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

2016.11.04 06:45

최문항 조회 수:170

                          “껄”


                                                                                최 문 항



  “껄”은 지난 시절 못 해낸 일에 대한 회한의 말로 자주 쓰인다. 

  1970년대에는 미국이 꿈나라였다. 미국에 건너가기만 하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서 따뜻한 옷 입고 기름진 음식 배불리 먹고 매일매일 파티만 하는 줄로 착각하며 태평양을 건 너온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는가? 춥고 배고프던 어린 시절 미군이 던져 주던 초콜릿, 껌, 캔디의 달콤한 맛을 본 우리가 미국으로 건너온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누가 등 떠밀어 이민선 태워 보낸 것도 아니고, 없는 돈 박박 긁어서 이주공산가 어디 어디에 쫓 아다니면서 기를 쓰고 쳐들어온 곳이 그 찬란한 물질문명의 중심지 뉴욕이었다.  


  의사 약사 영양사 간호사 목사까지 3종 이민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6개월이 채 안 걸리고도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으니 나 같은 무지렁이도 그 격류에 휩쓸려 뉴욕까지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브롱스 한인 교회 2층 강당에서는 약사 간호사 시험강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예상문제집으로 공부했는데 몇 개월 후 시행된 필기시험에는 대부분이 통과되었다. 이제 우리는 1000시간의 인턴 경험을 쌓아야만 최종 약사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준다고 했다. 선배들의 도움으로 어느 커뮤니티 종 합병원 약국에 정해진 절차를 밟아서 임시 약사 보조원 자리에 취직되었다. 꿈같은 3개월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맑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세계경제의 중심지 뉴욕시 정부가 파 산을 선언하고 모든 임시직을 거리로 내 쫓아버리고 말았다.  


  인턴 1000시간이란 공휴일까지 계산해서 만 1년을 근무해야 채워지는 길고도 먼 여정이었 다. 그런데 우리는 겨우 3개월 일하고 쫓겨났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일자리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작은 약국, 병원문까지 두드리며 다녔다. 그런데 우리가 구사하는 영어는 미국 말이 아니었다. 읽을 줄은 아는데 우리 입을 통해 나 온 소리는 영어가 아니었다. 어떤 의료 기관에서도 언어불통의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 나머지 9개월의 인턴 훈련은 어디에서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와 똑같 이 해고당했지만, 영어발음이 대강 비슷한 대만 필리핀 심지어 벵글라데시 출신 약사지망생 들은 여기저기 취직이 되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큰 병원 약국에서 무보수로 일하면서 인턴 시간을 벌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미군에 지원해서 위생병과를 받으면 근무하면서 시간을 때울 수 있다”는 거였다. 입대하고 2년 정도 지나면 군에 있으면서도 최종 약사 시 험을 볼 수 있다는 거였다. 우리는 그 길로 롱아일랜드에 있는 육군 모병소로 몰려갔다. 그 리고 그 자리에서 적성 검사와 더불어 그야말로 초등학교 산수 시험 같은 테스트를 치렀다. 2주가 지난 후 합격했다는 통지와 함께 모병소로 출두하라는 명령서 같은 서류가 우송돼 왔 다. 그런데 그 젊은 시절 나의 생각은‘대한민국 장교 출신인 내가 아무리 궁지에 몰렸기로 서니 어찌 로마군 졸병으로 자원해서 간단 말인가?’ 


  주변을 돌아보니 먼저 온 한인들은 벌써 이곳저곳에 진을 치고 가발 눈썹 장사며 좀 기반 을 잡은 사람들은 청과상을 벌려놓고 순진한 뉴욕커들의 안주머니를 공략하고 있었다.  


  이제 한번 “껄”소리를 읊조려 봐야겠다. 그때 미군에 입대할 껄 그랬었나? 

  아직 약사에 대한 작은 미련은 남아 있으나 후회는 없다.                          (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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