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23

2011.06.17 09:01

김영강 조회 수:781 추천:125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23회



   ‘그동안에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고 이민우의 모양새는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까 하고 궁금증이 생겼다. 분명, 어마어마한 호사를 누리며 대저택에서 잘살고 있을 것이다. 이민우도 호리호리하고, 깎아 놓은 조각 같은 인상을 벗어나 이제는 부와 지위에 이력이 붙어 중후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변했을 것이다.

   강미경 역시 좋은 환경에서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호강하고 살았을 테니, 자신을 가꾸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녀는 옛날에도 아주 세련되게 멋을 부렸었다. 나보다 네 살이 위이니 지금은 근 60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신문에는 40대로 보였었다.  

   ‘성형 수술을 해 그렇게 젊어 보였나?’

   그러나 얼굴 모습은 변한 것이 없었다. 이런 저런 상상이 끝없이 펼쳐졌다.

   ‘아이는 몇이나 나았을까? 그들의 결혼생활은 과연 외면처럼 행복했을까? 그냥 축하한다는 전화라도 한번 걸어 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뭐하러? 전화는 무슨.’ 하고 피식 웃음까지 흘리고도, 또 갑작스런 충동이 일곤 했다. 그러다가 나는 그만 신문사에 전화를 걸고 말았다. 다시 연락해주겠다는 직원에게 내 전화번호를 남겼지만, 강미경의 전화번호를 받지 못 한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신문에는 거주지가 버지니아로 되어 있었는데, 언제 엘에이를 떠났을까? 특수 글루를 발명하여 신문에 대서특필로 기사가 나간 걸로 봐, 공장 확장을 위해 그때 바로 버지니아로 갔을까? 아니다. 애경이가 그들이 아들을 낳았다고 했을 때까지도 엘에이에 살았었다. 그렇다면 애경이가 돈을 쥐고 사라진 후에? 아니면 애경이가 죽은 후에 바로?’  

   소설에서 보면 애경이가 돈을 다 탕진하고 2년 후에 돌아와서 목을 매고 죽은 장소는 엘에이였다. 현실과 소설을 계속 결부시키다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잠깐 멍한 기분이 되었다.
  
   소설을 또 읽었다. 처음 읽을 때보다 더 강렬한 의문이 스쳤다.

   ‘소설에 나타난 바와 마찬가지로 애경은 결혼을 했었고, 또 그 남편은 톰이라는 이름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그런 남자였을까? 그렇다면 지금 그는 어디서 살고 있을까? 물론 강미경과는 인연이 끊어졌겠지. 지금 내가 이런 상상을 하면, 어떡하겠다는 거지?’

   25년 전에 이미 한 줌의 재로 산산이 흩어져버린 애경이다. 무거운 머리를 겨우 가누고 누워 있어도 혼란스럽기만 했다. 마음이 납덩이가 되어 온몸을 짓눌러 오고 분노가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그렇다고 애경의 죽음을 캐자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신문사에 전화를 해버리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왜?’ 하고 의아했다. ‘언니에게 건재한 내 존재를 나타내고 싶어서?’ 아니, 이는 언니가 아닌 이민우인지도 모른다.

  이민우를 떠올리고 보니 다시금 크리스틴 생각이 났다. 마지막 SAT 시험 결과가 나왔다면서 학생들이 내게 소식을 주었을 때, 나는 크리스틴이 시험을 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디스커넥트 됐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었다. 혹시나 해서 크리스틴 어머니와 가까이 지내던 한 학부형에게 물어본 결과 나는 너무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 모르고 계셨어요? 크리스틴이 집 나간 거····. 크리스틴엄마가 애 찾느라고 연락 안 하셨어요? 한데 이런 얘길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면서 그 엄마가 크리스틴 욕을 있는 대로 해댔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얼마 후에 그 오빠가 대형 사건에 휘말려서 경찰까지 연관되고 해서 들은 얘기인데, 크리스틴이 집을 나간 것도 오빠 때문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 대형 사건은 오빠가 마약에 연루됐기 때문이라 했다. 마약을 피운 혐의를 넘어 마약 소지에 딜러의 혐의까지 짙어 경찰차 여러 대가 뺑 둘러 집을 포위해 권총을 겨누었고, 식구들은 잠옷 바람으로 두 손을 치켜들고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고 한다. 집 전체를 하이빔 헤드라이트로 비추고, 헬리콥터까지 뜨는 등, 온 동네가 굉장했다면서 학부형은 자기가 목격이나 한 듯이 설명을 했다. 조심스러웠던 말투가 점점 고조되었다.

