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30, 마지막회

2011.08.06 21:10

김영강 조회 수:1029 추천:134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30, 마지막회


   얘기를 하는 동안 간병인은 이민우를 사장님, 또는 제이슨 아버지로 호칭을 했지 이민우라는 한국이름은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마이클 리는 공적으로 부를 때만 몇 번 언급했었다. 한데 강미경은 그날 밤, 계속해서 이민우, 이민우만 입에 달고 있었다. 혹시 ‘마이클 리’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이슨은 자폐아였어요.”

  나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뭐? 자폐아?”

  “재판에 유리하게 변호사가 정신이상 쪽으로 몰고 가 어릴 적부터 자폐아였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자폐아가 확실했던 것 같아요.”

  언뜻 애경이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자폐아라는 것을 부모가 인정을 못 하고 계속 정상인 취급을 한 거였어요.”  

  강미경의 간병을 맡게 되자 병원에서 환자에 대한 것들을 자세하게 알려주었었다. 이미 소문은 날 대로 다 나 있어서 간병인도 대충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민우을 판에 박은 듯한 제이슨은 어릴 적부터 완전히 자기중심으로 고집을 피우며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노.노. 하고 야단을 치면 그냥 뻗대고 앙앙 울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콩이 팥이라고 우기면 그렇다고 해야만 했다. 성격이 강하고 좀 부산스럽다고만 여기고 강미경은 아이를 감싸고 또 감쌌다. 결국은 전문의와도 상담을 했지만 주위에서 알까 봐 쉬쉬했고 철이 들면 나아지리라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아주 말짱했기 때문이다.

  커 가면서 제이슨은 아주 조용한 아이로 변해 갔다.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내면세계에 틀어박혀 정신적으로 완전히 고립상태에서 혼자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었다. 현실 세계와 꿈을 분간하지 못 하고 대인 교섭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연히 육체도 쇠약해져 갔다.

  제이슨이 병원 가는 것을 너무나 싫어해 치료 받기도 힘들었다. 그런 아들을 지켜보며 강미경은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슴을 졸였다. 강미경 역시 몸과 마음이 사그라져 들었고, 이민우는 사업에 몰두한답시고 바깥으로만 나돌아 가정에는 쩍쩍 금 가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아이로 인해 그들의 사이에는 강이 생겼고,  그 강은 갈수록 깊어졌다.  

  이민우는 자신이 낳은 아들인데도 제이슨을 미워했다. 걸핏하면 때렸다. 아이가 죽을 둥 살 둥 달려들면 거의 반을 죽여 놨다. 병든 아이를 보통 애 취급을 하며 죽어 없어지라는 소리까지 했다. 아내를 걸고넘어지며 당신 집안의 피를 받았다면서 입에 담지 못 할 말들을 마구 내뱉었다.

  학교에 들어간 후부터 아이는 아버지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아버지를 보기만 하면 숨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저녁이었다. 윈도우 실드가 숨 가쁘게 움직이는데도 앞이 안 보였다. 눈이 아닌 감각으로 도로판을 읽어야 할 만치 악천후였다. 여자네 집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꽤 멀어 이민우는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본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는 강미경이 여행 중인지도 몰랐다. 제이슨은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너는 아버지가 왔는데도 본체만체  하냐?”  

  그들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아버지를 힐끔 본 제이슨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제이슨을 보기만 해도 부아가 치미는 그라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아들이 보는 책을 낚아채 바닥에다 내동댕이쳤다.

  “아버지 말이 말 같지가 않아?”

   책상 앞에 앉았던 제이슨이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며 눈을 부릅뜨고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퀭한 두 눈에는 살기가 번떡였다.

  “이 새끼가.” 하고 이민우는 아들의 뺨을 호되게 때린 후, 주춤거리는 제이슨을 주먹으로 다시 쳤다. 제이슨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쓰러진 아들을 그는 발길로 찼다.  

  거실로 나간 이민우는 독한 양주를 연거푸 마시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비는 계속 퍼부었고 천둥 치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하늘이 갈라져서 땅으로 툭툭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그날 밤, 제이슨은 술에 만취되어 곯아떨어진 아버지의 목을 조른 것이다.

   문득, 애경이가 목을 맸다는 노란 노끈이 떠오르며, 무엇으로 아버지의 목을 졸랐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그냥 손으로, 아니면 엄마의 스타킹으로, 또 준비한 끈으로····.

  간병인에게는 차마 꼬치꼬치 물을 수 없는 여러 가지 도구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아마 애경이도 술에 만취되어 곯아떨어진 상태에서 목이 졸렸을 것이다. 내 목이 졸린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 왔다. 왜 내가 이런 상상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이 싫고 미웠다. 알고 싶어 했던 또 다른 진실을 막상 알고 나니 가슴이 뚫리기는커녕 쌓이는 돌덩어리는 점점 가중되었다.  

  모든 진실을 밝히면서 그녀의 입에서 ‘이민우’라는 이름 석 자는 거론되지 않았다. 계속 사장님, 제이슨 아버지로만 호칭이 되었다.  

