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모음 (1)

2016.01.26 08:13

김영강 조회 수:860


1. 수레바퀴 사랑


    텔레비전에서 어느 청소원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방영한 적이 있다. 시작부터 콧잔등이 시큰했다. 희뿌연 새벽안개 속에 펼쳐진 화면, 우울하기 그지없는 배경음악과 해설자의 착 가라앉은 음성이 나를 슬프게 했다. 쓰레기를 수레에 잔뜩 싣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남편은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고 있었다. 수레는 뭐가 그리 심통이 났는지, 떡 버티고 서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계속 끌고 밀고 하니 한 발짝씩 발걸음을 뗐다. 처음엔 거북이 걸음마였으나 조금씩 속도가 붙으면서 정상운행을 하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그들의 모습에는 사랑과 꿈이 함께 배어 있었다. 같은 방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부부, 그들에게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나란히 굴러가는 수레의 두 바퀴는 균형이 맞아야 정상적으로 굴러간다. 균형이 깨져 한쪽 바퀴가 삐걱거리면 다른 한쪽도 구르지 못한다. 인생길을 걸어가는 부부도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그래서 서로 맞춰가면서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발 묶고 뜀뛰기 시합을 하는 것처럼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부르면서 때로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눈을 마주쳐가면서. 


    화면에 심취하다 보니 수레는 어느새 내 인생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남편을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아온 세월이 어언 50년이다. 그간에 세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변화를 겪었으나, 내 수레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인생을 굴러왔다. 쳇바퀴를 돌면서 그 궤도를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 아니면 이탈을 두려워했는지 모를 밋밋한 세월이었으나 어지러워 비틀거린 적은 수없이 많다.

유교의식이 철저하게 밴 봉건적인 집안에서 자란 나는 이북이 고향인 남자와과 결혼을 했다. 해방 직후 7남매를 거느리고 목숨 걸고 남하한 집안이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삼팔선을 무사히 넘었고 서울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결혼을 하고 보니 시댁의 문화가 내게는 너무나 생소했다. 아주 이상한 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왁자지껄 수다를 떨다가 방바닥을 치면서 깔깔거리고, 그것도 모자라 발랑 드러누워 배를 쥐고 웃는 시누이들····. 더구나 부모님 앞에서.

     한데, 언제부터인가 나 역시 그 분위기 속에 휩쓸리고 있었다. 늘 자로 잰 듯 반듯반듯하고 한 치의 오차도 용서치 않는 친정집의 침묵보다는 정겨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그들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어, 오히려 좋았다. 그러나 때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돌덩이가 되에 내 수레에 쌓이기도 했다. 지금 와 돌아보니 돌덩이 같은 문제들이 한갓 종잇조각에 불과할 수도 있었는데 그땐 왜 그리 무겁기만 했던지····.

      첫아기를 임신하여 배가 아주 불렀을 즈음, 나는 한밤중에 홀로 마루에 걸터앉아 한없이 운 적이 있다. 하늘엔 유난히도 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밤이었다. 그때는 정말 딱 갈라서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지금 기억에 없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제는 모두가 다 세월의 강물에 씻겨 내려가버렸다. 잊힌다는 진리가 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하나하나 가슴 한복판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고 있다면 지금까지 살아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부부가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할 때, 그들은 그 길이 어떤 길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발걸음을 떼어놓는다. 길의 시작이 당장은 눈에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이 결코 영원한 길은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그 길이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일 수도 있고, 험난한 가시밭길일 수도 있다. 또 길의 끝이 보이지 않고 또 언제 목적지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그냥 주어진 길을 그대로 걸어가면서 발에 걸리는 돌부리는 걷어내고, 걷어낼 수 없는 장애물들은 피해서 가야 한다. 산하가 가로막혔을 경우엔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한다. 길이 끊어져버렸더라도 막막하게 서 있지 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뻔히 알면서도 마음먹은 대로 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달리다가 숨이 차면 쉬기도 하면서 꾸준히 길을 닦다 보면 마음도 저절로 닦여질 것이다. 여기저기 부딪쳐 상처가 나고 또 그 상처가 아물다 보면 모가 나 있던 마음도 자연스레 둥근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을 테니까. 뾰족뾰족한 바위들도 수천 년에 걸친 파도에 씻기면 곡선을 그리지 않는가.

