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백까마귀의 눈물

2021.05.03 07:37

김영강 조회 수:66

 

백까마귀의 눈물  

 

김 영 강

 

 

< 1 >

 

티나의 짓이 분명하다. 혹시 다른 데에 두었나 하고 기억을 되살려 볼 필요조차 없다. 현금 천 달러를 봉투에 넣어분명히 안방 화장대 작은 서랍에 넣어두었었다. 그런데 돈이 들어 있는 봉투가 사라져버렸다.

티나는 하나밖에 없는 수미의 딸이다. 그녀는 동부에 있는 A 대학에 합격해 곧 집을 떠나게 돼 있다. 수재만 모인다는 A 대학에 너끈히 합격해 부모를 한껏 기쁘게 해준 딸이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책임감 강한 모범생으로 선생님들의 칭찬이 자자해 아빠로부터는 완전 크래딧을 받고 있는 티나다.

그러나 수미 생각은 다르다. 무슨 엄마가 그리 쉽게 딸을 의심하느냐고 나무랄 수도 있겠지만 수미는 확신한다.

이번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티나는 분명히 아니라고 발뺌을 할 것이고, 남편 역시 딸 편을 들 것이 뻔하지만.

수미의 마음은 가슴에 시커먼 돌덩이 하나가 얹혀 있는 듯, 천근만근 무겁다.

   수미는 그때 그 일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티나가 아홉 살이 되던 해였다. 핸드백 지갑에 20달러짜리가 넉 장이 있었는데 석 장밖에 없었다. 그러나 혹시 자신이 잘못 생각했나 하고 그냥 넘겼다. 사실, 돈이 정확히 얼마가 지갑 안에 있는지를 모를 때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티나 짓이 확실했다.

   그 이주일 후 또 그런 일이 생겼다. 많은 액수는 아니었으나 돈이 몽땅 다 없어져버렸었다. 역시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지갑에서였다. 엄마의 직감은 정확했으나 티나는 끝까지 발뺌을 했다.

지난번에 20달러 없어진 것까지 들추며 어릴 때 아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아내의 주장을 무시하고 남편은 엄마가 어찌 딸을 믿지 못하느냐면서 티나 편을 들었다. 말이 없고 지극히 조용한 그가 적극적으로 딸을 두둔했다. 수미가 어디다 쓰고 기억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너무 완강해 도리어 내가 괜한 의심을 하나?’ 하고 수미가 얼떨떨할 정도였다.

 

   이런저런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어쩌면 자신이 모르고 있는 사건도 더러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정수리를 친 적도 있다. 마켓에서 작은 물건을 호주머니에 넣고 나오는 것쯤은 마음먹기 달린 것이기에···. 그것은 분명히 도벽이다.

   어느 날은 친구네에서 인형을 몰래 가져와서 자기 방에 감추어놓은 것을 발견했었다. 고급 프랑스제 인형이었다. 느낌만으로도 몰래 훔쳤다감추어놓았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티나는 아니라고 우기며 부인했다. 친구가 줬다는 것이었다. 친구 누가 줬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않고 엄마를 원망했다.

  “돈 훔쳤다고 야단치고 이번에는 인형 훔쳤다고 야단쳐? 엄마는 내가 그렇게 미워?” 하면서 큰 소리로 대들었다. 수미는 어이가 없었다.

  “왜 내가 널 미워하니? 안 미워해.”

  “? 안 미워해? 지금 미워하고 있잖아. 엄마는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왜 무조건 훔쳤다고 그래? 무슨 그딴 엄마가 다 있어?”

엄마에게는 말할 기회도 안 주고 티나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친구 누구라면 엄마가 알아?”

엄마를 무시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엄마에게 뒤집어씌우는, 그 미워하는 감정이 티나의 온몸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수미는 티나가 자신이 낳은 딸 같지가 않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엄마가 뭐 어쩌겠어? 영어도 못 하면서.’ 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보통 때도 엄마가 영어 못 하는 것을 은근히 나타내는 티나다. 천천히 알아듣게 말을 하면 다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부러 말을 속사포로 쏟아놓으며 못 알아듣게 만든다. 도대체 소통이 안 된다. 정말 못된 딸이다. 수미의 자격지심에서 온 느낌만은 절대 아니다.

남편에게 얘기해서 해결을 해야 하나?’

남편은 항상 딸 편을 드니 이번에도 티나 말을 믿을 것이다.

만일 티나가 결백하다면 아빠한테 얘기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남편에게서는 별 말이 없었다. 티나는 더 입을 꽉 다물었다. 티나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수미는 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다. 커가면서는 한참은 뜸했으나, 혹시라도 바깥에서 그런 사고를 치면 어쩌나 하는 강박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일이 꼭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전화벨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 적도 있다.

남편은 티나를 철석같이 믿었고, 의견이 서로 맞지 않을 때에도 그는 항상 티나가 옳다고 했다. 머리가 좋으니 판단력도 옳을 것이란 믿음일 게다. 처음엔 맞서서 주장을 펴봤으나 결과는 늘 수미의 참패였다. 언제나 스코어는 21이니 게임이 안 되었다. 그냥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최선의 길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꼭 해야 할 말도 표현을 못 하고 참고 사는 것이 어렸을 적부터 잘 길들여진 수미 삶이다.

 

< 2 >

 

   수미는 태어나자마 부모님의 얼굴도 모른 채 고아원 문 앞에 버려졌다. 자라면서 그녀는 내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왜 나를 버렸을까?’ 하는 고민 속에 빠져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다. 깊고 고요한 밤 고아원 문 앞에 자신의 분신을 버려놓고 눈물을 흘리며 숨어서 지켜보는 엄마의 모습도 상상해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는 엄마의 울음소리도 상상해봤다.

