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이사 가는 날)

2013.11.11 09:22

김사 조회 수:491 추천:40

이사 가는 날

  
   엄마의 숨결이 가빠 보인다. 속이 상하거나 분하면 엄마는 그렇게 하여 왔다 .눈물 한 방울이 바느질하던 저고리에 떨어졌다. 요즘 들어 자주 보는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는 단정한 머리 매무새는 어떤 상황에도 의연하다 거부한다는 모습이다.  나는 그런 엄마를 요즘 들어 자주 보면서 엄마와 아빠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생각하였다 .
아버지는 술을 많이 잡수시는 것은 알지만 외박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술이 취하면 지나가던 사람이건, 누구든지 간에 내 술 먹고 가라고 붙들고 같이 술을 마신다, 술이 아버지를 먹어 버려서 업혀 오면서  "내술 먹어요." 헛소리를 하여도 밤에는 꼭 들어와서 집에서 주무신다. .  
  어떤 때는 그 시장 연탄 배달하시는 분에게 업혀서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술집 앞에 문방구 하시는 아저씨가 업고 오신다. 술만 잡수시면 힘이 없어 쓸어져 걷지를 못하면 아버지의 공짜 술을 얻어먹은 사람들이 집에 업고 오신다 .
  아침이면 언제 일어나시었는지 세수를 하고, 아버지는 동쪽을 향해 무릎을 끊고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세 번 절하신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의 그런 것을 문틈으로 훔쳐보면서 누구한테 절을 했을까, 이다음에 크면 물어 보리라 하였다.  
  요즈음 들어 자주 보는 어머니의 눈물에 언니는 무언지 아는 모양이다. 엄마 옆에서 무엇인가 말하다가도 내가 들어가면 말을 안 하고 얼른 다른 물건을 만지고 있다.  아버지는 지난밤에도 안 들어 오셨다. 어디서 술 잡수시고 길바닥에서 쓰러져 자다가 새벽이 오면 들어오시겠지, 동생과 나는 잤다. 자다가 눈을 뜨고 보니 ,엄마가 호롱불 밑에서 아버지 옷을 꿰매시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는 왜 안자고 왜 울고 있나. 어디가 아프나 하다 잠이 들었다.  내가 어릴 적에 자다가 눈을 떠서 보니 아버지가 엄마 배 위에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구나 하다 잠이든 적이 있었다. 그 때처럼 또 엄마와 아버지가 싸웠나 싶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내게 시집오지 말고 팔 밭이나 파서 살아 갈 것이지"  쯔쯔 ……. 하고 혀를 차시는 걸 보았다.  팔 밭은 무엇을 하는 건지 모르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일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아버지는 언제나 윗방에서 혼자 자고 우린 언니 엄마 동생 넷이서 잔다.
  우리는 저녁이면 커다란 이불을 하나 덥고 추우면 서로 끌어당기다가 잠이 든다. 자다가 추어서 잠이 깨면 엄마는 어김없이 이불을 우리를 덮어 주고 있다 . 언니가 이불을 돌돌 말아서 덥고 자고, 나와 동생은 알몸에 되어 있다.  내가 깰 때면 엄마도 춥다는 것을 느끼는지 ,일어나서 언니를 한번 엉덩이를 때리고 이불을 뺏어서 덮어 준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고 흐뭇한 마음으로 즐긴다. 엄마의 따뜻한 손이 내 머리를 만지고 내 발을 이불 속에 넣어주고, 팔을 앞으로 가지런히 놓아주면, 자는 척 하면서 실눈을 뜨고 보면 엄마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고 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얼른 아버지 방에 가보니, 아버지는 벌써 앉아서 무릎을 끊고 계신다.언제 들어오셨는지 궁금하여 엄마에게 물어 보니, 너희는 알 필요가 없다 하신다.  언니는 연신 들락날락 하면서 속이 상해서 북북 거리면서 다닌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아버지에게 야단맞았나. 그전에도 아버지가 세수하시는데 언니가 그 옆으로 지나가니 가지고 있던 수건으로 언니를 때려 언니의 얼굴이 앵두처럼 빨갛게 부풀어 오른적이있다. 언니가 왜 수건으로 얻어맞았는지 잘 모른다. .  
