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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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진주와 김소월

2017.12.24 07:09

이효섭 조회 수:84

진주와 김소월

 

오래 전 두 아이들이 집에 왔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 갈 때에 공항에 대려다 주면서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자동차 안에서의 대화는 제한된 공간 때문인지, 다른 어느 장소보다 소통이 잘 되기에 나는 아이들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주 차 안의 대화를 이용해 왔다. “ 얘들아, 보기에 똑 같은 두 개의 조개가 있다. 한 개는 우리가 먹는 살이 많은 조개이고 또 한 개는 진주가 들어있는 조개다. 너희는 어느 조개를 택할래?” 아이들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진주가 생성되는 과정을 누구보다 좀 더 소상히 알고 있었으므로 아이들의 답을 듣자마자 바로 진주조개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 주었다. “평생 편하게 아무 어려움 없이 살아온 조개는 가치가 미미한 고기덩이의 조개이지만, 어려움이 있으나 아픔을 감싸며 살아 온 조개는 값 비싼 진주조개가 된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아이들이 우리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슨 연유로든 내 말이 떠오를 때에는 한번쯤 진주의 의미를 짚어보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난 며칠 김소월을 생각하다가 내 가슴에 찍혀있는 진주가 다시 보였다.

조개는 모래와 같은 이 물질이 자신의 몸 속에 들어와 박히면 불편과 아픔을 극복하기 위하여 분비물을 만들어 그 이물질을 감싼다. 이렇게 세월을 두고 만들어 지는 것이 진주다. 우리는 쉽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지만 진주는 생과 사를 두고 살아온 결과이다. 분비물을 만들어 이물질을 감싸지 않으면 자신이 썩어 죽어지기에……

진주를 볼 때 귀한 색깔을 어떻게 형용 할 수가 없다. 아픔을 극복하고 생존을 위하여 땀과 피를 흘리며 이물질을 덮어 싸고 또 싸는데 이 액체들의 혼합이 영롱한 색을 발하는 진주가 된다. 살을 찢기에 흐르는 피,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기에 나는 땀, 이 둘을 섞은 삶을 향한 고통의 아름다운 색깔을 한정적인 표현으로 합당하게 서술하기가 벅차다.

진주를 뚫어지게 보아도 광택 아래 숨어있는 깊이를 알 수 없다. 한 겹 한 겹 쌓을 때 마다 온 몸으로 감싸야 하는 진통을 숨겨서 일까? 아무리 보아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진주의 깊이와 고통의 깊이는 같은가 보다. 고통의 깊이를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진주의 크기는 고통의 강도와 세월을 암시한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큰 진주는 더 긴 세월을 오래 참고 더 큰 아픔을 견뎌야 했으리라. 분비액이 한 번 나와 고통이 없어졌다면 좋으련만 분비물을 내고 내어도 더욱 커지는 이물질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까지 더 큰 고통과 함께 살았으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진주는 삶을 향한 조개의 생명 결정체이다

김소월을 생각하며 왜 진주가 연상될까? 김소월의 삶이 김소월의 시가 조개와 진주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일까? 김소월의 삶이 그려진다. 태어나서 두 살 때부터 민족의 비극으로 인한 가족의 슬픔과 아픔과 울분을 쏟아내지 못하고 가슴 속에 차곡차곡 담으며 자랐다. 아버지가 일본인들에게 희생만 당하지 않았어도 다르게 성장하였으리라. 민족의 시인 김소월은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소월의 어린 시절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하루 하루는 생존을 위한 피 눈물 나는 고통이었고 그것은 본인의 삶 자체가 되였으리라. 김소월은 가벼운 감정과 연한 감상으로 혹은 이성의 관념으로 시를 쓰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살려는 영혼의 외침이고 생명력을 쏟아 내놓음 인 것 같다. ‘초혼진달래엄마야 누나야...... 이제 시 속의 음성이 조금 들린다. 이제 시 속의 행동이 어렴풋이 보인다. 이제 시 속에서의 마음들이 내 가슴의 명치를 아프게 한다.

김소월 시들의 아름다움은 읽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빛이 달라진다. 한가지의 색깔로 표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학자들이 분석하고 여러 이름을 붙인다. 김소월의 시는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지난 백 년 동안 온 국민이 읽고 읽으며 문학인들이 연구하고 연구하여도 아직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끝 없는 연구의 대상이다. 소월의 시는 얼마나 큰가? 잠시 생각해 보면 결코 우리 나라 보다 작지 않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 민족의 시로서 지금까지 온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가슴에 새겨져 있기에……

진주를 알고 남긴 짧은 글에 이렇게 마무리 하였다고 기억된다. 진주를 두르고 다니는 사람보다 가슴에 자신의 진주를 품고 있는 사람이 더욱 귀하고 값 있는 사람이지 않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