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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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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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선유도에서 바라 본 "여의도 전경(全景)" / 소니a7M4 카메라-탐론 28~200mm f2.8~5.6 렌즈(S 1/1600 : f4 ISO 125 71mm) / 2025년 11월 10일 오후 3시37분 JPEG 무보정 

 

그는 누구인가

소파라의 해풍은 낮 동안 항구의 비린내와 향신료 냄새를 뒤섞어 도시의 골목마다 뿌려 두었고해가 기울 무렵이 되자 그 냄새는 다시 따뜻한 기름과 달콤한 과일 향으로 바뀌어 저녁을 예고했다.

오늘 저녁내 집으로 오시오.”

그 초대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었다소파라에서 비슈바나타의 이름은 학문과 재력과 권위를 동시에 의미했다그가 어떤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는가그것 만으로도 도시의 지식인들은 소문을 만들었다.

비슈바나타의 대저택은 항구에서 한참 떨어진 언덕 기슭에 있었다외벽은 붉은 흙과 석재를 층층이 쌓아 올린 형태였고정문에는 문지기 둘이 창을 들고 서 있었다문지기들의 눈빛은 군인의 그것이라 기보다이 집의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는 관리자의 그것에 가까웠다.

조갑재가 이름을 밝히자문지기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동방에서 오신 손님이시군요주인께서 기다리십니다.”

정문을 지나 안뜰로 들어서자그 규모가 먼저 사람의 감각을 무너뜨렸다정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겹이었다작은 연못과 석조 분수야자수와 석류나무가 구획을 이루고그 사이사이에는 가늘고 긴 회랑이 이어졌다발 밑의 돌은 매끈했고물이 닿는 곳마다 향이 났다누군가가 하루에도 몇 번씩 닦아낸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대저택의 현관에서부터 사람들의 물결이 터져 나왔다.

부인들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었다.

비슈바나타는 부인을 무려 열둘이나 두고 있었다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서른다섯숫자는 그 자체로 압도였다하지만 그 숫자가 살아 움직이며한 집안의 숨결이 되어 눈앞으로 밀려오자조갑재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눈빛과 피부색과 웃음소리를 가졌다누군가는 맨발로 달려 나왔고누군가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매달린 채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부인들은 보석을 단 사람도 있었고검소한 옷차림으로 단정히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이 집의 주인을 중심으로 한 질서가그들의 표정과 태도 속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 장면은 장관이었다.
한 사람의 학문이한 사람의 부가한 사람의 권위가… 한 가문을 ‘작은 왕국처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그 현관 앞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조갑재는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국내성의 왕실도 이 정도는 아니다.’

그때 회랑 끝에서 느린 발걸음이 들려왔다사람들의 소리가 조용해지며마치 바람이 잦아들 듯 공간이 정돈되었다.

비슈바나타였다.

그는 흰 옷을 입었으나 단순하지 않았다옷감은 부드러웠고어깨와 팔의 선이 곧았다목에는 얇은 금장 장식이 걸려 있었지만그것이 사치로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이 사람은 사치를 굳이 과시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비슈바나타가 조갑재에게 다가와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었다.
동방에서 온 학자여내집에 온 것을 환영하오.”

조갑재도 예를 갖추었다.
대학자님께서 저를 불러 주신 은혜가 큽니다.”

비슈바나타는 웃었다그 웃음은 온화했으나동시에 이 집을 움직이는 힘이 담겨 있었다.
은혜라… 아니오나는 단지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고 싶을 뿐이오들어오시오.”

저택 안은 더욱 놀라웠다.

집사들이 있었다시종들이 있었다조리인들이 있었다물을 나르는 자등불을 점검하는 자손님들의 신발을 정돈하는 자손님의 옷에 묻은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내는 자… 움직임은 소란스럽지 않았고하나의 음악처럼 질서가 있었다.

그 수가 백 여 명.
조갑재는 그 숫자를 듣고서 야이 집이 단순한 부잣집이 아니라 하나의 조직이며 체계라는 것을 깨 달았다.

연회장은 넓었고중앙에는 낮은 탁자가 길게 놓였다향이 피어 올랐고벽면에는 서쪽의 문양과 동쪽의 조각이 섞여 있었다이 집이 단지 인도의 전통만을 고집하는 곳이 아니라세계의 사상과 물건이 드나드는 ‘교역의 머리임을 보여 주는 장식이었다.

그곳에 이미 손님들이 모여 있었다.

낮에 안면을 익힌 얼굴들이었다.

