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사기성을 동반한 생존 전략

2013.01.31 02:34

김영문 조회 수:496 추천:26




                  “약간의 사기성을 동반한 생존 전략”

                                작가의 말  

  사악한 사회에서 사악한 사람들과 사악한 싸움을 하며 지지않고 살기 위해서는 당신도 사악해질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총을 들고 나서는데 당신은 맨손으로 나선다면 싸움이 되겠는가. 결백하고 깨끗하기 때문에 가난하고 실패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 것은 스스로의 패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세상 돌아가는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인간으로 오염되어 가고 있는 지구에서의 삶이 도로 깨끗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 사악해지면 사악해졌지 착한 쪽으로 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정직하고 착하다는 넋두리 소리만 되풀이하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당신의 아이들을 물질에 굶주리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굶주리고 사는 것은 또 그런대로 참아낼 수 있는 일이라고 치자. 문제는 옆집에서 으스대고 저희들이 가진 부를 과시하고 당신을 얕잡아 보는 놈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당하고도 인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 아내와 당신 아이들이 이 멍텅구리들한테서 그런 천대를 받는 것을 당신이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미국에서 살면서 약아져서 미국식 나쁜 것 반, 한국식 나쁜 것 반을 섞은 다음 에 그것이 미국식이라고 지껄이면서 살고 있는 놈들이 허다하다. 이런 놈들이 한국 가면 미국에는 마치 저 혼자 사는 것처럼 더 으스대며 아는 척한다. 미국 법을 들이대면 한국 사람들끼리 왜 그러냐고 하고 한국 법을 들이대면 여긴 미국인데 미국식으로 합시다, 하는 거다. 이 놈들하고 뭐 하려면 미칠 노릇이다. 또 거짓말은 청산유수처럼 얼마나 잘 하는가. 들어보면 구구 절절 맞는 말처럼 들리게 잘도 지어내서 둘러대는 것이 가히 천재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요리 빠지고 조리 빠지면서 기회주의적 처세술로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그 못된 사고방식과 못된 버릇 어디 가던 못 버리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문제는 이런 못 된 놈들일수록 잘 살고 있으니 이게 진짜 분통 터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꾸준히 열심히 일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생산적 일원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실한 사람들이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그런 사람들은 서서히 쇄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말이다. 당신이 보리밥에 냉수 마시고 살아도 자신의 엄청난 사명감과 고고한 도덕심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선인이 아니라면 침몰하는 배에 동승할 수 있겠는가.

  자동차 운전하는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교차로에서는 빨간 불일 때에 하얀 선 뒤쪽에 서게 되어 있다. 어차피 초록 불이 켜지기 전에는 갈 수 없는 것이 뻔한 데도 자동차를 반쯤 하얀 선 앞쪽에 걸쳐 놓고 오가는 보행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눈 멀뚱멀뚱하면서 앉아 있는 놈이 미운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놈일수록 교통 위반 티켓을 안 받는다. 게다가 이런 놈일수록 고급 차를 타고 있으니 이 것이야말로 울화통 터지는 일 아닌가 말이다.
