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25

2011.07.01 14:19

김영강 조회 수:537 추천:134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25회



   서두만 던져놓고 언니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전화를 걸고 바로, 두어 마디를 할 동안 어쩔 줄 몰라 하며 들떴던 그 감정이 한순간에 다 사그라졌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옛날에도 그녀는 사람들이 웃고 떠들어 주위기 시끌벅적해도 항상 안정감을 유지했었다. 무슨 말을 할듯 말듯 해놓고는 본론은 꺼내지를 않아 상대방의 호기심을 잔뜩 불러 일으켰다. 멀찌감치 앉아 주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다. 애경은 늘 그런 언니를 비방했다. 저렇게 침묵을 지키는 척하지만 맘속으론 끊임없이 자기의 주장을 외쳐대고 결국은 원하는 것을 다 성취하고야 만다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애경은 언니 때문에 항상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뭔데요?’하고 물을 수는 없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 기다려 보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나는 소설의 첫 부분을 화제에 올렸다. 좀 망설여지긴 했으나 애경의 죽음을 소설에 연관 지은 것이다.

“첫머리에 동생의 죽음을 묘사한 부분은 꼭 언니가 겪은 일 같았어요. 애경이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지 않나 하고요. 또 끝 부분에 교통사고로 위장하라는 대목도 나오고 해서요.”  

   그런데 언니는 내 본심을 정확히 눈치채고 말끝을 칼날로 자르듯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째 대화가 벽에 부딪치는 기분이었다. 내겐 그러는 언니가 이상해 더 의심이 갔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픽션이야. 허구의 세계, 말짱 지어낸 거짓말 말야. 창작이라고 창작. 소설을 가지고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어? 애경이는 분명히 교통사고로 죽었어.”

   ‘애경이가 그렇게 죽었단다.’ 하고 혹시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지도 모른다는 내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양심의 소리’ 운운했던 것도 내 오산이었다. 똑같은 뜻의 어휘들을 줄줄이 나열하며 강미경은 나를 반박했다. 얘길 들으면서 나는 그녀가 내게 비장하게 한 말, ‘꼭 해야 할 얘기’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담 왜 나를 이곳까지 불렀을까?’

   좀 더 기다려도 얘기를 안 하면 내가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다. 정색을 하고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언니의 반응에 당황한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참 언니도. 내가 소설과 현실을 어떻게 구분을 못하겠어요. 어디서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언니의 상상력에 놀랐다는 거죠. 제 말은 소설이 그만큼 현실감 있게 잘 씌어졌다는 거예요.” 그리고 ‘한데, 소설의 소재를 어디서 얻었어요?’ 하는 말이 이어지려는 것을 나는 참았다.

   그녀가 잠잠해 또 내가 입을 열었다. 소설에서의 의문점을 내비치면서 그녀의 의중을 떠본 것이다. 평론가가 그렇게 언급했다는 것을 들먹이면서.

   “소설에서 애경이의 죽음은 분명히 타살 맞죠? 평론가는 범인이 톰이라고 지목을 하면서, 혹시 주인공인 미경의 남편이 시켰는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언니는 작가로서 어디에다 초점을 두었는지 궁금해요.”

   그녀도 작품평을 읽었을 테니 바로 대답이 나올 만도 한데, 금세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저는 소설을 읽을 때, 미경이의 남편이 교사를 했다고는 생각조차 못했거든요.”

   “미경의 남편”이라는 말 대신에 하마터면 ‘이민우’라는 이름이 또 튀어나올 뻔했다.

   “근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언니도 그런 의중으로 소설을 썼나요? 혹시 제가 생각해 내지 못한 건지 궁금해요.”

   궁금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잔인한 질문을 했나? 그러나 이건 소설에 대한 질문이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녀는 싱긋이 웃었다.    

   “그러게 말야. 소설을 쓸 때, 나는 독자들이나 평론가가 주인공의 남편이 톰을 시켜서 살인을 했다고 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어. 작가보다도 더 예리하게 분석을 해 나도 놀랐단다. 그 면에서는 너랑 나랑 의견이 일치하구나.”

