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의 끝은 지금이다

2016.12.26 08:15

노 기제 조회 수:55


20161023                                                   내 시간의 끝은 지금이다

        

 

    한국에 사는 오빠가 병원에 입원 했다는 소식이다. 건강엔 자신만만, 나름대로 걱정을 안 끼치던 분이더니 갑자기 입원이라니. 연중행사로 간단한 건강검진 정도라고 한가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오지 않는 소식에 답답해서 조카 녀석을 전화로 불러 보니 머뭇거리며 암 이란다.

     

   “작은 아버지껜 아직 말씀 안 드렸어요. 의사가 자세한 결과를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보래요. 고모도 너무 걱정 하지 마시구요.”

  

   결과는 췌장과 대장을 각 10센티 정도씩 잘라 내야 한단다. 환자 본인에게 직접,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하라고 의사에게 부탁 했다. 수술하고 항암 치료 받으면서 다른 부위로 전이 되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이 내려졌다.

  

   의사에게 직접 결과를 들은 오빠의 소망은, 앞으로 한 오년 더 살 수 있다면 수술하고 항암치료도 받고 싶다는 전갈이다. 항암치료에 대해서 자세히 진실을 알려 주라는 부탁도 했다. 항암 치료라는 게 암세포 죽인다고 건강한 면역세포까지 무참히 죽여 버리는 살상무기가 아니던가. 치료되기 보다는 악화 시킬 확률이 크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 언제까지 살아 움직일는지 알지 못한다. 막연히 앞으로 오년을 살고 싶다는 희망 사항에도 누구 한 사람 자신 있게 약속 할 수 없음을 오빠도 잘 안다. 나이 일흔 여섯까지 살았으면 우리 집안에선 장수 한 기록이다. 아빠 예순 다섯, 엄마 한 갑, 그리고 큰 오빤 스물여덟. 각 만 나이로 생명이 끝난 직계 가족이다.

  

   초스피드로 인생이 끝난 큰 오빠는 아이 둘을 남겼다. 벌써 쉰 두 살과, 쉰 살의 중년이 된 조카들이다. 두 세대의 우리 남매와 조카들 남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각자의 삶에서 빠져나와 함께 뭉치기로 계획을 세웠다.


   나, 그리고 여자 조카는 미국에 터전을 잡고, 남자들은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러자, 뭉치자. 앞으로 오년을 약속 받고 싶은 오빠에게 희망을 주러 한국에 가자. 은퇴하고 시간이 자유로운 나는 상관없지만 남편과 아들과 함께 낚시점을 운영하는 여자 조카는 시간 빼기가 쉽지 않다.

  

   내일이 될는지 내년이 될는지 그 언제가 될는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우리들 생의 마감시간에 대비해서 마음을 합했다. 수월치 않은 여건을 맞추며 빠르게 실천에 옮겼다. 오빠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건강한 듯 살고 있는 우리 모두도 그 마지막이란 시간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니 지금, 이 시간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 심정이 된 것이다.

  

   기적은 있다. 우리들 사랑이 모아진 만남에 오빠는 가슴을 적시며 희망을 품었던 모양이다. 장을 20 센티 잘라 내는 수술 후, 머뭇거리며 항암치료를 받아 보니 머리가 빠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항암 치료를 결사반대하던 동생인 내게 확고하게 당사자의 마음을 호소하며 전이 되면 죽는다는데 어떻게 항암 치료를 거부하느냐고 역정을 내더니만. 머리까지 빠지면서 회복되기를 기대하기란 이치에 맞지 않음을 자각한 것이다.

  

   이어지는 행보는 내가 권면하던 이상구박사 세미나에 참석해서 진짜 하나님을 만나고 생을 정리하겠다고 결론을 냈다. 암 판정 안 받아 보고, 생명에 위협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방법을 강권하는 일이란 속절없는 간섭일 뿐이다. 바른길로 가도록 정성을 다해 기도 해 주며 마음 편하게 자신이 결정하기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임을 깨닫고 잠잠히 기다렸다.

  

   일상을 접고 오직 오빠와 함께 추억 만들기에 나선 나는 행여 후회 할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만으로 한 달을 보냈다. 오랜만의 한국 방문이니 동창모임에도 가고 싶고, 가까운 친구와 밥 한 끼라도 먹고 싶고, 글쓰기에 관계 된 교수님들도 만나고 싶고, 내 볼일에 신경 쓴다면, 오빠에게 혼신을 다 하지 못함으로 후회 할 날이 있을 듯해서 뒤편으로 미뤄 뒀다, 여자 조카아이도 마찬가지로 오롯이 한 달이란 기간을 작은아버지를 위해서 유감없이 함께 했다. 한국에서 오빠 가까이 사는 사내 조카는 우리가 떠나온 후에 혼자서 감당해야 할 부담이 있음에도 잘 따라 준다.

  

   강원도 금강산 콘도에 머물며 창밖으로 펼쳐진 맑은 동해 바다에 감탄을 함께 하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이것이 우리 넷이 함께하는 마지막 일 수도 있는 시간임을 네 사람이 각기 다른 감정으로 그려내며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 돈도 아끼지 말고 쓰자. 맛난 것 푸짐하게 먹자. 노래방에도 갔다. 우리에겐 노래 잘하는 유전인자가 있는 모양이다, 조카들도 오빠도 제법 노래가 된다. 서로가 처음 확인하는 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 이게 바로 가족이다. 무엇이든 나누고 싶고, 희망을 함께 노래하며 용기 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고 끝을 알 수 없으니 오늘이 그 날이라 가정하고 내 안에 숨겨진 사랑을 펼쳐 내자.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려주자.

  

   이런 따뜻한 시간 뒤에 오빠의 암 수치는 정상인과 똑 같아졌다는 소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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