   고아원 하늘에 피어 있는 고은 노을을 쳐다보며 우리 엄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야. 아마 저 하늘나라에 있을 거야.’ 하는 생각도 했었다. 이 세상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미에게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

   다른 아이들의 서류함에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은 쪽지가 거의 다 보관되어 있는데 수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고아원에 들어온 날이 생일이었고, 이름은 원장이 지어주었다. 버려진 아기에게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수미는 어린 시절을 무사히 넘기고 고아원 살림살이 전반의 일을 맡아 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었다. 입학금은 겨우 마련이 되어 등록은 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계속 학비를 조달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 일찍 고아원을 뛰쳐나가 공장에 다니는 친구의 권유에 수미는 혹했었다.

 “너는 대학생이고 얼굴도 예쁘고 늘씬하니까 본사 비서실에 들어갈 수 있어. 내가 실장한테 얘기해 놨으니 꼭 될 거야.”

그러나 친구는 공장에 다니는 것이 아니고 유흥업소의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결국은 그녀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을 적에는 이미 때는 늦었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학비는커녕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으니까.

 

   참 힘든 세상이었다. 그 힘든 세상에서 수미가 터득한 것은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불신으로 똘똘 뭉친 그녀 눈에는 세상에 온통 마귀들만 득실거렸다.

  대학생이라는 신분 덕에 수미는 일류 호스티스로 인기가 대단했다. 타고난 미모와 몸매가 한몫을 더했다. 학교에는 벌써 휴학계를 낸 상태였으나 수미는 언제나 대학생으로 통했다. 철저히 포장을 한 것이다. 되도록 포장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그녀가 사는 세상의 현실이었다.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도 숨기고 싶은 수미다.

  ‘고아가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원해서 고아가 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고아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애쓰며, 부끄러워하고 주눅 들어야 하는 것인가?’

  고아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 차갑기 때문이다. 본인은 아무 잘못이 없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쁜 짓 안 하고 착하게 살아도 세상은 비정하다. 수미 역시 착하게 살았다. 그러나 학교 다닐 때에 선생님으로부터 차별대우를 받았고, 아이들에게서도 왕따를 당했다. 참 억울하다. 이 모두가 다 부모에게서 버려졌기 때문에 겪는 일임은 틀림없다.

  ‘오죽하면 자식을 버렸을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낳아준 엄마를 이해하고 또 미화시켜서 홀로 상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밑바탕에는 늘 원망이 깔려 있었다. 포장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도 부모 탓이라 생각을 하니 그들도 이 세상에 들끓는 마귀와 다를 바 없다고 느껴졌다.

   포장, 거기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착한 일 중에서도 지극히 착한 일을 한 사실에도 수미는 포장을 덮어씌우고 있다. 그녀는 신장이 하나밖에 없다. 고아원에 있을 때, 신장 하나를 떼어냈다. 같은 고아원에 있는 생명이 위독한 친구에게 이식을 해준 것이다. 수미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

   공장에 다닌다는 친구의 꼬임에 빠져 고아원을 나온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신장이식 후, 원장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대학 4년 학비는 꼭 지급해주겠다던 약속이 입학금 한 번만으로 끝났었다. 그렇다고 학비 때문에 신장을 떼어준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당시, 수미는 친구를 살려야 한다는 데에만 급급했었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는 것이 두려웠다. 진심이다.

   신장 하나만으로도 잘 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기 전부터 수미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후에는 백프로 그대로 믿었고, 그 믿음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 3 >

 

  어느 날 아침이었다. 여행을 떠나려고 예약을 하고 보니 시간이 급했다. 행선지는 제주도였다.

  부리나케 공항으로 나가 가방을 끌고 뛰다가 수미는 그만 어떤 남자와 맞부딪쳐 나뒹굴어졌다. 그 남자는 끄떡도 안 했고, 수미는 바위에 부딪친 느낌이었다.

  남자는 외국인이었다. 그는 수미가 나뒹굴어지자마자 얼른 일으켜주었는데, 뜻밖에도 그의 입에서 아이쿠, 미안합니다.” 하는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뒤이어 나온 말도 역시 한국어였다.

  “어디 다친 데는 없습니까?”

   수미는 깜짝 놀라 다시 쳐다봤는데 분명히 외국인이었다. 얼굴이 다른 외국사람과는 달리 이목구비가 선명하지 않고 펑퍼짐했다. 키는 작은 편이고 체격은 다부지고 가슴은 넓었다. 그 남자는 그녀와 같은 비행기를 타게 돼 있었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제주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운명적으로 만났고, 만나자마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의 이름은 데이브 우드였다. 데이브는 제주해양센터의 연구원으로 5년 계약을 맺고 한국에 파견을 나온 해양학박사로 이제 곧 계약기간이 끝나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수미의 영어 실력보다는 데이브 한국어 실력이 월등히 나아 서로의 의사는 소통을 할 수 있는데도 그는 말수가 극히 적었다.

  수미는 고아원에 있을 때도, 호스티스로 일을 할 때도 영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조금은 귀가 틔었고 외국인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수미는 데이브가 좋았다. 그의 품은 따뜻하고 편안했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그가 다 해결해줄 것 같아 든든했다.

  데이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첫눈에 아주 예쁘다는 데에서 단박에 끌렸고, 화장기 없는 깨끗한 이미지에 우수에 젖은 듯한 눈동자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보호본능의 감정까지 우러나왔다.

  수미는 데이브에게 고아원 얘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둘러댔다. 물론 유흥업소에 나간다는 사실도 숨겼다. 제주도와 서울의 거리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했나,  신분이 탄로 날까봐 그를 만날 때마다 불안에 떨었다. 신장이 하나뿐인 것에도 신경이 쓰였. 신장 하나가 없다는 것을 여느 때는 의식도 못하고 살아왔는데 데이브를 만나고부터는 그것도 자꾸 마음에 걸렸다.