  남 불편하게 만들고 남 불행하게 만들면서 벌어 챙겨온 돈을 콧구멍 후비면서 앉아서 세고 있는 이 도덕 불감증 환자들이 천벌을 맞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요새 그 흔한 암도 안 걸리고 오래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우리도 이제 포기하고 서서히 도덕 불감증에 감염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증세에 감염되는 것도 당신이 이 방면에 선천적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면 비상하게 애쓰며 배워야 하는 스스로의 후천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타인의 비판적 눈길에도 멀뚱멀뚱 같이 쳐다보며 당황한 내색을 보이지 말 것, 거짓말할 때 얼굴이 붉어지거나 목소리가 떨리거나 평소에 없던 어색한 동작을 하지 말 것, 단수가 높은 상대를 만나서 이쪽의 술수를 상대방이 빤히 읽고 있다고 생각될 때에도 절대 주눅들지 말고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사기성 있게 계속 밀고 나갈 것, 최악의 경우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판단되어 후퇴하게 될 때에도 당당하게 어깨 펴고 장군처럼 위엄 있게 물러날 것,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불감증 기법을 아무런 설명과 연습 없이 본능으로 해내야 하는데 이런 선천적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은 유감스럽지만 평소에 꾸준히 연습이라도 하여 그런대로 근사치에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나쁜 짓 한 놈은 모두 감옥소에 가는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그렇지가 않다. 나쁜 놈들이 되레 더 잘 사는 경우도 많다. 우리 동네에서 곗돈 떼어먹은 여자가 일요일 교회에서 사글사글 웃으며 주보를 돌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 여자는 절대 화나서 소리 지르는 일이 없다.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속삭이는 것처럼 소곤소곤한다. 쉰 살이 넘은 나이인데도 아직 여자의 매력이 철철 넘친다. 목소리도 참 좋다. 그 듣기 좋은 목소리로 표정 하나 안 변하면서 말한다. 계를 할 때 계약서를 주고받은 사실도 없고 돈도 현금으로 오갔는데 영수증이 있습니까? 서로 믿고 한 일인데. 어떻게 저를 고소한다는 것이지요? 스무 명이 넘게 당했지만 모두 꼼짝 못하고 말았다. 이 여자는 도망도 안 간다. 자기가 살던 집에 그냥 살면서 같은 마켓에서 장 보고 같은 교회 다니고 만나는 사람마다 귀부인답게 정중한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또 다른 계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사악한 사회의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가려면 낯가죽이 최소한도 이 정도는 두꺼워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개체들은 생존하기 위한 기술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힘이 없고 약한 동물에게는 독이 있어서 생존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게 되어 있다. 약하고 작으면서 독도 없다면 틀림없이 번식력이 강해서 잡혀 먹히고 먹혀도  계속 대가 끊어지지 않는다. 적을 물어 죽일 날카로운 이빨이 없는 초식 동물은 튼튼한 다리가 있고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촉각이 있어서 육식 동물의 공격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칼날 같은 이빨도 없고 또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다리도 없으면 몸이 엄청나게 커서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코끼리 같은 동물이 된다. 힘도 없고 약하고 더구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맹독도 없는 종류의 뱀이 있는데 이 놈들은 그 대신 보기만해도 무시무시한 진짜 독이 있는 뱀의 색깔을 띠고 가짜가 되어 스스로를 보호한다. 또 어떤 동물은 위험이 닥치면 납작 엎드려서 주위 환경 생긴 것과 색깔을 그대로 흉내내어 변장하고 숨어서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지금 까지 험한 세상 살아가는 데에 별 재주 없어서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옆 사람 눈치 보면서 살아온 당신이지만 그러나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당신에게도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부여 받은 자기 보호의 기능과 기술과 생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빨리 발견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 자신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당신의 금쪽 같이 귀한 가족을 이 현대의 정글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비결이다.

  사악해져라. 사기성을 배워라. 그리고 그 것을 적당한 때에 적정량 만큼 씩 만 꺼내서 사용할 줄 아는 지혜도 배워야 한다. 기술만 배우고 이 지혜를 터득하지 못하면 당신은 당신 일생의 일부분 아니면 이제 남아 있는 일생의 전부를 감옥소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위대한 버니 메이도프도 이 지혜를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나머지 일생을 감옥소에서 보내게 되지 않았는가. 집안은 만신창이가 되고 큰 아들은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뉴스 기사에 의하면 65 빌리언 달러를 해먹었다는데 이게 얼마나 되는 돈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밀리언 이라면 그래도 감이라도 가는데 빌리언 이라면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 알고 있는 것은 잡히지 않은 좀도둑이 은행 털다 총 맞아 죽은 거물 강도보다 낫다는 사실이다.

  사기극이 성립하려면 사기치는 사람이 사기 당하는 사람보다 머리 수준이 높아야 한다. 사기를 치고자 하는 놈은 당신 눈에 사기꾼 같이 보이지 않고 진정 당신의 이익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쓸 것이다. 당신이 똑똑치 못해서 이 사기꾼의 검은 속셈을 헤아릴 수 없을 때에 사기극은 서서히 독버섯처럼 음지에서 커가기 시작하게 된다.
