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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추수감사절에 즈음하여

2017.10.31 13:42

paulchoi 조회 수:72

 

 

추수감사절에 즈음하여

 

 

우리네 동양풍습으로 보나 서양인들의 풍습으로 보나 분명 가을은 감사의 계절이다. 특히 11월은 추수감사의 절기가 있는 달로 한 해의 감사를 기억해야 하는 값진 달기이기도 하 다.

'감사'란 고마움, 또는 고맙게 여김, 아니면 고맙게 여기어 사의를 표함을 들 수 있겠지만 보다 더 가까운 말은 '은혜 갚음'이란 말이 정곡(正鵠)일 성싶다.

 

감사는 하나님과 인간, 또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진정한 이해와 사랑으로 통하는 값진 지름길이다. 누구나 혼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감사는 항상 있게 마련인데, 감사다운 감사는 조건적인 감사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감사라야 참 감사가 된다.

 

감사의 제일 행위는 기쁜 마음을 주는 데 있다. 아까워하며 주는 게 아니다. 진실로 자기 자신 심령의 샘에서 퍼 올리는 기쁨과 고마움으로 정중하게 주어야 참 감사이다. 위기의식을 느끼거나 체면치례에서 오는 의식으로 주는 것은 참 감사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조건적인 감사는 믿음의 척도로 나타내는 그 믿음을 통해 구원의 반열에 한 발 한 발 올라서게 된다. 무조건적인 감사는 조건을 거는 감사보다 몇 갑절의 많은 보상으로 채워지는 감사이다. 일체의 조건을 배제한 감사야말로 자기 자신을 위한 최상의 행위로 꼽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조건적 감사보다 무조건적 감사를 더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며칠 후면 감사절을 맞는다.

물질로만 감사의 표시를 끝낸다면 매우 섭섭한 일이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을 모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감사의 본분이다.

 

지난 날, 넉넉한 감사는 못했다 할지라도 앞으로 우리의 생애가 진정한 감사로 일관 되어져야 하리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를 알몸으로 지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천지만물을 지으셔서 인간에게 거저 주셨다. 그러므로 인생은 알몸 그대로 마음과 정성을 합하여 순수한 감사의 제물이 될 따름이다.

 

감사는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며 항상 끊이지 않아야 하며 자발적으로 해야 하며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믿음의 절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삶의 최고의 행위이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가진 것들을 통틀어 엽전 두 푼을 바친 과부의 감사는 1회적이었지만 영원성 있는 감사로 승화되었다. 감사는 행복할 때만 드리는 것이 아니다. 불행할 때 드리는 감사야말로 더욱 값진 감사가 될 줄 안다.

 

악성 베에토벤은

"오랫동안의 고통과 수난의 일생을 끝나게 해 준 신에게 감사를 드리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이토록 감사는 인간이 가져야할 처음이요 마지막 선물이다.

"플라톤은 임종시 자기의 운명에 감사하며 첫째로 남자로 태어난 것, 다음으로 야만인이나 짐승이 아니라 그리이스 인으로 태어난 것,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열거하였다. 그리고 타루수스의 안티파테르도 임종시에 일생에 받은 복으로서, 로마에서 아테네까지의 바닷길을 무사히 건넌 일을 들기를 잊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일들을 모두 고맙게 여기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보물창고인 기억 속에 종생토록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억도 분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지난 사람은 지난 일을 시간과 더불어 흘려버리고, 현재 좋은 것을 다 내던지고 장래만 꿈군다. 장래에 정신이 팔려 현재를 버린다. 그러나 장래는 경우에 따라 빼앗길 염려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은 현재의 조건이 주는 것은 바람에 내던지고 불확실한 것만을 쫒는다." 이는 풀르타아크 영웅전의 일부요, 다음은 그의 입에다 녹아 넘실거리는 뜨거운 납물을 퍼붓기 전에 올린 St. 보니페이스의 기도이다.

 

* 주 예수,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대에게 감사하나이다. * I think Thee, Lord Jesus, Son of the Living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