  포장은 두겹 세겹으로 갈수록 늘어갔다. 포장이 벗겨져버리면 그가 떠나버릴 것 같아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불신의 세계에서 외로움에 지쳐 있던 수미에게 데이브의 존재는 든든한 언덕이었다. 사랑의 힘으로 외로움을 씻어 줄 수 있는 넉넉한 강줄기였다. 열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오히려 그녀에게는 의지가 되었다.

  데이브는 그녀가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거목이고, 자신은 풀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수미는 잘 안다. 차라리 그도 풀포기에 불과했으면 싶다.

  그러나 데이브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 수미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누군가가 속삭였다.

  ‘너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왜 망설여? 잡아. 잡아. 데이브의 손을 꼭 붙들어. 사랑하잖아? 사랑은 쟁취야.’

 

< 4 >

 

  한국을 떠나면서 수미는 맹세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태어나서 스물두 해, 좋은 기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세월이었다. 그녀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미국으로 간다는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미국은 좋기만 한 땅은 아니었다.

   믿음직하고 든든한 데이브와 결혼을 했건만, 그녀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뭔가 모를 불길한 예감이 자꾸 앞섰다. 사춘기 때부터 그랬다. 왠지 자신이 빨리 죽을 것만 같다는 엉뚱한 생각에 시달린 적도 있다.

 

  5년 동안의 한국근무를 마치고 해양연구소 본부로 돌아와 보니, 데이브는 너무나 뒤떨어져 있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공부밖에 모르는 공부벌레였다. 항상 수석을 고수했고, 박사학위도 남들보다 일찍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앞서가는 후배들을 따라가려면 그들보다 두배 세배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직장에서의 일상이 너무나 바빴고 집에서도 밤늦게까지 컴퓨터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논문 제출할 기일이 급박했을 때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자체가 무거운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내와 함께 라는 것이 좋았다. 왠지 결혼을 못 할 것 같은 예감이 늘 앞을 가로막았던 데이브다. 한국에 나가 수미를 만나고, 결혼까지 했다는 사실은 정말 꿈같은 현실이었다.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데이브에게는 아내에게 관심을 쓸 겨를이 없었다. 오직 직장일이 우선이었다. 첫 대면에서 보호본능의 감정까지 느꼈고, 차차 만나면서는 연민의 정을 깊이 느껴 이 여자는 꼭 내가 지켜주어야 한다.’고 다짐했던 그였다.

 

  말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남편을 보며 수미는 별별 상상을 다 했다.

  ‘혹시 나의 실체를 알아버렸나? 아니면 겉모습에 반해 결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 속이 텅텅 비고 말이 안 통해 실망이 커서 저러는 걸까? 결혼을 잘못했다고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 수가 없었다. 알 수가 없는 건 그의 가족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가닥이 다르다 치더라도 수미로서는 이해가 안 되었다. 그는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읜 후, 계모 밑에서 자랐고, 의붓동생이 하나 있었으나, 가족 간의 왕래가 일체 없었다. 수미가 미국에 온 한참 후에 인사차 딱 한 번 만났을 뿐이다.

  그때, 시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잊히지가 않는다.

  “데이브는 어릴 적부터 참 조용한 아이였어요. 부끄럼을 너무 많이 탔지요. 그래서 나는 아들이 결혼을 못 할 것 같았는데, 내 아들과 결혼해줘서 고마워요.”

 

  수미는 집에서 가까운 옥스나드 커뮤니티칼리지 영어 클래스에 다녔다. 계속 다니다 보니 유창하지는 못 해도 웬만한 대화는 할 수 있게 되었으나 공부는 어려웠다.

  남편은 여전히 연구소 일에만 몰두했다. 직장 일에 관해서는 일체 말이 없는 남편이라 수미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해양학박사이니 바다에 관한 것이라고만 막연하게 짐작할 뿐이다. 수질을 연구하고, 물고기나 조개류가 병들거나 미역, 다시마 등에 관한···.

  언뜻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설명을 해주어도 너처럼 무식한 여자가 뭘 알겠니? 다른 부인들은 남편의 논문도 정리를 해주고 하는데 도대체 너는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니?’

   한 번은 연구소의 가족 모임에 남편이 수미를 데리고 갔다. 직원들은 물론이고 부인들도 아주 인텔리 여성들이었다. 영어를 겨우 알아듣기는 하겠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가 말이라도 걸어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긴장을 하다 보니 배까지 아팠다.

   세월이 갈수록 수미는 자신이 남편에게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웠다. 해가 질 무렵,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곤 했다. 지긋지긋하던 한국이 그리웠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수미에겐 돌아갈 집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오직 남편뿐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말을 했다. 한국 교회에 한 번 나가보라는 것이었다.

  “신앙을 가지면 당신 생활이 활기차고, 지금보다는 더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수미도 신앙이 없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인데,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꽁꽁 싼 포장이 벗겨질까 겁이 나서 수미는 즉석에서 거절했다. 그리고 곰곰 생각해봤다.

  ‘내가 자기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부담스러운가? 내 삶의 재미를 교회로 돌려 자기로부터 떨어져나가게 하기 위함일까? 그럼 내가 지금 재미없게 외롭게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단 말인가?’

   무심한 그가 아내의 건강을 챙기기도 했다. 특히 신장을 거론하면서, 꼭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사실, 수미의 한 겹 포장은 티나를 임신했을 때 벗겨졌다. 그녀는 언니한테 신장을 떼어주었고, 언니는 그 일 년 후에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 5 >

 

   돌이켜보니, 티나를 낳은 후의 2, 3년 동안이 수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고아인 그녀에게도 피를 나눈 자식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이는 볼수록 사랑스러웠다. 손가락 발가락 하나하나도 그리 예쁠 수가 없었다. 그것들이 고물고물 움직일 때는 생명의 신비함에 가슴이 떨렸고, 아이가 방긋방긋 웃을 적에는 그녀의 입가에도 활짝 웃음이 퍼졌다.

