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야외 결혼식

2019.12.24 07:07

김수영 조회 수: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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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데 서 계신 분이 최인희 멕시코 선교사님/결혼식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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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 장 입구에서


비 오는 날에 야외 결혼식


   올해 추수감사절 연휴에는 많은 비가 쏟아져 가족의 모임을 위해 여행하는 자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아무리 비가와도 만나야 하는 부모 형제들은 개의치 않고 희희낙락하며 온가족이 한데 어울려 모처럼 즐겁게 지냈다. 밖에는 비가 와 음산한 분위기였지만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수다 떠는소리로 왁자지껄 사람 사는 분위기로 즐거웠다. 그다음 날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지인의 딸 결혼식에 가려고 준비를 했다. 

   퍽 다행으로 아침에는 푸른 하늘이 보이면서 군데군데 구름이 떠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결혼식은 오후 3시 30 분이지만 결혼 식 장소가 멀어서 일찌감치 1시 20분에 출발하기로 했다. 나는 장거리 운전을 못 하기 때문에 특별히 부탁을 드려서 멕시코 선교사로 사역하시는 선교사 부부의 도움으로 무사히 골프장 근처 타마큘라 크릭 인(Tamecula Creek Inn)야외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차차 파란 하늘이 사라지고 회색 구름으로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초겨울이라 얇은 코트를 걸치고 식장에 왔는데 바람이 불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찌나 추운지 밖에는 못 나가고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굵은 비는 아니어도 가는 비가 계속 뿌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식장에 나가 신랑 신부를 축하해 주어야 하므로 밖에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멕시코 부부 선교사인 부인 께서 자기의 코트를 벗어서 나의 등을 감싸주고 후드로 머리를 덮어주었다. 신랑 신부 양가의 아버지가 모두 목사님이어서 주례는 신랑 아버지 목사님이 집례하셨다. 축복의 말씀이 너무 좋아서 추운 줄도 모르고 경청했다. 식이 끝나기까지 한 시간 여정도 걸렸는데 하례객들이 꼼짝도 않고 비를 맞으며 질서정연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신랑 신부 모두 인물이 출중했고 축복을 비는 하례객들의 박수갈채가 빗소리를 뚫고 사방에 번져 나갔다. 

   평생을 살면서 비 오는 날의 야외 결혼식엔 처음 참석했다. 햇빛이 반짝이는 맑은 날씨 보다 운치가 더 있었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 것 같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차인표 탤런트 부부가 함께 한국에서 와서 식장을 더욱 빛내 주었다. 건물 안에서 피로연이 베풀어졌다. 밖에보다 얼마나 따뜻하고 좋은지 얼어붙은 몸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부인 멕시코 선교사님에 대한 고마움이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본인은 얇은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희생적으로 나이 많은 나를 배려해서 자기의 겉옷을 벗어 나를 덮어 비를 덜 맞게 해 주었고 추위에 떨지 않게 해 주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부인 선교사님이 안 계셨다면 나는 감기가 들었을 것이고 식장에 끝까지 남아 있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하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성경 말씀에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일에도 충성한다’는 구절이 있다. 하찮은 일 같지만 나에게 베풀어 주신 선의의 배려는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런 마음을 가지셨기에 멕시코에서 부부가 함께 작은 자들을 섬기며 사역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주님의 축복과 가호가 두 분 선교사님 앞길에 넘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집에 오는 길에 차 안에서 잠깐 잠도 자면서 19세기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의 시 ‘비 오는 날(The Rainy Day)가 생각났다. 시 구절 가운데 “구름 뒤에는 태양이 여전히 빛나고 있다(Behind the clouds is the sun still shining)”란 표현이 떠 올랐다. 새로 신랑 신부가 되는 부부에게 오늘 비가 오듯이 살다 보면 비 오는 날과 같은 암울한 날이 닥친다 해도 시인 롱펠로의 시 구절처럼 구름 뒤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아주 행복한 부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중앙일보 '열린광장 2019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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