  

    생각해보니 내 수레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그랬다가 속도를 조절하니 다시 정상운행을 했고, 잘 달리기도 했다. 어느 때는 삐걱거리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한 채 50년을 끌고 밀고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참으로 부지런히 살아온 세월이다. 넘어져 크게 다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 참 감사하다.


    지금,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오래된 수레바퀴이긴 하지만 성능에 맞추어 쉬엄쉬엄 가고 있으니 편안하기 그지없다. 잘 달리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2. 고아원 하늘에 피는 노을 (2002년)


    해묵은 서류를 정리하다가 이십 년도 더 전에 오려놓은 신문지 한 조각을 발견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눈에 띄어 찾고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미 노오랗게 빛이 바랜 신문 조각은 세월의 흐름으로 온통 얼룩이 져 있었다. 흐르는 세월은 내게도 어김없이 찾아들어 잔잔한 활자들이 개미떼처럼 가물거리며 겨우 시야에 들어왔다. 연도와 날짜 없이 신문 조각만 달랑 잘라놓은 것이 아쉽기도 하다.

1980년쯤이었을까? 이곳 LA에서 발간되고 있는 한국일보에 짤막한 시 한편이 실렸었다. 제목은 ‘고아원 하늘에 피는 노을’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남자아이가 쓴 것이었다. 고아들의 글짓기대회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혀 신문에 실린 작품이었다. 시를 읽고 이렇게 감동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혼자 보기 아까워 복사를 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네주고 멀리 있는 친구에겐 우편으로 부치기도 했었다. 내게도 그 나이 또래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콧잔등이 찡해지는 감동을 더 느꼈는지도 모른다.


    고아원 하늘에 피는 노을

    이성우


    고아원에 아기를 두고 / 하늘에 오른 엄마는

    아기 배고플 때쯤 / 작은 밥공기라도 돼서

    아기 곁에 내려오고 싶을 게다.

    아기가 잠들 때쯤에 / 머리맡 베개라도 돼서

    하늘에서 내려오고 싶을 게다.

    그러나 / 애를 태워도 / 내려오지 못하는 손길

    애를 태워도 / 땅에는 와 닿지 않는 목소리

    마음이 타서 /고아원 하늘 위에 / 피는 노을이 됐나봐.


    초등학교 4학년이면 겨우 열 살밖에 안된 아이일 텐데, 어찌 이리도 엄마의 심정을 잘 그려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직접 체험한 배고픔과 추움과 외로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마음으로 표현한 이 시의 구절구절이 아이 자신이 원하는 간절한 소망과도 직결될 수 있으니까.

     고아원 뒷동산에 앉아 저녁노을을 쳐다보며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오도카니 홀로 앉은 모습이 쓸쓸하기 그지없다. 슬프디슬픈 눈동자에는 이슬이 맺혀 있다. 아무리 춥고 배고파도 엄마만 있으면 아이에겐 더 이상의 소원은 없을 것이다. 갑자기 아들의 모습이 아이에게 겹쳐지더니 어느새 아이는 아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를 읽으면서 나는 그만 그 아이의 엄마가 돼버린 것이다.

     “엄마, 나 배고파. 추워. 엄마, 왜 날 두고 혼자만 갔어.”

     이슬이 맺혔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아이는 드디어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아이의 눈물이 내 가슴을 적신다.