   ‘그렇지. 이민우가 교사한 것은 아니야.’

   나는 줄곧 소설을 현실에 갖다 붙이며 강미경의 의중을 떠보고 있었다. 또한 애경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심증을 굳히면서도 그렇지 않은 양 언니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옛날의 입장이 뒤바뀌어져 나는 지금 강자이고 언니는 약자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기에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자꾸만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눈빛이나 말씨에는 옛날의 그 당당함이 그대로 나타났고 내면엔 그 강인함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언니는 애경의 이야기부터 하기 시작했다.

   “애경이 남편이 그랬어. 자길 만나기 전에 어떤 남자와 동거를 했었다고.”  

   언니는 애경이로부터 소식이 두절되었던 2년 동안의 행적을 그녀의 남편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남자를 잘못 만나 있는 돈 다 없애고 알코올 중독이 되어 재활원에서 고생하는 애경이를 자기가 구해줬다는 것이었다. 애경의 남편은 소설에서 서술된 톰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언니는 애경의 얘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흑흑 흐느끼면서 오열했다. 나도 그녀에게 감전이 돼버렸는지 금세 눈물이 났다. 그것은 애경을 위한 눈물이 아니라 언니의 모습에서 온 슬픔 때문이었다.

   애경의 남편은 요리사였다. 물론 한국 사람이었다. 뉴욕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으로 봉사하는 진실한 종교인이었다. 어둠의 구석구석을 찾아 봉사 활동을 벌이는 참으로 신실한 하느님의 종이었다. 직업은 중국식당 요리사였으나 꿈은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알코올재활센터에서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애경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를 위해선 언니를 만나 화해를 하고 따뜻한 가정을 갖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이 되어 결혼을 한 후, 언니가 있는 엘에이로 달려왔다는 것이다. 교통사고가 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한 그는 생활이 조금 안정된 후에 언니를 만나 그간의 사연들을 다 이야기하려 했는데, 이렇게 죽은 후에 그 이야기를 하게 될 줄 몰랐다면서 애경의 죽음을 진실로 슬퍼했다는 것이다.    

   언니한테서 목돈을 받아 쥐고 애경은 뉴욕으로 간 것이었다. 예전에 애경은 학교에는 적만 걸어놓고 여행사를 따라 자주 여행을 했다. 더러는 남자들과 동행을 했고 또 혼자서도 잘 돌아다녔다. 어떤 땐 여행 중에 멋진 남자를 만났다고 떠벌이기도 했다. 자기가 돈을 다 댈 테니 따라만 가자고 내게 졸라대기도 했으나 나는 한 번도 같이 간 적이 없었다. 그때, 동부 관광을 다녀와서는 뉴욕이 좋다고 열변을 토했었다. 그리고 이담에 뉴욕 가서 살 것이라 했다.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고 얘기를 하는 그 목소리엔 굴뚝 속 모양 그을음이 잔뜩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갑갑하고 답답했다.

   소설의 첫머리 내용이 자꾸 생생하게 떠올랐다. 꼬치꼬치 묻는 것이 언니의 심기를 건드릴 것 같아, 어쩌다가 교통사고가 났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도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데 강미경은 내 마음을 다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식당을 보러 가다가 사고가 났었어. 차가 중심을 잃고 프리웨이에서 중앙분리대를 받고 삥 돌았는데 뒤에서 과속으로 오던 트럭이 들이받은 거였어. 엘에이로 와서 한 달도 못 돼 일어난 사고였어. 둘이 같이 탔었는데 애경이만 죽은 거야.”

   언니 앞에 다시 나타나, 한 달도 못 돼 애경이가 죽은 사실은 소설과 일치했고, 교통사고로 죽은 것은 소문과 일치했다. 그녀는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클리넥스를 휴지통에 수북이 쌓아가고 있었다. 옛날에 “우리 애경이, 애경이.” 하면서 진실로 동생을 위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애경이가 늘 위선이라고 부르짖은.