페르시아에서 온 대학승 아타르바드.
그는 불꽃의 나라에서 온 사람 답게 눈빛이 단단했고얼굴에는 마치 오랜 금욕이 남긴 선이 새겨져 있었다그의 손가락은 얇고 길었으며잔을 들 때조차 흔들림이 없었다.

아테네의 소피스트 레온티오스.
그는 말하기 전에 이미 웃고 있었다말이 그의 무기임을 스스로 알고 있는 자의 태도였다짧은 수염을 정돈했고시선은 언제나 상대의 약점을 찾듯 가볍게 움직였다.

로마의 역사학자 티투키스.
그는 무겁고 건조했다로마의 기록관에서 나온 듯한 냉정함이 있었고모든 것을 “사건 “원인 “결과로 분해해 바라보는 눈이었다.

이집트의 문헌학자 파네프.
그는 말보다 침묵이 많았고눈을 내리깔고 상대의 언어를 듣는 동안 손가락 끝으로 공기를 더듬는 습관이 있었다마치 보이지 않는 문자들을 읽어내는 사람처럼.

이스라엘에서 유학 온 바리새인 서기관 청년 스왈 야습.
그는 젊었고젊음이 주는 날카로움이 있었다그러나 그 날카로움은 칼날이 아니라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경계였다율법을 외우는 사람들의 눈빛은 때로 빛난다그 빛은 신앙이기도 하지만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조갑재가 앉았다

동방의 고구려에서 온 관료이자 학자.
그는 이 자리에서 가장 멀리서 온 사람이었고동시에 가장 조용한 사람이었다.

비슈바나타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소파라의 바람이 특별하오동쪽과 서쪽이 같은 지붕 아래 모였으니이보다 좋은 밤이 또 있겠소?”

만찬은 호화로웠다.

쌀과 향신료로 지은 밥기름에 구운 고기바다에서 막 잡아 올린 생선꿀에 절인 과일견과류와 달콤한 빵그리고 붉은 포도주와 향기로운 차.

음식은 넘쳤고시종들은 절대로 손님의 잔이 비어 있게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리는 단순한 풍요의 과시가 아니었다.
비슈바나타는 음식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히려 풍요를 “바탕으로 삼아그 위에 사상을 올려놓으려 했다.

시작부터 취기가 오른 레온티오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비슈바나타 대학자시여오늘 손님들을 불러놓고 무엇을 시험하려 하시요동방의 학자까지 불렀으니분명히 논쟁을 준비했을 터.”

비슈바나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험이 아니라확인이오세계가 얼마나 넓은 지그리고 그 넓음 속에서 하나의 이름이 어떻게 떠오르는지.”

티투키스가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 이름이란… 예슈아?”

그 순간연회장의 공기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었고누군가는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섰다.

스왈 야습의 눈동자가 반사적으로 흔들렸다그는 젊은 서기관 답게그 이름을 말로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율법의 문장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파네프는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그 이름은… 파피루스에도돌에도사람의 입에도 남을 수 있는 이름인가.”

아타르바드는 말없이 조갑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질문이 있었다.
너는 그를 어떻게 보았는가?’
너는 그 이야기를 어디까지 들었는가?’

조갑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저는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다만 잠결에서길 위에서그리고 청두에서예루살렘의 소문을 듣는 상인들에게서 들었습니다사람들은 그를 ‘라바이라 부르기도 하고어떤 이는 ‘선지자라 부르기도 합니다.더욱 놀라운 것은 ‘구세주(救世主)’라는 호칭입니다.”

레온티오스가 웃었다.
구세주라….소문이란 늘 그렇지신을 팔아 돈을 버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예슈아라는 자도결국 그런 자들 중 하나 아닐까?”

그 말은 가볍게 던졌지만방 안에 묵직하게 떨어졌다.
스왈 야습이 이를 악물었다.
그를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레온티오스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젊은 서기관이 분노하는 군그대는 그를 숭배하는가?”

스왈 야습은 입술을 떨었다.
그는 숭배라는 단어를 싫어했다율법의 세계에서 숭배는 오직 한 분께 만 허락된다그러나 예슈아를 향한 감정은그 단어로만 정리되지 않았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를 경계합니다동시에… 부정할 수 없습니다.”

티투키스가 즉시 끼어들었다.
경계와 부정할 수 없음그 둘은 역사의 시작점이다로마는 그런 인물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민중은 고통 속에서 기적을 갈망하고그 갈망은 한 사람에게 몰린다그 순간한 개인은 사건이 된다.”

비슈바나타는 그 말을 듣고잔을 들며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예슈아는 이상하오그는 군대를 모으지 않는 다지칼을 들지 않고왕좌(王座)를 탐하지 않고.”