     “엄마 정말 보고 싶어. 보고싶어 죽겠어. 엄마, 엄마, 엄마아····. 엄마 어딨어? 대답 좀 해봐. 엄마아····.”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내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엄마, 나도 엄마한테 갈래. 엄마 따라갈래. 나 고아원에 있기 싫어. 정말 싫어. 싫단 말이야. 엄마, 엄마아····.”

     엄마가 있는 하늘나라에라도 따라가고 싶은 심정으로 이제는 아이가 앙앙 소리를 지르며 운다. 고아원에 있기 싫다는 아이의 말이 절규가 되어 내 귀청을 때린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노을 속에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땅에는 와 닿지 않는 애절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맴돈다.

     “내 아들아, 엄마는 항상 네 곁에 있단다. 네가 어딜 가든 이 엄마는 늘 너와 함께 있단다. 이제 그만 울음을 그쳐라. 그리고 마음을 굳게 가져라. 용기를 가지고 밝은 얼굴로 살아야 한다. 너에게는 희망 찬 미래가 있다.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해. 그 꿈은 꼭 이루어진단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창밖엔 노을이 곱게 물들어 있다. 온갖 빛깔들이 세월 속에 한데 얼려 오묘한 빛으로 채색이 된 저녁노을, 세상을 덮어주는 비단이불 같기도 하고 인생을 노래하는 연극무대의 배경 같기도 하다. 사람들도 살다 보면 나만의 색깔은 세월에 씻겨 온데간데 없어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루두루 섞여버리고 만다. 담장 밖에서 부산하게 들려오는 삶의 소리가 하나같이 다르듯이, 처음엔 그들도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목청을 돋구다가 어느새 음성을 죽여가며 화음을 맞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인생도 저 노을처럼 아름답게 채색이 되어 가는 것일 게다.


    벌써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이도 지금은 서른 살이 넘은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갑자기 궁금증이 밀어닥친다.

     그 동안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공무원이 되었을까? 아니면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고 있을까? 아마 지금쯤은 유명한 시인이 되었을지도 몰라. 어려운 환경 속에서 혹시 나쁜 길로 빠졌으면 어떡하지? 아니야,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아이이고 또 엄마가 늘 마음속에 함께 있었을 테니 절대로 나쁘게는 되지 않았을 거야. 결혼은 했을까? 착한 아내와 아이가 하나 둘쯤 딸린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혹시 입양이 되어 같은 미국 땅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다보니 한번 만나보고 싶은 충동까지 강하게 밀려왔다.

     청년을 그리는 내 마음에 어른이 된 아들이 어느새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흐뭇함에 저절로 떠오른 미소와 함께 점점 빨라지는 세월의 소리가 귓가에서 들렸다.   

     어른이 된 그 아이도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선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저 노을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을빛에 반사된 청년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고아원 하늘에 핀 노을이 땅에는 내려올 수 없는 엄마의 애타는 마음이었다면, 지금 저 노을은 어른이 된 아들을 바라만 보아도 가슴 벅차는 희열에 찬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이제 그는 슬픔이 기쁨으로 승화된 시를 적는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저 노을 속에.



3. 가보 1호 멸치볶음 (2007년)


    이십여 년 전, 허릿병으로 꼼짝을 못 하고 누워 지내던 적이 있었다. 디스크라는 의사의 진단 아래 당장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상태였다. 그러니 한동안 부엌 출입을 못한 건 기정사실이 아니겠는가? 팔팔 뛰어다닐 때도 나는 그리 부엌을 즐겨 찾는 편은 아니었다. 요리하는 시간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곳 로스앤젤레스는 밑반찬 문화가 한국 못지않게 다양해, 남편은 이미 사먹는 반찬에 길들여져 있었고, 또 본인이 요것조것 입맛대로 골라 사오기에 반찬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동네 친구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해서 날라다 주고, 멀리 있는 친구들까지 프리웨이를 달려왔기에 여느 때보다 반찬들은 푸짐했다.