   그 당시, 불현듯 자신을 버린 부모가 떠올라, 뒤엉키는 혼란스러움에 감정을 주체 못하고 휘청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다가 오죽하면···.’ 하고는 다시는 생각말자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기가 태어난 큰 축복을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좋은 생각만 하고 싶었다. 아이를 통해 보이는 세상은 더없이 아름답게 펼쳐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가 커가면서부터 세상은 전혀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도난 사건이 그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부부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티나라는 끈이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걸림돌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티나는 어릴 적부터 아빠하고만 붙어다녔다. 남편은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가도 아이가 어딜 가자고 하면 두 말 없이 데리고 나갔다. 필요한 것이 있어도 티나는 엄마와는 외출을 안 했다. 엄마의 말에는 무조건 노오였다.

  ‘그래? 아무리 모녀지간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상대적인 동물이야.’

   한때는 이런 오기가 뻗쳐올라 일부러 쌀쌀맞게 대한 적도 있었으나, 딸에게 가까이 가보려고 노력을 안 한 건 아니 다. 어떤 땐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을 사와, 거실 탁자 위에 놓아두고는 그게 바닥에 팽개쳐져 있나, 없어졌나를 살피기도 했다. 없어졌으면 티나가 가져간 것이기에 혼자 속으로 좋아했다.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자체가 싫은 걸까? 영어를 유창하게 못해 부끄러운 걸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 수미 자신이 엄마의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기에 내가 딸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티나가 커갈수록 수미는 딸이 엄마한테 질투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티나는 아빠를 판에 박은 붕어빵이다. 바로 그의 분신이다. 엄마를 닮은 구석이라고는 거의 없다.

   오래 전에 어느 실없는 부인이 티나 앞에서 아주 묘한 얼굴로 엄마는 미인인데 딸은 엄마를 전혀 안 닮았네요.”라는 말을 해, 티나는 그날 집에 와서 엉엉 울었다. 그땐 질투심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딸이 커갈수록 느끼게 되는 감정, 그것은 분명히 질투였다.

   수미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이 티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그윽한 사랑이 가득 담겨 찬란한 빛이 난다. 수미는 남편의 그 눈빛이 기분 나쁘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티나 편을 드는 그가 야속하다.

  ‘내가 티나한테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엄마가 딸한테?’

   둔기로 한 대 맞은 것 같다.

 

< 6 >

 

   그렇게 뿌연 안개가 서린 집안에 현금 천 달러가 봉투째 없어진 사건이 터진 것이다. 남편에게 어떻게 얘기를 끄집어 내느냐도 문제였다.

   돈 봉투가 없어졌을 때, 수미는 얼른 티나 방으로 가 샅샅이 찾아보았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옷장에 걸린 코트 호주머니까지 뒤지는데 답답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돈 봉투는 없었다.

   예상대로 티나는 자기는 절대로 가져가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했다. 남편도 완전히 딸에게 엎어져버렸다. 예상했던 일이다. ‘어디 다른 데에 두고 애매한 사람을 잡는다는 것이었다. ‘당신 어디 아프냐고 티나와 똑 같은 말을 하며 남편도 합세를 했다. ‘정말, 내가 어디에다 두고 깜빡한 것일까?’ 하고 수미의 정신까지 오락가락할 정도로 그들은 강경했다.

   또 입을 꽉 다물어버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입을 꽉 다물어 버리는 데에는 피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수미의 영어가 일상적인 대화는 그런대로 통하지만 깊고 미묘한 속마음을 소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설득을 할 만한 실력은 더더구나 없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의 한국어에도 한계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수미와 얘기를 하다가도 그는 영어를 자주 섞었는데, 티나가 태어나고부터는 아이에게는 영어만을 사용했다. 그녀 역시 어쭙잖은 영어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급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한국말이 툭툭 튀어 나오곤 했다.

   어디 다른 데 둔 것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방 경대 서랍에 넣어둔 기억은 확실하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보며 여기저기를 찾아봐도 지갑은 없었다.

  ‘, . 게스트 룸 생각을 못 했구나.’

   수미는 게스트 룸에는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항상 텅 비어 있는 게스트 룸에 들어가면 왠지 손님이 된 것 같은 썰렁한 기분이 들어서 싫었다.

  ‘네가 지금 완전 포장을 하고 살고 있는데, 그 포장이 얼마나 가겠니? 그래서 네가 매일 초조하고 불안하고 더 외로운 거야. 그러니 빨리 실토하고 용서를 구해라.’

  조소어린 눈빛으로 누가 훔쳐보고 있는 것 같아 흠칫 소름이 끼친다.

   돈 봉투가 게스트 룸에 있는 경대 서랍에서 나왔다. 천 달러도 그대로 있었다. 티나가 갖다 놓은 것이 분명하다. 남편은 대뜸 그거 봐. 당신이 거기다 둔 게 분명하네.” 하고는 돈을 찾았다면서 곧바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돈 봉투를 게스트 룸 경대 서랍이 넣어두었어.”

   그리고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다니느냐면서 앞으로는 제발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내 말에는 손톱만큼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졌다.

   어느 소설에서처럼, 남편과 딸이 합세를 하여 언젠가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처넣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섬뜩했다. 그들이 몰아붙이면 진짜로 정신병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수미는 부모도 형제도 의지가지 하나 없는 외톨이다.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다.

  언뜻, 그들에게서 완전히 버려지는 자신이 상상되었다. 두려웠다.

