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21

2011.06.03 15:28

김영강 조회 수:635 추천:91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21회


   바로 이주일 전이었다. 병원 일을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닥터 윌헴이랑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근처의 미국 음식점으로 간 우리는 오랫동안 얘기를 했었다.

   그녀가 정말 엄마 같다고 느껴지는 감정에 내 얘기가 저절로 나와 버렸다. 눈빛에 머무는 그녀의 마음, 침을 놓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전류, 이 모든 것이 내 뼛속으로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돌아가신 대목에 가서는 나도 울고 그녀도 울었다. 의외로 담담하게 얘기가 줄줄 나왔다.

   이민우 얘길 하려면 애경이도 자연히 등장하게 돼 있어, 그녀하고의 친구관계 얘기도 했었다. 어릴 적 친구였는데, 미국 와서 우연히 만나 그녀가 내 아파트엘 자주 들랑거렸고, 그녀 따라 이민우와 같이 교회에 나갔다가 그가 변심하여 애경이 언니랑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 말했었다.

   그렇지만 그들 자매에 얽힌 얘기나 애경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안 했다. 내 일과 직접 연관이 되는 얘기만 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입에 담기가 싫고, 나 자신에게까지도 부정하고 싶은 유산 사실까지 다 말해버렸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울어대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 나갈까봐 틈이란 틈은 죄다 꽉꽉 막고 살다가 그 틈새를 조금 열어놓으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요즘 나는 새 가족이 생긴 것처럼 행복했고 모든 환경에 감사했다. 애론, 그리고 할머니랑 일하는 아줌마 얼굴도 떠올랐다. 다시 앞길이 막막해지며 눈앞이 흐려왔다. 애경이를 돌려보내고 사무실로 들어서는 선생님을 보니 확 하고 뜨거운 김이 목구멍으로 치솟았다. 그녀를 마주볼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오른손을 책상에 고이고 이마를 짚으며 울음을 토해 냈다. 분하고 격한 감정에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울었다.

   닥터 윌헴은 가만히 나를 도닥거리며 말했다.

   “괜찮아. 진정해. 그 친구 말이 거짓말인 것, 다 알아.”  

   “선생님, 전 하늘에다 맹세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애경이 얘길 나쁘게 한 적이 없어요. 더구나 애경이가 사귄다는 남자는, 만난 적도 없고 전화로 통화를 한 적도 없어요. 그리고 저····, 이민우랑 동거는 안 했어요.”

   말끝에 서두와는 동떨어진 이민우라는 이름 석 자가 느닷없이 튀어나왔다.

   ‘동거는 안 했지만 그게 무슨 차이가 있다고. 내가 같이 살기를 원했으나 그로부터 거절을 당했는데.’  

   “다 알아. 지난번에 지나온 얘기 나한테 할 때 그 친구 얘기도 했잖아. 한데 그 친구, 빨리 정신과에 가서 전문의랑 상담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대로 두면 무슨 일을 저지를 수도 있어. 지금 아주 위험 상태야.”

   내가 병실을 나온 후, 닥터 윌헴은 거의 삼십 분가량을 병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치료를 하면서 애경의 말을 계속 들어주었을 것이다. 내게 한 말들보다 더 심한 얘기로 나를 몰아세운 것이 분명했다. 이민우 얘기도 더 했을 것이 분명했고, 나를 아주 나쁘게 말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를 이민국에 밀고를 해, 병원 문도 닫게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진짜로 나를 추방시키고 병원 문을 닫게 만들까요?”

   닥터 윌헴을 얼굴에 마소를 머금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니 조금도 염려 마. 이민국에다 일러바쳐도, 나는 지금 합법적으로 해주 씨한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니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어.”

   “그러면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거예요?”

   “내 얘기는, 그 친구가 집에 와서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거지. 해주 씨가 맞대꾸를 하면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고. 그리고 기물을 파손할 염려도 있어. 오랫동안 사귀면서 혹시, 그 친구가 보통 사람하고는 좀 다르다는 걸 느낀 적이 없어?”

  언제가 그녀가 자기를 배신한 남자한테 칼을 품고 찾아간 적이 있다고 말한 것을 떠올리니 무서웠다. 실랑이를 하다가 도리어 자기 배에 상처가 나서 열 몇 바늘이나 꿰맸다면서 윗도리를 쓱 올렸는데 거기에는 엄청난 흉터가 있었다. 뱀이 꿈틀거리는 형상 같았다.

   만일 그녀가 폭력을 쓸 경우, 머리채를 낚아채고 내게 발길질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참지 못하고 대드는 경우는 가능한 일이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두 배 가까이 되는 덩치의 애경에게 나는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

   그때서야 나는 그동안에 내가 느낀 감정과 두 자매 관계도 설명을 했다.