    남편이 사오는 밑반찬 중에 멸치볶음은 필수다. 그런데 한 번은 서울엘 갔다가 숙모님으로부터 멸치 한 박스를 선물로 받았다. 꽤 많은 양이었기에 여러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도 냉동칸에 보관해서 오랫동안 먹었다. 물론 멸치볶음은 내가 만들었다. 요리 선수인 한 친구가 옛날 궁중에서 하는 식이라며 어찌어찌 하라고 강습을 해주었으나 나는 내 식대로 한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른 후, 좀 뜨거워지면 먼저 멸치를 볶다가 간장과 설탕을 넣어서 조금만 더 볶아주면 된다. 눈짐작이 내 조리법이지만, 설탕이 간장의 서너 배 정도는 더 들어간다. 시간이 약간만 넘어가면 탄내가 나니, 바짝 붙어서 지키면서 불조절과 멸치의 색깔을 잘 살펴야 한다. 조금 바삭거릴 정도가 됐다 싶으면 깨소금을 좀 뿌려서 얼른 그릇에 담으면 끝이다. 그리고 멸치가 뭉치면 식은 후에는 엉겨 붙어버리니 젓가락으로 살살 건드려서 서로의 몸뚱이를 떨어뜨려 준다. 볶은 멸치가 바삭바삭하면 일단 "실패"로 간주하는 분이 많으나, 우리 집은 그 반대다. 또한 너무 달다고 타박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이래야 성공작이다.

     요리 전문가들께서는 “하하하”하고 웃으시겠지만, 어쨌든 남편이 이때까지 먹어본 멸치볶음 중에 이렇게 맛있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우리 집 가보 1호라는 농담까지 덧붙였다. 나는 남편의 이 한 마디에 홀랑 넘어가 그 다음부터 멸치는 늘 내가 볶는다.

    

    아파 누워 있을 때, 요리 선수인 친구가 궁중식으로 멸치를 볶아서 공수를 해왔었다. 멸치가 빤딱빤딱하니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색깔이 노리끼리했다. 내가 볶은 거무티티한 멸치볶음에 비하니 참으로 궁전과 어울리는 명품 멸치볶음이었다. 맛도 좋았다. 그런데 남편의 입맛에는 맞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너무 싱겁고 입에 들어가니 누굴누굴해서 감촉이 영 글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다시 볶아 보겠다고 했다. 내 바통을 이어받을 테니 그 비법을 전수해달라는 기특한 말까지 덧붙여 농담인지 뻔히 알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간장이랑 설탕만 더 넣으면 돼요. 근데 설탕을 좀 많이 넣어야 돼요."

     "아니, 비법이 뭐이 그리 간단해."

     하지만 아깝게시리 명품을 변질시킬 수는 없으니 이건 이대로 먹자고 결정을 보았다.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탕탕탕 하고 뭘 깨부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도대체 뭘 저리 깨부수고 있을까? 그날은 살살 움직일 만해 벽을 짚고 겨우 발걸음을 떼 부엌엘 당도하니 남편이 주먹보다 좀 큰 시커먼 덩어리를 도마 위에다 놓고 드라이버를 곧추 세우고는 망치로 탕탕 내려치고 있었다. 영락없는 석탄 덩어리였다. 저게 뭘까? 나는 눈으로 보고도 그게 뭔지 몰랐다.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멸치가 달라붙어 돌덩이가 됐네. 설탕을 너무 많이 넣었나봐.”

     비법의 배합이 잘못되면 멸치볶음이 돌덩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명품 멸치볶음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가 멸치를 직접 볶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다.

     "그러게, 가보 1호를 아무나 만들면 그게 뭐 가본가? 버려요. 버려. 그걸 깨서 뭐하려고 그래요?"

"깨서 먹지. 이걸 아깝게 왜 버려."