  ‘차라리······. 돈 봉투를 게스트 룸에 두고, 그냥 깜빡했었다고 남편과 딸의 비위를 맞춰 볼까?’

   핑-- 눈물이 돌았다.

 

< 7 >

 

   티나의 각본대로 연극이 끝난 후 수미는 며칠 동안이나 정신이 멍했다.

   어디든 가야 했다.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정처 없이 달리다 보니 차는 코리아타운 올림픽가에 와 있었다. 두 시간도 더 달린 셈이다. 한글 간판들을 보니 콧잔등이 찡해왔다.

   코리아타운에 들어섰을 때다. 암만해도 차의 상태가 보통 때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 우선 눈에 띄는 정비소에 차를 세웠다. 차를 들여다보다가 정비원이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차를 어떻게 운전을 하셨습니까?”

   큰일 날 뻔했다는 것이다. 옥스나드에서부터 두 시간 이상을 운전하고 왔다는 얘길 듣고 그는 더 놀랐다.

   수미는 남편에게 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차에는 도사인 남편이니 정비사와 얘기를 하면 금방 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바꾸겠다고 하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말에 그녀는 잠깐 어리둥절했다.

   차에 문제가 있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지극히 태연한 어조였다. 그녀는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허탈감에 빠져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운전을 하면 안 될 정도로 차에 문제가 있다는데, 그걸 알면서도 아무 말 안 하다니.’

   눈앞이 노래지며 줄줄이 늘어서 있는 차들이 한데 엉켰다. 정비원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디 편찮으시냐고.

  ‘, 차라리 이혼을 하자고 그러지.’

 

   수미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근처 커피숍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애초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려고 했지만, 도무지 그럴 기력도 생각도 없었다. 그가 언제 올지 모르니 시간은 충분했지만 우두커니 커피숍에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내가 먼저 이혼을 제안하자. 날 위해서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는 살 수가 없지 않은가?’

   만일 이혼을 하면 재산을 반을 주어야 하는 것이 미국의 법이다. 꼽아보니 그가 가진 재산이 꽤 된다. 갑자기 그가 무서워졌다.

   문득 남편에게 여자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혹시 나를 만나기 전에 사귀었던 옛 애인일까? 그렇지, 서른이 넘어 결혼을 한 남자가 결혼 전에 애인이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와이프가 돼 가지고 어찌 그리 눈치를 못 챘단 말인가?’

   생각이 이어질수록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이 어느새 기정사실이 돼 버렸다. 남편은 수미보다 열 살이 위이다. 수미는 데이브의 첫인상에서 그렇게 짐작을 했고, 나이가 든 것이 오히려 더 좋았다. 그러나 데이브는 수미가 그리 어린 줄은 몰랐었다. 그 당시 그녀는 스물두 살 애송이에 불과했으나 보기에는 그 나이처럼 발랄하고 풋풋하지가 않았다. 마음 둘 곳 없는 청춘이었기에···.

   실내에는 한국 가곡이 흐르고 있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핑 돌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며 떠나온 고국이 그리움의 파도가 되어 눈앞에서 넘실거렸다.

  ‘이 노래의 제목이 뭐더라? 이제는 이 유명한 노래 제목도 잊었단 말인가? 내 고향 남쪽 바다? 아냐. 아냐. 그렇지 가고파, 가고파야. ---, 가고파. 가고파. 정말 가고프다.‘

 

   정확히 두 시간 후, 남편이 도착했다. 정비사와 대화를 주고받더니 남편은 그 차로 옥스나드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지금 현재는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수미는 남편 차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문제의 내 차를 나보고 운전하라고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치면서 앞이 캄캄했다.

  ‘결국은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작정인가? 그렇다면 나보고 운전하고 오라고 하지 왜 달려왔지? 그랬어도 내가 운전을 안 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뜻밖에 그가 이왕 코리아타운에 왔으니 여기저기를 둘러보자고 했다. 온화하고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피곤하다는 핑계를 댔으나, 정말이지 남편과 같이 다니고 싶지 않았다. 어서 집으로 가자고 했다. 둘 중 누가 문제의 차를 운전해야 하는지가 빨리 알고 싶었다.

  ‘내가 너무 앞서 갔나?’

   남편은 수미에게 자기 차를 운전하라고 말하며 차 열쇠를 건네준 후, 태연하게 문제의 차로 향했다.

  “내가 뒤따라 갈 테니 먼저 떠나. 운전 조심하고.”

   순간 걱정이 되기는커녕 수미는 속으로 외쳤다

   ‘아무리 네가 차를 안다고 해도 정비사만 하겠니? 그래 차라리 네가 죽어라.’

 

< 8 >

 

   운전을 하는 동안 허리가 무겁고 다리가 아팠다.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올 때도 조금씩 아프긴 했으나 금세 괜찮아졌고, 운전을 할 때는 자주 그러다가 또 낫곤 해서 별 신경을 안 썼다. 실은, 서너 달 전부터 왼다리가 욱신욱신 저려오고 허리 아래쪽이 묵직했지만 늘 그런 것이 아니어서 이러다가 낫겠지 하고 내버려두었다. 특히 밤중에 더 심했다.

   허리 아래쪽이 뜨끔뜨끔해 몸을 좀 움직였더니 갑자기 왼다리에 쥐가 났다. 엉덩이에서 뭐가 쭉 뻗쳐 발가락 끝까지 침범을 했다. 배까지 아팠다. 식은땀이 났다. 그래도 집에까지는 가야지 하고 참아봤으나, 나중에는 머릿속이 텅 비어 하얗게 돼버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프리웨이 갓길에 차를 세웠다. 일단 차를 세우니 안도의 숨은 쉬어졌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몸을 뒤로 젖히고 머리를 의자에 기대니 눈이 저절로 감겨졌다.

