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남겨진 두 표정

2016.12.26 09:06

노 기제 조회 수:93

20160615                             추억으로 남겨진 두 표정

                                                                                         

 

    “자아, 여러분! 여기 카메라가 숨어 있답니다. 모두들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환하게 웃어요. 하나...두울.......”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타이밍이 틀렸다.

    “이런, 우리가 너무 서둘렀군요. 다시 할까요? 엄지를 올리세요. 하나아..두우울...세엣! 이번엔 딱 맞아 떨어졌군요.”   제대로 찰카닥 소리가 힘있게 들렸다.

 

    오스트랄리아 여행 중에 들렀던 cairns(케엔) 이라는 섬. 글자를 보고 읽으려면 카안즈, 케인즈 등 다양한 발음으로 읽히는 이 섬은, 처음 섬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케엔 이라 불린단다. 언젠가 한국 TV 방송에서도 소개 되었다는 정보를 읽었다. 그래서인지 바닷가를 걸을 때나, 공원에 앉아 잠깐 주위를 돌아볼 때 한국 젊은이들을 쉽게 본다. 외모나 느낌으로 한국인임을 알 수 있다.


   반가움에 대뜸 말을 건다. 일 년짜리 노동허가로 일자리를 찾아 온 경우란다. 근처 호텔에서 일하는데 점심시간이라면서 다음 달엔 더 좋은 호텔로 직장을 옮긴다며 무척 만족한 삶을 사는 듯한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특별한 관광이 예약 된 아침, 호텔로 나를 찾아 온 일일 관광버스에 오른다. 중국 노년층 여럿이 이미 자리했고, 인도인들도 만만찮은 숫자가 보인다. 다음 호텔에서 합류한 남녀 한 쌍은 한국인이다. 부부는 아니다. 좋아하는 직장 동료끼리 몰래하는 외국여행 정도인 듯, 매사에 주춤주춤 숨으려는 태도에 그냥 모른 척 영어로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 호텔에서 버스로 올라 온 젊은이는 한국인 여성 혼자다. 호주 멜본에서 일 년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휴가로 케엔 섬에 왔다는 제빵사. 비교적 안정된 직업이다. 호텔 주방에서 일하다가 주방장의 호의로 제빵 기술을 배웠고 직업이 조리보조사에서 제빵보조사로 바뀌었으며 영주권도 해결 될 거란다. 편하게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며 여행 동반자가 됐다.

  

   그 날 여행지는 구란다 마을( KURANDA VILLAGE) 이다. 하루에 스무 시간 이상을 잔다는 잠꾸러기 코알라를 만나고, 원주민(마우리족)들과 그들의 문화를 보고, 그들의 민속춤을 함께 추고, 캥거루와 악어도 만나면서 열대우림(RAINFOREST) 지역을 순회하는 일정이다.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장갑차를 연상케 하는 오픈 관광차에 탔다. 마치 탱크를 개조해서 수륙양용으로 만든 것 같다. 맨 앞에 가이드가 관광객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는다. 인도인 여자 아이들이 다섯 명 재빨리 관광객 좌석 첫줄에 자리한다. 왠지 앞줄이 좋은 자리처럼 보인다. 뜻하지 않은 경쟁심 발로로 나도 서둘러 둘째 줄로 자리하고 보니 한국사람 네 명이 나란히 앉게 됐다. 어째 젊은 사람들이 그리 패기가 없는지 눈치만 보고 있더니 나를 따라 행동한 듯 같은 줄에 함께 앉아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육지에서 시작해서 20여분 후에 늪으로 빠져 들 듯 물위를 미끄러진다. 괜찮을까? 갈앉지 않을라나? 이어지는 가이드의 설명이 재미가 없다. 식물 이름이나 모양이나 용도가 내 관심거리는 아니다. 그저 주위 풍광을 보며 깔끔하지 않은 정글 늪에서 악어가 불쑥 용트림이라도 하면 어쩌나 긴장 된다. 그즈음 사진 찍히는 지점이니 다들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고 크게 웃으라는 주문이 들린다. 옆의 한국 사람들에게 어서 시키는 포즈를 취하자고 선동했다.

  

   요즘은 카메라를 따로 들고 다니는 관광객이 드문 시절이다. 누구나 셀폰은 갖고 있고 셀폰의 카메라 성능이 뛰어나서 쉽게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따로 단체사진을 찍힌다 해도 돈을 주고 찾는 사람 또한 드물다. 아예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왜 쓸데없이 저런 장치를 해 놓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라느니, 환하게 웃으라느니 시간과 정력을 소비 하는지 모르겠다.

  

   한 시간 남짓 육지에서 탱크를 타고, 물에서 탱크를 타는 신기한 체험을 한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려 출구로 나오는데 간식거리 진열 해 논 매점에서 누군가 우릴 부른다. 뭔 일 인가 싶어 돌아보니, 사진을 보여준다. 두 종류의 크기로 수륙양용 오픈 탱크에 가이드와 앞줄은 좀 어둡게, 둘째 줄에 앉은 네 명의 한국인들 얼굴은 밝게, 우리 뒤로 외국인들이 네 줄 환하게 보인다. 애초부터 사진을 구매 할 생각은 없었다.

  

   “어머, 제일 신나 보이세요. 엄지도 혼자서 제일 높이 드셨네요.”

  

   한국인 여행 동반자가 된 멜본에서 온 여성의 친근감 넘치는 멘트가 발목을 잡는다. 그냥 돌아서다가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됐다. 아직 스물도 안돼 보이는 앳된 얼굴에 잔뜩 구름이 끼고 절망에 가까운 무거운 표정이다. 첫눈에 중국청년임을 알 수 있었다. 중국 관광객 숫자가 어마어마하니까 어디를 가도 중국인이 일하는 가게가 천지다.

  

   한국청년이라면 모를까, 내가 왜? 필요도 없는 것에 돈을 버려? 그랬는데. 순간 얼마냐 묻고 말았다. 작은 건 8, 큰 사이즈는 17불이란다. 아무도 들러 보지도 않는데 우리 넷 한국 사람들만 멈춘 것이다. 다시 중국 청년의 얼굴을 보면서 큰 걸로 달라며 카드로 결제해도 되느냐 물었다. 난 현금이 없으니까.


   바로 그 때. 세상 걱정 알지도 못하는 천진한 어린애의 행복한 표정이 내 마음을 밝게 비춘다. 그 청년도 나도 똑같이 대단한 복권에라도 맞아 떨어진 사람들 모양 기쁜 얼굴이 되어,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덩달아 행복한 미소를 짓게 했다.

  

   여행 중 셀폰으로 찍은 수 백 장의 사진은 전화기 속에서 잠들어 있다. 그러나 17불 들여 찾아 온 저 사진은, 책상 앞에 앉아 작업을 할 때 마다 벽에 붙여진 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지옥에서 천상으로 옮기던 빠른 여행을 내게 보인 그 중국청년의 두 표정이 따라와서 나를 수시로 미소 짓게 한다.

 

 

 

 

20160727 미주문학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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