  앞마당에 심어 놓은 해바라기 꽃이 담 장 위로 노랗게 올라와 화창하다 .해바라기 꽃은 키가 커서 담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환하게 웃고 준다, 지나는 사람마다 즐거움을 주었다. 지나는 사람마다 "고 해바라기 탐스럽게 잘 익어 가네." 한다. 해바라기 씨앗이 지금은 파랗게 여물어 가지만 익으면 보름 달만하게 까만 씨를 가득 담고 있다.  
앞집에 사는 영순이 언니에게서 씨를 얻어다 담 밑으로 뺑뺑이 돌아가면서 심어 놓으니, 봄에 파랗게 싹이 나더니 어느새 자라서 아버지 키만큼 커 우리 집은 해바라기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이웃집 할머니가 오시더니
  "이 집은 해바라기 집이구나 해바라기 이렇게 무성하면 이사를 가야 한다던데" 하신다. 왜 우리가 이사를 가 우리 이사 안 가는데 별소리 다하네. 어른들은 괜한 것을 걱정을 하시네. 생각했다.
  앞마당 저쪽 옆으로 되지 우리가 있다. 작년 봄에 지어 놓고 금산 시장에 가서 양돈이라고 하얀 되지를 하나 사나 놓고 길렀다. 일 년이 되어 가니 되지도, 아기를 가져야 한다고 이웃집 검은 수놈을 데려 왔다. 어떻게 하여야 되지가 새끼를 낳는지, 궁금하였지만 엄마는 나더러 동생과 같이 나가 놀아라. 하셨다. 그 징검다리 밑으로 달려가서 놀았다.  되지는 차츰 배가 뚱뚱해지더니, 넉 달이 되어 되지는 하얀 색 세 마리, 검은 색에 하얀 줄이 간 얼룩 이 네 마리, 검은색 세 마리, 열 마리 새끼를 낳았다 .되지가 아기를 낳던 날 학교 갔다 오니, 되지 우리를 검은 천으로 가리어 주었다
  ."엄마 되지 우리를 왜 저렇게 가렸어 "물었다.
  "응 되지가 새끼를 낳고 있단다." 하신다. 부정 탄다고 들어 다 보지 말라 하신다, 저녁때가 되니, 엄마는 가렸던 보자기를 걷었는데, 되지는 누워있고, 열 마리 새끼들은 엄마 젓을 하나씩 물고 눈을 꼭 감고 들어 누워있다. 참 예쁘다. 나는 날마다 그걸 드려다 보느라고 학교를 늦게 갔다. 그리고 끝나면 집에 얼른 왔다. 그 되지 새끼 두 달 되니, 엄마 되지 반만큼 커지고, 온 집안에 열 마리 새끼들이 꿀 꿀 거리고 다니면 정신이 없었다. 엄마는 두 달이 되니, 금산 장에 가서 다 팔았다.
되지 새끼 팔러 가는걸. 몰랐다. 학교 갔다 오니, 되지 새끼 소리가 안 들리어, 언니 되지 새끼들 어디 갔어. 하니 엄마가 금산 장에 팔러 갔다 하였다.  그 것들을 팔아서 재봉틀을 사오기로 하이었다 한다, 참 언니나 엄마는 야만인이다 싶다. 되지를 팔아서 재봉틀을 사오시다니, 그날 저녁을 굶고 잤다 .저녁 늦게 재봉틀을 사들고 오신 엄마 얼굴은 달덩이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오늘은 재수가 좋았다 하신다. 되지 값이 좋아서 많은 값을 처서 받았다 한다. 그 후로는 나는 되지 밥을 안 주었다. 잘 먹이어서 배가 뚱뚱하여지면 새끼를 낳을 것이고, 잘 크면 금산 장에 가서 팔 것인데 밥을 안 주었다.
  오늘 아침엔 언니와 엄마가 굉장히 속이 상한 것 같아, 설거지물에 보리 겨를 넣어 되지 죽 통에 넣어 주니, 되지는 누어 있다가 벌떡 일어나 꿀꿀하며 머리를 벌서 땅에 박고 걸어온다. 워리는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면서 쫓아 와서 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언제나 워리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내 기분을 쳐다본다.
  언니는 뭐가 그리 화나서 오늘 아침에 되지 밥도 안 주고 있다. 엄마 곁에서 무엇을 하는지 내다보지도 안는다. 동생과 나는 엄마에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집을 나서는데 아버지도 모자를 눌러 쓰고 학교 가시면서 우리에게 눈길도 안 주신다 . 밤에 엄마와 또 싸우셨나. ...