     처음엔 칼로 팍팍 내려찍어 봤는데 잘 깨지지가 않아 드라이브에 망치까지 동원을 했다고 한다. 절구에다 탕탕 깨부수어 다시다를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언뜻 들어 깨진 조각 하나를 입에 넣었다가 나는 그만 뱉어버렸다.

     뭐든지 지나치면 이렇게 낭패를 불러온다. 허릿병에 걸린 것도 이일 저일 너무 무리해서 체력이 무너진 탓이었다. 그 당시, 난 현실을 둘러보며 모든 것에 감사했다. 심지어는 나를 쉬게 해줌에 아픈 것까지 고마웠다. 다른 치료를 먼저 받아보고 이것도 저것도 다 소용이 없으면 그때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한, 주위의 만류도 더없이 고마웠다. 한 자루의 촛불이 온 방안을 밝혀주듯 한줌한줌의 사랑이 세상을 밝혀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아프고 나니 햇빛에 빛나는 이파리 하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눈을 뜨면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수술 날짜까지 잡아놓았다가 취소를 하고, 먼저 한방치료를 받아보겠다고 했다가 주치의로부터 무식하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나는 지금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그리고 남편의 가보 1호 멸치볶음도 여전히 건재하다.

    한데 이런 경우는 멸치볶음이 아닌 멸치를 볶은 사람이 가보가 돼야 하는 거 아닐까?




 4. 초록 찬가


    어느 모임에서 “당신은 무슨 색깔을 가장 좋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하나의 색깔이 금세 떠오르지 않아 대답을 못 하고 좀 망설였다. 특별히 좋아하는 색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싫어하는 색도 없다. 색깔마다 제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으므로 내게는 모든 색깔이 다 예뻐 보인다. 그러나 꼭 한 가지를 집어내라고 한다면, 그것은 초록이다.

     초록, 거기에는 무한한 생명이 숨 쉬고 있다. 봄이 되면 고목의 앙상한 가지에도 새싹이 돋아나고, 겨울바람에 몸을 떨던 거무튀튀한 나뭇가지에서도 신비스럽게 연초록의 생명들이 코끝을 내민다. 춘삼월의 초봄이 지난 후에는 빛깔도 점점 짙어지고 잎새들도 무성해진다. 또한 무성한 잎새들이 울창한 숲을 이룰 때, 그곳에서 풍겨지는 숲 향기는 마치 향수처럼 달콤하고 싱그럽다. 그 싱그러움에 이끌려 눈부신 햇빛도 숲을 향해 달려들고 새들도 숲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숲에서 생명의 힘이 용솟음 치고 있는 것이다.


    이곳, 로스앤젤레스는 겨울에도 가로수가 온통 초록의 잎으로 뽐내며 서 있고, 집 앞의 잔디들도 거의 다 새파랗다. 사계절 내내 푸름 속에 생명이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리마다 넘치는 초록의 향기가 코끝을 스칠 때 우리의 기분은 상쾌해지고 마치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 같아 활기에 찬 힘이 솟아오른다.

     묘지에 가도 나는 그곳의 의미와는 상반되는 생명력을 느낀다. 파란 잔디가 끝없이 펼쳐지고 푸른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이 내게는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죽은 이들도 초록의 싱그러움을 한껏 마시며 숨을 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초록은 무한한 가능성을 심어주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파란 잔디밭에 꿈을 심으며 뛰노는 어린아이들을 상상해 보라.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동자는 즐거움으로 빛나고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떠오를 것이다. 꿈을 가지고 전진하는 아이들이 곧 우리의 미래가 아니겠는가?