   “굉장히 열등의식이 있는 사람이네. 거기에는 가족의 잘못이 커. 언니의 잘못이 더 큰 것 같아. 어릴 적부터 사랑으로 도닥이며 키웠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야. 그 친구는 자기의 일이 뭐가 잘못되면,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못하고 어느 누구 때문에 그 일이 잘못됐다고 믿어버리는 거야. 상상을 하다가 그게 바로 현실이 돼버리는 거지.”

   “그럼, 남자친구랑 헤어진 게, 진짜로 제가 중간에서 나쁜 소릴 해 그 남자가 떠났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렇지. 그러다가 보니 예전에 해주가 거절한 일들이 좀 서운해서 마음이 뒤틀렸는데, 그런 것까지도 완전히 뒤집어진 거지. 여행 얘기도 그렇고, 그리고 해주를 물심양면에서 도와주었다는 얘기도 그렇고····. 그게 다 일맥상통하는 것들이야. 그 친구가 완전히 이성을 잃고 정신분열 증세를 보인 것은, 지금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 같아. 폴이라는 남자가 그 친구에게서 떠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되겠지만, 또 다른 일들도 맘먹은 대로 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할 거야.”

   ‘혹시, 유산 문제 때문에 지금도 자매간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걸까? 소설에서 모양 언니한테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분이 안 풀려 나한테 찾아와 행패를 부린 것일까?’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나 한 듯, 닥터 윌헴은 말을 이어갔다.

   “지금 분명히 언니와의 관계도 악화가 돼 있을 거야. 언니도 알 텐데, 하루빨리 전문의를 찾아가 치료를 받아야 돼.”

   언니와는 한 번도 애경의 이상한 점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없고, 언니 역시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걱정이라는 말만 했지 그 외의 얘기는 일체 없었다.

   닥터 윌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림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른 남자들도 그랬듯이 폴도 얼마 못 가 지겨움을 느껴 애경을 끊었다. 애경은 진지하게 그를 만났고 사랑하게 되어 결혼까지 생각을 했는데, 모든 게 다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 남자를 만날 때 나보고 같이 나가자고 두어 번 권한 적이 있었으나 나는 한마디로 잘라 거절을 했었다. 그것도 기분이 나빴고, 전화번호를 줬다는 대목에서는 탁자까지 치며 소릴 지른 내가 미웠고, 이것저것 생각을 해보니 자기가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강하게 밀려와 미움이 쌓이다 보니 그만 헤까닥한 것이다.

   자기를 따돌리고 폴이랑 친구를 만나서 내가 알고 있는 자기의 약점을 몽땅 얘기해 버렸을 거라고 상상의 날개를 한껏 펼치다가, 그게 그만 현실화돼 버렸다. 열등의식과 피해망상이 함께 작용을 한 것이다.  

   “만일을 대비해서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 가서 자는 게 어떻겠어? 그 친구가 그만 잠잠해 질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간에 해주 씨는 밤새 한숨도 못 잘 거야.”

   그날, 하룻밤을 잔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닥터 윌헴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하숙을 하는 형식이었다. 크리스틴 어머니가 입주를 제안했을 때는, ‘참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구나’ 하고 기분이 언짢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마음이 끌렸다.

   “우리 집에 나이 든 여자만 셋이 살잖아. 할머니랑 아줌마도 대찬성을 했어. 실은 내가 이 생각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거든. 젊은 사람하고 같이 살면 늙은이들이 기를 받아 젊어진다는 말도 있잖아. 우릴 도와주는 셈치고 같이 살아.”

   갑자기 애론이 떠올랐다. 그가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애론이 뭐라 안 그럴까요?”

   “애론도 좋아할 거야. 해주 씨가 한집에 살면 더 든든하게 생각하지, 뭐라 그러겠어? 집에 자주 들러 할머니를 보고 가지만 보통은 그날 바로 가고, 가끔씩은 자고 갈 적도 있으나 애론 방도 그대로 있고, 또 게스트 방이 따로 있으니 해주 씨가 생활하는 데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을 거야.”

   그리고 잠깐 말을 끊었다가 그녀는 슬픈 어조로 얘길 계속했다.

   “실은 애론이 결혼을 한번 했었어. 결혼하고 1년 후에 이혼을 했고. 스물넷에 결혼을 했으니 너무 일렀지. 여자 쪽에서 서둘러서 그냥 따라 갔는데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더라고. 여자는 애론과 동갑이라 딱 좋은 나이이긴 했지만 애론한테는 너무 일렀어.”

   너무 일찍 결혼을 해, 그런 일이 생긴 것처럼 그녀는 이른 결혼을 원망했다.

   “영아... 이름이 예쁘지? 그 애 이름이 영아야. 한데 이름과는 정반대로 참 나쁜 애였어. 결혼 전에 영아한테 오래 사귀던 남자가 있었거든. 둘이 오랫동안 사랑했는데 양쪽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못 하고 질질 끌다가 영아가 애론을 만난 거야. 그런데 결혼을 하고도 관계를 청산하지 못 했고, 영아 맘은 계속 그 남자한테 머물러 있었나 봐. 하루아침에 영아가 없어져 버렸어. 참 기가 막혀서····. 그 남자랑 도망을 친 거야. 물론 나도 애론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영아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알았지 뭐야.”

