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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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인간" 잔혹한 동물

2019.01.12 06:25

이산해 조회 수:559

479228.jpg : 잔혹한 동물 "인간"

사진:UNKNOWN


20여 명의 승객을 태운 버스는 청량리를 벗어나 춘천을 향해 달렸다.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는 젊은 여성이었다.

나이는 대략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외모는, 계란형 얼굴에 이목구비가 반듯한 미인이었다.

운전 실력도 빼어났다.

핸들과 가속페달, 그리고 브레이크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미녀 운전기사는 교통 체중이 심한 도심에서 버스를 마치 애마(愛馬)다루듯 유연하고도 부드럽게 몰아 승객들로부터 엄지손가락 세례를 받기도 했다.

빼어난 미모와 운전실력을 겸비한 여성운전기사에 의해 움직이는 버스는 그렇게 경춘선 가도를 질주했다.

계절 탓인가.

버스 창으로 다가서는 바깥 풍광은 온통 짙푸른 녹색이었다.

승객들은 고즈넉한 자연을 만끽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분위기에 취한 승객들은 시인이 됐으며 가객(歌客)이 됐다.

하기야 누구라도 오묘한 자연 앞에서는 시인이 되고, 가수가 될 것이다.

승객들의 흥취를 사이드 백미러로 엿보고 있는 미녀 운전기사도 마치 전이(轉移)라도 된 듯 감흥을 느끼며 버스를 몰았다.

버스는 마석을 지나 청평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 뒤 이내 출발했다.

평일이어서 인지,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 위에는 차량 통행이 뜸했다.

여타 통행 차량들의 진로 방해를 받지 않은 버스는 비단 위를 주행하는 것처럼 앞으로 나갔다.

버스는 암석 차단벽과 꽈배기처럼 구불구불 한 능선을 몇차례 벗어난 뒤 가평으로 접어들었다.  

도로변에 설치한 빌보드에는 가평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는 문구가 돋음체로 드러나 있었다.

환영인사를 받은 버스가 빌보드를 통과할 즈음이었다.

운전석 바로 뒷좌석에서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소란스레 지껄이고 있던 3명의 사내들 가운데 한 사내가 미녀 운전기사를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이봐, 아가씨. 길가에 버스 세워. 오줌이 터질 것 같거든!”

사내가 지시하 듯 고압적으로 말하자 사이드 미러로 사내를 곁눈질 하던 미녀 운전기사가 상냥한 어투로 말했다.

손님 죄송합니다. 지금 이 곳에서는 버스를 세울 수가 없어요. 조금 더 가면 버스 터미널이 나올 거예요. 잠시만 참고 기다려주세요.”

미녀 운전기사는 그러고는 시내들을 향해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하지만 사내들은 막무가내였다.

당장 버스를 세우지 않으면 바지에다 오줌을 싼다며 신경질을 부렸다.

2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이들 3인의 사내들은 술에 취한 듯 난푝하게 굴었다.

 

미녀 운전기사에게 오줌이 마렵다며 시비를 건 사내는 훤칠한 키에 다부진 몸매를 드러냈다.

그리고, 보통 키에 또 다른 사내는 무릎과 정갱이가 드러난 찢어진 빈티지 청바지에 카키색 군복을 걸쳤다.

사내의 눈매에는 섬뜩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마지막 세번째 사내는 미남형 얼굴에 눈가에는 웃음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입에서는 쉴 사이없이 거친 육두문자를 뱉어냈다.

한편 3명의 사내가 미녀 운전기사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걸며 버스를 세우라고 윽박지르고 있음에도 승객들 모두는 입을 꾹 다문 채 사내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 누구도 사내들의 횡포를 나무라거나 제지하려 들지 않았다.

남의 일에 참견하면 나만 손해라는 속내를 여실히 드러냈다.

하지만 곤경에 처한 미녀 운전기사의 입장은 달랐다.

사내들의 언동이 결코 예삿일은 아니라고 직감한 그녀는 속으로는 은근히 승객들의 도움이 있기를 기대했다.

허나, 그같은 기대는 순식간에 깨졌다.

미녀 운전기사가 사이드 미러를 통해 승객들의 반응을 엿보았지만 모두가 딴전을 피우고 있을 뿐이었다.

사내들이 운전석을 둘러싸고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도 승객들은 저마다 스마트 폰에 시선을 처박고 있거나 또는 창 밖을 내다보며 애써 무심한 척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듯 승객들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처신하자 사내들은 더욱 기고만장했다.

미녀 운전기사를 향한 겁박과 언어 성추행이 노골적으로 심화됐다.      

