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26

2011.07.08 19:02

김영강 조회 수:572 추천:127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26회



   “죽었어. 12년 전에.”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없이 마치 지나가던 강아지 한 마리가 죽었다는 식의 말투였다. 그리고는 말을 끊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수수께끼라도 푸는 듯, 피카소의 그림처럼 복잡하고 난해한 표정이었다. 목소리와는 반대로 눈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 감정의 변화를 살피는 듯해 좀 불편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의 눈빛이 내 얼굴을 찔러 기분이 나빴다.

   남편이 죽었다고 하니, 위로의 인사를 던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난 정말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통 감이 안 잡혔다. 나 역시 아무 감정이 일지 않았고 담담했다. 침묵이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다문 입은 열리지 않고 이민우의 얼굴에 크리스틴의 얼굴이 겹치며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스쳤다.

   ‘이제는 크리스틴에게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는 일이 돼 버리고 만 걸까?’  

   마땅한 말이 떠올라 나는 얼른 입을 열었다.

   “교통사고였어요?”

   강미경은 “아니.” 하고 한마디로 잘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뒷말에 나는 누군가가 무거운 둔기가 내 정수리를 내리치는 듯하는 커다란 충격을 느꼈다.

   “이민우가 그렇게 죽었다.”

   ‘그렇게 죽다니? 소설 첫머리에 나온 장면이 이민우의 죽음을 그린 것이란 말인가? 그렇담 이민우가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는 말이 아닌가?’

   죽었다는 말에는 별 감정이 일지 않았는데, 목을 매고 자살을 한 사실에는 가슴이 요동쳤다. 놀라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남의 얘기를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워낙에 큰 사건이라 미국신문에도 나고 한국신문에도 났었는데 네가 못 본 모양이구나. 처음엔 떠들썩했단다. 벌써 12년 전 일이니까 지금은 다 잊혀졌을 거야.”

   한국신문, 미국신문, 둘 다 보기는 하지만 내게는 금시초문이었다. 사업가가 목을 매고 자살을 한 것이 신문이 떠들썩할 정도로 큰 사건이 될 수는 없다. 워낙 큰 사건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니 그 뒷면에는 반드시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강미경은 얘기의 골자는 쏙 빼놓고, 이민우가 나쁜 놈이라는 말만 잔뜩 늘어놓았다. 주제를 탁 던져만 놓고 사람의 관심을 끄는 그녀의 화법, 애경이가 늘 비방하던 바로 그 수법이다. 그러나 나는 ‘이민우가 왜 목을 맸을까?’ 하는 의문을 가슴 가득히 채우고 그 해답이 나올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민우가 그렇게 나쁜 인간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남자였어. 거기에 나도 넘어갔지만 말야. 남을 비평하고 중상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비인간적인 면은 몽땅 다 가진 그런 인간이었다고. 그리고 진실하지가 못해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어.”

   시작부터 그녀는 이민우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정말 상상조차 못했었다.  

   “이민우와 살면서, 그가 철저한 악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사람이 그토록 악해질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랄 지경이었어. 그에겐 양심이라는 것이 조금도 없었어. 그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왜 내가 이민우하고 계속 살아야만 했는지 지금 생각하니 참 한심해.”  

   그들이 알콩달콩 재미나게 아주 잘살고 있다는 말을 애경이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또 떵떵거리며. 3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나는 그 말을 명확히 기억한다. 어쨌든 자신의 남편이었던 이민우, 이미 죽어서 없어진 사람인데도 강미경은 그를 계속해서 짓이겼다.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기가 잘못한 일만 생각 나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는 아내들이 많다는데 그녀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 같았다. 망자에 대해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말도, 죽은 사람은 다 용서가 된다는 말도 거리가 멀어 보였다. 죽은 남편을 계속 죽이고 있는 그녀의 태도로 보아 그 뒤에는 무슨 흑막이 가려져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해졌다.
  
