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27

2011.07.15 12:56

김영강 조회 수:584 추천:132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27회



   “나는 지난 12년 동안 글쓰기에 매달려 살아왔어. 글을 쓸 땐 시간이 잘 가서 좋고 또 아들이 빨리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겨 좋아. 그간에 여러 편의 단편도 썼고 중편도 썼지만 마음에 들지가 않아 발표를 않고 묵혀둔 것이 더 많아. 지금은 장편을 쓰고 있는 중이야. 만일 내가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야. 이 상황에서도 소설 쓰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보람돼.”

   조금 전까지 그렇게도 처절하게 부르짖던 강미경이 소설 얘기를 하면서부터는 얼굴이 환해졌다. 언뜻 나는 ‘이번에 신문에 난 소설, 옛날에 써둔 거를 최근에 발표한 거죠?’ 하고 은근히 떠보고 싶었으나 애경의 죽음을 또 의심하는 것으로 비쳐져 언니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나는 암말 못했다.

   “그게 다 재질을 타고 때문 아니겠어요? 이번 소설도 한국의 기성작가들을 제치고 문학상을 탔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네요.”

   강미경의 만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렇지? 실은 난 내가 글 쓰는 데에 재능이 있는 것도 모르고 살았어. 그런데, 글을 써보니까 줄줄 쓰여지는 게 너무 재미있고 신바람이 났어. 그리고 또 신문에 당선도 되고 하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아까도 말했지만 소설은 자기가 겪은 얘기가 가장 잘 써지는 것은 정한 이치 아니겠니? 지금 쓰고 있는 장편은 완전히 실제 얘기를 무대로 한 거야. 허구는 하나도 안 들어가. 그러니까 소설이라기보다는 나의 수기가 되는 셈이지. 애경이 얘기를 실제 얘기로 네가 오해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장편은 독자들이 실제 얘기라고는 도저히 믿지 않을 거야.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니까. 이번 장편은 주인공을 ‘나’ 라는 일인칭으로 서술했어. 내가 겪은 얘기를 그대로 쓰니까 아주 술술 잘 풀리고 있어. 애경의 죽음도 ‘비극은 끝나다’에서는 허구였지만 이번에는 사실 그대로 썼어. 애경이 남편이 요리사였기에 요리에 관한 얘기도 많이 썼어. 요리에 대해 공부를 엄청 많이 했단다. 뛰어다니지도 않고, 또 책을 사 보지 않아도 인터넷에 들어가니 별 희한한 정보들이 많아. 참 좋은 세상이야. 가만히 앉아서 내가 원하는 정보들을 다 수집할 수가 있었어.”  

   조리 없이 헷갈리게 말을 늘어놓고 있었으나 나는 정확하게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 애경의 죽음을 또 변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말 한마디가 그리도 맘에 걸렸단 말인가?’          

   “언니, 소설 써놓은 거 좀 볼 수 있어요?”

   “장편 말야?”

   “장편도 좋고, 단편도 좋고····. 다 보고 싶어요. 집에 가서 찬찬히 읽고 싶으니 이메일로 좀 보내주세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미경의 입에서 총알처럼 튀어나온 한마디에 나는 깜짝 놀랐다.

   “어마, 너 미쳤구나. 어떻게 아직 발표도 안 한 작품을 보내달라고 하니? 그것도 이메일로. 너 상식이 있는 애니? 아니 어쩜 그렇게 무식한 소리를 하니? 소설에서는 소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누가 훔쳐가서 써 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 얘가 정말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대수롭잖게 한 말이었는데, 강미경은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내가 소설의 세계를 몰랐구나 하고 느껴졌다. 그녀는 뒷말을 바로 이었다.

   “너를 못 믿는 게 아니고, 종종 인터넷 사고가 생겨서 하는 말이야. 그리고 실은, 작품을 쓸 때는 신나게 줄줄 써 내려가지만 다 써놓고 보면 한심할 때가 많아. 그래서 너한테 보여줄 만한 것이 없어.”