해골 문양이 인쇄된 검은색 티를 걸친 사내가 말했다.

씨발, 이 아가씨가 귀를 처 잡쉈나? 아니면,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하나? 오줌이 꽉 차서 좇이 터질 지경이라고 몇 번이나 말을 했으면 알아 쳐 드셔야지, 무슨 이유가 그리도 많아? 당장 치 세워!”

헤골 티셔츠가 입술을 비틀며 빈정거리자 미녀 운전기사가 재차 양해를 구했다.

손님께서 매우 급하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예요. 하지만 갓길에 버스를 정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정 급하시다면 제가 적당한 장소를 찾아 버스를 세울께요. 잠시만 참아 주세요. 정말 미안합니다.”

미녀 운전기사는 사내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완곡히 사정했다.

사내들은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당장 버스를 세우라는 거였다.

그럼에도 미녀 운전기사가 버스를 멈추지 않고 서행 운전하자 급기야는 한 사내가 주머니에서 잭 나이프를 꺼내 여자의 목을 겨누었다.

미남형 사내였다.

그가 말했다.

, 냄비. 생긴 건 반반한 데 성깔은 엄청 뻑씨네. 나는 너 같은 깔치가 좋아. 나와 네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거든? 우리 둘이서 걸죽하게 놀아보자구.”

사내는 그러고는 강제로 버스를 갓길에 멈추게 했다.

갓길 아래는 어른 키만한 갈대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3명의 사내는 이내 미녀 운전기사를 운전석에서 일으켜 세웠다.

카키색 군복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 냄비를 갈대 숲으로 데려가.’

순간 승객들의 모든 시선이 미녀 운전기사에게 꽂혔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 누구도 사내들의 행동을 제지하는 이가 없었다.

물론 그럴 만도 했다.

이유는 미남형 사내가 승객들을 향해 누구던지 우리 일에 초를 치는 얼간이가 있다면 간을 꺼내 회를 처 먹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 였다.

사내들의 공갈 협박은 즉시 효과를 나타냈다.

이들이 미녀 운전기사를 버스에서 끌어내린 뒤 갈대 숲으로 몰아가도 승객들은 단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다 버스 곁을 통과하는 여타 차량들도 지금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무심히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미녀 운전기사에게는 참으로 끔찍한 일진(日辰)이 아닐 수 없었다

사내들과 미인 운전기사가 갈대 숲 안으로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젊은 청년이 황급히 버스 안에서 튀어나와 사내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당장 여자 운전기사를 놓아줄 것과, 댁들이 저지르고 있는 행동이 엄청난 법죄행위임을 알라는 것이었다.

청년은 그러고는 단숨에 사내들 곁으로 달려가 미녀 운전기사를 낚아챘다.

엉겁결에 당한 사내들이 순간 멈칫하며 청년을 노려보았다.

느닷없는 청년의 의연한 결기에 놀란 사내들이 주춤하기는 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해골 티를 걸친 사내가 눈가에 살기를 뿜어내며 주먹으로 청년의 턱을 가격했다.

불시에 턱을 맞은 청년이 내습한 고통을 참지 못해 두 손으로 턱을 감싸 쥐고 있는 사이 나머지 두 사내가 달려들어 무참히 발길질을 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미녀 운전기사의 앞을 가로 막고 빨리 도망가라며 소리를 쳤다.

버스 안에 있는 승객들은 창을 통해 이 광경을 고스란히 목격하고 있을 뿐, 모르쇠로 일관했다.

청년이 바닥에 널브러지자 사내들은 다시 미녀 운전기사를 숲 안으로 끌고 갔다.

사내들의 무력에 의해 미녀 운전기사가 갈대 숲 안으로 끌려 간지 어언 15분이 지났다.

그리고 이어서 머리가 마구 헝클어진 미녀 운전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단정하게 차려 입었던 브라우스는 곳곳에 흙이 묻어 있었고 하얀 운동화 역시도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하의 청바지도 더럽기는 마찬 가지였다.

미녀 운전기사의 뒤를 따라 나온 3명의 사내들은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키득대며 버스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은 미녀 운전기사는 한동안 넋이 나간 멍한 상태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자 미남형이 말했다.

이봐,냄비. 너무 황홀해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네. 하지만 그만 정신차리고 운전대를 잡으셔.”

사내가 히죽거리며 비아냥 하자 그제서야 미녀 운전기사도 정신이 든 듯 흐트러진 머리와 상의 옷 매무새를 바루고는 깊게 호흡을 한 뒤 버스의 시동을 점화했다.