     전진이라는 말을 쓰고 보니 갑자기 초록 신호등 생각이 난다. 초록은 멈춰 서 있던 차들을 줄줄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동시에 우리의 두 눈에도 반짝하고 생기를 띄어준다. 컴퓨터에 시달렸을 때도 잠깐 밖으로 시선을 돌려 푸른 나무를 바라보면 눈의 피로가 풀린다. 이리하여 초록을 희망 속에 건강을 회복시켜 주는 색깔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표현이 될까?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초록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초록은 조화와 화합의 일치를 이루고 침착하게 균형을 잡아주어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색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정의는, 하나하나 단어만 나열해 놓은 것을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본 것이다. 그러므로 초록은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색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속담에 ‘초록은 동색이다.’ 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씌어졌든 간에 그 뜻은 끼리끼리의 단결을 일컫는 것이니 의리와도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고 하면 좀 꿰맞춘 감이 들까?

     초록은 보호색이라는 데에도 그 특성이 있다. 물론 보호색에는 다른 색깔들도 많이 있지만, 나는 초록이 그 대표적인 것 같다. 잎새에 붙은 극히 보잘 것 없는 작은 벌레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초록으로 자기 자신을 감싸고 있기에 그렇다


    신부님들도 특별한 절기가 아닌 연중시기에는 초록색의 제의를 입는다. 가톨릭 연력에서 볼 때, 일 년 중 연중시기가 가장 길기 때문에 신부님은 다른 색깔보다도 초록색의 제의를 입는 횟수가 많다. 대림환 (待臨環 / Advent Wreath) 역시 반드시 초록색을 띈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 대림환이란 가톨릭의 절기인 대림절 크리스마스 무렵, 주로 집 문 앞에 걸어놓는 동그란 장식으로, 이 초록은 태어나실 예수님의 새 생명과 구세주를 기다리는 우리의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원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지도 모르고 또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도 모른다. 원이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그란 원의 모양을 한 대림환에는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천국의 뜻이 담겨져 있다. 변함없는 믿음, 영원한 생명, 희망에 찬 기다림, 이 모두가 다 초록과 연관되어 있어 초록 찬가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만일, 인류가 걸어야 할 바른 길을 색깔로 표현하라면 아마 그것은 초록이 아닐까?

어떤 이에게 초록색에 대한 느낌을 물었더니 초록은 사랑과 직결된다는 말을 했다. 뜻밖이었다. 사랑은 보통 붉은 계통의 색깔을 떠올리게 하는데 말이다.

     “자연에만 나무가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도 푸른 나무가 있죠. 누구를 사랑할 때, 그 대상은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늘 푸른 나무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니까요.”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어떤 사랑이라도 그것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원동력이 됨으로 그의 말에 이해가 되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초록의 대상은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새싹, 잔디, 나무 그리고 숲을 떠올리는 것은 다 공통된 생각이 아닐까?

거기엔 늘 생명이 숨 쉬고 있기에.



5. 선생님의 도시락 (2006년)


    그날은 소풍가는 날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니 벌써 50여년이라는 아득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그날 일은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 나는 진주에 있는 천전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어머니가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후려치시던 모습이 눈앞에 뚜렷이 떠오른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지금은 볼 수 없는 어머니····.

     어머니는 굉장히 미인이셨다. 영화 속에 나오는 여배우들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우셨다. 학교에서 학부형을 소집하는 날이면 나는 늘 신이 났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교실이 다 훤해져 젊고 예쁜 엄마가 참 자랑스러웠다.


    소풍가는 날 선생님 도시락은 늘 내 차지였다. 소풍 갈 때는 어머니도 같이 가셨는데 그날은 바쁜 일이 있어 못 간다고 하셨다. 그래도 나는 마냥 좋았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부엌에 나가셨을 것이다. 딸 도시락은 뒷전이고 선생님의 도시락에만 잔뜩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완벽하게 준비를 끝낸 어머니는 3층 찬합을 예쁜 보자기에 싸신 후, 선생님께 잘 갖다 드리라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선생님께 가려고 하는데 친구 하나가 선생님 도시락에는 뭐가 들어 있나 한 번 열어보자고 했다. 찬합 뚜껑을 열자 아이들은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오색찬란한 반찬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 친구가 말했다.

