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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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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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로패셔널 포토 그래퍼 김광진<Kim Kwang Jin> 作)



강력계


배불뚝이가 입원한 S종합병원 중환자실에 두 남녀가 들어섰다.


무비스타를 능가하는 빼어난 미모와 성적 매력이 넘치는 외모를 겸비한 여성과 개그맨 김형곤을 연상케 하는 50대 중반에 사내였다.


청바지에 검정색 티셔츠 차림인 여성은 서초 경찰서 강력계 진달래 형사였으며, 남자는 강력계 강인환 반장이었다.


두 사람이 중환자실을 찾은 이유는 이랬다.


진달래 형사가 가공할 필살기(必殺技)로 배불뚝이의 번데기를 내리찍자 놈이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며 혼수상태에 빠졌다.

때마침 달려 온 동료 형사들이 재빨리 배불뚝이를 병원으로 후송한 탓에 놈은 다행이 목숨은 건졌으나 영영 사내 구실을 할 수 없게 됐다.

진형사가 온 힘을 다해 뒤꿈치로 번데기를 내리 찍은 순간 생식기능이 모두 파괴 됐기 때문이다.


병원 비뇨기과 닥터가 강반장과 진형사에게 귀띔한 배불뚝이의 번데기 진단 결과는 평생 사용 불가였다.

성생활은 물론, 방뇨(放尿)도 요도(尿道)에 연결한 플라스틱 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진형사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바퀴벌레만 봐도 놀랄 것 만 같은 여형사님께서 환자를 저렇게 불구로 만들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설마 입으로 물어 뜯은 것은 아니겠죠?”


이로 인해 전혀 거동을 할 수 없는 배불뚝이는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환자 신분이 됐다.

따라서 피의자인 배불뚝이를 심문하기 위해 진달래 형사는 부득이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다.


헌데, 오늘 강인환 반장이 진형사와 동행한 것은 배불뚝이에 관한 영장 청구 건 때문이었다. 

두 형사가 중환자실에 들어섰을 때는 배불뚝이가 눈을 뜨고 링거 주사를 맞고 있었다.


진형사와 시선이 마주친 배불뚝이가 진저리를 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빌라에서 벌어진 악몽 같은 순간이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리고 진형사를 외면한 배불뚝이에게 강반장이 말했다.

이봐! 칠 곡선 몸은 좀 어때?”


묵무부답.


강반장이 다시 말했다.

아픈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니나, 그게 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거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듣겠지?”


배불뚝이가 입도 벙긋하지 않고 등을 보이고 돌아 눕자 이번에는 진형사가 말했다.

칠곡선씨! 너는 살인 및 살인미수, 강간미수, 폭력, 감금, 불법무기 사용 등 무려 15가지 혐의로 구속이 청구 됐어. 때문에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는 있으나 한편으로는 경찰 취조에도 협조해야 돼.”


이때였다.

돌아 누운 배불뚝이가 진형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조슬까요!”


순간 강반장이 토끼 눈을 해 보이며 낄낄거렸다.


진형사가 말했다.

이봐! 칠곡선씨. 네 조슨 이제 까지도 못해. 의사가 그랬어. 너는 내시(內寺) 라고. 그러니 쓸데없는 욕지거리는 그만하고 대답이나 성실히 하라구.”


진형사가 내시 운운하자 배불뚝이가 다시 거칠게 육두문자(肉頭文字)를 뱉어냈다.

진형사와 강반장은 피의자를 상대로 약 2시간에 걸쳐 취조(取調)를 했다.


()로 돌아온 진형사는 곧바로 컴퓨터 화면에 피의자 심문조서 서식(書式)을 펼치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피의자 이름: 칠 곡선

생 년월일 : 1979926

나이:37

성별: 男子

주소: 서울 명동 3247

직업: 서울 신사동 소재 룸싸롱 열락원(悅樂園)사장 및 조직 폭력단체 천지개벽(天地開闢)파 행동대장

죄명: 살인 / 살인미수 / 강간미수 / 불법무기 소지(권총) / 주택 무단침입 / 절도 등 모두 15가지 항목


진형사가 작성한 조서 중 배불뚝이가 저지른 살인(殺人)죄명은 다름아닌 얼마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국회의원 피살사건이었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중앙 데일리 뉴스를 인용해 보면 이렇다.

집권당 소속 허구만(3선 의원)의원이 조폭 단체인 천지개벽 파 행동대장 칠곡선이 쏜 총에 맞아 중태에 빠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허구만 의원의 사망 원인은 총상에 의한 심장 파열인 것으로 밝혀졌다.

허의원이 조폭 출신 행동대장의 총격을 받은 이유는 허의원이 그동안 특정 조폭을 감싸며 이들을 비호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의원은 자신이 비호하는 폭력 조직 단체인 천지인(天地人)이 천지개벽 파와 구역과 이권을 놓고 서로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 등 공권력에 천자개벽 파를 와해(瓦解) 시켜줄 것을 청탁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이 경찰 내부에서 흘러 나와 천지개벽 파 두목 이산해 귀에 들어갔다.

이에 앙심을 품은 이산해가 조직 행동대장인 칠곡선을 시켜 허구만 의원을 총기를 사용해 제거한 것이었다.

범인이 사용한 총기는 스미스 웻손 리벌버 6연 발 권총으로 밝혀졌다.