  사기극이 성립되기 위해서 필요한 또 하나의 조건은 사기 당하는 사람이 욕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금 만 불을 투자해 두면 한 달에 이 천 불씩 이익금이 배당된다는 이런 터무니 없는 말을 믿고 덜컥 생떼 같은 현금 만 불을 침대 밑 비밀 금고에서 꺼내서 가져오게 만들려면 우선 사기 당하는 사람이 사기치는 놈보다 머리가 좀 덜 떨어진 놈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한 달에 이 천 불 씩의 이익금에 눈이 멀 수 있을 만큼 욕심이 있는 놈인지도 확인되어야 한다. 물론, 뭐, 이런 욕심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왜냐 하면 그런 욕심이 없는 종류의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똑같은 수법을 계속 반복 사용하지 말아라. 습관성과 규칙성은 꼬리가 잡힐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요소를 가진 적이다. 한 번 해봤더니 생각보다 쉽고 돈도 굴러 들어오니까 또 똑같은 수법으로 반복했다, 이 번에는 더 쉽다, 그래서 또 한다, 이러다 깨지는 것이다. 한 번, 또는 두 번 정도 해 먹고 손 떼라. 아쉬운 줄 안다. 더 벌고 싶으면 똑같은 짓을 반복하지 말고 다른 것을 찾아라. 좋은 분야의 일에서건 나쁜 분야의 일에서건 독창성과 창의력은 언제나 빛나는 재산인 것이다. 은행에 근무하면서 고객이 저금해 놓은 돈 빼먹다 들켜서 형사범으로 영창 들어가는 놈들 봐라. 똑같은 짓 계속 반복하다가 꼬리가 잡히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작은 돈 해먹었는데 괜찮으니까, 중간 금액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큰 금액으로, 더 큰 금액으로, 아주 큰 금액으로, 그 다음에는 감옥으로. 그 해 먹는 방법이며 발각되는 과정이며 체포되어 윗도리 벗어서 얼굴 가리고 압송되는 과정이며 이 모든 것이 판에 박은 신파극인데 이래서는 재미가 없지 않은가? 해 먹고도 안 걸리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지 잠시 공돈 생겨서 술 마시고 그림의 떡 같이만 보이던 미녀도 좀 안아보고 도박도 해보고 그 다음에는 차가운 영창에서 몇 년씩 썩어 문드러지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규칙성도 문제다. 중국에서 진품처럼 잘 만들어진 가짜 구찌 핸드백을 로스엔젤레스 항구로 밀수입해 온 녀석이 있었다. 처음에 소량을 들여와 봤더니, 어, 이렇게 쉬운 일이 없다. 잘 통관이 되어서 찾아다가 집의 차고에 갖다 놓고 흥분하여 박스를 뜯고 내용물을 꺼내서 스왑밋을 찾아 다니며 비밀을 지키고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전연 모르는 사람만 골라서 도매를 시작했는데 보름이 지나지 않아서 다 팔려 버리고 꽤 쏠쏠하게도 몇 주일치 봉급에 해당하는 이익금이 생겼다. 너무 쉽다. 하, 이걸 왜 또 안 한단 말인가. 두 번째 할 때는 물량도 꽤 많아졌다. 이익금도 수 천 불이 생겼다. 또 한다. 이렇게 반복되면서 습관성과 규칙성이 생기기 시작하면 마음도 대담해진다. 처음에는 쉬쉬하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팔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까지 조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대담해진다. 손 쉬운 대로 아는 사람에게도 무더기로 팔기 시작한다. 그들은 픽업 트럭을 가지고 집에 와서 차고에 가득 차 있는 밀수품 중에서 자기가 좋다고 생각되는 품목을 골라서 현금을 지불하고 사간다. 이런 밀수품의 경우 무작위로 선정된 세관 검사에서 발각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사전에 입수된 정보 또는 상품의 유통과정에서 발각되는 것이 보통이다. 가짜를 소매하고 있는 스왑밋에 세관 검사원들이나 구찌등 브랜드 이름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의 수사관이 들이닥친다. 상품의 출처를 대라고 다그친다. 겁먹은 스왑밋 장사꾼은 자기 발부터 빼기에 바쁘다. 사실은 가짜인줄 모르고 샀는데 이 물건을 나에게 판 사람 이름은 아무개인데 집이 무슨 동네에 있고 지금도 가면 박스가 많을 겁니다, 하면서 자기가 빠져나가기 위해서 소상히 정보를 제공한다. 그 다음에 생길 일은 빤하다. 처음에 했던 것처럼 조심 조심 모르는 사람에게만 소량으로 팔아 넘기면서 몇 번 하고 손 떼어 버렸으면 괜찮았을 것을 말이다.