     “이기 뭐꼬? 한분 묵어 보자. 내 쪼깨만 맛만 보께이.”

     다른 친구들은 감히 손은 못 대고 이구동성으로 맛있느냐고 물었다

     “하모, 너무 맛있다. 아이고 이거는 소고기 아이가?”

     다들 호기심에 어린 눈초리로 쳐다만 보는데 그 친구는 계속 용감하게 이것저것 맛을 보았다. 그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묘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면서 내 도시락 반찬이 눈앞에 그려졌다. 나는 안다. 내 노란 알루미니움 도시락에는 김치랑 계란말이 달랑 두 가지만 들어 있는 것을. 작년에도 그랬으니까. 사실, 작년에도 나는 엄마한테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 이왕 해놓은 반찬인데 조금씩 덜어서 내 도시락에 넣어주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렇게 하지 않은 엄마가 너무 이상했다. 허지만 그때뿐이었고 금세 잊어버렸다. 나는 선생님 도시락을 우리가 먹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도 괜찮건나?. 너거 엄마 알믄 디기 야단칠 긴대.”

     “괜찮다. 누가 묵든 간에 맛있게 묵으믄 되는 기다. 뭐 선생님만 맛있는 거 묵으란 법 있나.”

     “그라모 니 벤또 선생님 갖다 디리라.”

     그러면서 그 용감한 친구는 내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생각한 대로 김치랑 계란말이 달랑 두 가지였다. 친구는 찬합에서 반찬 두어 가지를 덜어 넣으면서 야무지게 쏘아부쳤다.

     “너거 엄마 계모도 아인데 니 벤또는 이기 뭐꼬?”

     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하고 도시락만 얼른 안겨드리고 부리나케 뛰어왔다. 선생님 도시락은 양도 많아 친구들과 아주 잘 나눠 먹었다. 하얀 쌀밥에 과일 후식까지 먹을 때는 마냥 즐거웠다. 그런데 집에 갈 시간이 가까워오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말씀대로 아침에 미리 갖다드렸으면 되는 건데 노느라고 깜빡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어머니 얼굴을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고백을 하고 용서를 빌어야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것도 처음 봤고 회초리로 맞은 것도 처음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끌고 선생님 집으로 향했다.

     도시락이 바뀐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듯, 선생님은 태연하게 말씀하셨다.

     “괜찮다. 울지 마라. 누가 먹었던 간에 맛있게 먹었으면 됐다. 반성을 하고 어머니한테 용서를 빌었다니 착하구나.”

     나는 그때, 선생님이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다. 엄마만 옆에 없었다면 우리 엄마가 혹시 계모인지도 모르겠다고 선생님을 붙들고 엉엉 울고 싶었다.

    선생님의 모습이 눈앞에 훤히 떠오른다. 서울의 사범학교를 갓 졸업하고 우리 학교로 부임한 여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이 모두가 다 좋아했었다. 서울 말씨가 어찌나 듣기 좋은지 공부 시간에 떠들던 아이들도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는 내 딸이 그때 어머니 나이를 훌쩍 넘어섰으니 헤아릴 수 없이 세상이 변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어머니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한참 후에야, 나는 그 도시락 사건은 딸이 다른 아이들과 보조를 맞추어 그들과 섞이게 하려한 어머니의 깊은 배려였고, 종아리에 피멍이 든 것도 나를 위한 사랑의 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이 내 종아리의 상처보다 더 아팠다는 사실도 늦게야 깨달았다.


    어머니의 사랑이 강물이 되어 내 가슴에 흐르고 있다. 그 강물에 배를 띄우고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 날마다 항해를 계속하면서 이 사랑의 강줄기를 딸의 가슴에도 이어주리라 하고 나는 다짐한다.

     이리하여 강줄기는 끊이지 않고 영원히 이어지며 사랑의 물결은 대대로 넘실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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