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의 자살 (수필)

2010.01.02 02:38

고대진 조회 수:1478 추천:253

 

사람이나 짐승들 같은 다세포 생물은 세포가 모여서 형성된 일종의 ‘세포의 사회’로 말할 수 있다. 이 세포들이 모여 눈 코 입 피부 심장 등의 기관을 이루고 기관끼리 상부상조하며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개체의 생명이다. 이 개체 안에서 세포는 끊임없이 증식하고 또 소멸하고 있다.

세포의 소멸 즉 세포의 죽음은 두 종류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괴사 혹은 `네크로시스(necrosis)`라 불리는 죽음인데 박테리아 등에 의한 감염이나 상처 혹은 독물 등의 자극에 일어나는 수동적인 세포의 붕괴과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외부 신호나 내부 신호로 유도되는 유전자 안에 입력된 프로그램화된 죽음이다. 이런 세포의 죽음은 세포의 자살 혹은 `아포프토시스(apoptosis)` 라고 불린다.

괴사의 경우에는 세포가 부풀러 오르고, 용해하여 내용물이 유출되고그곳에 백혈구가 모여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 프로그램화된 자살에선 죽을 때가 되면 세포가 축소하고 세포의 표면의 미세한 융털이 소실되며, 표면은 평평해진다. 또 핵의 크로마틴이 핵막 주변에 응축하여 단편화되고 세포도 단편화하여 기름방울 모양의 작은 조각이 되고마크로파지 등의 식세포에 잡혀먹히는 형태로 변해 조용히 소멸하여 간다.

요즘은 ‘세포의 죽음’이라면 괴사보다는 세포의 자살을 의미할 정도로 프로그램화된 죽음에 많은 관심과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금년(2009)도 노벨 의학상은 이런 세포의 죽음을 규명한 이론 중 하나인 ‘텔로미어(telomere)’ 이론을 연구한 세 사람에게 수여되었다.

텔로미어란 염색체의 끝 부분에 존재하는 반복적 염기서열을 말하는데 이 이론은 세포분열이 진행되면서 그 길이가 매번 일정한 길이씩 짧아지게 되고 일정한 길이 이하로 짧아지게 되면 세포의 분열은 멈추게 되고 결국 죽게 된다는 이론이다.  텔로미어는 세포의 분열 횟수를 기록하는 ‘세포의 시계’로 간주할 수 있다. 매번 분열할 때마다 세포의 시계는 똑딱똑딱 기록하고 미리 프로그램된 때가 될 때 세포는 자살하게 되는 것이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를 생각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시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세포’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고쳐도 될 것 같다. 이번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은 짧아지는 텔로미어를 원상 복구할 수 있는 효소 ‘텔로머레이스(Telomerase)’도 발견했다텔로머레이스는 보통의 체세포에서는 억제돼 그 활성을 찾을 수 없지만, 생식세포와 줄기세포, 그리고 암세포 등에서는 그 활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들 세포는 지속해서 분열할 수 있다.  텔로머레이스가 규정된 프로그램을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죽지 않고 계속 불어나기만 하는 세포로 변종이 된 세포 중 하나가 암세포다. 죽고 싶어도 세포의 시계에 고장이 생겨 죽을 수조차 없게 되고 자꾸 불어만 나는 불멸의 세포로 변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하여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진시황이 그렇게 찾던 불로초가 ‘텔로머레이스라는 효소(단백질)로서 나타난 것이다.


세포의 자살은 생명체 내부의 유전자들에 의해 죽을 때가 이미 규정이 돼 있고 생명을 둘러싼 환경요인들이 그때를 결정하는 역할도 하므로 이런 죽음은 완전히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올챙이의 꼬리가 없어지는 것도 꼬리 부분의 세포들이 때가 되어 자살함으로 이루어지고 엄마 뱃속에서 하나로 뭉쳐져 있던 우리 손가락이 자궁에서 나올 때는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것도 손가락 사이의 세포들이 때가 되어 자살함으로 그렇게 된다. 죽는 것이 결국 다른 부분을 살게 하는 것이다. 정말 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가는 세포는 참 아름다운 세포이다.
어찌 가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할까? 보낼 때 보내는 것도 또한 가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일 것 같다. 꽃을 보내야 열매 맺는 가을을 맞을 것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형기 시인은 노래한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불멸의 생명이 과연 바람직할까? 삶이 진정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짧기 때문이 아닐까? 내 안에서 때가 되어 자연의 법칙으로 소멸하는 세포들처럼 먼저 간 사랑하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 가을에 나도 이제 그들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주기로 한다. 그리고 나에게도 ‘죽음’이라는 자연의 섭리 안의 축복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또 내가 가야 할 때를 알고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인연의 끈을 놓고 아름답게 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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