  “아니, 그럼 차고 천장에 목을 맨 게 아니었군요.”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모든 것에 감이 잡혔다. 강미경은 애경의 죽음을 이민우한테 갖다 붙인 것이다.

  “지금 말한 대로가 진실이에요. 그런데 사모님은 제이슨이 곧 석방이 되리라고 믿고 있어요.”

  “그래요. 나한테도 그랬어요.”        

  골치가 아픈지 그녀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괴고 한참이나 그러고 있었다.

  “지금 ‘길티’ 라고 인정만 하면 금세라도 나올 것처럼 그러던데요?”

  “그 얘기도 환상이에요. 꽤 오래 전에 그런 기사가 신문에 난 적이 있었어요. 어떤 미국 여자가 남편을 살해했다는 명목으로 10년을 감옥에 살았는데, 길티를 인정하고 석방이 됐대요. 정당방위라고 끝까지 우겼지만 검찰 측의 증거 확보가 더 효력이 있었나 봐요. 변호사랑 밀고 당기고 하면서 계속 끌어오다가 합의를 본 거지요. 미국법에 그런 게 있는지 저도 처음 알았어요. 강 작가님이 그걸 제이슨한테 결부시킨 거죠. 결부시킨 게 아니라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럼, 무기징역 받았어요? 아, 아니지. 정신이상이었으니 지금 병원에 있겠네요. 그날 밤 저한테는 12년 동안 감옥에 있다고 얘기했어요.”

  간병인은 이마를 괸 채로 고개를 더 숙이며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없어요. 감옥에도 없고 병원에도 없어요.”

  ‘그렇담 죽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럼 사형을? 정신이상자에도 사형이 언도되나? 더구나 미성년자인데도?’

  그날 밤, 강미경의 얘기를 듣는 중에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혹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죽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간병인은 자세를 고치고 앞에 놓인 냉수를 꿀꺽꿀꺽 연거푸 들이켰다.

  “그게 아니고, 병원에서 8년을 살다가··· ···.”

  그녀는 다시 냉수를 한 모금 마셨다.

  “4년 전에 죽었어요.”

  “4년 전에?”

  마지막 어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입 모양만 보고 알아들음과 동시에 나도 똑같은 어휘를 되뇌었다. 4년 전부터 일했다는 간병인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그러니까 아들이 죽고 나서 몸과 마음이 다 허물어지고 말았구나.’

  “어디가 아팠어요?”

  내 목소리가 모기소리만치 작게 흘렀다. 귀에 들리는 내 음성이 남의 것인 양 무척이나 낯설었다.

  “아뇨. 자살했어요.”

  간병인의 눈이 초점을 잃고 허공에서 헤맸다. 자살이라는 두 글자가 가슴 한복판에 와서 턱 꽂혔다.

  “철창에 목을 맸대나 봐요.”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입술만 달싹거렸는데도 하나하나의 어휘들이 분명하게 들렸다. 나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쓰라린 기운이 전신을 휩싸면서 뭔가 뜨거운 것이 눈가로 몰려들었다. 강미경이 정신을 놓아버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도 간병인도 금세 말문을 열지 못 했다. 서로의 시선을 마주할 수도 없었다.

  나는 얘기를 들으며, 간병인이 어떤 여자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다 털어 놓을 걸, 버지니아에서는 왜 그토록 함구를 했는지 이해가 안 갔다. 더구나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동안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침묵의 무게에 눌려 차가 짜부라지는 듯한 무겁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가 불편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게 손톱만치의 귀띔도 안 했었다. 강미경이 불을 토하듯이 전신의 힘을 기울여 가슴 속의 한을 풀어냈던 그 다음날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끝까지 함구를 해,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머리를 쳤다.

  “그 후로 정신분열증이 시작됐어요. 현재의 일들을 기억 못하고 자신의 상상을 현실로 착각하곤 하지만, 또 아주 옛날 일들은 분명하게 기억을 해요. 그렇지만 생활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어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없고 과격한 행동도 안 하고 생활하는 데도 별 지장이 없다는 말을 그녀는 또 강조했다.  

  “제이슨이 병원에 있는 8년 동안 아들을 위해 헌신한 거, 참 눈물겨웠어요. 집도 병원 가까운 데 이사를 했고요. 지금 사는 집에서 언덕 하나만 넘으면 병원이 있어요. 아들이 그렇게 가버리기 전에는 그 고초를 겪으면서도 정신은 지극히 말짱했어요. 하지만 몸은 늘 아파 정신력으로 버텨왔는데 그만 정신까지 놓아버리게 된 거지요. 너무 가혹하잖아요?”

  그렇다. 신이 있다면 정말 그건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은 사장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본격적으로 쓰신 것 같아요. 그때는 정신이 온전한 상태였을 거예요. 자기가 쓴 소설, 그리고 구상하는 소설들을 나한테 얘기해 주었어요. 소설 얘기를 할 때는 강 작가님이 행복해 보여 저는 맞장구를 치며 재미있고 또 슬프다고 격려를 했지요. 사실이 그랬고요.”

