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 받지 못한 것

2020.06.20 14:43

노기제 조회 수:48


HIT_3359.jpg


20180907                                     허락 받지 못한 것

                                                                                                      노기제

   많은 것들을 받아 누렸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확신하며 산다. 이어지는 감사를 주체 못해서 시간마다 내 마음 하늘로 올린다. 그리하면서 잘 사는 줄 알았다. 전체 펼쳐진 내 인생 지도위에 불만족 표시 된 곳 하나도 없더니 불쑥불쑥 예고도 없이 솟아오른다.

후회하나? 무엇을?

   신혼이 끝나는 시기는 대충 임신하기 전까지로 내가 짐작한다. 임신과 출산이 인생에 끼어들면서 연애시절이 줄행랑을 치고 버거운 책임감에 어깨 펴고 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압박하던 시기가 있었다. 막연히 자신감 없는 생활고를 핑계로 피임을 시도했던 신혼시절도 기억난다.

   이민 오기 전, 팔 개월 동안 단칸방 전세살이에도 대책 없이 애를 기다리던 시누님의 성화는 이민 온 후에도 줄곧 이어졌다. 난 어머니가 안 계신 막내아들과 결혼했다

   큰형님 댁엔 아들만 셋, 둘째 형님 댁엔 아들만 둘. 아들을 꼭 낳아야 할 책임감도 없다. 시집살이 걱정은 일찌거니 한강에 내다 버리고 마음 편했던 울엄마의 행복은, 딸내미 시누님에게 갈취 당했다. 기회만 있으면 왜 애가 안 생기느냐고 엄마를 닦달한다는 소식이 한국에서 들려온다.

   속없는 울 엄만 죄인처럼 두 손 삭삭 비비며 우리 아이가 매달 때만 되면 그렇게 배가 아파서 고생을 했다며 내 남편 누님께 대역죄인 역할을 기꺼이 담당하셨단다. 그 소리를 바로 윗동서가 알려왔다. 자식 된 도리로, 불임 이유를 자진 담당한 엄마가 아래 항렬 사돈에게 그런 수모를 계속 당하게 할 순 없다. 확실한 근거를 찾기로 했다.

   이민 초, 일본계 은행에 근무하면서 시간을 빼고 검사를 하겠다고 서둘렀다. 지금으로 말하면 한인건강정보 센타이다. 따로 병원비 걱정 없이 한국말로 의사전달 확실히 하면서 검사의뢰를 했다. 대강 우리 부부 병력을 묻고, 건강 상태를 묻더니 대뜸 남편을 데려 오란다. 그 사람 상관없이 우선 나만 검사해서 담판을 짓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여자는 검사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남자는 간단하다며 자꾸 나를 돌려보낸다. 이대로 시간 끌다가 울 엄마는 애가 타서 병 얻을 것이니 나도 막무가내로 졸라댔다. 만약, 복잡하다는 절차 다 마치고 내 탓이라 결과가 나온다면 두 말 않고 이혼하리라.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체온을 재서 그라프를 만들고 벌건 대낮에 부부관계를 하고 곧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등 직장생활에 적지 않게 지장이 생긴다.

   비상대책으로 작은 병 하나를 건네며 남편에게 주란다. 지시문구대로 실행해서 갖고 오면 된다기에 기대 없이 전했다. 내 목적은 내가 어떤 상태냐에 있으니 남편에겐 신경 안 쓴다. 몇 날 며칠을 어렵게 시간을 내고 근무에 지장을 초래하면서도 열심히 검사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 간호사가 이젠 그만 오란다. 왜요? 나 애기 못나요? 결과 나온 거 에요? 다급한 질문에 편안한 미소로 나를 안정시킨다. 여자는 우선 병력이 없고 매달 정상적으로 행사를 치르고 현재 건강 상태도 양호해서 문제점이 없다고 땅땅땅! 어느 새 남편이 자진 출두해서 실험 할 정액을 채운 병을 제출했고 아주 간단하게 검사가 끝났다. 결과는 완전 무정자증이란다

   인공수정을 원하면 알려달라는 말을 듣고 그 곳과 인연을 끊었다. 내 입으로 이 소식을 남편에게 전할 수는 없다. 그냥 모른 척 묻어두고 평상시대로 살자. 내게 원인이 없다면 핍박을 받아도 상관없다. 받아주자, 사실을 알고 아파 할 남편을 어찌 감당하겠나. 머리맡에 두고 그리던 체온 그래프를 찢어 버렸다. 바쁜 출근시간에 여유가 생긴다. 홀가분하다. 안도의 숨을 내 뱉기도 전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건 왜 찢어버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니까. 그게 뭐 그리 힘들다고 벌써 포기야,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왜 제멋대로야? 왜 멋대로 찢느냐구? ......

   그 후 45년 남짓 결혼생활에, 하늘이 안 주신 것은 달라고 칭얼대지 않고, 주신 것들은 잘 챙기며 자족하며 살았다. 늘어나는 친구들의 자손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마음도 접었다. 임신이란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없었음을 한탄하지 않았다

   이런 나를, 남편이 귀하게 여겨주며 살았다면 어떤 종류의 후회도 없을 것이다. 매사에 빈틈이란 찾을 수 없고, 자신은 언제나 옳기 때문에 반론 펴지 않고 묵묵히 따라야 조용히 산다. 그에 못 미치는 마누라가 마뜩치 않아 늘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고, 폭력도 불사하는 남자다. 이런 꽁꽁 묶인 삶을 끝낼 수 있는 절묘한 순간은 언제쯤 허락하실까.


한국수필에 2018년 12월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
어제:
2
전체:
96,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