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사 선생님의 편지

2016.08.04 04:27

최미자 조회 수:315

어느 의사 선생님의 편지

우체통이 쓸쓸한 요즈음인데 단정하게 주소가 적힌 편지 한통이 한국으로부터 날아왔다. 서울변두리에서 오랜 세월 전문의사로 근무한 분이다. 지난 오월 우리 부부는 남편의 50주년 홈커밍 행사가 있어 모처럼 고국에 나갔다. 해마다 남편 친구 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기에 살아있을 때 만나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 큰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며칠 안 되어 남편이 병이 났다. 우리가 머물던 근처의 종합병원 응급실에는 거의 수련 의사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우리가 여태 만나던 전문의와는 질적으로 많이 달랐다. 우리가 미국시민이라 의료보험도 없으니 진료비도 엄청 나왔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남편이 비슷한 병을 앓았기에 일단 수련의는 이곳에서 먹던 약을 몇 알주며 전문의와 약속을 주선했다. 며칠 후, 기대하며 전문의를 만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마에 커다란 의료안경을 걸치고 있던 젊은 의사 앞에 스마트 폰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잠시 환자가 교체되는 시간에 그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게다가 예의바르게 환자를 맞이하는 것도 아니고 빈정대는 태도로 무엇 때문에 오셨느냐고 물었다. 남편이 응급실에 갔던 기록도 읽어보지 않은 듯했다. 의사양반은 여전히 환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지도 않고 책상위에 있는 스마트 폰에만 눈이 머물러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딴 짓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더욱이 환자를 보는 시간도 2~3분 정도였을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내시경을 해 주고 처방전을 주겠다는 말을 한 후 진찰은 끝났다. 밖에 나와 곰곰이 생각하니 도저히 내시경을 그 의사에게 맡길 수가 없었다. 참 불쾌했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환자를 본단 말인가. 자질이 매우 의심스러웠다. 다른 환자를 위해서라도 한바탕 따질 수도 있고, 또 아들 또래 같아 보여 혼을 내줄 수도 있었지만 우린 꾹 참고 나왔다.

의사의 경력을 보니 서울의 유명한 의과대학을 나와 부교수 직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 병원에서 우리는 나머지 진료를 거부하고 나오는데, 문득 어느 동생이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그분야가 저의 전공인데 어서 오시라는 살가운 목소리가 전화 속에서 흘러나왔다. 어느 덧 늦은 오후가 되어 우린 택시를 타고 오류동으로 향했다. 오래 전에 피부병으로 한번 가 보았던 시장 근처의 병원이었다. 아래층에는 약국, 위층에는 다른 병원이 있는 건물에 들어섰다. 그들은 부부 의사이지만 욕심이 없는 듯 수수한 건물에서 40년 넘게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도 이렇게 세밀하게 진료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라며 아주 만족했다. 물론 진료비도 청구하지 않아 나는 다른 방법으로 조금 갚고 떠났다. 미국에 돌아와서도 그이는 계속 병원을 다니며 원인을 찾았다.

그런데 오늘, 걱정하는 마음으로 진료 안내와 함께 우리의 안부를 묻는 인간미 넘치는 편지를 의사가 보내 온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의 부모님과 가족들의 인품을 나는 잘 알고 있기에 사실 놀랍지도 않다. 정성으로 써서 부친 편지를 우리 가족은 읽고 또 읽었다. 세상의 모든 의사들이 돈만 좇지 않고 오류동의 정 원장처럼 최선을 다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 분의 편지로 남편의 병이 절반은 나아버린 것 같았다.

 

최근엔 어른이나 아이나 손전화기로 포키몬과 놀다가 사고를 내거나 다치고 죽는 한심한 뉴스로 시끄럽다. 또 스마트 전화기로 환자 앞에서 장난을 하는 한심한 의사들까지 조금씩 출현하고 있다니 미래의 세상이 매우 두려워진다. (2016723일 미주한국일보 오피니언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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