  옆 집에 새로 이사 온 끼 있어 보이는 예쁜 새댁하고 눈이 맞아서 용돈 얼마씩 집어주며 바람 피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가슴 벌렁거리고 뛰면서 서로 딴 차를 타고 집에서 십 마일도 더 떨어진 곳에 있는 으슥한 모텔에서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데 두 번 만나고 세 번 만나면서 대담해진다.  어차피 쥐도 새도 모르는 노릇일 터인데 뭘 그렇게 먼 데 까지 시간들이면서 갈 필요가 있겠는가. 손 쉬운 대로 가까운 데서 끝내 버리지. 하다가 이제는 고작 서너 시간 있다가 나오는데 모텔 비 내는 것도 공돈 같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남이 안 볼 때 새댁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집 차고가 있는 쪽의 뒷문으로 슬쩍 들어가서 일을 치르고 나온다. 어차피 새댁 남편은 출장 가고 없는데다 빈 집 놔두고 모텔 비 낼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러다 들통나는 것이다.
  습관성이 경계심을 느슨하게 만든다.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생긴다. 처음에 운전 배웠을 때는 얼마나 진땀 흘리면서 온 정신을 집중해서 운전했는가 말이다. 한참 지나서 숙달되고 나니까 이제는 운전하면서 전화도 쓰고, 담배도 피우고, 포테이토 칩도 먹고, 콜라도 마시고, 심지어는 책도 읽지 않는가. 이러다 깨지는 거다. 처음과 똑같은 조심성을 절대 잊지 말아라. 그리고 두어 번 해먹은 다음에는 시침 뚝 떼고 손 털어라. 달콤한 유혹이 진정 손 놓기 아쉬워서 또 하고 또 하다가는 결국 당신도 수갑 차고 윗도리로 얼굴 가리고 허겁지겁 카메라 피하면서 쇠창살 달린 차에 오르게 되는 날이 틀림없이 오게 된다. 이런 신파조의 스토리는 하도 진부해서 나 같은 삼류 소설가도 이제 더 이상 소재로 쓸 수가 없다.

  반복성, 습관성 또는 규칙성이라는 함정에 빠져드는 데에는 큰 도둑이나 좀도둑이나 다를 것이 한 치도 없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이 똑같은 함정으로 빠져드는지 정말 신기하기도 하다. 마켓에서 최소 임금을 받으며 캐쉬어로 일하는 사람이 한 번 일 불짜리 하나를 슬쩍 챙겨서 주머니에 넣어 봤더니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그래서 또 한다. 이 번에는 오 불짜리다. 십 불짜리로 늘었다. 이십 불이다. 액수가 점점 커진다. 반복성과 습관성이 생기면서 경계심은 계속 줄어든다. 해먹어도 또 해먹어도 주인이 모르지 않는가. 도매상에서 사들인 물건의 개수와 남아 있는 개수를 확인한 후 판매된 현금 입금 기록을 계산해서 금전의 도난을 방지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더 크게 해먹는다. 그러다 수상하게 생각한 업주가 아무도 모르게 감시 카메라를 장치해서 현장을 녹화한 후 이 좀도둑을 잡아내서 해고한 후 유치장에 보내 버리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아메바 급의 하등 좀도둑이 해먹는 수법과 그 반복성, 습관성 및 규칙성 때문에 결국은 발각되어 바람직하지 않은 결말을 보게 되는 것이 국가를 통째로 집어 삼키는 독재 권력자의 수법과 또 그 결말하고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선임 독재자를 타도한 후, 진정 깨끗하고 오로지 국민만을 위한 고결한 민주 정부를 만들어 정국이 안정될 때 까지만 통치한 후 물러나겠다, 라는 것이 고금 동서 또는 고금 남북 동서를 모두 통 털어서 새로 나타나는 독재자가 공통적으로 내거는 위대한 공약인 것이다. 그런데 거기 꼭대기에 앉고 보니까 기분이 괜찮다. 눈치 보면서 측근과 상의해서 조금 해먹어 봤는데, 어,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는가. 마치 마켓 업주가 일 불 훔쳐간 캐쉬어를 나무라지 않듯이 말이다. 그래서 일 불 도둑이 오 불 도둑이 된다. 금싸라기 같은 땅을 소유주를 조져서 강제로 등기 이전하여 조카 사위에게 불하해 봤는데 그 것도 조용하고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 이러면서 반복성과 습관성이 생기고 경계심이 줄어들면서 배포가 커져서 왕창 왕창 해먹기 시작한다. 