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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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대나무공원의 단상

2021.08.04 17:55

양상훈 조회 수:25

대나무 공원의 단상       

                                        양상훈

 

 

 Garden State, Tenafly 타운의 진입로에 아담한 숲들로 감싸고 있는 미니 공원이 있다.  공원입구에 들어서면 더운 날씨에도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장미꽃 향기가 코를 찌른다여러 풀 향기와 어울려 그윽하게 풍기는 이 공원은 조용하고 아늑하여 만남과 정담의 장소로가끔 들리는 때마다 옛 향수에 젖어 추억의 계곡으로 빠져들게 한다.

데비스 존슨 파크(Davis Johnson Park)라는 이 공원은 존슨 가족이 오래 살다가 뉴져지 주 당국에 기증한 저택을 공원으로 꾸민 사연이 있다비록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평온한 인상을 준다.

 나는 이 공원을 좋아한다공원으로 조성된 내력이 마음에 들고 소박하여 자연스러운 정경이 좋아 이곳을 지날 때 가끔 들려 피로한 심신을 식힌다. 나만의 사색과 고독의 향연에서 세파에 오염된 마음을 잠시 순화시킨다.

돌담길을 따라 나무 그늘에 군데군데 놓인 벤치에서 웃음 띤 다정한 언어가 여기저기 흘려 나온다. 남여커플들이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 주변의 작은 것에 발견됨을 깨닫게 된다.

 낮은 돌담을 밟으며 오솔길을 걸어갈 때 옛 성터를 찾아 든 순례자의 겸허를 체험해보기도 한다다양하고 희귀한 나무들이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고 봄부터 가을까지 쉴 새 없이 피어나는 꽃들. 모란수선화난초철쭉카나리아장미 등 이외 수많은 꽃들의 이름을 알 길이 없다.

하고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는 가운데 흰 나비들이 분주하게 춤추는 모습을 보면 기화요초(琪花瑤草)에 백설이 하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특히 이 공원은 화려한 장미화원이 짙은 향기로 사람들을 유혹하지만대나무 숲이 제일 인상적이다사열식으로 우뚝 솟아 정돈된 대나무 숲에는 더 시원한 바람이 흘러오고 있다.

대나무 숲 속에 모여 든 온갖 새무리들의 청아한 합창은 마치 교향악처럼 들리곤 한다.

이곳에 살면서 대나무 숲을 보기도 힘들지만빽빽한 대나무들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시간의 채널이 잠시 멎는다.

어린 시절 살았던 옛집뒤뜰 넓은 울타리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었다. 6.25 한국전쟁 당시 마지막 방어선을 지키려는 낙동강 전투가 치열하면서 비행기 폭격이 한창일 때, 나는 곳곳에서 피난 온 어린이들과 함께 어른들이 파놓은 뒤뜰 대나무 숲속의 방공호에 대피하고 있었다.

 대나무 뿌리는 거미줄처럼 땅속으로 뻗어 나가는 강한 집착력을 가지고 토양을 흡입하여 철근처럼 얽혀 지반을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하여 방공호를 만들기에 적당한 곳이라는 지혜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놀 기구가 없고 장난감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대나무가 나에게 절친한 벗이 되었다.

이웃 개구쟁이들과 마음에 드는 큰 대나무를 성큼 잘라 물총도 만들고 나무칼과 퉁소를 만들기도 하였다단단하고 작은 대나무는 미지근한 잿불에 적당히 구워 휘어서 양쪽을 삼끈으로 잡아 활도 만들었다땅 위로 솟아오른 지 얼마 안 된 긴 죽순은 창을 만들어 전쟁놀이에 쓰였다.

대나무로 낚싯대를 만들어 시냇물에 고기도 낚고 멱도 감으며 한나절을 보내다가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은 적도 있었다대나무의 중요 부분들을 거의 다 써버리고 남은 잎들이 달린 끝부분으로 묶음을 하여 빗자루로 만들어 마당을 쓸기도 했기에 대나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감나무의 높은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빨간 홍시를 대나무장대로 따먹던 어린 시절은 전쟁 통이었지만 세상모르고 행복한(?) 때였다.

 대나무는 농경사회에 우리 조상들의 희로애락을 싣고 더불어 살아왔다한때에는 외세의 침략을 받을 때 병기의 수단으로 사용하였고 일상생활의 많은 필수 제품을 대나무로 만들었다.

농축사의 재료에도 사용했으며 심지어 사람이 죽으면 장례에도 대나무가 등장하였다최근에는 소금을 대나무 통 안에 넣거나 식재료를 넣어 구운 건강식이 나오게 되었으니 고금을 통하여 대나무가 인류에 끼친 은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나는 대나무를 좋아한다대나무는 외모가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하고 깔끔하며 외피가 매끈하여 비바람에도 부패하지 않는다대나무는 곧고 강직하여 외풍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속은 비어 있으나실은 텅 빈 것이 아니고 마디마다 밀폐시켜 오히려 속이 단단하여 우뚝 솟아 있는 자태가 믿음직스럽다딱딱한 것 같으나 활을 만들 수 있는 유연함도 있고다른 나무처럼 요란하지 않으며 가지를 뻗어 이웃 담장을 넘어 피해를 주는 일도 없다.

대나무는 척박한 땅에도 번성하는 지구력이 강하고 또한 적당한 시기에 비 온 뒤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죽순이 솟아나기에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용어가 탄생할 정도로 민첩성이 있다.

  늘 푸른 절개를 지키며 고립되어 서 있지 않고 집단 번식력으로 뻗어 나가는 강한 추진력을 엿볼 수 있다대나무의 일생과 그 삶의 상징성이 우리 인간에게 교훈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