   정말 소설에나 나올 법한 얘기였다.

   “물론, 결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무 상관이 안 돼.”

   지나치게 강조하는 그녀의 어조에서, 혹시 나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임신을 하고 유산을 한 것도 용서가 된다는 말일까?’    

   영아라는 전부인과는 애론이 졸업 후, 한국에 나가 있을 때 만났다. 어학연구소에서 일하면서, 파트타임으로 한국 정부기관에 취직이 되어 대통령을 비롯한 각료들의 대외 활동에 필요한 원고를 작성해주었는데 그때 어느 고위간부가 애론을 사윗감으로 점을 찍어 자기의 딸과 결혼을 시켰다. 사실은 결혼 후, 계속 한국에서만 살기를 고집하는 부인과 갈등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때, 내가 한국에 같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빨리 결혼이 진행되지 않았을 거야. 애론이 그냥 영아한테 빠져서 그 집에서 서두는 대로 따라간 거였어.”

   “그럼 영아 씨는 그 남자하고 결혼했나요?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아. 그 남자하고도 헤어지고 애론한테 다시 연락이 와서 더 걱정이야. 그 애의 뻔뻔스러움에 아주 구역질이 나. 애론도 그래. 영아가 연락을 해도 딱 잘라 버려야지··· ···. 얼마 전엔 미국에 와서 만나기도 한 것 같아. 완전히 속아서 결혼을 하고, 또  그렇게 당하고도 딱 끊지를 못하니 이제는 애론까지 미워.”  

   ‘사람의 인연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돌고 돌아서 다시 이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재결합할 가능성도 없잖아 있는 것 같아요.”

   “아냐.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는 단칼에 무를 자르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와는 혈육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나 아들에 대한 얘기를 별로 한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입을 열고 아들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담담하게 얘기를 이어갔지만 어머니의 빈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또 이민우가 떠올랐다.

   ‘그가 내게로 돌아오면 나 역시 잘라내지 못할까?’

   그녀는 같은 얘기를 다시 반복했다.

   “어쩜 그럴 수가 있어? 결혼을 하고도 옛날 애인과 계속 만나서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 도저히 용서가 안 돼. 해주 씨같이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은 감히 상상도 못할 거야.”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내 과거를 환히 아는 그녀가 ‘순수’라는 단어를 내게 갖다 붙인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저 순수하지 못해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닥터 윌헴은 내 뜻을 금세 알아차렸다.

   “아냐. 해주 씨는 순수해. 그만큼 순수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한 남자를 그토록 사랑할 수 있었고, 또 떠나보내지 못해 힘들었던 거야. 내 말뜻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불륜을 저지르고, 이 남자 저 남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상대방을 속이는 그런 여자를 지칭한 것이니 오해는 말아요.”

   할 말이 자꾸만 없어져갔다.

   “과거는 누구한테나 있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기 마련이야.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것, 그건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과오를 범하는 거야. 그 시련을 경험삼아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야지. 그리고 기회가 오면 과감하게 붙잡아야 해. 사람들은 기회가 온 것도 모르고, 또 그 기회를 어떻게 붙잡아야 하는 지도 모르고, 한참 후, 다 지난 다음에야 아차 하는 수도 있어. 사람이 세상사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애론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아.”

   언젠가 애경이가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늘어놓은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었다. 애경은 나를 바보라고 대놓고 말했었다.        

   닥터 윌헴은 얘기를 간추리면서 어쨌든 내가 그들과 같이 살면 애론이 좋아할 거라는 말을 다시 반복했다.  병원을 그만두고, 다시 외톨이가 되어 버린 상상을 하며 두려움에 떨었기에, 나는 이게 꿈일까 하고 현실을 의심했다. 애경이 생각을 하니 그냥 가슴이 두근거려 나는 두 말 않고 닥터 윌헴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같은 집에서 생활을 했지만 공부에 바쁘고 일에 바빠 그들과 오붓이 얘기할 틈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에는 교회도 같이 나가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도 아줌마도 내게 잘해 주고, 나와 같이 시간 보내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것을 감지한 다음부터, 나는 일요일 하루만은 집에서 보내기로 스케줄을 짰다.

  대전에서 부모님이랑 아줌마랑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행복했던 그 잃어버린 세월이 내 앞에 다시 펼쳐진 것이었다.  


   애론은 주말이면 항상 집에 들렀다. 어느 날은 토요일 저녁에 와서 자고 가기도 했다. 자꾸 살이 쪄서 토요일마다 등산을 다닌다고 하면서 내려와서는 집으로 곧장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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