  학교 가는 길에는 영순 언니네 집을 돌아서 영춘 오빠네 집을 지나면 송화네 집이 나오고, 그리고 나서 개울이 나온다.
개울에는 큰 돌을 듬성듬성 놓아 개울을 건너가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돌다리라고 부른다. 다리로 가려면 저 윗동네에서 다리로 가야 하는데 멀어서 안 가지만, 비가 오면 은 물이 불어서 돌다리는 물에 잠겨 보이지 않아 다리로 건너서 학교를 가야 한다. 그 돌 다리를 건너 학교를 가려면 그 돌 다리 앞에 주막집 하나있다. 우리 동네 유일 한 술집이다. 철이네 집이다. 철이는 내 동갑이고, 석이는 동생 동갑인데, 되게 말을 안 듣는 뵈기 싫은 아이들이다 .
  철이네 집 앞을 지나 학교를 가다 보면 철이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철이, 석이를 때리려고 쫓아오고 아이들은
  "학교 갈게 학교 가면 되지 않아 "하고 악을 쓰고 학교로 냅다 달아난다. 그러다 우리하고 눈이 마주 치면 그 술집 아줌마 철이 엄마는 우리에게
  "너희 아버지 오늘 학교 출근하셨니. " 하신다. . 나는 오늘 아침에도 아버지 학교 가는걸 보았지만 "몰라요" 하였다 . 왜 아줌마가 아버지 출근하는 것을 물어 보는지 기분이 나쁘다 . 엄마에게 물어 보아야지 하였지만 집에 가서는 잊어 버려 물어 못했다. 돌아서 가자 저 기분 나쁜 아줌마 만나지 말아야지 하지만 잊어버리고 또 그 돌다리로 오게 되고 ,그 아줌마를 만나게 된다.  우리를 만나 보려고 서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내 잊어버리고 돌 다리를 건느면 그 물밑으로 다니는 중태기와 피라미 고기를 보고 신기하여 엎드려 잡으려고 하면 도망을 간다 .
  교문을 들어섰을 때 공부 시작하는 예비 종이 뗑그렁 뗑그렁 울렸다. 부리나케 달려가서 교실 문을 여니, 아이들이 제자리에 앉아 있다가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 다행이다. 아직 아버지도 선생님도 보이지 않으셨다.  선생님들께서 결근하시면 아버지는 그 선생님 대신 들어오시어 수업을 하시곤 하신다. 그 때가 가장 싫어진다. .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란 것이 가장 싫었다. "이담에 크면 나는 선생님에게 시집을 안 가야지"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아버지는 숙제를 검사하거나 나와서 칠 판에 써보라는 것을 제일 먼저 나를 시킨다. 그래서 그 시간은 죽기보다 싫다.
오늘도 학교서 감자를 삶아서 점심을 주었다. 세 개를 주었는데 두 개만 먹고, 1개는 책가방에 넣었다 . 집에 갈 때 돌다리 밑에서 놀 때 먹으리라 하였다.  우리학교는 전교생이 백 명 정도다. 우리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고 선생님 세분에 일 학년에서 육 학년까지 있다. 봄이면 전교생들이 학교 터 밭에 고구마 감자 심고, 학생들이 거름 주고, 가꾸어서 8월부터는 감자를 캐고, 고구마를 캐어서 학교 창고에 저장해 논다. 그리곤 아이들보고 점심 싸오지 말라 하고 점심으로 고구마 감자 삶아서 주었다. 가을, 겨울 감자 고구마를 삶아서 먹다 보니 먹기 싫어 남기어 가지고 집으로 가져가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학교가 끝나고 나는 동생과 그 돌다리로 갔다. 요즈음 가물에서 물이 바닥이 드러나서 피라미나 중태기 새끼가 한곳에 모였고, 작은 돌멩이를 들춰 보면 가재가 엎드리어 있다가 달아난다. 그걸 잡으려고 학교 끝나자마자 돌 다리 아래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내가 늦으면 엄마는 으례 그레려니 하곤 물어 보지 않는다 .   해가 산 넘어 가려고 하면 그때서야 집에 들어간다. 들어 갈 때에는 까만 고무신에 잔뜩 잡은 중태기 새끼와 피라미 새끼를  넣어 가지고 오면 엄마는 이런걸. 왜 잡아오니 하시면서 그래도 그걸 된장국에 넣어 된장국을 끓이어 준다. 그 맛이란 기가 막히다. 빨갛게 익은 작은 가재 맛도 희한하고 중태기 피라미 새끼들도 희한하다. 우리는 웃어 가면서 그 된장국을 먹으면서 행복하였다.