  그리고 자기가 유산을 내주지만 않았더라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며 쉬지 않고 슬피 울었다. 다 자기가 보살피지 못한 탓이라고, 모두가 자기의 책임이라고 진실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다. 죽어서 어떻게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겠느냐며 죽은 후의 걱정까지 했다.

   “내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면서도 어머니는 애경이 걱정만 하셨어.”

   정신이 혼미한 상태인데도 다행히 큰딸을 알아 본 어머니는 첫마디부터 작은딸 걱정으로 시작하여 죽는 순간까지 “애경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기어들어가는 모기 소리로 입술을 겨우 달싹거렸지만 미경은 그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한테 딱 한 가지 절실한 소원이 있었다. 그게 뭐였는지 아니? 애경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죽는 거였어. 근데 이렇게 내가 먼저 죽게 되었구나.”

   애경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어머니의 말이 가슴을 쳤다. 애경은 자기는 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내게 말했었다. 어릴 적부터 잘난 큰딸한테만 온갖 정성을 다 쏟고 둘째딸인 자신에게는 눈길 한번 안 주었다고 그랬다.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손톱만치도 못 느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미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의 가슴 깊은 곳에 애경이가 그토록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미경은 어머니의 귀에다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엄마, 아무 염려 마세요. 애경이는 제가 책임지고 돌볼게요” 라고.    

   “나는 그때 내 한 생명을 바쳐서라도 애경이를 잘 돌보려고 굳게 맹세를 했었어.”

   “내 한 생명을 바쳐서라도” 라는 말에는 좀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이 대목에선 소설과 일치했다. 그러나 애경이가 자기를 괴롭힌 얘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

   실컷 울어 속이 시원해졌는지 그녀 얼굴은 정말 괜찮아 보였다. 소낙비를 내리쏟다가 활짝 갠 하늘처럼 강미경의 표정에는 반짝하는 햇빛까지 비치고 있었다. 언제 그렇게 흐느꼈냐는 듯, 정말 거짓말같이 말끔한 얼굴이었다. 강미경은 애경이를 눈물의 강에 떠내려 보내며 아주 깨끗하게 일단락을 지었다.

   나는 얘기를 들으면서 얼핏얼핏 뇌리를 스쳤던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내내 망설이다가 꺼낸 말이었다.

   “언니, 근데요. 소설에 의사가 다녀갔다는 얘기가 없었어요. 미국서는 사망진단 없이 시체를 치울 수는 없잖아요?”

   강미경은 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설도 현실의 법규에 맞아야 하는데, 이건 좀 잘못된 것 같아요.”

   만일 언니의 입에서 ‘아냐. 의사는 안 왔어.’하고 말이 툭 튀어나왔다면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판국이었으나 그녀는 침착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 거기까지는 내가 미처 생각을  못했구나.”

   작가의 입장에서 예외는 있는 법이라고 소설을 정당화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솔직히 시인했다. 소설에서 보면, 한밤중에 전화가 왔고 가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하더라도 역시 한밤중에 현장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까지 내내 강미경은 동생의 시체가 있는 방에서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강미경이 한밤중부터 아침녘까지 아파트에 있을 동안은 의사가 안 온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시간 상황을 보아서라도 의사가 오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만일 왔더라면 그 부분도 소설에 자세하게 서술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망진단서 없이는 시체를 움직일 수 없고, 또 장례식도 할 수가 없는 것이 미국의 법이다.

   ‘그렇다면 사후에 모든 절차를 밟았단 말인가? 톰이 병원에서 일을 하니 가능한 일이었을까?’

  강미경의 얘기를 다 듣고도 나는 계속 소설과 현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헤매고 있었다.

   골치가 찌끈찌끈 하도록 파고들고 있는 나 자신이 싫으면서도 질문이 또 나왔다.

   “언니, 소설에 실명을 썼다는 것, 제게는 참 놀라웠어요. 더구나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에게 갖다 붙인 것 말예요. 보통 작가들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시침을 뚝 따고 물었다. 그녀는 잘라 말했다.