   한데, 지금 쓰고 있는 장편소설은 정말 다시 고치고 싶지 않은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는 것이었다. 단 한편이라도 영원히 살아남을 불후의 명작을 쓰고 싶다고 했다. 잠깐 말을 끊고 그녀는 나를 정면으로 주시하더니 내가 이민우의 전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내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부탁?’ 꼭 해야 할 말은 했으니 이제 버지니아까지 나를 부른 진짜 본론으로 접어든 것이다.  

   “내가 너를 만나고 싶어 한 주 목적이 있었어. 실은 소설 속에 네가 많이 등장을 해. 이민우를 쓰려면 너를 빼놓을 수는 없잖아.”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다가 강미경은 갑자기 흑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복받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또 울기 시작했다. 정말 이제는 나도 지쳐 그녀가 고만 울었으면 했다.

   “그때는 참 내가 너한테 못할 짓을 했다.”

   나는 언니의 말을 완강히 막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언니 왜 그런 말을 해요. 그런 거 아녜요.”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그녀의 맘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에 내 마음과 그녀의 마음이 엇갈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잘못한 대가는 충분히 지불했으니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해도 되겠지?”    

   나의 위로에 웬만큼 평정을 찾은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입가에 미소까지 띠우며 내 손을 붙잡았다.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지 과거는 다 흘러가버렸다. ‘잘못했다. 미안하다.’ 는 말을 들어도 안 들어도 나는 이미 그녀 편에 서 있다.  

   잠시 후, 강미경은 정색을 하고 나를 향해 활을 겨누었다. 바로 전, 고개를 숙이고 후회의 눈물을 흘릴 때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똑같은 사람을 앞에 놓고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순식간에 변한 것이다.    

   “이민우는 널 사랑하지 않았어. 순진한 너를 농락한 거야.”

   금세 감이 잡혔다. 아들의 무죄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녀는 장편을 쓰고 있는 것이다. 화살이 되어 내게 날아온 이 한마디도 나의 감정을 부추겨서 이민우를 더 나쁜 놈으로 만들기 위한 그녀의 계획이 내포된 말이었다. 이미 죽은 그를 그토록 악인으로 몰아붙인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만일 아들이 진짜 범인이라 하더라도 ‘그래 그런 놈은 죽어 마땅해’ 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화살을 맞았으나 나는 아프지 않았다.    

   소설이 제이슨의 재판에 도움 되지 않을 지라도 강미경의 꿈을 위해서는 꼭 씌어져야 한다. 그리고 하루 빨리 아들이 감옥에서 풀려나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녀는 봐야 한다. 그녀가 쓰러지기 전에. 아니 사랑하는 아들이 살아있는 한 그녀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기다림이라는 희망이 그녀를 영원히 지탱해 줄 것이다. 사랑과 희망은 모두 기다림 속에 있는 것이기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의지대로 반응할 자유가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도전할 때 불가능한 일도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위기는 두려움이 아닌 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강미경은 지금 절망 속에서 희망을 캐고 있다. 무대에 올려놓은 비극은 비극으로 끝이 났지만 강미경의 비극은 비극으로 끝이 나면 안 된다.

   강미경은 그 큰 눈을 스르르 감더니 의자 스위치를 눌러 등받이를 뒤로 젖혔다. 의자는 금세 편안한 침대가 되었다.  

   “피곤하지 않으세요? 이제 그만 주무셔야죠.”

   그녀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는 말을 연발하고는 누운 채로 말을 이어갔다. 얘기를 쉴 새 없이 내쏟으면서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계속 초롱초롱했다.

   “그에게는 돈과 섹스, 그런 것들이 전부였어. 나한테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너도 알잖아. 내 허리가 결혼 전부터 안 좋았던 것... 그런데도 그는 내 허리를 분질러 버릴 듯이 덤벼들었어. 나중엔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선 내 몸이 편했으니까.”