엔진이 돌자 그때까지 밖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던 청년이 황급히 버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당초 자신이 앉았던 좌석에 엉덩이를 내려 놓는 순간, 미녀 운전기사가 벌떡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봐요, 학생.당장 내려요. 학생이 이 버스 안에 있는 한은 버스를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당장 내리라구요.”

미녀 운전기사의 갑작스런 언행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청년이 말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버스에서 내리라는 겁니까? 나는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고 버스표를 구입해 버스를 탔고 법적으로도 아무런 하자가 없으므로 내릴 수 없습니다.”

청년이 이렇듯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자 미녀 운전기사도 지지 않고 반론했다.

물론 학생 말도 일리는 있어요. 하지만 버스 운행의 방해 요인이 되거나 걸림돌이 되는 경우, 운전 기사의 재량으로 승객 하자 요구를 할 수 있어요. 그리 알고 어서 내리세요.”

미녀 운전기사와 청년 사이에 갑론을박 언쟁이 지속되자 사내 셋은 물론 나머지 승객들까지 합세해 청년에게 압박을 가했다.

운전기사의 말처럼 안전 운행의 방해가 되니 냉큼 버스에서 내리라는 거였다.

어떤 승객은 댁 때문에 버스가 출발하지 못하고 있어 귀가가 더욱 늦어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운전기사는 울론 승객들 마저도 자신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당장 하차할 것을 종용하자 청년은 마지 못해 버스에서 내렸다.

청년이 갓길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미녀 운전기사는 한치의 틈도 주지 않고 버스를 출발 시켰다.

갈대 숲을 벗어난 버스는 시속 100킬로의 속도로 내달렸다.

갑자기 버스가 엄청난 속력으로 달리자 승객들은 은근히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다만 사내들만이 미녀 운전기사를 향해 페달을 좀 더 쌔게 밟으라며 소리를 질렀다.

버스의 아날로그 속도 계기판에는 어느새 120킬로를 가리켰다.

엄청난 속도 탓에 덩치가 큰 52인승 버스도 공기의 저항을 견디지 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버스가 흔들리자 놀란 승객들은 서서히 공포에 사로잡혔다.

어느 여자 승객은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버스의 속도를 늦추라고 비명을 질렀다.

그런가 하면, 어느 중년의 남자 승객은 미녀 운전기사를 향해 갑자기 미쳤느냐며 속도를 줄이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120킬로 속도로 달리는 버스 안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미녀 운전기사가 단 한지의 틈도 주지 않고 과속으로 질주하자 그때까지도 갖은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쌍말을 뱉어 내던 사내들도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행동을 주시했다.

운전석 위 사이드 미러로 사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곁눈질한 미녀 운전기사는 있는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속도 한계점에 다 달은 버스는 마치 부양하는 것처럼 미친 듯 앞으로 내달렸다.

공포에 사로잡힌 승객들은 다만 두 손으로 좌석 등받이를 움켜쥐고 어찌할 바를 모를 뿐이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것은 비단 승객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토록 기세 등등했던 사내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이 씨발 냄비야, 속도 줄여라. , 돼지고 싶어 환장했냐?”

하지만 미녀 운전기사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럴 수록 가속 페달을 있는 힘을 다해 밟았다.

여러 해 동안 경춘가도를 운행한 미녀 운전기사는 도로 주변에 산재한 모든 것들을 속속들이 꿰차고 있었다.

때문에 어느 지점에 급커브가 있는지, 어느 지점에 낙석 벽이 있는지 또 어느 지점에 강이 있는지 등등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했다.

커다란 핸들을 두 손으로 불끈 움켜 쥔 미녀 운전기사는 자신이 목표한 지점이 다가 오는 것을 느꼈다.

미녀 운전기사는 한동안 귀에 꽂고 있던 스마트 폰의 마이크로 폰 기능을 끄고 황급히 스마트 폰을 젖가슴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녀는 10여 분 전부터 스마트 폰의 리코딩(녹음)기능을 작동시키고 혼잣말로 무엇인가를 녹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사의 이같은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눈치챈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이유는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었기 때문 였다.

사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120킬로 속도로 미친듯이 내달리는 버스는 구불구불한 능선 도로를 통과해 해발 250미터에 위치한 북한강 지류 앞에 도달했다.

달리는 버스의 지점은 낭떠러지였다.

미녀 운전기사는 자신이 목표한 지점에 다다르자 모든 힘을 다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러고는 버스의 머리를 강으로 향한 뒤 솟구쳐 올랐다.