아타르바드가 낮게 말했다.
그렇기에 더 위험할 수도 있소.”

레온티오스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칼을 들지 않는 자는칼을 든 자보다 더 큰 불을 지필 수 있지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니까.”

조갑재는 그들의 말을 듣다가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가 들은 이야기 속 예슈아는, 무언가를 가졌다기 보다, 무언가를 비워낸사람 같았다.

조갑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가 가진 것은 통으로 짠 케토네트(히브리어)속옷과 겉옷인 시믈라(히브리어)그리고 먼지가 잔뜩 묻은 나알림(샌들)뿐이었다 합니다.”

파네프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삶으로 말하는 자군요.”

비슈바나타는 그 문장을 마음에 담는 듯 잠시 침묵했다그리고 말했다.
그렇소삶으로 말하는 자그리고 그 말이 사람을 살린 다지.”

만찬이 끝난 뒤비슈바나타는 손님들을 저택의 테라스로 이끌었다.

테라스는 정원 위로 돌출되어 있었고아래로는 야자수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멀리 항구 쪽에서는 배들이 밤바다를 가르며 내는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차가 나왔다향이 진했고뜨거운 김이 얇게 올라왔다달빛이 찻잔의 표면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흔들렸다.

그곳에서 다시 예슈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비슈바나타가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예슈아는 병든 자를 고친다 했소귀신 들린 자를 자유롭게 한다 했소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말한다 했소.”

레온티오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랑철학자들도 사랑을 말하네플라톤도 말했지.”

스왈 야습이 곧바로 반박했다.
그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오그는 율법을 파괴하려 하지 않았소오히려 율법을 완성하려 했소.”

티투키스가 천천히 말했다.
율법의 완성이라… 그 말은 위험하다로마는 질서를 사랑한다.질서의 이름으로 많은 피를 흘린다그런데. 누군가가 ‘완성을 말한다면, 사람들은 기존의 질서를 낡은 것으로 여길 것이다.”

파네프가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낡음과 새로움은 종이에 적히기 전에사람의 눈빛에서 먼저 드러나지요.”

조갑재는 그 말을 들으며 스왈 야습을 보았다.
젊은 서기관의 눈에는 두 개의 불이 함께 타고 있었다.
하나는 율법의 불다른 하나는그 불로도 태울 수 없는 어떤 부드러운 빛.

아타르바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불꽃처럼 단단했다.
나는 불을 섬기는 자요불은 정직하지거짓을 태우고순수를 남긴다그런데… 예슈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든다오.”

레온티오스가 비웃듯 말했다.
페르시아의 승려도 감동했나?”

아타르바드는 레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동이 아니라두려움이오그는 불을 쓰지 않는다칼을 쓰지 않는다돈을 쓰지 않는다그럼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그에 게로 모인다이것은 인간이 가진 어떤 힘이 아니라… 인간을 넘어서는 무엇이오.”

비슈바나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생각을 했소나는 이 저택을 가지고 있고수많은 부인과 자식이 있고시종이 백이 넘소그러나 예슈아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 했소.”

조갑재는 그 말에서비슈바나타의 진심을 들었다.
그는 자기 재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거대한 소유가예슈아의 ‘무소유’ 앞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고 있었다.

스왈 야습이 조용히 말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그를 ‘주님이라 부릅니다.”

그 단어가 테라스 위에 놓이자잠시 바람 소리만 들렸다.
주님.
그것은 인간에게 쉽게 붙일 수 있는 호칭이 아니었다.

티투키스가 낮게 말했다.
그 호칭이 퍼지는 순간역사는 방향을 바꾼다로마는 그 호칭을 허락하지 않는다.”

레온티오스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로마가 허락하든 말든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 다네그리고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결국 승자가 결정하지.”

그 말은 차갑고 현실적이었다그러나 그 현실 속에서도조갑재는 묘한 균열을 느꼈다.
예슈아의 이야기는 승자와 패자의 논리로만 정리되지 않는 무언 가였다.

비슈바나타가 조갑재를 바라보며 물었다.
동방의 학자여그대는 무엇이라 생각하오예슈아라는 자는인간인가아니면 인간을 넘어선 무엇인가?”

조갑재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는 왕정출납인으로서 숫자와 기록과 질서에 익숙했다.
그러나 예슈아의 이야기는 숫자로 계산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찻잔을 바라보았다달빛이 흔들리는 표면 위에서마치 세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했다.

조갑재가 말했다.
저는… 그분이 무엇인지 아직 모릅니다하지만 확실한 것은그가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칼로 세우는 질서도 아니고금으로 세우는 질서도 아닙니다.”