   그는 내게도 온 세상을 때려 부수기라도 할 듯이 달려들었었다.  정말 그런 밤들이 싫었다. 그러나 남편을 만나고부터 내 몸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발로 차버리듯 무지막지하게 나를 대하던 이민우에 비해, 남편은 나를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소중하게 대했다. 그가 나를 안을 때마다 나는 불빛이 명멸하는 밤의 바다를 빠른 속도로 둥둥 떠내려갔다. 그곳은 보석을 쏟아놓은 듯 불빛이 춤추는 긴 황금 바다였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강미경은 의자를 다시 세우고는 청아한 목청으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너도 이민우가 나쁜 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야.”

   나에게 확인이라도 하는 듯이 그녀는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소설은 한국어로 먼저 출판한 다음에 영역을 하겠다고 했다. 체력과 능력이 딸리면 미국 작가에게라도 의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민우 얘기만 나오면 그녀의 말은 두서없이 나열되고 그 순서도 툭툭 끊어졌다.

   이미 신문으로 보도되었으나 잊혀져가는 사건을 다시 한 번 더 만 천하에 공표하겠다는 그녀의 용기에 나는 놀랐다. 하기야, 아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인들 못하리. 또한 계속 변호사 비용을 대야 하니 그것도 소설을 펴내려고 하는 하나의 수단일 것이다. 12년 동안이나 끌어오는 재판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갔겠는가는 물어 보나마나한 일이다.

  언니는 얘기 도중, 사건이 일어났던 집이 어마어마한 대저택이어 그 집을 팔아 재판 비용을 감당했다고 한다. 또 사양길에 접어들은 사업체는 부사장의 손으로 넘어갔는데, 그 사람이 사업을 유지시켜  아들과 언니의 뒷바라지를 해 준다고 했다. 그리고 서글픈 어조로 얘기를 계속했다.

   “지금은 아주 기본적인 것만 지급을 해주지만 사실은 묶여있는 돈이 있어. 그게 언제 풀릴지 모르지만 아마 제이슨이 나올 때는  해결이 될 거야.”

   그리고 소설을 써서 금세 돈방석에 앉을 것 같이 유산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돈 이야기에 한참이나 열중했다. 그러나 내 귀에는 허상의 세계에서 횡설수설 늘어놓는 혼잣말에 불과했다.  

   “어쨌든 나는 지금 네 도움이 필요해. 이민우와 너랑 알았던 세월, 가족관계, 그리고 이민우와 헤어진 후, 네가 어찌 살았는지, 또 한 남자한테 짓밟힌 너의 그 처절한 심정이 어땠는지를 그리고 싶어. 그런 너의 감정이 지금은 다 식어버린 줄 알아.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마주앉아 있잖니?”

   나도 “정말 그래요, 그래요.”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눈가엔 온통 짜글짜글한 주름투성이였으나 그녀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빛처럼 계속 빛나고 있었다. 아들에 대한 한 줄기 집념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불쌍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싶었다. 그녀는 나를 인터뷰하기 위해 버지니아로 부른 것이었다. 소설을 위한 리서치로.

   갑자기 강미경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내가 소설을 구상하면서 생각해낸 건데, 아니 생각해낸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이 진짜로 든 건데 말야, 이민우가 세월이 갈수록 그렇게 비인간적이 돼갔고 또 자살을 한 데에는 뭐가 있는 것 같아.”

   뭐가 있다니 ····. 통 감이 안 잡혔다. 그녀는 목소리를 탁 낮추며 혼자서 독백하는 것처럼 중얼댔다.

   “혹시, 애경의 혼이 이민우한테 들러붙은 것이 아닐까? 너도 알겠지만, 애경이가 좀 이상했잖아. 이민우 하는 짓이 꼭 애경이 같아서 내가 깜짝깜짝 놀랠 때가 많았어. 술수를 써가지고 남을 옴짝달싹 못 하게 꽉 옭아매는 것도 똑같고, 성격이 포악한 것도 똑같고...”

   강미경은 애경이가 자기를 괴롭힌 얘기는 일체 않고 동생이 죽은 것이 애처로워 죽겠다는 듯이 눈물만 쏟았는데, 드디어 “너도 알겠지만····.”으로 서두를 꺼내고는 애경이와 이민우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둘이 그렇게 죽은 것도 똑같고····.”