   “크리스틴도 오빠 꼬임에 빠졌다가 헤어나려고 집을 나갔을지도 모르죠. 얼마나 다행이에요? 집을 안 나갔더라면 크리스틴도 체포 됐을지 모르잖아요.”

   가슴이 쿵쾅거리며 전화기를 든 손이 덜덜 떨렸다.

   “크리스틴 입양된 거, 선생님도 아시죠?”

   그녀는 입양이 무슨 큰 사건 해결의 열쇠라도 되듯이 말을 똑똑 끊으며 차지게 어조를 바꾸었다. 그리고는 암말이 없어 나는 “네 알아요.” 하고 대답을 했는데 이어지는 뒷말이 가슴에 꽂히면서 통증이 왔다.

   “선생님한테만 말인데요····. 어린 것이 오빠한테 당하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돼요.”

   그 후 크리스틴 부모도 행방이 묘연하다면서 학부형은 “집안이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버렸어요.” 하고 말했다.    
    
   언젠가 크리스틴이 내게 한 말이 내 가슴에서 비집고 나왔다.  

   “저를 낳은 부모도 자식을 버릴 정도니 분명히 불행한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서울 양부모도 불행하게 됐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까지 했잖아요? 지금 부모님도 오빠 때문에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는데 혹시 앞으로 무슨 일이 날지 모르잖아요?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꼭 제가 불행을 몰고 다니는 것 같아서요. 선생님하고 친해지는 것도 겁이 나요. 선생님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떡하죠?”

   병원 전화번호와 주소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도 크리스틴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SAT 시험에 시간 착오가 생겨 취소를 시켰다는 전화에서 “선생님 왜 저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까요?” 한 것이 나와는 마지막 대화였다.

   신문사에서 연락이 와도 강미경에게 전화를 한다는 확신은 없었고, 연락이 안 오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다음 날, 나는 정말 뜻밖에도 강미경의 전화를 받았다. 흥분된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신문사에서 연락받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그리고 또 얼마나 놀랐는지 이게 꿈인가 했단다.”

   뜻밖의 전화에 뜻밖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어리둥절했다. 물론 놀랐겠지. ‘동생 친구 유해주’라는 메시지에 애경이 보담 먼저 자신의 남편인 이민우가 앞을 가렸을 테니까. 반가웠다는 말은 생소했다.  

   흥분된 음성이 계속 줄줄 흘러나올 듯이 서두를 꺼내놓고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나는 좀 멋쩍어서 신문에서 언니의 소설을 보고 나 역시 반가웠노라고 말하고, 언니가 소설가 된 것조차 몰랐다는 말을 덧붙였다.

   소설 얘기로 이어갈 줄 알았는데 그녀는 암말 안 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소재가 아주 특수했고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해 소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했다. 사실이 그랬다. 언니가 실제로 경험한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같이 현실감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었다. 도저히 창작이라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녀는 간간이 재미있게 좋게 봐 주어서 고맙다는 뜻으로 두어 마디씩 반응했다. 이게 꿈인가 했다면서 서두를 꺼낼 때의 들떴던 목소리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꼭 만나고 싶다면서 화제의 방향을 틀었다. 나는 우리가 만난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었다.  

   “안 그래도 네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연락이 되어 반가워. 내가 너를 만나서 꼭 해야 될 말이 있어.”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듯, 그녀는 비약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본론은 생략하고 쫓기는 사람모양 결론부터 내렸다. 그냥, 한번 놀러오라는 지나치는 말이 아니었다. 신문에 소설이 나간 후에 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고, 또한 그 전부터 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직감했다.

   ‘그렇다면, 애경의 죽음을 내게 밝히기 위함인가? 이제는 양심의 소리를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겠다는 걸까? 내게 향한 그 양심의 소리도?’

   아주 오래 전, 아마 그들이 결혼한 바로 직후였던 것 같다. 언니가 나한테 너무 미안해서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는 말을 애경에게 했다는 것이다. 그때 애경은 언니를 위선자라고 욕을 퍼부어댔다

   “강미경 말야. 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이 그냥 줄줄 흘러나온다고. 그리고 속과 겉이 완전히 정반대인 위선자라고. 그렇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면 애초에 시작을 않았었겠지. 결혼까지 하고 떵떵거리며 잘 살면서 뭐, 너한테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난, 그 말이 강미경의 진심이라고 믿었다. 이민우가 그녀를 향해 달음박질을 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건강이 별 시원치 않아 비행기를 탈 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네가 여기로 와 줄 수 있겠니? 너한테 부탁할 것도 있고····.”