   누가 창문을 두드렸다. 실눈을 뜨고 고개를 돌린 수미는 하마터면 외마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웬 남자가 유리창에 코를 문대면서 그녀를 향해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남자의 얼굴이 운동장만 했다. 남편이었다.

   그가 얼른 차안으로 들어왔다. 왼다리를 칼로 후벼파는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와 수미는 ..” 신음하며 다리를 엉거주춤 들었다. 다리를 위로 올리니 통증이 조금 덜했다.

  응급실로 향하는 중, 운전을 하는 남편의 표정이 심각했다. 얼굴에 땀이 송송 솟아 있었다. 그 와중에도 수미는 차의 상태가 궁금했다. 남편은 정비사의 오진이 있었다고 하면서 별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동시에 수미의 입에서는 근데, 왜 데리러 왔어요? 그냥 오라고 하지.”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당신이 아프잖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에 수미는 침묵했지만 이 남자가 이런 언변도 있었나?’ 하는 의아함이 생겼다.

 

  검진 결과가 나왔다. 왼다리에 통증이 온 것은 디스크 증세였다. 3번과 4번 사이의 연골이 흘러나와 신경을 눌렀기 때문이라고 했다. 검진 결과가 나올 즈음에는 아픈 것이 많이 완화가 되었었다.

  그러나 일은 다른 데서 터졌다. 신장에서 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조직검사를 한 결과 암으로 판정이 났다. 수미의 것은 신장암 중에서도 신세포암이라고 했다. 암 때문에 나타난 증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옆구리가 아프냐,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느냐 하고 의사가 물었으나 수미에게는 그런 증상이 전혀 없었다. 복부에서 만져지는 멍울은 더더구나 없었다. 또한 발열, 빈혈 등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체중이 좀 준 것은 사실이다. 피로하고 식욕부진일 때가 더러 있긴 했다.

신세포암이란 것이 초기에는 별 증상 없는데 다행히 수미의 것은 초기였다. 최선의 길은 근치적 신적출술을 시행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신장을 완전히 제거하는 수술인데 수미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녀는 신장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장을 괜히 떼어주었다는.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다. 그때 수미는 신체의 일부를 잘라낸다는 것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았고, 친구의 살릴 수 있다는 데에만 마음이 쏠렸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원장의 눈부신 화술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 애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이식수술 후, 고모가 사는 시골로 가게 되어 그들은 헤어졌다. 태어날 적부터 신장이 약했는데, 그걸 모르고 아무런 조치를 안 하고 있다가 그만 두 개의 신장이 다 망가져버린 케이스로 2년을 무척 고생하던 중, 생명이 위험한 상태에 가서야 이식수술을 받게 되었다. 정말 기적이었다. 수미의 신장이 그 애한테 들어맞은 것은 신이 내린 기적이었다. 그 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수미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부터가 기적이었다. 또 그 애가 가장 친한 친구인 것도 인연 중의 인연이었다.

 

신장적출은 불가능한 일이니, 전이가 되기 전에 일단 종양을 잘라내야 하겠지? 다행히 초기이고 전이가 되지 않았다고 하니 시간은 좀 벌어줄 거야. 항암치료도, 투석도 병행해야 되고····. 괜히 주위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그냥 이대로 내버려둬?’

이리하나 저리하나 이 세상에 남은 기간은 마찬가지일 것 같다. 아무튼 이식을 받는 것이 최상의 길이지만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는 기약이 없다.

지금 현재 수미에게 신장을 떼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럴 때 부모형제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굴도 모르는 부모가 그립기 그지없다. 원망과 증오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마냥 그립기만 하다. 곁에 있기만 해도 위로가 될 것 같다. 이미 하늘나라에 갔을 것이라고 단정을 지었는데도 불구하고, 천사가 되어서라도 이 세상에 내려와 주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가슴에 가득 찼다.

 

< 9 >

 

나는 왜 이리 운이 없을까? 이제 겨우 마흔 둘인데 지금 죽는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그리고 무섭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남들처럼 내세에 대한 확신이 있어, 천당 간다는 믿음이 굳건하면 억울하지는 않을까? 편안한 마음일까? 그럼 나도 지금부터 하나님을 믿어볼까? 천당 간다는 희망을 갖기 위해.

남편의 말대로 한국교회에 나가 봐? 나의 과거가 탄로 난들 그게 뭐 어때? 삶과 죽음이 맞닿은 상태인데 그런 것이 무슨 대수랴. 만일 하나님이 있다고 믿었더라도 나는 그분을 원망하며 살았을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지지리도 운이 없었던 나이니까. 남편을 만나 미국에 온 것도 지나고 보니 좋은 운은 아니었다.’

신에게 매달려보고 싶은 욕망이 갑자기 전신을 엄습했다. 원망의 신이 희망의 신으로 바뀌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니 이깟 병 고치시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잖아요? 제 병만 고쳐주시면·····.”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 그냥 말하듯이 중얼거리는데 콧잔등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동안 어찌 살아왔는지 잘 아시잖아요. 제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낳자마자 부모한테서 버려져 고아원에서 살다가 친구에게 신장 하나 떼어준 것 아시지요? 그러니까 지금 갚아주셔야 해요.”

기도 중이었다. 뭔가가 뇌리를 휙 스치고 지나갔다.

그 애의 가장 가까운 곳에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기적이 비롯되었다면, 그 기적이 내게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순간, 암이 낫든 안 낫든 간에 믿음을 가지면 평화와 안식을 얻을 수 있고, 자신에게 의지와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

수미는 매일 정성껏 기도했다. 절실한 마음으로 신에게 매달렸다.

그러던 중, 가정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남편과의 관계, 딸과 관계에서 생긴 매듭을 풀어주십사는 기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수미는 놀랐다. 그리고 그 매듭은 누구도 아닌 수미 자신이 만들었다는 깨달음에 또 놀랐다.