이날도 동생과 내가 가재를 잡고 있는데,  술집에서 큰 소리가 나고 아줌마의 앙칼진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이 그리고 가는 것이 보였다. 나도 동생을 재촉하여 그 집으로 달려갔다 . 동네가 작아서 누구네 집에 무엇 하는지 온 동네가 다 알고 있다. 누구네 시집을 가고 누구네 가 싸우고 친정 가는 것을 온 동네가 다 알고 있다. 조그만 사건은 온 동네 사건이기도 하다 .누구 학생은 공부를 잘 하는지, 누구 학생이 공부를 못하는 것은 온 동네가 다 알고 있다 .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에 사건이 하나 생겼다 . 이 동네는 술집이 없었는데 , 하필이면 학교 앞에 술집이 하나 생겼다. 이 술집은 작년에 어디서 흘러들어 왔는지 모르지만 술집을 차린다고 할 적에 "풍기 문란" 이라고 동네에서 들고 일어나서 항의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더니, 경찰서 에서도 아무 소리가 없었다. 풍기문란 이란 말은 흐지부지 없어졌다 .사람들은 서장이 그 집에 드나드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 철이와 석이네. 집이였다.
  술집에서 여자 소리는 들리어 삥 둘러 서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니, 마당 한가운데서 두어자가 엎치락 뒤치락 하고, 사람들이 삥 둘러 있었다. ,
  “저런 여자는 이 동네에서 쫓아내야 되" 하기도 하고 "
  저런 못된 것 보게" 하기도 하였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기어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놀랬다. 그 여자는 어떤 여자의 머리채 붙들고 흔들고 있고, 그 옆에서 언니가 울면서 그 여자의 팔에 매달려 떼어 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 밑에 깔려서 넘어지려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엄마였다. 나는 눈이 뒤집어 졌다. 왜 엄마가 저 여자에게 머리를 잡히어 있나 생각하니 앞 뒤 볼 것 없었다.  
  나는 냅다 언니가 매달린 팔 말고 다른 쪽 팔을 힘껏 꽉 물었다, 여자는 "아앗" 하고 엄마의 머리채를 놓고 나가 떨어 졌다, 나는 얼른 엄마를 데리고 나오려고 엄마를 잡아끄니, 엄마는 힘이 없는지 주저앉고 말았다. 술집 아줌마는 주저앉아서  "동네 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소. 나 죽소"
“온 식구들이 떼거지가 몰려와서 날 죽이려 하네. 죽여라 죽여" 하며 땅바닥을 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울고 있고, 언니와 나는 엄마를 끌고 나오는데 아버지가 뒤에 계셨다.
언제 오셨는지 언제부터 서 계시었는지 모른다.그 여자도 아버지를 보더니,  "교장 선생님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억울해서 나 죽소" 하신다. 아버지는 엄마와 언니를 차례로 뺨을 때리고 "가자" 하시며 앞장을 서신다. 가시다가 잠깐 뒤돌아보면서
" 영자 씨 미안합니다. 나중에 봅시다. " 하시며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엄마가 따르고, 언니가 그 뒤를 내가 그 뒤를 동생이 그 뒤를 따라서 집으로 가는 길을 멀고도 힘들었다.