정국이 안정되면 물러나겠다고 공약했지만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정국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데에는 할 말이 없다. 그 사이에 이 독재자와 그 친인척 모두는 당첨 번호가 나오지 않아서 거금이 여러 번 누적된 복권이라도 따낸 것처럼 모두 갑부가 된다. 옆 집에 사는 보통 사람이 눈에 거슬리면 얼마든지 잡아서 고문하거나 감옥살이를 시킬 수 있다. 돈도 좋지만 이 권력의 아편은 한 번 중독되면 끊기 힘들다. 그러다가 드디어 불만이 포화상태에 이른 국민이 침묵을 깨고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오자 권력자의 총칼이 피를 부른다. 파국이 정점에 이르고 드디어 부패 정권은 물러나라, 독재자는 심판을 받아라, 등등 아주 귀에 익숙한 구호들이 나돌기 시작한다. 마침내 독재자와 그 떨거지들은 마켓의 캐쉬어처럼 국민에 의해서 해고되고 더러는 감옥소 행이다. 그 사기성을 적당한 때에 적정량 만큼 씩 만 꺼내서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할 수가 있었다면 그는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여전히 자기의 동상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 놓았던 거대한 동상이 민중의 함성 속에서 파괴되는 것을 아픈 눈으로 지켜 보아야 했다는 것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구 독재자를 몰아내고 새로 정권을 잡은 신참 독재자는 말한다. 진정 깨끗하고 오로지 국민만을 위한 고결한 민주 정부를 만들어 정국이 안정될 때 까지만 통치한 후 물러나겠다고.
  이 고급 사기꾼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책에서 하자. 이 책은 좀도둑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이런 거룩한 희대의 사기꾼들 이야기를 하자고 만든 것이 아니다.

  이 책에 수록된 몇 개의 단편 소설들은 모두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허구다. 그리고 이 책을 쓴 저자는 죽으면 틀림없이 천당 갈 것처럼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 보면서 화가 나서 이런 책을 썼는데 이 책에 씌어진 모든 것이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물론 고백컨대 나도 돈을 벌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좋은 차를 타고 큰 집에서 살고 싶다. 주위 사람들이 부러운 눈으로 보기라도 한다면 큰 얼굴이 되어 어깨에 힘주고 뽐내고 싶다. 허리 잘룩하고 엉덩이가 빵빵한 여자가 내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을 보고 사글거리고 눈웃음치며 유혹이라도 한다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고 싶다. 진짜 빨리 넘어가고 싶다. 다른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런 모든 속세적 욕망을 나도 가지고 있다.
  초등 학교 다니던 시절에 선생님이 말하기를 옛날 최영 장군의 부모님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아무리 해도 황금이 돌처럼 보이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다. 아무리 도를 닦는 마음을 가지고 심호흡 까지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보아도 황금은 역시 번쩍거리는 위대한 황금으로 보인다. 눈을 감고 겸허하게 사색하는 자세로 마음을 집중하여 이 더러운 속세의 욕망을 떨쳐내려고 애써본다. 심호흡을 해본다. 그래도 이 더러운 속세의 욕망이 떨쳐지기는 커녕 상상 속에서 나는 아주 대궐같이 좋은 집에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으스대면서 나오고 있다. 마음을 아무리 깨끗이 비우려 해도 눈 앞에서 도발적으로 생긴 여자가 엉덩이를 흔들며 지나가면 참을 수 없이 마음이 동한다.  