   그녀의 음성엔 나를 꼭 만나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어려 있었다.    

   “어디가 편찮으세요?”

   “너도 알잖아. 나 허릿병 있는 거.”

   애경이한테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면 계속해서 허리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나처럼 한방치료는 받아봤을까? 나는 수술 없이 한방치료로 나았기 때문에 침을 믿게 되었고, 한번 호되게 아파봤기 때문에 드러눕기 전에 미리미리 예방을 한다.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진작 깨달았기에 가족의 식단을 짜,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이다. 결혼 후, 나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넷이나 되니 자연히 변해 버렸다.
  
   더구나 시어머니가 췌장암에 걸려, 나는 반 의사가 되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으나 아줌마는 한가족이 되어 우리랑 같이 계속 살았는데, 그녀에게 당이 있어 나는 당뇨에 관한 책을 통독을 했었다. 그리고 늘 음식 조절을 철저하게 했기에 시어머니가 암에 걸리리라고는 참말로 상상조차 못했다. 요리조리 식단 연구를 하면서, 이렇게만 하면 암이 생기기는커녕 생겼던 암세포도 다 죽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아줌마는 약을 먹지 않고도 당이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어찌 시어머니한테서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의사에다 한의사까지 겸해 뭇사람의 병을 낫게 해준 닥터 윌헴이 자신의 몸 안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것을 몰랐다니····.

   그녀가 칠십이 다 되어서였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병원일을 놓지 않고 현역에서 뛰었었다. 병원 건물도 확장을 했고, 한의사를 겸한 젊은 카이로프렉터도 두 명이나 새로 들였다.

   똑바른 양심으로 환자 한명 한명을 가족처럼 대하며 정성을 다해 치료하는 그녀다. 젊고 팔팔한 의사들이 있건만 다들 그녀를 찾았다. 젊은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더라도 원장님이 한 마디를 해주어야 빨리 낫는다고 그녀를 어머니처럼 의지하는 환자도 많았다.

   내가 보험 관계 일을 처리하고 있지만 치료비도 정확하게 청구한다. 보험이 없는 어려운 이들에게는 실비로 거의 봉사하다 시피 돌봐주고 있으니 환자들이 들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분한테 어찌 암이라는 병이 생겼단 말인가. 그것도 가장 어렵다는 췌장암이.’

   암이 발견되기 얼마 전, 시어머니는 내게 한의학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물론 네 아이가 다 큰 다음이었다. 공부하는 것을 비교적 좋아했던 나였으나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엄두가 안 났다. 나는 행정관리를 담당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평상시에도 음식 조절을 철저하게 했기에 나는 그녀가 암에 걸리리라고는 참말로 상상조차 못했다. 아줌마가 당이 있어 나는 당뇨에 관한 책을 통독을 했고 요리조리 식단 연구를 하면서, 이렇게만 하면 암이 생기기는커녕 생겼던 암세포도 다 죽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수술은 여덟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병원에서 기도를 계속하며 나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렇게 절실히 기도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교회에는 다녔으나  그냥 건성으로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이민우에게 버림받고 눈물로 지새울 때도 기도라는 것을 별로 안 했다. 교회에 나갔기 때문에 강미경을 만나 그를 빼앗겼다고 하나님을 원망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철이 없었다. 부끄럽기까지 하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때의 일을 하나님께 사죄하며 나는 위대한 분에게 매달렸다. 그 분만이 시어머니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실에서 애론을 만난 것을 감사했다.

   “살려 주세요. 하나님, 살려만 주신다면 제가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 다 하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갈 길을 제시해 주십시오.”  

   여덟 시간이 걸린다고 한 수술이었는데. 네 시간 만에 의사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혹시 하는 희망은 잠깐이었고, 결과는 참혹했다. 수술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암세포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딴 데는 전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 이럴 수가? 그렇게 되도록 왜 내가 눈치를 못 챘을까?’

   모두가 내 잘못 같았다. 병원에서 집에서, 그녀와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가장 많이 시간을 함께 보낸 내가  미처 몰랐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사흘을 병원에 있는 동안 시어머니의 의연함에 나는 가슴이 더 아팠다.

   ‘인간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살고 싶어 몸부림을 치는 것이 본능이 아닐까?’