지표면을 벗어난 버스는 허공에서 헛바퀴를 굴리며 순식간에 강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순간, 승객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살려달라는 처절한 애원이 버스 안을 휘저었다.

철면피처럼 행동했던 사내들도 이 때만큼은 비굴할 정도로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때늦은 몸부림이었으며 구걸이었다.

잠시 허공에 떠 있던 버스는 수초가 지난 후 유속(流速)이 빠른 강물 속으로 머리를 처박고 순식간에 가라 앉았다.

버스 안으로는 깨진 유리 창문을 통해 밀려든 강물이 승객들을 집어 삼키며 심폐기능을 마비시켰다.

승객들 대부분은 버스가 강물에 처박히기 직전 이미 혼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심장을 압박하는 고통을 느낄 수 없었다.

결국 미녀 운전기사를 비롯한 승객과 사내들 모두가 버스 안에서 그대로 익사 했다.

그런데 버스가 곤두박질한 이 곳 지류는 1주 전에 쏟아진 큰 폭우로 인해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난 상태였다.

버스의 추락 경위를 조사한 수사요원들은 한결같이 강물이 불어나지 않았다면 상당수 승객들이 목숨을 부지했을 것이라고 진단하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한편 미녀 운전 기사의 버스가 가드레일을 부수고 강을 향해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치는 순간이었다.

때마침 이를 목격한 화물트럭 운전기사가 재빨리 전화로 119에 신고 했다.

해당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 했으나 이미 때가 늦고 말았다.

강의 급물살로 인해 추락한 버스 접근이 어려운데다 사전에 준비한 구급장비마저 허술해 승객 구조가 어렵게 된 것이다.

뒤 늦게 전문 구조대 반원들이 도착해 최신 장비로 승객 구조에 나섰지만 버스 승객들은 이미 모두가 사망한 뒤였다.

전문 구조대는 수중 장비와 대형 골리앗 크레인 등 각종의 구조 장비를 동원해 이틀에 걸쳐 버스와 시신을 인양했다.

인양된 시신들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강 밖으로 끌려 나 온 버스는 수사요원들에 의해 기계조작 상태 등 정밀 감식 검사를 받았다.

한편으론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시신들에 대한 조사가 병행해 이뤄졌다.

수사 요원들은 우선 시신들이 소지한 물품 가운데 특히 스마트 폰을 주목했다.

버스 추락사건의 단서를 제공해 줄 그 어떤 증거가 스마트 폰에 있을 것이라는 추론 때문 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같은 예측은 그대로 적중했다.

승객들이 소지 했던 스마트 폰 영상에 버스 안에서 벌어진 사건 내막 전개과정이 고스란히 녹취돼 있었다.

뿐만 아니다. 버스 밖에서 발생한 미녀 운전기사와 사내들의 실랑이, 그리고 청년의 의협심 넘치는 모습도 필사돼 있었던 것이다.

물론 수사 요원들은 버스에 장착된 디지털 CCTV 녹화 기록도 정밀분석해 스마트 폰에서 찾아낸 사건 단서와 결과가 동일함을 파악했다.

수사요원들은 특히 미녀 운전기사의 젖가슴에서 발견한 스마트 폰을 세심하게 들여다 보았다.

스마트 폰의 화면이 정지된 채로 꺼진 삼성 갤럭시 노트 녹음 기능 앱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녹음돼 있었다.

녹음은 미녀 운전기사의 속내를 고스란히 담았다.

미안해요, 청년 학생. 제가 학생에게 못되게 한 것은 학생이 미워서가 아니라, 학생을 살리려고 그런거예요. 제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토록 승객들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어요. 헌데 학생만은 위험을 무릅쓰고 저를 도우려 했어요. 저는 무서움에 떨고 있으면서도 학생에게 고마움을 느꼈어요. 그리고 너무나 감사했어요. 제 마음이 그러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학생을 버스에서 내리게 한 거예요. 저의 행동이 서운하셨다면 이제 털어버리세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해야겠군요. 저는 짐승만도 못한 저 놈들(사내 셋 지칭)에게 강간 당했어요. 저는 버스에 함께 있는 이들 인간 쓰레기들을 지옥으로 데리고 갈거예요. 정말 하나님이 존재하거나,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면 학생에게 커다란 축복을 내려달라고 빌겠어요. 항상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의인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 주세요. 고마워요.”    

 

(지구별에서 가장 잔혹한 동물은 다름아닌 인간이란 몸 거죽을 뒤집어 쓴 동물이다)


이산해 단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