  음심을 먹기만 한 것으로도 간통한 것이 된다면 나는 아마 수백 번의 간통을 했을 것이다. 사기치고 남을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 여러 번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행동으로 연결되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그게 없다. 배짱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도둑놈이 되어 감옥에 가지 않았고 간통죄로 법정에 선 일도 없다. 내가 무지무지한 도덕 군자가 되어서 모범 인생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도둑놈이 되지 않았고 감옥에 가지 않았고 간통죄로 법정에 선 사실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정직하게 고백해 두고자 한다.

  배짱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그 것만 가지고는 아직도 부족하다. 또 있어야 할 것이 있다. 좀 위선적일 수 있고 그 위선이 마치 진정인 것처럼 스스로도 믿을 수 있는 약간 정신 착란증에 흡사한 증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이 것은 아까 얘기한 곗돈 떼먹은 귀부인이 보여주는 위선과는 또 좀 다른 종류의 위선이라고 나는 분류하고 싶다.
  인건비 착취하면서 부자 된 기업가가 쥐꼬리만큼의 금액을 고아원에 희사한 후 마치 그 고아원이 자기 아니면 운영 못 해나가고 그 고아들이 모두 죽게 될 것처럼 떠들고 다닌다면 이 사람에게는 다소라도 정신 착란성의 위선적 기질이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수해 지역에 보내는 성금이랍시고 얼마를 희사한 후 그 수표의 사본을 대문짝만 하게 만들어 국회 의원, 사업가, 기타 잡동사니들 대여섯 명이 모여서 한 귀퉁이씩 들고 거룩한 얼굴로 기념 사진 찍어서 신문에 싣고 큰 얼굴로 거만 떨려면 이 것 또한 아무래도 꽤 얼굴 가죽 두꺼운 위선적 기질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로지 하느님만을 위하여 혼신을 다 불살라 봉사하고 오로지 주님의 뜻만 일생의 길잡이로 삼아 어려운 사람 돕고 어두운 사회를 밝히는 봉화가 되며 죄진 사람 회개 시키고  그 고통을 같이 나누어 느끼며 항상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거룩한 얼굴로 설교하려면 어느 정도의 정신 착란성 위선적 기질이 있어야 하겠다. 가난한 자가 천국으로 가고 물질과 세속적 욕망에서 해방된 사람을 하느님이 사랑한다고 설교 하면서 매달 모인 연보 돈에서 꽤 많은 금액의 봉급을 떼어 가고 퇴근 후에는 고급 차를 타고 상당히 값 나가는 호사스러운 집으로 들어 가면서도 모순을 느끼지 않으려면 위선적일 수 있는 자질이 있어야 하겠다는 말이다. 양심이 부르는 소리에 귀가 어두워질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이다. 즉흥적이고 재치 있게 임기응변적 핑계를 둘러대어 자기는 왜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하느님이 내리신 조항 중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요목조목 설명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겠다는 말이다. 어차피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하는 행동은 모두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 성향이 있어 다른 어떤 부류의 위선자 보다도 정신 착란성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특징이 있다.
  대충 이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종교계에 있는 사람들이 발끈해서 달려드는데 그렇게 발끈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런 위선적 기질로 종교보다는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하며 살아온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냄새 피운 사람이 도리어 코 틀어막으며 남 탓하는 꼴이다. 충직하게 하느님을 위하고 헌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봉사하며 살고 있는 진정한 교인이나 교계의 지도자는 어떤 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며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무지렁이 백성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면서 몇 년 동안을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작업복 입고 흰 띠 두르고 시장 바닥에 나타나서 머리 공손하게 조아리며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하면서 걱정스러운 어조로 살기 어렵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건 필히 선거철이 왔다는 증거다. 이 때 반짝 입술에만 발린 소리를 지껄이고 나서 일단 당선되고 나면 봉사하겠다던 모드에서 태도를 홱까닥 바꿔서 거만하게 군림하겠다는 모드로 아무 거리낌없이 돌아서려면 확실히 타고난 위선적 기질이 있어야 할 것임이 틀림없는 일이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의 영달을 위해서는 어떠한 다른 사람도 주저 없이 희생시킬 수 있으며 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떠한 다른 사람의 고통에도 개의해서는 안 된다는 철두철미한 양심 불감증 및 위선 비대증에 걸려 있어야 할 것이다. 도끼 들고 국회 의사당에 들어가서 문짝을 때려 부수는 만용을 보이려면 이 것이야말로 탁월한 선천적 재능의 극치를 소유하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대개는 돈 벌고 잘 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이 모질게 변질되어 도덕성의 기준이 없어진 사회에서는 역시 같이 변질되고 같이 모질게 도덕성을 없애 버린 사람이 적격자 생존의 원칙에 잘 맞아 들어가서 번영하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용과 위선을 곁들인 탁월한 재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선천적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은 이 천재적 도덕 결핍증 환자의 발 밑에 갈만한 정도의 만용 조차도 부리지 못하겠지만 최소한도 열심히 노력해서 그 근사치에라도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이 선천적 천재들로 오염되어 가는 사회의 생존 경쟁 속에서 작게나마 숨을 쉬면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방편인 것이다.

