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0 퇴고                                    한인타운을 떠나는 몽골인 오오기
                                                                                                           노기제 (전 통관사)

       몇 달 전, 모습을 보인 오오기. 낯선 이름에 어눌한 말투가 생소하다. 몽골에서 왔다는데 영어도, 한국어도 소통이 애매하다. 매일 아침 공원에 모여 배드민턴을 치는 그룹에서다. 가끔 한국말을 툭툭 뱉는데, 언니, 하지 마, 안 돼, 아이고 참, 나쁘다, 극히 단편적 단어들만 사용하면서 자주 계면쩍어 하며 웃는다
    

   오오기가 멀거니 혼자 서 있다. 같이 하자고 손짓으로 불렀다.  몇 차례 공이 오갔는데 지나가는 말처럼 내일 몽골로 간단다. 80이 넘은 어머니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돌아가기로 결정 했단다. 미국엔 학생 비자로 와서 6년 언어연수에 컴퓨터를 공부했다는데, 학위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미국에서 머물기 위한 수단이었다.  
    

   몽골을 떠나면서 처음 택했던 나라인 한국에서는 3년을 살다 왔단다.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외관상으로 보면 전혀 차이를 알 수 없는 한국인임을 감안 했던 때문이다. 미국 문화보다 먼저 익힌 한국 문화다. 쉽게 융화 되리라 기대 했었지만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 미국행을 결정하면서 자연스레 선택한 지역이 한인 타운이었다
   

   고국을 떠나기 전 이혼을 했고, 딸이 둘 몽골에 있단다. 30대 중반에 뜻을 세워 홀로 외국 생활을 계획 했던 거다. 9년이란 세월이 지나 40대 중반이 되도록 혼신을 다해 살았는데, 이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주저앉는 모습이다. 식구들도 보고 싶고, 확실하게 뭔가를 이룰 수도 없는 상태가 계속 되는 날들이다. 용기를 내서 돌아가기로 결심 했단다.
   

   그 동안, 체류 신분도 불법이 됐다. 막노동이라도 계속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지만, 일자리도 만만치 않다. 고정적 수입이 없는 불안정한 삶이다. 고향에선 목 길게 빼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날마다 얼마나 망설였을까. 영어도 한국말도 제대로 못한다. 세월만 보냈다는 자괴감에 우울하기도 했겠지.

  

   누구에겐 쉽게 잡히는 영주권, 또 누구에겐 인생을 걸고 매달려도 도망만 가는 까탈스런 그린카드. 어딘가 토양 좋은 곳에 나무 하나 심고 지극 정성으로 키워서 영주권이란 열매를 맺는 나무. 마음을 다 하고, 힘을 다 해 열심히 달려 온 사람에게는 반드시 손에 넣을 수 있는 영주권이면 얼마나 좋을까
   

   뭘 어떻게 도와줄까.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엄마 드릴 선물을 하고 싶은데 괜찮겠니? 밝게 웃으며 음식만 아니면 상관없단다. 아침운동 나온 내가 뭘 갖고 있겠나. 적절히 쓰임 받기를 기다리는 준비 된 비상금뿐이다. 다른 뜻은 없다. 내가 자란 내 나라의 따뜻한 문화임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물건이 아닌, 현금에 크게 놀라면서 순식간에 눈자위가 붉어지며 촉촉해진다. 나도 모르게 내 맘도 젖는다. 울먹이며 애써 표현하는 오오기의 말, “This is a first time."


   2016092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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