄빌의 진단 가운데 어떤게 아직도 유효 합니까?” 이 일화에서 보듯 일선 경찰관들도 또끄빌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만큼 미국인들에게는 친숙한 사상가다. 또끄빌의 체취를 이 뉴포 트 항 어디엔가서 맡을수 있을것 같은데 운전대를 잡은 딸이 재촉 을 했다. “아빠 우리 오늘 보스턴 까지 들어 가야돼” ‘미국예외주의’를 첫 언급을 한 사상가도 알렉시스 드 또끄빌이다. 미국의 Seymour Lipset같은 사회학 학자도 현대 미국의 구성원리 와 기본적인 정치제도를 천착하면서 또끄빌의 사상에서 실타래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다른 서구국가와 질적으로 다르며 미국은 변칙적 사례(Outlier)로 발전해 왔다고 주장했다. 또 오바마의 올 대선가도에서도 이 ‘미국예외주의’는 화두로 등장 했다. 립셋은 미국의 이념이 자유, 평등, 개인주의와 포풀리즘에 자유방임주의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다만 립셋이 또끄빌의 주장에 덧붙인 사항은 미국의 구성원리와 제도를 양날의 칼로 본것이다.가령 소득의 불평등, 높은 범죄율, 낮은수준의 선거참여, 모든것을 도덕적 관점에서 볼려는 강력한 경향들, 그리하여 때로 정치적 윤리적 소수자들에게 거의 관용적이지 않는 관행등 오늘날 미국사회를 특징짓는 많은 부정적인 요소들이 감탄할 만큼 개방 적인 민주사회의 규범 및 행태와 내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 한다. 건국의 시조들, 이후 결정적 국면에서 출현한 그 계승자들을 볼때 미국은 예외라고 생각할만한 운이 따랐다. 워싱턴은 유태인을 포 함한 모든 종족적, 종교적 집단이 평등하다고 외쳤으며 제퍼슨은 작은 정부가 더 좋은것이라고 역설하며 노예제도의 지속에 대해 정의로운 신의 관점에서 미국의 미래에 대해 큰 우려를 이미 표명 했다. 또 새로운 정체(政體)의 확립에 기여했던 매디슨은 정부가 스스로 통제할수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국가권력이 지닌 위 험을 경계 했던것이다. 1826년 7월4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지 50주 년이 되는날 미국인들은 신의 섭리가 분명 이 젊은 공화국을 지켜주 고있다고 확신 했다. American Exceptionalism은 분명 여기서 출발 하고 5년뒤 내가 찿은 이 Newport항을 통해 미국에 첫발을 디딘 25살의 천재, 또끄빌은 그것을 읽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립셋이 쓴 ‘미국예외주의’의 부제를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라고 달았을 터이다. 언젠가 마가렛 대처도 미국의 예외주의를 칭찬한적이 있는데 그것 은 내가 볼때 여우 짓이었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그 본분을 다 해야한다는 강요와 비꼼이 거기에 감추어져 있으니까. 오바마는 나토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미국 예외주의를 믿 습니까?”란 질문에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는 미국의 예외주의가 있고 영국에는 영국의 예외주의가 있으며 그리 스에도 그리스의 예외주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쇠퇴가 가시화 될수록 미국 예외주의에 집착하는 몸짓을 볼수 있 는데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건국의 아버지들의 높은 이상을 좀더 곰씹고 보다 보편화된 미국의 예외주의를 다시 정립해야 된다. 우리는 차를 돌려 다시 Jamestown 다리를 건너 New Hampshire 주 Hanover시에 있는 Dartmouth대학으로 향했다. 지금은 世銀총재 로 간 Jim Yong Kim이 총장을 지낸 대학이다. 영국식민지 시절 美동부 뉴 잉글랜드에 세워진 9개 대학을보면 자기 나름의 건학(建學) 이념이 있다. 예를 들면 하버드는 원칙 적으로 목사양성을 위해 세운학교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왔던 청교도들중 지도자급은 케임브리지대학 Emmanuel College를 나왔고 이들은 종교와 교육을 같은 가치로 여겼다. 입학생 전원이 목사가 된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통계를 보면 절 반은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나머지 반은 온전한 Christian- Gentleman으로서 길러졌다는데 설립자들은 만족을 했다. 예일대학을 보면 하버드가 너무 리버럴하게 나가니까 여기에 불만을 느낀 현직 하버드대 학장이 뛰쳐나와 설립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 다트머스대학은 우리에게 김용총장 때문에 머리에 각인된 학교지만 설립취지는 특이하게 아메리카땅의 원주민 인디언들을 개종 시키겠다는 이유로 영국왕 조지3세의 칙허 장을 받아 설립된 대학이다. 첫학생도 Mohegan족의 Sam- son Occom이란 인디언 청년이고. 이름은 창설자인 청교도 목사 Eleazar Wheelock을 도운 재단 이사장인 다트머스 백작 2세(2nd Earl of Dartmouth)에서 비롯 되었다. 1906년 유럽의 종교잡지 ‘아웃룩’은 미국대학의 사명은 봉사에 있다고 갈파했다. 이것은 아주 시대를 꿰뚫어본 명언이다. 많은 아이비 리그의 입학사정 원칙이 ‘이 학생을 교육해 사회로 내 보냈을때 얼마만큼 인류를 위해 봉사 할것인가‘가 큰 잣대의 하나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국계 김용을 다트머스가 총장으로 기용한것 아주 적절한 인선이라고 높이 평가 하지 않 을 수가 없다. 언더를 브라운에서 하고 하버드의대를 나온 그의 삶은 철저한 봉사로 일관 되었다. 그를 世銀총재로 추천한 오바 마의 형안도 여기에 있음은 불문가지다. 영국대학은 귀족계급의 문화를 중심으로, 또 독일대학은 학자를 길러내는데 방점을 두었지만 미국은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인재인가를 먼저 물었다는것은 그만큼 청교도 정신의 우수성을 읽을수가 있는것이다. 다트머스가 아직 Univercity를 쓰지않고 학교 이름에 College를 고수하는데는 역사적 판결이 숨어있다. 뉴햄프셔 주정부가 입법 을 통해 다트머스대학을 College에서 Univercity로 바꾸고 큰 개혁을 할려고 시도했다. 여기에 맞서 다트머스대학은 정부의 사학에 대한 간섭을 거부했던 사건이 1819년 연방대법원의 ‘다 트머스대 판결‘이다. 연방대법원은 다트머스대가 공적기관이 아 니라 사적기관Private Institution이라고 정의 내림으로써 주정부 의 입법적 간섭은 위헌 이라고 해석을 했다. 이 판결 영향을 받 아 사립대학은 큰 발전을 하고 반세기동안 주립대의 발전은 지 연 되었다. 우리 세식구는 엄청나게 큰 잔디밭을 가로질러 교정을 돌아보았 는데 어딘지 모르게 시골 냄새가 역연했다. 뉴햄프셔주의 와이트 마운틴과 버몬트주의 그린마운틴을 배경으로 하고 선 캠퍼스는 한가로움이 참 인상적이었다. 네비게이터를 다시 입력하고 보스턴을 향해 가는길은 코네티컷강 을 건너고 꼬불 꼬불 짙푸른 산천을 돌아가는 뱀길 이었다. 보스턴에 도착 하자 여름날이라 그런지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 었다. 우리는 이미 예약되어있는 ‘교도소’를 찿아가 여장을 풀었다. Aug 25 2012 씨야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6
어제:
20
전체:
647,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