  돈 키호테가 되어라. 내부 속으로 침잠해서 사색하고 괴로워하고 주저하고 자학하고 옆 사람에게 폐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염려하고 예의를 지키고 하는 따위의 인간이 살던 시대는 이제 가고 없다.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옆 사람이 보건 말건 개의치 않고 휴대 전화에 대고 고성으로 떠들어 대고도 얼굴 붉히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고 일어나 빗질 안 한 머리에 손가락으로 눈곱 떼면서 더러운 발가락 내 보이는 샌들 신을 직직 소리 내고 끌면서 식당에 아침 식사하러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배양해야 한다.
  노인이건 어린 아이건 여자건 상관없이 왕성한 힘으로 밀쳐내며 전철에 먼저 올라타서 승리의 표정으로 벌쭉 웃을 수 있는 용감성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진정 위대해지고 진정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와 보통보다 훨씬 두꺼운 얼굴 가죽을 타고 나지 못한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은 남보다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선인들의 말을 귀감 삼아 희망을 잃지 말고 노력해야 하겠다. 그 것만이 이 혼탁한 세상의 경쟁 속에서 뒤지지 않는 비결이다.
  나는 학교 다니던 시절에 조용하고 앞에 나서지 않는 겸손한 학생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손해를 보았더란 말이냐. 거드럭거리며 어깨 흔들고 다니는 녀석들이 도시락 반찬 다 뺏어 먹고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도 기죽어서 조용해야 했다. 나중에 보니까 선생님은 그런 학생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내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는 말이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미국에 와서 나는 한국 사람 또는 동양 사람이 전연 없는 회사에 취직하여 근무하면서 다른 종류의 경험을 했다. 이 곳에서는 진정 겸손 따위의 말 자체가 없는 것 같더라는 말이다. 쥐꼬리만큼 알아도 다 아는 것처럼 큰 소리 내고 활발하고 외향성인 녀석들이 더 빨리 진급하고 봉급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나는 재빨리 간파한 것이다.
  취직하기 위한 면담을 할 때에도 옛날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많이 지도해 주십시오."하고 말한다면 면담자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모르는 것이 많으면 더 배워 가지고 오십시오. 여기는 학교가 아닙니다."
  한국의 운동 선수가 해외에 나가서 시합에 이겨 챔피언이 된다면 인터뷰에서 말할 것이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열심히 했습니다. 이 영광은 제 것이 아니고 국민 여러분의 것입니다." 실지로 그런 뜻을 마음에 담고 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듣기에는 굉장히 좋은 겸손하고 모범적인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시합에서 이긴 후 "내가 최고다. 챔피언은 나다. 나는 위대하다."라고 떠벌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는 스포츠 역사에 남는 위대한 선수가 되었다. 역시 겸손의 시대는 확실하게 가고 없다. 더구나 미국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겸손한 선비의 나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 위대한 대한민국도 이 미국의 사회 철학을 무서운 속도로 따라가면서 흉내내 가고 있는 것이다. 주체성을 가진 취사 선택적 배움이라던가 독창성을 잃지 않은 우리 전통의 부분적 수정이라던가 하는 거추장스러운 절차는 이미 오래 전에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아주 속성 코스로 비판 없는 모방의 방법을 택해 버렸다.