총격으로 숨진 허의원이 발견된 장소는 유명 탤런트 초선의 아파트였다.

초선은 허구만 의원의 내연여(內緣女)였다.

칠곡선이 두 사람이 머무는 아파트에 무난히 침입할 수 있었던 것은 조직원 중 국내에서 몇 안되는 프로 열쇠 기능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허구만 의원을 총으로 살해한 뒤 도주한 천지개벽 파 소속 행동 대장 칠곡선은 현재 지명수배자 상태로써 수중에 권총을 소지, 경찰은 시민들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 상태다.

한편 조직의 두목인 이산해가 이끄는 천지개벽 파는 연예인 배출업소인 대박 연예기획 사를 운영하면서 연예계와 방송 신문 등 언론은 물론, 심지어 정치권과 행정 사법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로비를 펼치며 조직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조서를 작성한 진형사가 다시 한번 컴퓨터 화면을 주시했다.

혹시 잘못된 조서 내용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였다.

서식에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정확히 개제한 것을 확인 한 진형사는 곧바로 마우스 커서로 출력 아이콘을 클릭한 뒤 이를 프린트 해 강반장의 데스크로 가져갔다.


한동안 서식을 들여다본 강반장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형사는 역시 빈틈이 없구만! 아무튼 그건 그렇고, 춘천 사건 처리는 잘 되가나?”


강반장이 말한 춘천 사건은 포크 록 가수 연 청음과 매니저인 카니 정의 살해사건을 뜻한 것이다.

강반장은 이와 함께 진형사가 시신이 안치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다녀 온 결과도 함께 물은 것이었다.


진형사가 대답했다.

아직은 미궁(迷宮)상태예요. 하지만 국 과수(국립과확수사연구소)에서 사인(死因)은 밝혀냈어요.”

사인이 뭐래?’

폭발물에 의한 치명상(致命傷)이예요.”

구체적으로 말해봐!”


진형사가 청바지 뒤주머니에서 너덜너덜한 형사 수첩을 꺼냈다.

그러고는 페이지 중간 부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진형사가 말했다.

““두 사람이 머리에 착용한 헤드 폰에서 샘텍으로 불리는 매우 강력한 폭발성질의 화학 물질이 발견됐구요. 국과수 요원 이 폭발물질이 어떤 경로를 거쳐 폭발하면서 남녀 두 사람을 동시에 절명(絶命)케 한 것으로 잠정 결론지었어요.”

진 형사 말대로라면, 다이너마이트라도 터졌다는 말인데…….“


평소에도 성격이 급한 강반장이 진형사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진 형사가 덧붙였다.

그것과 비슷한 물질임에는 틀림이 없어요.”

관할 서()인 춘천 경찰서에서는 목격자와 살인 동기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나?”

!”

죽은 두 사람의 신원은? 알아냈고?”

물론이죠.”


진형사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손에 쥔 형사 수첩을 반장에게 디밀었다.


진형사가 수첩에 기록한 내용은 이랬다.

사망자 신원: 연 청음 ()

나이: 31

직업: 포크 록 가수 싱어  / 송라이터(Singer / Songwriter)

사망자 신원: 카니 정(정다혜 女)

나이: 30 

직업: 청음거실(淸音居室) 앤터테인먼 기획실장 및 메니저

사망인 관계: 연인 사이로 추정

사인(死因)

연 청음: 착용한 헤드폰이 폭발하면서 좌우 양쪽 귀의 고막과 달팽이처럼 생긴 와우각(蝸牛殼: Cochlea)을 손상 시켰고, 이와 함께 뇌의 일부 조직에도 손상을 입혀 과다 출혈로 사망.

카니정: 연청음과 마찬가지로 좌우 양쪽 귀와 뇌 조직 주요 기관들 모두 훼손. 과다 출혈로 사망.. 한편 질() 내부에서 체액이 검출됨. 분석 결과 연인 사이인 연 청음의 체액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 외부인에 의한 강간으로 추정.


진형사의 수첩에 기록된 사건 취재 내용을 읽어 내린 강반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사건은 필시 고도로 계획된 살인사건 같군. 범죄에 사용된 수법도 매우 정교해 그리고, 죽은 두사람이 문제의 헤드폰을 사용한 점도 예삿일이 아냐. 이는 필시 친분이 두터운 범인이 접근해 저지른 사건이야. 정황으로 미뤄 보건 데, 연 청음과 카니 정의 살해사건은 해결이 지루하게 전개(展開)될 것 같구만!”

저도 반장님과 같은 견해예요. 범행에 사용된 물질과 범죄 수법 그리고 흔히 범인들이 현장에 남기는 지문과 족적 등 여타 물증이 단 하나도 없는 점을 미뤄, 놈은(년 일수도) 단수가 보통이 아닐 것으로 추측돼요.”

진 형사! 하지만, 진형사도 머리 하면 그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을 만큼 영명(英明)하니 빠른 시일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을 거야.”

반장님도 문자(文字) 쓰실 줄 아세요? “


진형사가 반장을 곁눈질 하며 반정 댔다.

그러자 강반장이 펄쩍 튀며 말했다.

진 형사! 나를 너무 무시 하는구만! 내가 이래 뵈도 국문과 출신이야. 사자성어(四字成語)쫌은 식은죽 먹기로 쓸 수 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