파네프가 속삭이듯 덧붙였다.
말로 세우는 질서도 아니지요침묵으로도 세우는 질서입니다.”

그 말에 스왈 야습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그는… 침묵으로도 가르칩니다.”

아타르바드는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불은 타오르지만불의 본질은 빛이오예슈아는 타오르지 않는데도 빛을 낸다그래서 나는… 그를 부정할 수 없소.”

비슈바나타가 그 말을 듣고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는 부유했고강했고세상의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그도 한 명의 인간처럼 보였다.
가진 자가 아니라, ‘찾는 자처럼.

멀리서 소파라의 밤바다가 숨을 쉬었다.
테라스 위의 학자들은 각자의 세계를 대표해 앉아 있었지만그들의 시선은 한 점으로 모이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한 청년.
낡은 튜닉.
먼지 묻은 샌들.
병든 자를 고치고사랑을 가르치며비폭력을 외치고하늘의 소리를 인간의 비유로 들려주는 인자(人者).

그리고 그를 ‘주님이라 부르는 사람들.

이날 밤비슈바나타의 대저택은 소파라의 부와 권력을 보여 주는 상징이었지만테라스 위의 대화는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인류는 무엇을 따르는가.
힘인가.
지식인가.
부인가.
율법인가.
기적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한 사람의 삶인가.

조갑재는 그 질문을 가슴에 품은 채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바다 위에 흩어진 듯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먼 곳에서부터 오는 어떤 부름 같았다.

이 길의 끝에는하나의 이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슈아.

그 이름이 세계의 중심이 될지혹은 피와 침묵 속에 사라질지
아직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

 

인도 소파라에서 유대 땅 갈릴리로

소파라의 항구는 늘 그렇듯 짠내와 향내가 뒤섞여 있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면 젖은 밧줄과 어망의 비린내가 먼저 코를 찔렀고, 조금 늦게 따라오는 것은 창고 틈새에 스며든 후추와 계피, 몰약과 유향의 잔향이었다.

항구 숙사(宿舍)의 낮은 지붕 아래에서 조갑재는 스무 날 남짓을 쉬었다. 쉰다는 말은 몸을 눕히는 일만을 뜻하지 않았다. 이국의 언어를 듣고, 항로를 익히고, 바람과 물결의 기색을 살피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시간이었다.

비슈바나타의 대저택에서 받은 극진한 대접은 여전히 뒷맛처럼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 만찬을 떠올리면 음식의 풍성함과 아내들과 자식들의 물결 같은 환영을 말했지만, 조갑재는 그보다도 한 노학자의 눈빛을 기억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한 사람의 서재에 잠들 수는 없으나, 한 사람의 마음은 어떤 지식을 향해 끝없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쉼은 길을 지우지 못했다. 길은 다시 조갑재의 발목을 잡아 끌었다.

조갑재는 소파라에 머물며 스왈 야습에게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습득(習得)했다.

말하고, 읽고, 쓰는데 능숙할 정도로.

바리새인 서기관은 또 유대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산헤드린 의회 의원이자 베다니의 부유한 덕망가(德望家)요셉 의원을 찾으라며 추천서를 썼다.

조갑재는 예를 갖춰 그에게 허리를 굽혔다.

소파라를 떠나는 날, 날씨는 쾌청했고,바람은 박하사탕처럼 상큼했다.

조갑재는 국내성의 등에 실린 가죽 바랑을 한번 더 확인하고 말고삐를 움켜 쥐었다.

원기(元氣)를 회복한 두 말도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조갑재가 객사에서 안면을 튼 이들과 작별을 고하고 항구로 가기 직전이었다.

대학자 비슈바나타가 집사와 함께 객사에 들어섰다.

뜻밖이었다.

비슈바나타는 가마꾼들이 내려 놓은 가마에서 육중한 거구를 밖으로 내놓았다.

조갑재가 다가가자 자애와 신뢰, 애정이 드러난 노학자의 시선이 말했다.

동방의 학자. 어제는 지나치게 마신 탓에 그만 정신줄을 놓았군. 그대가 오늘 페르시아 상단과 떠나는 것을 알기에 서둘러 온걸세.”

그는 마치 사랑하는 외아들을 떠나 보내 듯 아쉬운 표정이었다.

이곳에서 예루살렘까지 계절이 세번 바뀌네. 말 두필(頭疋), 학자에게 노자(路資)돈은 생명과도 같은 것. 아우레우스(금화 로마 화폐:은화인 데나리온의 25배 많은 가치)와 의약품을 준비했네.”