   이민우는 자기 사업을 위해서는 상대방 회사를 무참하게 죽여가면서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중소기업들을 기묘한 수법을 써서 하나 둘씩 망하게 한 다음 회사를 인수했다. 그의 행동은 저돌적이다 못해 끔찍스러웠다. 피도 눈물도 없이 칼을 휘둘렀다. 그 칼춤은 직원들까지 긴장을 시켰다. 사업은 계속 번창했고 밀려드는 주문의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중국에다 공장을 차렸다. 또 버지니아에 회사를 확장하여 사업을 벌였다. 젊은 나이에 두 어깨에 날개를 단 이민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저 높은 곳의 전능하신 분과 맞먹을 듯이 그는 계속해서 날아올랐다. 그는 영혼의 소리인 양심을 송두리째 빼놓은 채, 오래된 어두운 습관 속을 질주했다. 욕심이 양심의 소리를 짓눌러 버렸다. 일단 궤도에 오른 사업은 그냥 두어도 저절로 굴러가듯 돈덩어리는 눈덩어리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황금의 빛은 그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고 애욕의 불은 검은 그을음을 만들었다. 그렇게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사업이 점점 사그라지는 계기가 온 것이었다. 경쟁업체에서 성능이 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거기다가 세금 포탈 문제까지 드러나 어마어마한 추징금까지 물어야만 했다. 양심이 빠져버린 이민우의 돈덩어리는 눈덩이에 불과한 것, 서서히 녹아 없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는 남이 자기를 어떻게 보든 간에 자기 목적만 달성하면 되었고, 돈만 아는 죽일놈이라고 욕을 먹어도 안색 하나 안 변하는 인간이었어. 나중에 사업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니 인간성이 더 포악해지더라고. 그런 경우에는 사람이 수양을 하게 되어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좋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도 있건만 그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어. 오죽하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거들떠보지 않았을까?”

   이민우는 그의 아버지가 결혼 전에 낳은 아이라는 것을 나도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였다. 이민우도 거기에 대한 얘기는 통 없었다. 출생의 비밀을 나한테 내색 안 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내에게도 말 안 한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세월이 다 흐른 다음에야 나는 이민우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강미경도 역시 나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녀는 이민우의 부모형제 얘기를 하면서 또 다시 그가 나쁜 놈이라는 사실을 내게 확인시켰다. 그들과 아예 인연을 끊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화제는 아들에게로 옮겨졌다.

  “부모형제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그렇다고 쳐. 그런데 자기 친자식한테 어찌 했나 알면 너도 놀랄 거야.”  

   이상하게도 이민우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제이슨을 미워했다. 제이슨 역시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또 싫어해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 왜 그러고 사느냐” 면서 이혼하라고 졸라댔다. 아빠로부터 도망가자고 했다. 세월이 갈수록 부자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빠지고 말았지만, 반항으로 맞서야 할 아들이 그래도 아버지에게는 복종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그렇게 포악할 수가 있을까? 그것도 자기 자식한테 말야. 한 번은 골프채를 휘두른 적이 있어. 제이슨이 잽싸게 아버지 팔을 꺾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지. 그래도 제이슨은 별 탈 없이 넘어갔어.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무서워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꼼짝을 못하고 산 거지. 생각하면 내가 너무 가슴이 아파. 나 역시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고. 그런데도 우린 남들 앞에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부처럼 연극을 했단다. 내 건강은 자꾸만 나빠지고 세월이 갈수록 그의 행패에는 가속도가 붙었어. 그래서 나는 점점 더 바보가 돼 갔나봐.”

  이민우 얘기를 시작하고부터는 말의 두서가 없었다. 순서도 뒤죽박죽이 돼 가며 그 일관성을 잃어갔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민우를 나쁜 놈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이상했다. 아들 얘기를 할 때는 더 그랬다.

   ‘어릴 때부터 괜히 미워해? 친아들을? 꾹 참고 복종하면서 꼼짝 못 했는데도 아버지가 골프채를 휘둘러?’