  엄마는 단정한 머리가 수세미가 되어 있고, 아버지에게 맞은 볼이 앵두처럼 빨갛다. 언니는 훌쩍 훌쩍 울면서 따라가고 사람들이 이 집 저 집에서 나와서" 쯔쯔 사람 잘못 만나면 패가망신인 거여" 한다. .아버지가 잘못은 많이 했구나 싶다. 아버지가 술집 아줌마에게 잘못을 많이 하여 엄마가 대신 찾아가서 빌었는데 그 아줌마가 엄마를 때린 모양이다. 아버지는  잘못을 하고 엄마더러 가서 잘못했다고 왜 빌라고 하였는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이게 무슨 꼴이람. " 창피하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순이네 집 굴뚝에서 연기가 폴폴 나오고 박꽃은 지붕 위에서 하얗게 피어나기 시작을 하고 있었다. 길가로 늘어진 감나무에 감이 붉게 익어 가고  감나무 잎 사이로 저녁노을은 빨간 물감을 풀어놓았고, 햇살이 막 박꽃 사이로 넘어 가고 있었다. 대문에 들어서니 워리가 쫓아오고 반갑다고 컹컹 짖어대며 아버지에게 바지에 몸을 비비다가 엄마에게 갔다가 언니를 쳐다보더니 내게 와서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고 있다. 동생은 얼른 위리의 목을 감고서 '우리 아버지에게 혼났다 가만있어 알았지 "하고 등을 쓰다듬어 준다. ,  아버지가 우리 방에 들어오시고 엄마와 언니 내 동생 이렇게 앉았다 .방안 공기는 무거워서 얼굴 들기 힘들었다. 특히 엄마의 얼굴이 제일 무거운 모양이다. 계속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다 . 아버지의 눈은 허공에 걸려 있고 창호지 문 사이로 들어오는 저녁 실바람에 잠시 마음을 실어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잘못은 하였지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너희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시며  문 사이로 바람에 펄럭이는 창호지를 처다 보면서 한숨을 쉬고 있다. 무엇이 잘못을 하였는가 싶다. 아버지가 그 아줌마에게 잘못하여 엄마와 언니가 빌러 갔다가 얻어맞았는데 아버지는 엄마더러 그러시느냐고 따져 묻고 싶지만 말 안 했다 . 한참 허공을 바라보시고 계시더니 방을 나가신다. 나는 살았다 하였다. 그 무겁던 방안공기를 아버지가 나가시면서 몰아서 거두어 갔다 .  
  다음날 아버지는 말없이 출장을 가셨다. 우리 집은 우울한 여름 장마에 손님같이 눅눅한 습기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와 언니는 밖을 안나가고 집에만 있었다 . 언니는 곧 시집갈 나이라고 하지만 나는 언니가 시집가는 게 싫었다.  그 말이 나오면 나는 피했다. 여전히 나는 돌다리 밑에서 피라미 중태기 잡고 놀았고 학교서는 아버지 대신 누구 온다고 하는 소리를 짝꿍이 일러준다. 짝꿍은 나더러 이사 가느냐고 물어 서 "아니 안가" 하지만 나는 잘 모른다. 그 술집 아줌마는 다른 곳으로 갔는지 "술 안 팝니다"하고 써 붙이어 있다.
  일주일 후에 아버지는 돌아 오셨고, 그날 저녁 아버지는 우리를 앉혀 놓고 이사 간다고 하시었다. 충청도 영동 영산 중학교로 가신다고 하신다. 나는 담 장 위로 얼굴을 내밀고, 오가는 사람에게 웃어 주는 해바라기 꽃이 생각이 났다. 우리 집은 그 달 마지막 날에 이사를 하였다 . 트럭에 이삿짐을 싫고, 동생과 언니와 나는 트럭 뒤 짐짝 속에 앉았고, 엄마와 아버지는 운전석에 앉아서 덜거덕거리는 자갈길을 육십 리 길을 가야한다. 두고 온 되지 와 워리와 해바라기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 옆집에 살던 송화에게 이사 간다고 하니, 서늘하고 사슴 같은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면서 "인제 우리는 못 보게 되는 거니" 묻는다. "아마 그럴거야" 대답을 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면 내게 씽긋 웃어 주던 생각을 하니 보고 싶어 질 것 같다 .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이 하늘만 쳐다보시고 엄마는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영동까지 가자면 이런 강을 아홉 번을 건너야 한다. .
오늘 해 안에 갈 수 있다한다. 나는 이사 가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곳에 새 친구도 만나고 새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지금까지 이사를 다섯 번째다 . 한곳에 이년쯤 살면, 이사 갔으면 하게 된다. 이사 갈 때면 조금 슬프지만 새로 사귀게 될 새 친구와, 새 학교, 궁금하고 설레어 전에 살건 일은 금방 잊어버리고 즐거워진다.오늘은 이사가는 날 앞장을 서 가던 구름이 잠시 내 머리 위에 머물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내 얼굴을 살살 어루만지니 잠이 솔솔 온다. 잠이나 자야 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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