그가 집사에게 눈짓을 했다.

잘 차려 입은 집사가 들고 있던 갈색 가죽 가방을 주인에게 건넸다.

비슈바나타의 손이 조갑재를 가르켰다.

조갑재는 당황했다.

그의 친절이 생각을 넘어선 것이다.

주저할 것 없네. 말 등에 얹힌 바랑이 제법 크니 그 안에 깊숙이 넣어두게.”

말뜻은, 가방에 상당한 금화가 들어 있었다.

큰 스승님. 이 은혜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비슈바나타가 조갑재의 어깨를 두드렸다.

빛을 만나면 전하시게. ‘원수를 사랑하는 이는, 오직 하늘의 말을 하는 그, 뿐이라고.”

 

조갑재가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는 날, 항구의 창고 앞에 페르시아 상단이 길게 늘어섰다.

낙타들이 무겁게 숨을 몰아쉬며 짐을 실은 채 무릎을 접었다 폈고, 낙타의 목에는 방울과 작은 부적이 달려 딸랑거렸다.

상단의 우두머리는 검은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중년 남자였는데, 그의 눈은 바다보다도 깊고 마른 땅처럼 단단했다.

동방의 학자.”

그가 조갑재를 불렀다. 그의 아람어 발음이 거칠었으나, 이름을 부르는 태도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시리아까지 간다. 길은 길고, 길 위의 도둑은 짧은 생을 탐낸다. 너는 글을 아는 자라 들었다. 기록을 맡을 사람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너는 혼자 가기에는 너무 눈에 띈다.”

조갑재는 대답하지 않고 상단의 줄을 바라보았다. 낙타들 사이로 창과 단검을 찬 호위들이 섞여 있었고, 그들 중 몇은 한눈에 봐도 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말이 적었고, 말보다 먼저 손이 움직일 사람들처럼 보였다.

함께 가라.” 우두머리가 덧붙였다. “길 위에서는 외로운 자가 먼저 쓰러진다.”

조갑재는 잠시 고구려의 국내성을 떠올렸다.

성문을 나서던 날의 냉랭한 새벽 공기, 대무신왕의 허락, 그리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던 가족들의 눈길. 그 모든 것이 바다를 건너와 이 낯선 항구까지 이어져 있었다. 길은 결국 하나였다. 사람이 어디에 서 있든, 떠난 자는 떠난 자였다.

좋다.” 조갑재가 말했다. “시리아까지.”

상단의 우두머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조갑재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흐름에 올라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행렬은 소파라를 떠났다.

 

하늘의 언어를 비유로 말하는

초여름의 인도 서해안은 바람이 거칠었다. 땅은 뜨겁고 하늘은 넓었다. 행렬이 항구 도시의 마지막 가옥을 벗어나자, 사람들의 말소리는 줄고 낙타의 발자국 소리와 짐가죽이 삐걱거리는 소리만 남았다. 길은 처음에는 평탄했으나, 며칠이 지나자 돌과 모래가 번갈아 나타났다. 낮에는 태양이 사람의 생각을 태워버릴 듯 내리꽂았고, 밤에는 바람이 살갗을 베듯 차가웠다.

상단에는 여러 언어가 있었다. 페르시아어, 아람어, 간간이 들리는 그리스어, 그리고 인도의 산스크리스트어와 여러 방언. 조갑재는 그 속에서 말이 아니라 숨결을 읽었다. 언어가 다르면 뜻도 다르지만, 피곤함과 경계심은 언어를 초월했다. 물이 줄어들 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고, 오아시스를 발견하면 그 날의 신은 모두에게 관대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상단이 야영지를 꾸릴 때였다.

낙타를 둥글게 세우고 천막을 치며 불을 피웠다. 불꽃이 튀어 오르고 연기가 하늘로 가늘게 뻗었다. 조갑재가 물가죽을 만지며 조용히 앉아 있을 때, 누군가 그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헬라인이었다.

옷차림은 여행자였으나, 손짓과 걸음에는 도시의 교육을 받은 사람 특유의 절제가 있었다. 머리는 짧게 정리되어 있었고, 눈빛은 늘 무언가를 비교하고 판단하는 사람의 것이었다. 그는 조갑재를 보자,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에게 말을 거는 듯 자연스럽게 앉았다.

당신이 동방에서 왔다고 들었소.” 그는 헬라어로 말했다가, 조갑재의 눈빛을 보고는 서툰 아람어로 바꾸었다. 당시 아람어는 페르시아인과 시리아인 그리고 헬라인 사이에 널리 통용되는 다국어였다.

