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과 실험

2008.12.12 23:14

김동찬 조회 수:1180 추천:118

   아프리카계 혼혈인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당선은 미국의 위대한 실험 정신이 승리한 일이다. 나는 그가 대통령으로 적합한 인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과거 사람을 노예로 부리던 일을 반성하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미국 국민의 보편적 이념임을 실제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에 큰 획을 긋는 대사건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일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았다. 세상의 역사적 위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실험이 쌓여온 결과물이다.
   미국 문학사에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미국문학의 기점이 되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점도 다시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이 소설은 소년과 탈출한 흑인 노예와의 우정, 생생한 사투리와 속어, 자유로운 정신 등을 담아냈다. 만일 마크 트웨인에게 실험정신이 없었더라면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현실과 동떨어진, 로미오와 쥴리엣 식의 발코니 문학만을 생산해내는 싸구려 작가로 전락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처럼 실험 정신은 창작 예술의 생명이다. 오죽하면 ‘평생 동안 한 개의 새로운 비유, 한개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도 성공한 시인’이란 말이 있을까. 만일 작가들이 틀에박힌 형식, 현협한 사고, 진부한 표현으로 가득한 낡은 작품만을 생산한다면 결국 이발소 그림처럼 잠시 반짝이다 잊혀질 것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우리 미주의 문인들이 한국 문인들의 작품만을 따라가려 한다면 거의 전문적으로 글을 써온 그들을 따라잡기도 힘들지만 자칫 그 아류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있다. 비록 거칠더라도 우리 미주 이민자들의 생생한 이야기,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세계관을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내는 실험에 보다 정열을 쏟아야 하겠다.
   물론 실험이 실험으로 끝나지 않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돌아가신 고원 선생님께서도 “실험은 하되, 습작은 하지 마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습작을 게을리해도 좋다는 얘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습작을 충분히 거친 다음 완숙한 수준의 글을 발표하라는 뜻이다. 미숙한 글을 실험이라고 둘러대서는 안되며, 새로운 형식이나 내용을 실험할 때에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미주의 한국문인들이 뼈를 깎는 습작과정을 거쳐 위대한 창작품들을 실험, 발표해 냄으로써 한국문학의 변방이 아니라 새로운 개척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되기 바란다.  
   실험 얘기를 하다 보니, 지난 2년간의 회장 임기를 마치며 실험에 게을렀던 것을 반성하게 된다. 많은 부족한 점이 있었음에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우리 미주한국문인협회가 무난히 운영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많은 선배님들과 문우님들께 송구스럼고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특히 빛도 없이 희생적인 봉사를 베풀어주신 임원님들과 멀리서 참여해주신 미주 각지의 문인들께 감사를 드린다. 오바마의 실험과 때를 맞춰 출범하는 2009-10년, 새 회기를 맡아 수고하실 회장단과 이사장단께 큰 기대와 함께 실험의 짐을 넘긴다.
  
--  <미주문학> 2008년 겨울호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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