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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상 운문집

 

부르지 못한 노래…허재비도 잠 깨우고 

 

[추천글]

 

손용상 작가의 두 번째 운문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정말 기쁘고 반가운 일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것은 자크 프레베르였습니다. 피묻은 열쇠를 들고 나서는 멋쟁이 옥지기.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면, 피를 묻혀 가면서까지 가둔 사랑을 풀어주기 위해 나서는 사람. 가두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갇힐 수밖에 없었던 사랑을 풀어주기 위해 나서는 시인에게서 나는 손용상님을 떠올립니다. 시인은 어디에 사랑을 가두었을까? - 이윤홍(시인·소설가) 추천사 중에서 

 

나는 ‘소설가 손용상’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좋습니다. 그의 몸짓과 열정은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손용상’ 그 이름 석 자는 한국 문학사에, 미주문학인의 산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열정은 세대를 이어가며 회자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천상 글쟁이입니다. 안에 쟁여 있는 글 씨앗을 모두 파종하지 않고는 죽지 못할 것입니다. 혼백마저도 자유롭고 싶은 선생님께 산문이 든 운문이든 다 풀어놓는 그 날까지 부디 건강이 함께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김미희(시인) 추천사 중에서 

 

[저자]

손용상

― 밀양 출생 / 경동고,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 1973년 조선일보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그대 속의 타인』『따라지의 꿈』『 토무(土舞)』등 장 ·단편 소설집 다수 

『우리가 사는 이유』 『天痴, 시간을 잃은』 『부르지 못한 노래…허재비도 잠 깨우고』등 

에세이.칼럼집과 운문집 합쳐 저서 약 20여 권(전자책 포함) 출간 

―미주문학상, 한국평론가협동포문학상, 고원문학상, 재외동포문학상(시부문) 

해외한국소설문학상,미주카톨릭문학상 윤동주문학 해외작가특별상 등 수상 

― 현 글로벌 한미 종합문예지『한솔문학』 대표 

― 미국 텍사스 달라스 거주  / E-mail _ ysson0609@gmail.com  

 

[시인의 ]
 

■ 책머리에

노래를 부르세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엄습한 이른바 중풍(中風)… 누구든 당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일이 ‘나’에게 닥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 불시에 내 앞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억장이 무너지지요.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당하면 대개 그 순서가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기막히고, 좌절하고, 회한과 절망 속에 분노하다가 그 단계가 지나야 비로소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혹은 종교에 귀의하거나 스스로 마음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그 절망과 좌절과 분노의 단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개 생生을 마감한다고도 하지요.

좌절해 있던 어느 날, 당시 잠깐 서울에 돌아갔던 아내가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냥 살기가 버겁고 귀치가 않네. 끝내버릴까…

어쩔 수 없이 혼자서 투병생활을 하며, 시시로 엄습하는 외롭고 막막한 심정을 독백처럼 내뱉으며 그녀에게 투덜거렸습니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녀가 약간은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노래를 한번 불러보세요. 거울을 보고… 노래를 부르세요!

―노래…? 

송수화기를 끄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거울 앞에 서 보았습니다. 아직도 비틀어졌던 입술의 흔적이 남아있어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만, 그냥 무시한 채 그녀가 말한 것처럼 정말로 노래를 불러 보았습니다. 조그만 목소리로.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공연히 쑥스럽기가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은, 내가 곧잘 18번처럼 부르던 노래가 도무지 음정 박자는 물론 발음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는 참담함이었습니다. 

―당연하죠! 입 다물고 말 안 하고 있으니까 신경이 무뎌지는 게…. 그러니까 노래를 하라구요. 지루하면 책을 읽거나 시 낭송도 해보고… 그것도 아주 큰 소리로요. 뭐가 부끄러워요?

다음날 다시 통화를 하면서 내 반응을 응석처럼 웅얼거리자, 아내는 여느 와는 달리 꾸짖듯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 딸애가 직장엘 나가면 적막강산이 되는 아파트 거실에서 나는 혼자서 ‘맹구’처럼 거울을 마주한 채 노래를 불렀습니다.        

‘망부석‘도 부르고 ‘꿈에 본 내 고향’도 부르고 더하여 군가나 학창 시절의 학교 응원가도 부르고… 곡이 쉽고 가사가 까다롭지 않은 노래는 생각나는 대로 모두 불러 보았습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리사이틀은 오래가지가 않습니다. 금방 싫증이 일며 불과 십여 분을 버티지 못하고 거울 앞에서 물러서고 맙니다. . 그냥 머릿속엔 잡생각만 가득하고 생각과 행동이 달라 집중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 시간을 못 채우고 소파에 퍼질고 앉으면 한동안은 그저 멍하니 창 밖만 내다보았습니다. 3층 베란다까지 치솟아 가지를 뻗친 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흐드러졌던 초록이 누렇게 바래어져가는 마지막 몸부림이 망막으로 스며들면, 그 처연한 모습들은 지난날의 후회와 회한으로 가득 찹니다. 

그것은 내 빈 가슴을 후비며 혼자만의 알 수 없는 억울함에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순간 뭔가의 절규가 귀청을 때렸습니다.

―될 수만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비록 내 여생이 길지 않다 하더라도, 꼭 그만큼 일지언정 후회 없고 회한이 남지 않을 인생을 다시 한 번 살았으면 좋겠다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생소했던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한 손으로 토닥거리며 잃었던 언어의 ‘새’를 다시 잡기 위해 머리에 쌓였던 녹을 닦고 못다 불렀던 마음속의 피리를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누군가 내 피리 소리를 듣고 조금씩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아, 나는 지난날처럼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다시 한 번 멍석을 깔았습니다. 

자빠지고 딱 십 년이 넘어가는 이월에 내 부르지 못했던 노래를 다시 한 번 새로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그 동안 무조건 날 지켜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꾸준하게 변함없는 우정을 보내준 국내외 모든 ‘동무’들과 좋은 분들께 이 책을 바칩니다. 특히 근간 심장 수술을 하다가 반신이 마비되어 혹 실의에 빠져있을 한 고교 아우님의 쾌유를 위해 이 글이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 2021년 봄, 손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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