   죽었다는 사실이 같다는 말인지 죽은 상황이 같다는 말인지 그녀는 애매하게 말을 흘렸다. 이번 장편은 요리사인 남편과 교통사고를 당한 사실을 그대로 그릴 것이라 바로 전에 분명하게 말을 해놓고도 얘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담에는 어떤 말이 나오나 하고 나는 암말 않고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서 말인데 이 문제를 좀 깊이 파고들어 영혼의 세계로 끌고 가려고 해. 애경의 죽음을 타살로 몰고 가는 거야. 물론 표면에 나타내지는 말고 독자들에게 암시만 주는 거지. 그러면 소설이 더 흥미를 끌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영원히 미해결로 남는 살인 사건들도 많잖아?”

   갈팡질팡하는 강미경 앞에서 나 역시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네 생각은 어떠니?”

   그 순간 나는 목구멍까지 치솟는 말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끌고 나가려면 애경이의 죽음이 타살인데 이민우가 덮어버린 걸로 해야죠. 그래서 억울하게 죽은 애경의 혼이 이민우한테 들러붙었다····. 그러면 소설의 줄거리가 타당성 있게 전개될 거예요.’

   하지만 내 심정은 오늘밤에라도 꺼져 버릴지 모르는 촛불 같은 언니의 심기를 조금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소설의 소재가 교통사고에서 타살로 전환이 됐으나 그냥 모르는 척했다.      

   강미경은 내 맘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심각한 표정을 지어 나는 얼른 딴청을 피웠다.

   “영혼의 세계까지 파고들려면 리서치 해야 할 것들이 무지 많을 텐데, 언니 건강이 허락을 하겠어요?”

   그녀는 아주 쉽게 대답했다.

   “뛰어다니지 않아도 컴퓨터에 들어가면 다 있으니 문제없어.”  

   기발한 아이디어가 또 하나 생긴 듯이 강미경이 놀라는 시늉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이건 내가 너한테도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왕 소설의 소재가 다 나왔으니 털어놓을게. 이건 정말 비밀인데····.”

   허구인지 진실인지 모를 소재가 또 나왔다.  

   “소설에 또 하나 ‘아이구, 그랬구나.’ 하고 독자들이 깜짝 놀랄 줄거리를 집어넣으려고 해. 이건 진짜 비밀 얘기인데, 세상에 비밀이 어딨니? 언젠가는 밝혀지는 게 비밀 아니니? 내가 이 소설에서 그 비밀을 밝히려고 해. 이건 애경이도 모르고 있던 비밀이야.”  

   비밀 비밀을 연거푸 반복하며 애경이도 몰랐던 비밀이라는 말에 나는 그게 뭔지 궁금했다. 그녀의 입에서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또 하나의 사건이 터져 나왔다.

   “우리 부모님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거 말야.”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빛났다. 초롱초롱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녀의 애기를 들으며 몇 번을 느낀 바 있는 섬뜩한 눈빛이었다. 기분이 나빴다.  

   “그게 사고가 아니라 생명보험을 노린 고의적인 타살이었다고.”  

   깜짝 놀라 주춤거리는데 다행히 그녀는 내게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강미경의 아버지는 미국에 와서 부동산업에 손을 댔다. 한국에서도 땅장사를 했고, 이민 와서도 호화저택에 살 만큼 사업이 잘되어 첨엔 돈을 벌었다. 상가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가실 즈음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번드레한 부자였으나 속으로는 곪고 있었다.  

   생명보험은 미경이가 결혼하기 전에 들었고, 애경이는 일체 몰랐다. 매사에 부족하고 돈 관리도 할 수 없는 딸이기에 모든 것을, 언니인 미경의 이름으로 해 놓았었다. 큰딸인 미경이를 그만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큰딸을 불러 생명보험에 관한 얘기를 귀띔해 주고 작은딸을 평생 돌보아 줄 것을 당부했다.

   애경이가 내게 들락거리며 ‘유산, 유산’ 하고 눈에 불을 켜고 언니 험담을 했으나, 거기에 생명보험이란 어휘는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다. 강미경의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만일 생명보험에 관해 애경이가 알았다면 아주 완전히 돌아버렸으리라고 상상이 됐다.