   “의사 선생님 말씀이 수술을 하면 2년쯤 살 수 있고, 수술을 못하면 1년 살 수 있다는군. 우선 키모를 받아 암세포를 작게 한 다음에 경과 봐서 수술을 하자고 하니까 너무 마음 졸이지 마. 당장 죽는 거는 아니니 괜찮아.”

   ‘1, 2년이라니··· ···. 어쩜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어? 절대 그렇지 않아. 얼마든지 더 사실 수 있어. 의사가 못 하면 내가 할 거야.’  

   의사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의사를 불신하게 만든 일들을 나는 여러 번 겪었다. 그리고 의사들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먼저 알려준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갑자기 기적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그 기적의 끈을 붙들면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확신까지 들었다. 주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어머니, 의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일이 이 세상에는 허다해요. 1, 2년이라고 절대로 단정 짓지 마세요.  어느 분은 의사가 6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는데 지금 7년째 살고 있다는 얘기 들었어요.”

   “알아. 세상엔 기적이 있을 수 있어. 우리가 이렇게 매일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야.”

   “네. 맞는 말이에요. 저는 그 기적을 오래오래 붙들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기적이 오래오래 계속 되리라고 분명히 확신해요.”

   진심이었다. 그 후, 삼 주에 한 번씩 키모테라피를 받았다. 약이 많이 발전한 탓인지 머리도 안 빠지고 구토도 없이 그녀는 아주 잘 견뎌냈다. 그러나 얼굴색은 처참할 정도로 창백했다. 아니, 창백하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랄 수 없었다. 꼭 회색 횟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어느 날 밤, 나는 아줌마가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 역시 밤마다 하나님께 매달렸다.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결국은 신께 의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왔다 갔다 하던 교회도 빠지지 않고 나갔고 새벽 기도에도 참석을 했다.

   나보다도 더 교회에 등한시하던 남편도 변하기 시작했다. 가정 예배라는 것은 남의 집 일인 양, 관심도 없었었는데,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예배부터 보았다. 모든 교인들도 기도해 주었고, 환자들까지도 진심으로 걱정하며 기도해 주었다. 암에 좋은 귀한 것을 구했다면서 신기한 약초들도 가져다 주었다.

   “하나님, 이 모든 사람의 정성을 저버리지 마옵소서. 닥터 윌헴을 낫게 해 주시어 하나님의 능력을 저희들에게 보여 주소서.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데 이까짓 암세포 떨쳐내는 것은 문제도 아니지 않습니까?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아버지의 권능을 드러내는 삶을 살겠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기도를 하려면 어색해서 한마디 말도 안 나오던 내가 그녀가 아픈 후부터는 저절로 술술 말이 이어졌다.  

   우린 쉬임없이 온전한 무공해 유기농 식품으로 암에 좋다는 음식을 만들었고 그 후의 뒤처리는 음식 장만 이상으로 손이 많이 갔지만 아줌마와 나는 진실로 한마음이 되었었다. 구석구석 먼지 한 톨 없이 청결을 지켰다.

   정말, 기적은 있었다. 흙빛에 가까웠던 안색이 조금씩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6개월쯤 지나니, 피부가 말갛게 되었다. 아기 피부 같았다. 손에 힘이 없어 펜도 제대로 못 잡았었는데, 하나씩 하나씩 건강이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병원일은 잘 돌아가고 있었으나, 시어머님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하고부터는 병원에도 나갔다. 진료는 안 하셨지만 환자들을 격려해 주었다. 환자들은 시어머님의 얼굴을 보고 자신들의 병이 다 나은 것 같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에 감격했다.

   “세상에··· ···. 이제 다 나으셨네요. 아주 좋아 보여요. 얼굴에서 환하게 빛이 나요.”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얼굴에서 환한 빛이 나기 시작하는 것을 나도 느꼈다. 맑고 깨끗한 피부가 홍조를 띄며 그녀의 표정은 아기처럼 천진난만했다.

   ‘저런 모습을 보고 천사 같다고 하는 걸까?’    

   이렇게 시어머님은 7년을 더 사셨다. 물론 수술은 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못 탈 정도면 건강이 아주 안 좋다는 뜻인데, 그럼 지금도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 걸까? 서당개 3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나도 이제 디스크에는 박사가 되었고, 식단 조절에도 반 의사가  되었으니 강미경에게 조언을 해줘야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며칠 후 나는 비행기를 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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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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