 

엄마의 상태를 모를 리 없건만 티나는 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측은한 눈빛으로 엄마를 본다는 것은 느껴졌다. 암 판정을 받은 후부터는 티나에게서 어딘지 달라진 느낌이 수미에게 와 닿았다. 자신의 감정도 그랬다. 딸과의 관계도 그 누구도 아닌 수미 자신 때문에 매듭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뇌리를 쳤다.

항상 딸 편만 드는 남편이 야속했던 수미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그건 남편이 잘한 일이었다고 감사한 생각까지 든다. 만일 아빠가 엄마 편을 들며 티나를 몰아부쳤다면, 그녀는 지금 어찌 되어 있을까? 아빠가 두둔하며 감싸준 것은 티나가 절실하게 원하는 현실이었다.

수미는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도 몰랐다. 그리고 매사에 표현방법이 지극히 서툴렀다. 말을 하면 핀잔을 받았기에 침묵을 지키기가 일쑤였다. 이러한 수미가 티나에게는 무심한 엄마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돈 잃고 난리를 겪은 일이 아주 옛날같이 아득하다.

 

< 10 >

 

뿌연 안개 속에서 새 한 마리가 수미의 주위를 날고 있었다. 새의 형체는 선명하지가 않고 색깔만 어렴풋이 잡혔다. 하얀 색이었다. 하얀 참새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참새보다는 컸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황이라 아주 희미했다.

어디선가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들려오던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는 또 점점 멀어지다가 긴 여운을 남기며 사라졌다.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는 슬픈 목소리였다.

이 세상 천지에 수미를 엄마라고 부를 사람은 티나밖에 없다.

갑자기 가슴이 쿵쿵 뛰었다. 벌떡 일어나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가누면서 티나 방으로 향하는데 하얀 새가 따라왔다. 방문 틈새로 불빛이 새 나오면서 뿌연 안개는 걷히기 시작했고 하얀 새는 불빛을 따라 티나 방으로 사라졌다.

 

< 11 >

 

신장암 때문에 디스크는 밀려났다. 다리의 통증도 가라앉아 그 누구도 디스크는 언급을 안 했다. 암의 위력이 크긴 컸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혈액형이 달라도 웬만큼만 적합하면 신장이식이 가능하니 곧 수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남편은 수미를 위로했다. 그리고 용기를 주었다. 말이 없던 그가 이제야 말문이 트인 듯했다.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고맙고 든든했다.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건강할 때는 항상 불안해서 뭔가에 쫒기는 기분이던 것이 건강을 잃고 나니 도리어 마음이 편안했다.

남편을 꽉 붙들면 살 것 같았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남편이 이젠 수미 곁에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즈음에 수미는 육체의 통증에서 조금씩 벗어났었다. 한데 남편의 얼굴이 그녀보다 더 땀에 배어 있었다. 자신의 통증을 그도 느끼고 있다는 전율이 전신을 엄습했다. 이상했다. 그는 분명히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차안에서부터 내내 그랬다. 티나를 임신하고 신장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탄로가 났을 때도 그랬다. 그 당시에는 겁부터 앞서 그냥 무사히 넘긴 것만으로 안도의 숨을 쉬었었는데, 이제야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속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조금도 섭섭해 하지 않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아내를 다독거려 주었다.

그리고 언니에게 신장이식을 해주었고, 그 일 년 후에 언니가 죽었다는 거짓말이 또 추가되었으나 그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신장이 하나만 있을 경우는, 그 한쪽이 두 쪽의 신장 기능을 하기 위해 더 강해진다고 도리어 아내를 격려해주었다.

, 나는 왜 그 당시에는 고마움을 못 느끼고 이렇게 한참 지난 다음에야 깨닫게 되는 것일까? 인간은 궁극적으로 죽음에 직면해야만 깨달음이 오는 걸까?’

  거짓으로 똘똘 뭉쳐 불신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았던 수미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혼자 생각하고 혼자 단정 짓고, 혼자 판단하고, 그리고 혼자 괴로워하고 또 울고···.

  그렇게 차가운 마음에 가득한 사랑이 눈물의 강을 이룬 것이다. 사랑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그 사랑의 물결은 더욱 뜨겁게 넘쳐흘렀다.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다시 입원을 했다. 마음이 점점 편해졌다. 남편이 그녀 곁에 있다는 확신이 생기고 보니 무서울 게 없었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수미에게 맞는 신장이 나타났다는 기적의 기별이 병실로 날아들었다.

, 이럴 수가···.’

진실로 진실로 기적이 이루어졌다. 50%만 맞아도 이식이 가능한데 거의 100%가 들어맞는다고 했다. 당장에 이식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돼 실감이 안 났다. 그 애가 수미를 보고 웃고 있었다. 지금은 40대의 아줌마가 되어 있을 터인데도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어떤 사람이에요?”

   남편은 모른다고 했다. 기뻐서 상기되었던 얼굴에 언뜻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수술 날짜가 티나의 입학식과 맞물렸다. 기적적으로 거의 100% 맞는 신장을 이식받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티나는 남편처럼 흥분하지 않았다. 집을 떠날 때도 별 말이 없었고 수술 받는 날 아침에도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래도 섭섭한 감정은 없고 그냥 담담했다. 입학식에 혼자 간 것이 도리어 미안했다. 대학생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혼자 살아가야 할 티나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혼자 살아가야 할 티나?’

   갑자기 앞이 캄캄해지면서 엄마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할 티나가 상상되었다. 신장이식은 대수술인데 부정적인 그 1%에 수미가 해당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 판정을 받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할 때에 수미는 자기 자신 생각만 했다. 엄마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할 딸은 염두에 없었다. 티나 걱정은 손톱만큼도 안 한 것이다. 엄마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잃었었던 것 같다.

