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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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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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계선을 넘어 동토의 첫걸음- 금강산 구룡폭포

                                                                                               양상훈

 

   대북 햇볕정책으로 남북 화해무드의 물결을 타던 시기. 20049뉴욕평통위원자격에 한국 정부의 후원으로 방북일정에

금강산 관광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남북 간의 적대관계를 불식하고 화해와 협력 ,포용을 기반으로 민족공동번영과 평화적 통일을 향한 기본 틀이 햇볕정책이었다.

199811월에 시작한 금강산관광은 처음에는 휴전선 사이에 바로 근접인데도 강원도의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가야만했다. 그 후 협상으로 2003년부터는 버스를 타고 육로관광이 허용되었다.

뉴욕평통위원 일행은 2004101일 서울에서 버스로 북한지역의 턱밑 강원도 고성에 있는 현대 아산 건물에 도착하였다. 금강산 관광에 대한 기본교육을 받고 셔틀버스를 타고 동해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하였다. 남측 출입국 검사소(CIQ) 에서 신분증과 출입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북한출입증으로 볼 수 있는 명찰을 목에 걸고 북한을 향해 버스로 출발했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일행이 북측 출입사무소(CIQ) 앞에 도착하자  셔틀버스가  정차하였다. 창밖을 내다보니 키 작고 야무진 모습의 인민군이 먼발치에서 총검을 메고 우리의 일거일동을 노려보는 듯했다. 그러더니 바로 버스에 인민군이 올라와서 뭔가 수상한 점이 있는지 검열을 하는데 그 군인의 모습이 어린나이에 까만 피부에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이었다.

  세관신고서와 검역확인서에 의해 군복을 착용한 북측 세관 담당자들(거의 고참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얼굴과 입국증의 사진을 꼼꼼하게 대조하였다. 검색대에서 한사람씩 가방 하나하나를 열어 짐 검사를 하는데 바다건너 먼 나라로 출국하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사전에 명단을 북측에 제출하여서 그런지 평화통일일꾼들이라서 그런지, 멀리 바다건너 온 일행이라 봐주는 건지 까다롭지 않게 통과하여 입경할 수가 있었다.

북측 출입사무소를 통과해서 군사 분계선을 넘으면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게 되는 곳이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이다.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시간동안 만감이 교차되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에 적진을 들어가고 있으니. 평화를 향한 신호탄인지 곳곳에 전시작전 장애물이 많이 철거 되어있었다. 옆에 앉은 우리 측 버스안내원(북측인민군은 조장이라고 부르며 감시통제) 에게 말을 걸어 여러 정보를 얻기도 했다. 이 안내원은 하루에 남북을 두 번씩 왕래하며 매번 신분증을 맡기고 찾는 번거로움. 수시로 인민군이 점호를 취하여 기강을 잡는다고 불평했다. 그에게 오전 임무가 끝나고 오후일정까지 그동안 어떻게 보내느냐? 고 물었더니 뜻밖에 답이, 데이트를 하며 보낸다고 천연덕스럽게 털어 놓지 않은가! 상대는 중앙의 국가안전보위부소속 요원이 감독차로 출장 온 엘리트청년장교? 라 하였다. 나는 번뜩 놀라 상황을 의심하며 걱정되었다. 한편, 남북의 화해도 정치적 로드맵만이 아니라 민간접촉으로 쉬운 길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정들어 세뇌공작?에 유혹되지 말라고 당부하였더니 손사래를 치며 걱정 마시라고 단호하게 소신을 밝혔다. 철저한 교육으로 안보무장이 확고한 듯 보여 우리보다 한수 위가 아닌가 싶어 안심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우리일행은 7명으로 조를 짜고 온정 각에 몰려갔다. 한식부폐로 준비되어있는 이 식당은 거의 배구장만한 넓이에 인간열차로 돌며 수십 가지의 나물과 반찬이 즐비하게 놓여있는 식탁을 보고 놀랐다. 양념장을 듬뿍 넣어 비벼보니 어찌 낙안읍성의 팔진미 비빔밥에 비교할까.

금강산 입문인 온정리 마을은 우리 이웃마을처럼 느껴졌다. 따뜻한 정이 넘치고 더운 우물이 나온다고 하여 지어진 온정리라는 지명이다황금들판이 넘실거리는 온정리 들판의 논두렁에 쌓아놓은 볏단들은 남쪽에서 익숙한 우리의 논두렁 들판과 다름이 없었다.

 우리일행은 금강산(1638m)대표인 제1경 구룡폭포 등반을 감행하기로 했다. 금강산 일대는 10월초인데 가을이 물들기 시작한 때였다. 금강산 12000봉우리에 곱게 단풍이 물들어갔다. 조물주의 조화라고 시인묵객(詩人墨客)들에 극찬을 받았던 가을 풍악산이 화려하게 몸단장을 했다.

선녀와 나무꾼전설이 깃든 삼팔달 계곡의 오색단풍은 눈이 부실정도였다. 세상만물을 돌로 빚었다는 만물상 바위절벽에도 울긋불긋 가을꽃이 내렸다. 금강산을 보기 전에 천하의 산수를 논하지 말라던 시인들의 말 그대로였다. 구룡폭포 가는 계곡에는 붉은 듯 푸른 듯 장쾌한 풍치에 넋을 잃고 탄성을 질렀다. 흩날리는 옥구슬이요 마시면 약수라는 <옥류동>의 초록 물은 단풍과 어우러져 그대로 한 폭의 산수화였다.