   그러나 그냥 그대로 믿어주고 무슨 얘길 하든지 간에 지금은 무조건 다 들어주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강미경는 그녀의 암울했던 결혼생활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여자 문제로 인해 가정불화가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딴 여자와 섹스한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하는 남편과 살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바보스러웠고 한심스러웠다. 그것도 한 두 여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이민우의 여자 편력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심해졌다. 결국은 금발의 미녀를 아예 작은마누라로 들여앉혀 공공연히 두 집 살림을 했다. 이러한 아버지를 제이슨은 증오했지만 다 참고 넘겼다. 아들은 큰 키와 우람한 체격으로 학교의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공부 머리 또한 뛰어나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었다.
   또 엄마를 지극히 위하는 효자였다. 아버지 몫까지도 아들이 다해 주었다. 회상에 젖어 제이슨이 얼마나 자기한테 잘했는가를 이야기할 때, 언니의 표정은 행복했다. 꿈을 꾸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아들의 모습을 그려 보고 있는 그 표정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이민우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면서부터 그녀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더 이상 남편과 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이혼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강미경은 여행을 떠났었다. 사건은 여행 중에 일어났다. 아들이 열여섯 살이 되던 해였다.

   이민우는 자신의 대저택, 아들과 아내가 살고 있는 집, 차고 천장에 목을 맸고, 이를 맨 처음 발견한 제이슨이 끈을 풀고 아버지를 바닥에 내려놓은 것이었다.

   “이민우가 그렇게 죽었다.”라고 강미경이 토로하기 시작했을 때, 불현듯 소설에 그려진, 애경이가 목을 맸다는 그 허연 히터 시스템이 떠올라 나는 그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창작이 아닌,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보고 느낀 그대로 묘사를 해놓은 듯이 생생히 현실감이 살아 움직이는 장면이었다.

   톰으로부터 애경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웨스턴 길을 따라 피코를 지나 한참 남쪽으로 내려가,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흑인지역의 오래된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안 해 층계를 딛고 올라갈 때 느꼈던 가슴 섬뜩함, 지옥을 향하는 통로 같았던 어슴푸레한 복도, 애경이가 목을 맸다는 천장에 붙은 손목 굵기의 울퉁불퉁한 납덩이의 파이프... 그리고 고개를 약간 모로 돌린 채 방바닥에 반듯이 누워 있는 애경의 시체, 목에 선명하게 그려진 불그스름한 흔적, 푸르스름한 색깔이 약간은 얼룩덜룩하게 퍼져 있는 쭉 뻗은 두 다리. 목을 맬 때 사용했다는 샛노란 끈.

   그런데 현실에서의 애경은 프리웨이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소설에서의 애경이와 현실에서의 이민우, 이 두 죽음이 “그렇게 죽었다.”는 같은 점이 있었으나 그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강미경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 현장은 이미 깨끗이 치워진 다음이었다.

   사건 이후 바로, 남편의 여자 쪽에서 소송을 걸었고 검찰측에서도 제이슨이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끈질기게 사건을 물고 늘어졌다

   커다란 두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사건 이후, 아들 이야기가 시작되는 대목에서부터는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어 나는 아찔아찔했다. 애경이 얘기를 할 때보다도 더 심하게 떨었다. 우는 것도 힘들고 지쳐보였다. 허약한 육체가 목소리에 울려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갈라지고 마른 가슴 한구석에서 오래 응고되어 있던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그녀는 피눈물을 쏟고 있었다. 차라리 저렇게 눈물로 쏟아 버리는 것이 나으리라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다 쏟아 버리면 조금은 가슴이 후련해 질 것이다.

   ‘나도 옛날에 그랬으니까. 그래서 그렇게도 많이 울었던가?’