  미국은 젊은 사람들의 땅이라고 했다. 그만큼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강자의 나라다. 이 사회에서 겸손하게 뒤로 물러 앉아 힘겨루기에서 뒤져 버린다면 살길이 없다. 메이 훌라우어의 첫 이민 역사에서 부터 힘으로 정착하는 서부 개척 시대 부터 영국 식민 정책의 배척, 남북 전쟁, 이 모든 것이 힘 겨루기였고 또 미국의 승리 아니던가. 그리고 아, 그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인종 차별, 풍요 속의 빈곤, 중산층의 몰락, 승자의 행진.
  대한 민국은 이런 이민 역사도 서부 개척의 힘겨루기도 경험하지 않았으면서도 아주 능률적으로 어두운 부분만 잘도 골라서 열심히 복제해 가고 있는 것이다.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 보장만 있다면 전쟁은 정말 신나는 스포츠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다. 남의 것을 훔치고 사기치고 온갖 나쁜 짓을 하고도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다면 나도 남의 것을 훔치고 사기치고 나만의 영달을 위해서 다른 사람과 사회에 폐를 끼치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진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유감스럽게도 법은 도덕의 최소치를 정의한 규정 집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그렇게 사기치고 나쁜 짓하면서 살려면 배짱 이외에 또 하나 넘어야 할 사선이 있다. 도덕이라는 이 거추장스럽고 몹시 불편한 선이다. 발각되어 잡히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고 해서 과연 모든 사람이 그런 나쁜 짓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배짱도 있다 치자. 위선적일 수 있는 타고난 재능도 있다 치자. 그러면 그 도덕의 선을 과연 넘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니 자신이 없어진다. 당신도 나보다 별로 나을 것 같지 않다. 당신 사는 집이나 타고 다니는 차, 주머니에 들어 있는 용돈 액수 등을 보니까 당신도 이 알량한 도덕의 선을 넘지 못하고 허덕이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 선을 수월히 넘을 수 있었다면 당신도 지금쯤은  궁궐 같은 집에서 개기름 흐르는 얼굴로 거만 떨면서 운전 기사가 운전해 주는 자가용 뒷좌석에 암퇘지 같은 에펜네와 거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 형편없이 가느다란 선을 넘지 못하고 요 모양 요 꼴로 살고 있다니. 이건 당신에게만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 불쌍한 나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로스앤젤레스의 환한 태양 아래 한인 촌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바로 눈 앞으로 젊은 여자가 엉덩이를 흔들며 지나간다. 검정 안경 속에 가려진 내 눈이 사팔눈처럼 돌아가며 여자의 엉덩이를 쫓아간다. 눈으로만 말이다. 그 야들야들하고 뽀얀 살결에 온 몸으로 부딪쳐서 파묻히고 그 속에서 몸부림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다. 바로 이 때 그 여자가 되돌아와서 요염한 미소를 흘리며 짧은 치마 속에 그나마 조금 감추어져 있던 허벅지를 다 들어내 보이며, 원하시면 가질 수 있어요, 대가만 조금 지불해 주시면 되요, 라고 말을 했다고 치자. 이거, 무드 깨지는 일 아닌가 말이다. 머리 속에 그리던 욕망과 감미로운 상상이 모두 시궁창 물에 섞여서 꿀럭 꿀럭 소리 내며 빠져 나가 버리지 않는가. 돈도 마찬가지다. 제 발로 걸어 들어와서 다 가지세요, 하고 녹아 흐를 것 같은 목소리로 돈이 말한다면 지금 그 허벅지 여자처럼 김 빠지게 된다.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고 안타깝게 가능성을 보이다가 멀어져 가기도 하기 때문에 그 원수 같은 놈의 돈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아니겠는가. 당신이나 나나 돈 버는 데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 우리 그렇게 라도 결론 내리며 자위하기로 하자.

(아직도 더 쓰고 있습니다. 이런 서문에 해당할 수 있는 경험을 하신 분, 또는 남의 경험을 들으신 분은 제가 소재로 쓰도록 간단한 이메일을 보내 주시면 제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문 young@esila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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