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정서

2020.09.19 10:29

강창오 조회 수:114

날씨가 제법 화창한 엇그제 오후 오랫만에 동네 공원에 나갔다. 숨막히는 코로나의 제한속에서 나름대로 오픈 공간에 나와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있었다. 차 한잔과 자파케익 하나를 시켜놓고 앉아서 꽤나 활기찬 시야를 바라보노라니 잠시 코로나의 상황이 잊혀졌다.

연못에서 한가히 휘적거리며 노는 오리 혹은 백조떼등, 각종 사람들이 벤취나 잔디밭에 앉아 햇빛을 즐기며 노닥거리는 모습들. 가족과 함께나온 어린아이들이 잔디를 거닐며 비둘기와 오리떼들에게 먹이를 주며 한가한 오후를 즐기는데, 어느 인도계의 젊은 두 여인이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나의 앞 테이블에 앉았다. 그 여인들은 대화를 시작했고 곧 이어 그 남자아이는 온통 잔디밭을 뛰어 다니며 새들과 오리들을 쫓기 시작했다.

처음에 몇번 그러다 말거니 하고 지켜 봤지만 그 아이는 쉬지않고 계속적으로 새들과 오리들을 쫓았고 새들은 후다닥 후다닥 사방팔방으로 날았다 앉았다하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혹시라도 함께온 두 여인이 그 아이를 자제시켜주길 기대했지만 그녀들은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조금도 주시하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수다에 몰두했다. 새들과 오리들이 혼비백산해 이리저리 날아 움직이자 그나마 잔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안절부절하기 시작했고 먹이를 주던 다른 아이들은 먹이를 손에쥐고 멍하니 울상하며 서있었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 역시도 별다른 대책없이 아쉬운 표정으로 물끄러니 그 현장을 바라볼뿐이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불현듯 작년 여름 생각이 났다. 딸 이사를 도우러 갔던중 집 수리건이 생겨 우리 모두가 몇일간 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하루는 손녀가 조르는 바람에 모두들 정원과 연결된 호텔 수영장으로 나갔다. 정원과 수영장은 이미 사람들로 바글거렸는데 거이가 히스파닉인들이었다. 그들은 정원과 수영장 테이블을 거이다 차지해 음식을 널려놓고 피크닉을 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가족들이 물놀이 하는동안 앉을 자리를 찾으려 기웃거리니 한 젊은 남자가 자리를 좁히며 자기 옆에 앉으라는 것이었다. 그 가족들에게 피해가 될까싶어 염려했지만 피곤한 다리를 어찌할수없어 고맙다고 하며 앉았다.

맞은편 자리에는 그의 부인인지 친척인지 하는 여인과 친구인듯한 여인이 수다를 떠느라 불청객인 나의 존재는 의식조차 않아 끼어앉은 나의 염려가 한낫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자기들이 도미니카 공화국 사람들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며 음식을 먹으라고 권유했다. 뜻하지 않은 음식제공에 감사하며 몇가지 음식을 맛보면서 수영장으로 시선을돌렸다. 한 5-6세 되는 남자어린애가 제일 가까이에 눈에 들어왔다. 아주 통통하고 딱부러지게 생겼고 귀염성도 넘치는 아이였다. 특이한게 그 아이는 같은 자리에서 계속 똑같은 다이빙만 하고 놀았는데 그냥 다이빙이 아니라 뒤로 돌아서서 공중제비하는 다이빙이었다.

그런데 지켜보는동안 그 아이는 그 어렵게 보이는 다이빙을 한번도 실패하지 않고 잘해 보기도 즐겁고 참으로 기특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매번 다이빙을 끝내고 튀어나와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여인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다이빙 자세를 취하면서 자기를 봐달라고 애걸한뒤 엄마의 시선을 기대하며 물속에 뛰어들었다. 허지만 그 엄마는 수다에 몰두해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끔 테이블까지 다가와 엄마에게 보아줄것을 요청했지만 그 엄마는 방해하지 말고 저리가라며 고래고래 소리질렀고 그아이는 그럴때 마다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를 내며 다시 물가로 달려가곤 했다.

아마도 그 아이는 자기 엄마에대한 공포심으로 항상 응축되어 있는것 같았다. 그 똑같은 광경이 거기 앉아있는 거이 한시간 가까이 반복되었는데 참으로 놀랍게도 그 엄마는 내가 떠날때까지 한번도 그 아이의 다이빙을 보아주지 않았고 소리를 질러 아이를 쫓아내고 있었다.

제삼자인 나도 보고 놀랄만큼 자랑스러운 어린아이의 다이빙 실력이는었는데 그 아이 본인이 그것을 엄마에게 자랑해 인정받고 싶어 한시간 가까이 다이빙을 반복하며 엄마에게 그렇게 봐달라고 애걸을 했건만 끝내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것이었다. 내가 시간이 되어 자리를 떠야만하는 그때까지도 봐달라고하는 간절한 외침과 실망한 눈으로, 하지만 혹시라도하며, 엄마의 시선을 갈구하며 계속 물속에 뛰어드는 그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애절하게 보이는지 그 엄마가 한없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아이가 얼마나 서운했을까? 물론 아이니까 당시당시는 구애받지 않겠지만 작으나마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엄마의 무관심은 가히 그 아이의 성격구성에 크게 부정적으로 작용할거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씁쓸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 수십번의 다이빙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봐 주었더라면……

뜻하지 아니하게 목격한 공원에서와 수영장에서의 일들이 괜스레 내자신에게 응어리진 의문만을 안겨주었다. 그 부모들이 교육을 받지못하고 자란 탓일까? 아무리 그래도 자기자식인데? 조그만 어린아이들의 작은 심정들을 그토록 이해할수가 없었는가? 그렇게 무관심으로 냉대해야만 했었는가?
아니, 교육과는 하등 상관없는 그들의 일반 생활 정서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슬픈 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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