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꽁 다리

2008.12.31 02:15

김동찬 조회 수:1684 추천:128

   신년사
                    멜라꽁 다리
                                                        김동찬

  새해를 맞으며 내가 태어난 목포를 생각한다. 목포에는 4대 명물이 있었다. 타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달산이나 삼학도 같은 것들이 아닌, 네 명의 사람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으리라고 여겨지지만, 오래전부터 목포의 대표적 ‘물건’으로 불려졌기에 목포 사람들은 그들을 추억하며 ‘명물’이라고 부른다.
  조금 모자란 듯해서 남의 집 잔일이나 해주며 떠돌던 ‘옥단이’. 어릴 적 소아마비 같은 것을 앓았는지 조금 몸이 비틀어진 목포역 짐꾼 ‘멜라꽁’. 하얀 양복을 입고 기도를 보던 호남 극장의 ‘외팔이‘. “살라믄 사고 말라믄 마쇼. 누가 아쉬운가 봅시다”라고 쉬지 않고 떠들며 수십 리씩 리어카로 장사를 다니던 ’쥐약장사‘. 이들이 바로 목포의 4대 명물이다.
   내 또래 사람들은 목포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들을 잘 모르지만 목포에서 살았던 부모님과 형님 세대들은 잘 알고 있다. 동네 잔칫집에서, 밖으로 나가고 돌아오다 목포역에서, 극장 앞을 지나다가, 혹은 집 앞에서 물건을 사다가, 그들을 보고 만나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고, 크고 작은 추억들이 이 분들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온 몸으로 한 시대를 살아낸 이분들의 극적인 이야기는 문학작품에 등장할 만큼 특이하고 감동적이다. 실제로 목포 출신 고 차범석 희곡작가의 팔순 기념 희곡집 제목이, 옥단이를 전라도 식으로 부르는 ‘옥단어!’였다. 물론 옥단이의 파란만장한 삶이 그 주된 이야기다.
   그 네 사람 중에 내게 가장 감동을 주는 것은 멜라꽁 아저씨다. 목포의 바닷물이 목포역 근처까지 흘러들어오던 시절에 목포 항구에서 목포 역까지 가려면 그 바닷물줄기를 돌아 먼 거리를 걸어야만 했다. 불편한 몸으로 짐꾼을 하는 멜라꽁은 그 바닷물줄기 위로 다리를 놓으면 얼마나 편리할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됐다. 그리고는 보통 사람도 하기 힘든 육체적 노동을 해서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기증해 다리를 놓았다. 그 바닷물이 들어오는 물길을 매워 다리가 필요 없어질 때까지 모든 목포 시민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던 ‘멜라꽁 다리’가 이렇게 탄생했다.
  전쟁이 끝나고 어려웠던 시절, 남보다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불편했던 이 분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남들보다 몇 갑절 더 열심히 질곡의 세월을 헤쳐 나갔다. 그리고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의 불편함까지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도움을 주려고 했던 이 분들은 비록 역사책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희망을 주었던 우리의 친구이었고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새해에 우리에게는 좋은 일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멜라꽁 다리를 생각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대공황 이후의 최대 불경기라고 하는 이 어려운 시기도 멜라꽁 아저씨가 겪었던 난관보다 더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멜라꽁 다리는 없어졌지만 그 다리가 보여주었던 멜라꽁 아저씨의 불굴의 정신과 이웃 사랑은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 <타운뉴스> 2009년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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