   울음을 뱉어내지 못하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그 가슴을 쓸어내리고 또 쓸어내리면서. 그녀는 지금 내가 옛날에 흘린 것과는 다른 핏물 같은 눈물을 쏟아 내고 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럴 때 나는 언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그녀는 흐느끼는 동작을 멈추고 아들이 절대로 범인이 아니라는 말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엄마의 직감으로 아들은 절대로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강미경은 안다. 남편은 분명히 자살을 했다. 사업도 내리막길을 치닫고 있었고 무절제한 생활로 인해 건강상태도 안 좋았었다. 그것은 시체 검증에서도 밝혀졌다.

   자살을 하려면 자기가 기거하는 그 여자네 집에서 하지 왜 하필이면 가뭄에 콩 나듯 들여다보던 아들이 있는 집엘 와서 일을 저질렀는지, 속에서 불이 날 정도가 부아가 치밀었다.

   잠깐 숨을 고른 그녀는 물을 두어 모금 마시고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성년자였는데도 제이슨은 지금까지 감옥에 있어. 벌써 12년째야.”

   ‘감옥’ 이라는 두 글자를 입 밖으로 꺼낸 강미경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처참했다.

   “내 아들 때문에 내가 감옥에 면회를 가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 못한 일이야.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제이슨을 보러 갔었어. 정말 기가 콱 막히더라. 제이슨이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으으흐으--윽--- ”

   그녀는 깊은 울음을 토해 냈다.

   가방도 풀지 못 하고 강미경은 제이슨이 감금되어 있는 경찰서로 직행을 했다. 사람들이 혼잡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커다란 방을 지나 복도를 죽 따라가니 구치소라는 데가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꼭 은행 창구처럼 생긴 모양의 면회실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영화에서 본 작은 구멍이 빵빵 뚫린 유리막이가 생각났다. 영화에서는 서로 의자에 앉아 대화를 했었는데, 이곳 구치소에는 의자가 없었다. 서로 서서 면회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조금 후, 제이슨이 창백한 얼굴로 나타났다. 유리를 통해 상반신만 보여 미경은 아들과 코가 맞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 섰다. 그런데 아들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순간, 아, 수갑을 찼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손을 뒤로 묶은 것이다. 그 자리에 퍽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현기증이 머리에서 등을 훑으며 발끝까지 좍 내려갔다. 그녀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며 눈을 크게 뜨고 버티면서 말했다. 아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제이슨 조금도 걱정하지 마. 엄마가 다 알아서 네가 곧 나올 수 있도록 할 테니까 초조해 하지 말고 기다려. 알았지?”

  아들을 보니 강인함이 솟았다. 무죄인 것이 확실하니 곧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제이슨이 도리어 눈물을 글썽거렸다. “엄마.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하고. 그리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또 덧붙였다. “엄마, 고마워요. 고마워요.” 하고.  

   그리고 그 사흘 후, 심사 과정을 보기 위해 경찰서로 가 일러주는 번호가 붙은 재판정엘 들어섰다. 몇 번인가 배심원이 되어 참석한 바 있는 재판정에 이제는 범인의 어머니로 가슴 조이며 앉아 있는 현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제일 앞, 높은 곳이 판사석이고 한 칸 내려와서는 검사와 변호사석이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속기사가  미리부터 좌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문이 달린 칸막이가 있고 뒤에는 방청석이었다. 여러 사건들을 차례로 진행해, 많은 사람들이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표정들이 굳어 있었다. ‘이들도 다 나 같은 사람이겠지’ 하는 연민이 느껴졌다.

  초조한 가슴을 안고 앉아 있는데 제이슨이 앞문에서 호위를 받으며 들어섰다. 역시 수갑을 차고 있었다. 도주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실내에서 저렇게 꼭 손을 묶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이슨이 얼마나 심적인 고통을 받을까 하고, 가슴이 메어졌다.