그리고 글을 아는 사람이라.”

조갑재는 그가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열기 위해 언어를 고르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나는 동방에서 온 고구려 사람 조갑재라 하오. 당신은?”

아엘리우스 테온.” 그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아테네에서 공부했고, 지금은떠도는 사람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논변가라 불리는 쪽에 가깝소.”

조갑재는 그 이름을 들으며, 소파라에서 비슈바나타의 만찬장에 앉아 있던 헬라 논변가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 남자는 그보다 더 날카로웠다. 더 적게 웃고, 더 많이 생각했다.

아엘리우스는 불꽃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물었다.

당신은 예루살렘으로 간다 했지요.”

그렇소. 그곳에… ‘이 있습니다.”

조갑재는 그 말이 갑자기 던져진 것이 아님을 느꼈다. 아엘리우스는 마치 오래 품어온 돌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손바닥에 올려놓듯 그 이름을 말했다.

예슈아.”. 그는 지금 유대 땅에서 가장 위험한 이름이오. 동시에 가장매혹적인 이름이기도 하지.”

조갑재는 침묵했다.

침묵은 때로 질문보다 많은 것을 묻는다. 상대가 그 침묵을 읽고 말을 이었다.

나는 그에 대한 소문만 듣는 사람이 아니오. 그를 본 자들의 말을 들었소. 그가 병자를 낫게 했다는 이야기, 귀신 들린 자가 평온해 졌다는 이야기, 여지껏 그 누구도 사용한 적이 없는 하늘나라의 언어로 말을 한다는 이야기까지도.”

조갑재의 눈이 조금 좁아졌다.

헬라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많소.”

조갑재가 말했다. “신화가 사람들의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태어나기도 하지오.”

아엘리우스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그래서 더 흥미로운 거요. 신화는 늘 오래된 언어로 말하지. 인간이 이미 알고 있는 방식으로, 이미 익숙한 상징으로.”

그는 손가락으로 불꽃을 가리켰다.

하지만 예슈아의 말은익숙하지 않소.”

조갑재가 물었다. “무슨 뜻이오.”

아엘리우스는 숨을 고르고, 마치 법정에서 논증을 세우듯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말했소. 보이지 않는 진리의 세계.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과 질료, 원인과 목적을 말했지요. 세네카는 덕과 이성의 자립을 말했고. 그들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요. 탁월하고, 정교하고, 때로는 아름답지만결국 인간의 눈높이에서 시작하지요.”

그는 조갑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예슈아는 다르오. 그는 다른 세상의 언어로 말하고 있소.”

조갑재는 그 말이 단순한 비유인지, 혹은 실제 신학적 확신인지 판단하려 했다.

아엘리우스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나라는우리가 말하는 이상국가가 아니오.”

그가 계속했다.

플라톤이 꿈꾼 철인정치의 나라가 아니고, 스토아가 말하는 내면의 평정도 아니지. 그는 하늘나라를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소. 마치 하늘나라가 공간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사람의 삶을 뒤집는 어떤 권세인 것처럼.”

불꽃이 탁 하고 튀었다. 어둠 속에서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조갑재가 조용히 물었다.

그가 가르친다는 것이무엇이오.”

아엘리우스는 잠시 말문을 닫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는 가난한 자가 복되다고 말했소. 슬퍼하는 자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소.”

조갑재의 얼굴에 아주 미세한 변화가 스쳤다. 그는 고구려의 궁정에서 수없이 들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강함, 승리, 복종, 권력, 전쟁의 정당성. 그 모든 것과 정반대의 언어였다.

아엘리우스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당신도 놀랐군.” 그는 낮게 말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비웃었소. 원수를 사랑하라니.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말이오.”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나를 흔들었소. 철학은 인간을 설득하려 하지. 예슈아는 인간을심판하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오. 그가 말하는 순간, 듣는 자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게 되지.”

조갑재는 불을 바라보았다. 불은 타오르며 모든 것을 밝히지만, 동시에 주변의 어둠을 더 짙게 만든다.

그를 구세주라 부른다 했소.” 조갑재가 말했다.

아엘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어떤 이들은 그를 주()라 부르더군. 라바이이면서도단지 라바이가 아니오.”

그 말에는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마치 그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이 위험하다는 듯. 그러나 아엘리우스는 위험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가 신성인지, 인간인지 확신하지 못하오. 그가 신이라면, 왜 그렇게 가난한 모습으로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소. 그가 인간이라면, 어째서 그렇게 두려움 없는 언어를 말하는지 이해되지 않소.”