겨울 채비에 분주한 다람쥐도 토실토실 살이 올라있었다. 속세의 무상함을 절로 깨닫게 해준다는 구룡폭포 계곡의 신비경은 앞으로 오래 동안 기억에 잊혀 지지 않을 것이리라.

  구룡폭포 코스는 목련관에서 출발하여 수림대-양지대-삼록수-금강문-옥류동-연주담-구룡폭포-상팔담 코스로 왕복의4-5시간이 소요되었다. 구룡연으로 오르는 계곡에는 진녹색 맑은 물이 흐르며 티끝 하나 없는 명경지수(明鏡止水)이었다. 주변 환경이 철저한 관리로 너무 깨끗한 상태라 감동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산 정상 한 편에 위생실이 숲속에 약간 가려진 듯 한곳에 설치 되 있었다. 건물 앞 입간판엔 소변1, 대변2불이라는 사용료가 적혀있는 유료 화장실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같은 소변인데 여자위생실은 좌변기 쪽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2불을 내야한다. 관리인에게 따지니 소변인지 대변인지 자기들은 모른다는 이유를 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북측 관리인들이 산꼭대기에 있는 화장실 인분을 퍼서 지개를 지고 아래로 나른다고 한다. 이정도로 금강산의 자연 생태환경을 보존하기위한 안간힘을 다 쏟아 붓는 열성은 대단하였다.

  구슬처럼 흘러내리는 옥류동계곡이 만들어낸 폭포물의 모습은 봉황이 춤추는 것 같다고 해서 무봉폭포라 했다. 이곳은 방랑시인 김삿갓 조차 절경에 감탄해 시 한수를 읊었다는 곳이다. 쉼터 명소마다 커다란 바위에 빼곡이 체제선전 글이 어김없이 새겨져있어 눈에 많이 거슬렸다. 통일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등반로 중간 중간에 물과 사이다 과자 엿 등을 파는 간이점도 보였다. 유창한 말솜씨로 재잘대며 판매하는 북측 아가씨들은 예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순수해보였다. 안내도 하지만 물건도 팔면서 감시도 했다. 상부에서 지시도 받고 보고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내원에 따라 임무도 등급도 다른 듯 숙련된 정보원도 있어 우리는 방심 할 수 없었다.

  일행이 최고 명당 옥류담에 이르렀을 때에 기다렸다는 듯 세련되게 맞이하는 두 안내원과 마주쳤다. 자주색 투피스차림으로 자연산의 젊은 미녀 아가씨는 우리의 인사를 받을 틈도 없이 일행의 명찰을 유심히 보더니, 평통은 뭐하는 곳이며 몇 명이 이곳에 왔는지? 통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등 거침없이 묻는 것이 아닌가. 직감적으로 정보원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어 정치적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 선생님들! 미국 뉴욕에서 오셨군요. .제국주의 부시 깡패정권은 우리공화국을 못살게 압살하려고 하는데...”하며 그 예쁜 입에서 따발총을 연발하였다. 정치 논쟁은 피한다는 지침을 숙지한 우리로서는 무 대응이 상책이었다.

사실 미국이 사막의 폭풍작전으로 1주일 만에 이락에 사담 후세인정권을 굴복시켰다. 북한도 이락,이란 함께 한축으로 악의 축이라 몰아붙이며 독제국가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폈던 것을 의식하고 계산된 태도가 아닐까 판단했다. 김일성 뺏지를 달고 능숙한 엘리트냄새를 풍기기에 예사롭지 않게 보여 달래며 친절하게 다가갔다. 우리는 방북취지도 설명하면서 처음만난 민족끼리 서로 비방하지 않기를 간청하기도 했다. 미국에 오래 동안 살아보니 미국만큼 세계약소국가에 대하여 그렇게 많이 협력하는 나라도 아마 없을 것 같다. 올해도 미국이 북한에 민간부문에만도 천만 불 이상 협조 한다지요, 라고 늘어놓았더니 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다음, 안내원이 북한선전을 썩어가며 토해내는 명연설?을 열심히 들어주었다.

이어 우리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수줍어하며 드디어 한곡을 뽑아내기까지 하였다 북한여성 특유의 목소리로 감동적이었다. 점차 함께 소풍 나온 분위기로 가득 채워졌다. 응답으로 노래는 못하니 시 한수를 낭송 하겠다하면서 의도적으로 북한출신 유명시인 김소월, 모윤숙, 노천명 등을 거론하며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낭송하였다.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느닷없이 안내원이 좌판에 늘어놓은 엿가락을 우리에게 선물하여 시식해보라 권유하였다. 울릉도 호박엿에 버금 갈 정도로 맛이 있어 엿 재료를 물었더니. 뜻밖에 염소젖을 짜서 만든 것이라고 자랑하였다.

 일행은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어 좌판 모든 물건을 싹쓸이 몽땅 사버렸다. 값이 모두 350불정도로 큰 부담은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주고 일부관광객들에게 나눠줬더니 동그란 눈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많은 대화로 덕담을 나누면서 친해졌다. 한 핏줄에는 감정과 국경이 없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구룡폭포는 높이가 약74m 너비4m 로서 금강산에서 가장 웅대하고 경치가 뛰어난 절경으로 꼽힌다.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소리에 물보라로 뿜어대며 쌍무지개를 그린다. 천지를 진동하며 골짜기에 울려 퍼진다. 9 마리용이 어울려진 고함소리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흔든다. ! 통일의 염원을 외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