   그 날의 결론은 아버지를 죽인 중범죄인이기 때문에 보석금을 내고 나올 수는 없다는 것으로 판정이 났다. 강미경이 선정한 최고의 변호사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이라는 법치국가에서 정말 이럴 수가 있니? 사형 언도가 내려지고 이미 집행도 시행이 됐는데, 나중에 진범이 잡혀 판사가 옷을 벗고 승려가 된 그런 경우도 있잖아? 꼭 그 격이라니까.”
   그녀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듣기만 해도 된다는 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사건이 난 후, 제이슨 학교에서는 교장 이하,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검찰에 진정서까지 냈었어. 제이슨이 얼마나 모범생이었는가를 증명을 했는데도 교묘하게 법을 이용해 제이슨을 옭아맨 거야. 근데 지금 와서 뭐라 그러는지 알아? 참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와. 검찰과 합의를 하자는 거야. ‘길티’ 라고 인정을 하면 석방해 준다고 말야.”

   그 당시 제이슨은 미성년자였고 12년을 감옥에서 보냈으니 그것으로써 죗값은 치렀다는 것이다. 그녀는 점점 더 흥분하고 있었다. 12년 동안이나 죄 없이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 정말이지 원통하고 분해 미치겠다는 듯이 목소리를 벌벌 떨었다.

   “우리 쪽 변호사는 이제 지쳤는지 아들을 위해서는 합의를 보는 것도 괜찮다는 거야. 정말 너무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정말 너무 억울해” 를 연거푸 외치면서 눈에 불을 내뿜듯 열을 내며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내부로부터 어떤 뜨거운 것이 끝없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정말 이럴 수는 없어, 길티라고 인정을 하라니... 법치국가인 미국에서 죄 없는 사람을 옭아매고 뒤집어씌워 이래도 되는 거니? 제이슨이 아버지를 죽이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차고 천장에 아버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우선 내려놓고 봐야지... 그렇잖니? 내려놓으면 도로 살아날 가망성도 있잖아?”

   순간, 애경이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톰이 내려놓았다고 했을 때, 주인공 미경은 ‘그럴 수는 없다.’ 고 강하게 의문을 내비친 것이, 번개처럼 번쩍하며 뇌리를 스쳤다.    

   동시에 강미경의 울부짖는 소리가 귓전을 내리쳤다.

   “분명히 자살이야 자살이라구우우--- ”

   날카로운 눈빛이 내 얼굴에 화살처럼 내리꽂혀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목에는 푸른 심줄이 돋아 이마빡까지 벋쳐 팽팽한 핏줄이 금세 툭툭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쏟아지는 소낙비에 뇌성과 번개를 동반한 통곡이었다. 저러다가 그냥 정신이라도 잃을 것 같아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숨이 가쁜지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몰아쉬었다. 원한에 맺힌 탄식소리였다.

   그 순간 강미경의 얼굴에 겹쳐지는 한 얼굴이 있었다. 애경이 얼굴이었다. 부모 재산 몽땅 가로챈 사기꾼이라면서 악에 받혀 언니 욕을 퍼붓던 그 얼굴, 그리고 그 마지막이 된 날, 나를 몰아붙이던 그 무서웠던 눈빛. 도저히 제정신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던 바로 그 얼굴과 눈빛. 발가락 하나도 닮지 않은 자매인 그들에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애경의 그 부르짖음을 떠올리며 나는 또 의문 속을 헤매고 있었다. 12년을 감옥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 언도가 내려진 것이다. 종신형이든 몇십 년이든. 강미경은 거기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렇다면 언도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을 12년씩이나 감옥에 붙잡아 둘 수가 있는 것일까?’

   또 길티라고 인정을 하면 석방이 된다는 것도 그 방면의 법규를 통 모르는 나이지만 잘 이해가 안 갔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다 인정해 주며 나는 듣기만 해야 했다. 그 방면의 법규에 능통한 자라 하여도 아무런 질문도 허용되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다. 언니는 앞에 놓인 냉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물 잔을 쥔 손이 떨렸다. 감정이 여울처럼 휘돌아 치며 한없이 격렬해졌다가 조금은 잠잠해진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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