조갑재는 그제야 아엘리우스가 단순히 소문을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그 소문에 의해 스스로가 흔들리는 자임을 깨달았다. 지성은 흔들릴 때 가장 진실해 진다. 확신은 때로 방어이고, 의심은 때로 고백이었다.

아엘리우스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을 사랑하오. 전제와 결론, 범주와 정의. 그것은 세계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요. 그러나 예슈아는 세계를 설명하지 않고. 세계를 요구한다오.”

요구한다?”

아엘리우스가 말했다.

그렇소. 회개하라. 돌이키라. 너의 삶을 바꾸라. 너의 마음을 바꾸라. 그는 사람에게 단지알라고 하지 않소. ‘되라고 말하는 것이오.”

조갑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 끝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되라는 말은 왕의 명령과 닮았고, 동시에 신의 부름과도 닮아 있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은 복종을 요구하고, 신의 부름은 존재를 요구한다. 그 차이는 깊었다.

조갑재가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이오?”

아엘리우스는 잠시 조갑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자신도 그 질문을 수없이 했다는 듯, 조용히 답했다.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그것이 가장 두렵소.”

그는 불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뜨거움에 닿지 않도록 멈추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자는, 얻을 것이 없는 자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얻지 않으려는 자. 그런 자는 누구도 매수할 수 없고, 누구도 겁줄 수 없소.”

조갑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구려의 궁정에서도 그런 사람은 드물었다. 대개는 얻을 것이 있었고, 잃을 것이 있었고, 그 사이에서 타협했다. 얻을 것이 없는 사람은 대개 죽은 사람뿐이었다.

아엘리우스는 갑자기 말을 낮추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따르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말하는 하늘나라가진짜처럼 들리기 때문이지. 아니, 진짜라서 가 아니라진짜보다 더 진짜 같기 때문이오.”

조갑재는 그 말이 철학자의 과장인지, 아니면 영혼의 떨림 인지 가늠하려 했다. 하지만 아엘리우스의 눈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상단의 누군가가 불 옆으로 지나가며 투덜거렸다.

헬라 철학자들은 밤마다 말이 길어.”

아엘리우스는 그 말을 듣고도 웃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침묵한 뒤, 조갑재에게 말했다.

나도 그를 만나고 싶소. 그리고 동시에만나고 싶지 않소이다.”

조갑재가 물었다.

?”

아엘리우스는 대답 대신, 한 문장을 천천히 꺼냈다.

만나면, 내 삶이 더는 내 것이 아닐 것 같아서.”

그 말이 떨어지자 밤의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졌다. 불은 여전히 타올랐지만, 그 불빛 안에서 하연은 자신이 지금까지 품어온 여행의 목적이 단지 지식의 탐구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처음에는 빛을 찾아 떠났다. 학문을, 세계를, 사람을. 그러나 지금, 불빛 너머에서 들려오는 한 이름이 그의 발걸음을 다른 방향으로 끌고 있었다.

예슈아.

갈릴리의 라바이.

하늘나라의 언어를 비유로 말하는 자.

조갑재는 천천히 물가죽을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고구려의 밤하늘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별 아래서 사람이 듣게 되는 언어는, 그가 알던 세계와 전혀 달랐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이 여행의 끝에서 자신이 만나게 될 것은, 도시나 왕이나 학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불꽃이 한 번 크게 일렁였다.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장작을 더 얹은 듯.

아엘리우스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동방의 사람들은 하늘을 어떻게 말하오?”

조갑재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답했다.

우리는 하늘을()이라 부르기도 하오.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것.”

아엘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예슈아는하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인간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 밤, 조갑재는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낙타들의 숨소리, 호위들의 낮은 대화, 멀리서 울어대는 사막의 짐승 소리 속에서, 그의 머리속에는 한 문장이 반복되었다.

하늘나라의 언어.’

그 언어를 들으면, 사람은 더 이상 예전의 사람으로 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이 두려우면서도, 이상하게도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길은 바르가자에서 크게 갈라졌다.

한 갈래는 바다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 다른 한 갈래는 내륙으로 깊이 들어가 고원과 사막의 경계로 향하는 길이었다.

상단의 우두머리는 망설임 없이 내륙을 택했다.

바다는 로마의 눈이 많다.” 그가 말했다. “세금은 칼보다 날카롭지.”

상단은 점점 건조한 땅으로 들어갔다. 나무는 드물어지고, 하늘은 더 커졌으며, 땅은 돌과 모래가 번갈아 얼굴을 바꾸었다. 밤이 되면 차가운 바람이 낙타의 털 사이로 스며들어 사람의 뼈를 두드렸다.