   “아냐. 그런 경우는 없어. 어떻게 작가가 자기 이름을 주인공으로 하니?”

   의아해 하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내 이름, 강미경이 아니고 강 미셀이야.”

   “아참. 제가 깜빡했네요.”

   나는 그녀의 필명이 강 미셀이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아직도 내게는 도저히 감이 안 잡히는 생소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참, 필명이 강 미셀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필명하고는 상관없이 처음엔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본명을 썼어. 나중에 바꾸려고 했지. 그리고 실명을 써야 실감이 살아서 잘 써지거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은 듯이 또 길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괜히 오해하지 마. 소설은 어디까지나 픽션이야. 허지만 스토리 전체는 픽션이 아닐 수도 있어. 깡그리 무에서 유를 창작해 내려면 아주 어렵거든. 리서치를 계속해야 하고 자료 뒤지며 공부도 무지 해야 하니 보통 머리로서는 힘들지 않겠니? 나로서는 엄두도 못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 또 친구들 얘기, 신문이나 잡지에 난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등, 실제 있었던 일들을 근거로 해서 소설을 쓰면 암만해도 좀 쉬워지겠지. 그 중에서도 자신의 얘기를 쓰면 아마 제일 잘 써질 거야.”

   그녀는 소설론 강의를 하듯 설명을 했다. 소설쓰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무슨 진리나 터득한 것처럼 아주 진지하게 설명을 했으나 그것은 소설에 문외한인 나도 알고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였다.    

   “내 소설이 그래. 네가 알다시피 애경이와 나, 우리 두 자매 줄거리는 실제 얘기가 많이 들어갔잖아. 그래서 아무래도 진짜 이름을 쓰면 얘기가 더 잘 풀릴 수가 있거든. 그래서 다 써놓고 바꾸려고 했는데 암만해도 좋은 이름이 안 떠오르는 거야. 실은 이름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단다. 그리고 실명을 쓰기로 결론지었어. 그래서 네가 더 오해하게 됐는지도 몰라.”

   혹시나 내가 애경의 죽음을 타살로 단정지을까봐 또 변명을 했다.

   “아녜요. 오해 안 해요. 소설이 아주 실감나게 잘 씌어졌다는 뜻이에요. 언니 말대로 실명을 사용한 덕을 톡톡히 봤는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또 변명을 하며 강미경의 비위를 맞추었다.

   “그런데 강미경이 언니 실명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나요?”

   “아냐. 여기 버지니아에는 거의 없어. 버지니아에 오면서 이름을 영어로 바꾸었거든. 여기서는 다  ‘강 미셀’로 통해.”

   얘기는 방향을 틀어 갑자기 자기 신세한탄으로 들어갔다.

   “왜 나는 내 가족을 모두 잃어야만 하니?”

   가족이란 부모님과 애경이만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민우도 아들도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도 서두만 꺼내놓고 거기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집안엔 이민우의 그림자는커녕 흔적조차도 없다. 다른 여자한테로 가 버렸을까 하는 상상을 넘어 그가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밀려왔다. 나는 혼란에 빠져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은 그녀에게 엎어지고 말았다. 점점 강미경에게 빠져들면서 그녀를 위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진심이었다. 그녀가 얼마 살지 못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언니 건강이나 챙기세요. 다 지나간 일, 지금 와서 그렇게 가슴 아파하면 건강에 해로워요. 벌써 25년이나 세월이 흘렀잖아요.”

   강미경은 내가 햇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지 눈을 한번 크게 떴다. 얼굴에 온통 눈뿐이었다.    

   “그렇지. 다 지나가버린 일, 생각해서 뭐 하니. 그보다 더한 일도 겪었는데··· ···.”      

   ‘그보다 더 한 일이라니?’

   이제야 그 사연들을 풀어놓을 모양이었다. 내게 ‘꼭 해야 할 말’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이민우의 안부를 내가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계속 이렇게 함구하고 있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는 잘 있느냐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묻는 안부처럼 그렇게 말했다. 강미경은 나의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아주 담담하게 한 마디를 뱉어냈다. 내 짐작은 적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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