  ‘티나야! 미안하다. ! 이런 내가 무슨 엄마란 말인가? 티나는 자립심이 강하고 현명해 혼자 힘으로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잠재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나에게는 남을 걱정하는 마음이 없단 말인가? 고아로 자라서? 피붙이까지도?’

   한데, 수술 받는 날 아침, 티나가 기숙사에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 생각이 이어져 하나의 깨달음이 정수리를 친 것이다. 참으로 혼란스럽다. 엄마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할 하나밖에 없는 딸 걱정을 지금에야 하다니.

  ‘과거는 다 잊고 이제부터는 딸을 많이많이 사랑해주리라 다짐했는데···.’

 

< 12 >

 

여기가 어딜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뭔가 허여스름한 물체가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하얀 새였다.

언젠가 한 번 나타났다가 티나의 방으로 사라진 바로 그 새였다.

, 백까마귀다.’

   새끼새가 먹이를 날라와 아픈 어미새의 주둥이에 넣어준다는 백까마귀였다. 천 년의 길조를 알리는 전설의 백까마귀였다.

   아무것도 분간이 안 되는 상태인데도 새의 형체는 분명히 잡혔다. 백까마귀가 훨훨 나르며 수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사라졌다가 무슨 소리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아주 낮고 느린 목소리였다.

  “네가 그동안에 너무 힘들게 살아, 이제는 이 세상에서 더 살고 싶지가 않은 모양이구나. 세상만사 보는 것조차도 두려워 눈을 뜨기가 싫으냐? 눈뜨기 싫어도 이제는 일어나거라.”

   수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나즈막하고 느린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그렇지, 일어나야지. 얼른 백까마귀 날개에 매달려라.”

   순식간에 백까마귀 날개에 매달린 수미가 훨훨 날고 있었다.

 

   아주 멀리서 무슨 소리가 또 들렸다.

   어디에서 들리는지 방향을 잡을 수도 없고 무슨 소리인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수미는 전신의 힘을 귀에다 모았다. 미세했던 소리가 조금씩 분명해졌다.

   그 소리는 눈물을 흥건히 머금고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엄마, 엄마······.”

   티나의 목소리였다.

  ‘티나는 지금 동부에 있는데 어떻게 음성이 바로 옆에서 들리지? 꿈인가?’

  “티나야, 어딨니? 엄마 여기 있어. 엄마 여기 있다고.”

   입을 열었는데도 소리가 안 나왔다. 눈을 뜨려고 애를 써도 뜰 수가 없었다. 그러나 티나의 음성은 분명하게 들렸다.

  “엄마. 벌써 사흘이 지났어요. 의사 선생님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왜 아직도 안 깨어나는 거예요. 제발 일어나세요.”

  ‘아참, 내가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지. 그러니까 수술 후, 사흘이 지나도 못 깨나고 있다는 얘기네.’

   순간, 아주 낮고 느린 목소리가 휙 하는 바람소리가 되어 가슴을 스쳤다. 수미의 의식을 돌아오게 한 바로 그 목소리였다.

  “············· 눈뜨기 싫어도 이제는 일어나거라. ·············”

   가슴을 스친 바람이 갑자기 불꽃이 되어 피어나기 시작했다.

   티나가 울고 있었다.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내가 못된 딸이었어요. 나는 엄마가 나를 미워하는 줄 알았어요. 아무 관심도 없고요. 그래서 엄마 관심을 끌려고 빗나갔나 봐요. 제가 너무 철이 없었어요. 나 때문에 엄마가 속이 썩어서 병이 든 것도 모르고···. 암에 걸린 것도 다 나 때문이에요. 지금 생각하니 내가 너무 나빴어요. 정말 못됐었어요. 미안해요. 엄마. 엄마, 빨리 깨어나요. 앞으로는 제가 잘할게요. 엄마···. 엄마······.”

  ‘티나가 티나가,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빌다니···. 아니다. 아니다. 엄마가 잘못한 게 더 많다. 엄마라는 사람이 어린 너랑 똑같이 굴었으니 말이다.

   티나야, 엄마는 말야. 어릴 적부터 고아원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자랐단다. 누구로부터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  물론 어머니의 사랑도···. 변명 같지만, 그래서 사랑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를 몰랐나 봐. 나를 지키기도 벅찼으니까. 눈에 보이는 사실만 인정하고 맘속에 있는 내 자식을, 내 사랑을 보지 못했으니 그게 무슨 엄마냐? 다 내 잘못이야. 내 탓이야, 모두 다 내 탓이야! 미안하다. 티나야. 내 딸 티나야!!’

   흐느끼던 티나의 음성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엄마, 수술도 잘 되었어요. 엄만 이제 새 생명을 얻었어요. 저도 거듭났어요. 우린 이제 한 생명이 되었다고요. 엄마와 한 몸이 되었고, 마음도 하나가 됐어요.”

  ‘티나와 내가 한 생명이 되었다고? 한 몸이 되고 한 마음이 되었다고? 그러면 티나가? 티나가······.‘

갑자기 온몸이 더워왔다. 생명의 불꽃이 서서히 수미의 몸에 피기 시작한 것이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기쁨에 손끝이 찌릿찌릿했다. 뜨거운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티나가 자지러지듯이 소리를 질렀다.

엄마! 엄마! 이제 정신이 드세요?”

수미는 티나야, 티나야.” 하고 계속 불렀다. 입이 조금씩 열렸다. 목청이 터져라 불러대는 그 소리가 작은 신음처럼 새어나왔다.

 

멀리서부터 한 줄기 찬란한 빛이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주위가 점점 환해지면서 티나의 얼굴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도 수미는 백까마귀 날개에 매달려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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