그때 조갑재는 지도의 선들이 단순한 길이 아니라, “피해야 할 죽음의 영역을 우회하는 곡선임을 깨달았다.

스왈 야습이 말한계산 가능한 악이란 이런 것이었다.

상단은 사흘마다 큰 우물이 있는 곳을 찍었다. 우물은 곧 도시였고, 도시는 곧 질서였다. 질서는 곧 거래였고, 거래는 곧칼이 함부로 휘둘러지지 않는 이유였다.

어느 저녁, 야영지에서 조갑재는 다시 지도를 펼쳤다. 바람이 두루마리 끝을 들썩였고, 불빛이 지도 위에서 흔들렸다.

헬라의 논변가가 다가와 지도 위를 흘끗 보았다.

당신이 말한 유대 서기관이 그려준 거요?”

그렇소.”

아엘리우스는 손가락으로 선 하나를 따라가며 말했다.

흥미롭군. 이 길은 단순히 최단거리가 아니구려.”

안전한 길이오.”

아엘리우스는 짧게 웃었다.

철학자들은 최단거리를 좋아하오. 가장 빠른 결론, 가장 깔끔한 논증. 그러나 상인들은 우회로를 알고 있소. 그리고 신앙인들은…”

그는 잠시 멈추었다. “…돌아가는 길이 결국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도 알지요.”

조갑재는 지도에서 가장 먼 지점인 시리아를 가리켰다.

여기 까지가 상단의 길이오. 그 이후는 내 길이지.”

아엘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시리아에서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오. 다마스쿠스 쪽으로.”

조갑재는 스왈 야습의 글씨를 읽었다. 지도 위에 작게 적혀 있었다.

다마스쿠스는 문이다. 문을 지나면 칼과 기도가 함께 한다.’

그 문장이 이상하게도 조갑재의 가슴을 눌렀다.

상단의 길은 페르시아가 가진오래된 혈관을 따라 움직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무역로라 불렀지만, 조갑재는 점점 그것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낙타의 발자국이 심장 박동이 되고, 우물은 폐가 되었으며, 도시들은 관절처럼 길을 꺾어주었다.

그리고 그 혈관의 끝이 시리아였다.

시리아에 가까워질수록 언어가 바뀌었다. 페르시아어가 줄고 아람어가 늘었다. 사람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인도의 상인들은 거래를 위해 웃었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웃기 전에 먼저 상대의 칼집을 보았다.

우두머리는 마지막 큰 야영지에서 상단의 규칙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여기 서부터는 로마의 길이다. 길이 좋다고 마음이 풀리면 안 된다. 로마의 길은 사람을 빠르게 보내지만, 빠르게 죽이기도 한다.”

그 말이 끝나자, 조갑재는 스왈 야습의 지도를 다시 꺼냈다. 지도 위에 작은 표시가 있었다. 빨간 점으로 찍힌 곳, 그리고 그 옆에 적힌 경고.

길이 넓어지는 곳에서 조심하라. 넓은 길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사람을 숨기기도 한다.’

조갑재는 그 문장을 이해했다. 좁은 길에서는 적이 보인다. 넓은 길에서는 적이 섞인다.

그날 밤, 조갑재는 스왈 야습을 떠올렸다.

유대의 젊은 서기관은 말보다 선을 믿었다. 그리고 선은 언제나피해야 할 것을 먼저 알려주었다.

그가 지도에 그려 넣은 것은 단순한 도시 이름이 아니었다.

어디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지

어디에서 세금을 빼앗길 수 있는지

어디에서 사람의 욕심이 칼이 되는지

어디에서 로마의 병사들이 길을 막는지

어디에서 유대인의 율법을 아는 자를 만날 수 있는지

그 모든 것이 얇은 양피지 두루마리 위에 압축되어 있었다.

조갑재는 조용히 지도 끝자락을 손끝으로 눌렀다. 예루살렘이 있는 곳. 그 이름은 점 하나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그 점은 이상하게도 무거웠다. 점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피와 기도, 소문과 심판이 모이는 곳처럼 느껴졌다.

불빛 너머에서 아엘리우스가 낮게 말했다.

그곳에서, 예슈아를 만나면우리는 더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군. 예전의 우리로는.”

조갑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지도 두루마리를 품에 넣었다.

스왈 야습이 그려준 선들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 선들은 이미길 위에서 죽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갑재는, 그 선을 따라가며 마침내 알게 될 것이다.

안전한 길이란 단지 칼을 피하는 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는 곳을 피해 가는 길이라는 것을.
그러나 예루살렘은 피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누군가가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이름이었다.(계속)

 

이산해 / 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