   강미경은 결혼 초에 남편에게 모든 것을 다 말했다.

   “그땐 내가 이민우한테 홀딱 빠져 가지고 무슨 얘기든 다 했었어. 더구나 아버지가 입주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해 이민우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 잘 해결을 해주어, 그가 우리 집 구세주인 양 믿음직스러웠단다. 결혼 전에 부모님이 반대한 것도 너무 미안했고.”

   그리고 그 얼마 후, 교통사고가 나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어머니는 병원에서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 마주 오는 거대한 트럭이 들이받고 뺑소니를 쳐버려 영원이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사건이었다.      

   강미경의 음성이 점점 고조되었다. 벌벌 떨기까지 했다.

   “그 당시에는 상상조차 못했었는데 세월을 지나면서 돌이켜보니 그건 분명히 고의적인 교통사고였어. 확실해. 확실해. 이민우가 한 짓이 틀림없어.”  

   이제 그녀는 이민우를 살인자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또 충격을 받았다.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강미경은 내게 말할 새도 주지 않고 흥분했다.

   “친구 집에서 저녁을 잡숫고 집으로 오는 길에 사고가 났는데, 그날 부모님이 거기 가시는 건, 나랑 이민우만 아는 사실이었거든. 아주 늦은 밤이고 한적한 주택가였어. 어때 네 생각에도 틀림없지. 이민우가 한 짓이지?”

   그녀가 환상의 세계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지만 현실 세계에서도 가능성은 있는 일이었다. 강미경은 내게 맞장구를 쳐달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었다. ‘비극은 끝나다’ 에도 생명보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아이, 언니도 차암. 그건 아녜요. 그건 언니 오해예요. 절대로 아녜요.”

   고조되어 가던 그녀의 음성이 절정에 달해 내 고막을 마구 때렸다.

   “뭐? 아니라고? 그럼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니? 이 바보야. 아직도 이민우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모르겠어? 분명이 이민우가 트럭 운전사를 매수해서 저지른 살인이야. 잘 생각해 봐. 사업상 사용하는 그 큰 트럭이 밤중에 한적한 주택가를 지날 일이 뭐 있겠니? 일부러 지키고 있다가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이 틀림없어. 이민우가 사업 착수금으로 쓴 돈이 모두 생명보험에서 지급된 거였다고.”

   조금 흥분을 가라앉혔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자동차 보험에서 나온 돈도 얼마 안 되었고, 집이니 상가니 겉보기만 근사했지 은행 빚 가리고 나니 별 남는 게 없었어. 빚 안 진 것만도 다행이었단다.”

   강미경은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부모를 죽인 원수와 살았으니, 이런 불효막심한 딸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니?”

   어머니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애경이 걱정 때문에 눈을 못 감으셨다고 하면서 다 쏟아 버린 줄 알았던 눈물을 또 흘렸다.

   “내 전심전력을 다해서 애경이를 잘 돌보려고 진짜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데····. 내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면서도 어머니는 애경이 걱정만 하셨어.”

   그녀는 조금 전에 한 얘기를 다시 반복하며 흐느끼다가 나 보라는 듯이 어깨를 세차게 들먹거리며 소리 내어 울었다. 강미경이 우는 것이 이제는 슬프지가 않고 싫었다. 뭐라고 위로를 해서 울음을 그치게 하고 싶었다.

   “언니. 다 지난 일이예요. 이제는 잊고 언니 건강 생각이나 하세요. 그만 우세요. 우는 것도 건강에 해로워요.”

   그녀도 나도 한 말을 또 반복하고 있었다.

   강미경은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을 말끔하게 닦아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완전히 실화만 들어가는 거야. 그렇지만 줄거리가 너무 소설적 아니니? 독자들은 ‘와 어디서 이런 소재를 얻었지?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네’ 하고 놀랄 거야. 실화인 줄도 모르고. 분명히 베스트셀러가 될 거야.”  

   환상에 빠진 강미경은 다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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