  그러나 구체적인 얘기는 일체 없었다. ‘비극은 끝나다’ 나 또는 지금 쓰고 있다는 장편소설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버지니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물었다.

  “요즘, 혹시 지금 쓰고 있는 장편소설에 대한 얘기 없었어요?”

  그녀는 쓸쓸히 웃었다  

  “지금 무슨 소설을 쓰시겠어요? 아마 늘 구상만 하고 있겠지요.”

  ‘지금 장편을 쓰고 있다 그랬는데요?’ 하는 말을 할까 하다가 그녀와 주거니 받거니 할 성질의 대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간병인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냥 우두커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가 많아요.”

  잠깐 말을 끊고 그녀는 앞에 놓인 냉수를 한 모금 마시더니,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거겠죠.” 하고는 내 심중과 똑같은 말을 덧붙였다.

  ‘강미경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빛은 그 기다림의 끈이 아닌가?’

   간병인이 깜빡 잊을 뻔했다면서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새 간병인 전화번호예요. 혹시 참고가 될까 해서요. 실은 제가 간병인으로 일하는 동안 강 작가님을 찾아온 분은 해주 씨가 처음이었어요. 피붙이도 하나도 없고,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없었어요.”

  간병인의 말이 가슴 한복판에 턱 걸렸다. 세월이 강미경의 모든 것을 다 앗아가버렸지만 보통 사람 같으면 그래도 인생의 마지막 과정에 가족 하나 둘은 남는 것이 상식이다.

  ‘딸 하나만 있었더라도 그녀의 역사는 바뀌지 않았을까?’

  순간, 크리스틴이 뇌리를 스쳤다. 피붙이는 아니더라도 강미경에게 가까운 촌수를 뽑아낸다면 그중에 크리스틴도 들어간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인 나만이 알고 있는 진실, 그 진실도 이제는 영원히 묻히게 생겼다.

  엉뚱한 생각을 하다 말고, 무심코 쪽지를 펼쳐들었다. 거기엔 ‘이혜주. 804-275-xxxx’ 라고 씌어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쪽지를 가방에 집어넣으려다가 벼란간 이혜주가 크리스틴의 한국이름이라는 것이 머리를 스쳐 잠시 주춤했다. “선생님 실은요, 제 한국이름이 선생님 이름하고 같아요. 제 이름도 혜주예요. 선생님은 아.이. 지만 저는 여.이 예요.” 하고 말을 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서늘한 기운이 전신에 퍼졌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면서 한참 동안 쪽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크리스틴이라는 예감이 왔다. 전신을 휩싼 서늘한 기운이 차츰차츰 얼어붙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우연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크리스틴이 결국은 본연의 이름인 이혜주로 돌아왔다는 말인가.’

   바로 몇 초 전에 내가 크리스틴을 떠올린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탓인지 제가 엘에이로 간다고 하니까 강 작가님도 따라오겠다고 해, 달래느라고 혼났어요.”

   갑자기 가슴이 철커덩 하고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오죽하면 제가 제이슨 핑계를 댔겠어요. 어머니가 여길 떠나면  제이슨은 어쩌느냐고요. 그랬더니 ‘아참, 그렇구나’ 하면서 아쉬워해 가슴이 아팠어요. 그런데 새 간병인이 들어온 다음에는 저보고 빨리 가라고 그러잖겠어요? 마침 적합한 간병인을 구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도 강 작가님이 딱 마음에 들어 해서 좋아요. 그 여자도 이제야 보금자리를 찾은 것같이 편안하다고 했어요.”

  마음에 드는 간병인을 못 구하다가 드디어 좋은 사람을 구해 그녀도 흡족한 것 같았다. 빨리 가라고 해도 섭섭하지 않고 도리어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기분이나 제이슨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이가 몇 살쯤 됐어요?”

  “나이도 딱 알맞아요. 지금 마흔 아홉이에요. 너무 젊은 사람도 못 미덥거든요. 저 역시 제 나이에는 좀 힘이 들었어요.”

  “그럼 애들과 남편은 어찌하고요?”

  “결혼을 한 번도 안 했다고 해요. 가족도 없구요. 입양아로 미국에 왔다는데, 양부모하고도 헤어져 계속 혼자 살았다고 해요.”

   두 번 다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키도 크고 체격도 크고, 아주 건강해 보였어요. 양로병원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경험도 풍부하구요.”

   “양로병원에서 일했다면 간호원인가요?”

   “정식 간호원은 아니고 보조였는데, 그런 사람이 간병인으로는 더 적격이지요.”

   “선생님, 민우 선생님은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예요. 나만 좋아한 게 아니고 애들이 다 좋아했어요.” 하던 고등학교 시절의 크리스틴이 떠올랐다.

   ‘근 반백년의 세월을 헤매고 헤매다가 결국은 한 가닥의 핏줄이 흘렀던 본향을 찾게 된 것일까? 이혜주라는 이름으로. 이런 것을 신이 예비하신 길이라고 하는 걸까?’  

   그녀는 꼬박꼬박 대답을 하다가 의심을 가득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혹시 아시는 분인가요?” 하고 물었다. 나는 곧바로 “아니” 라고 대답하면서 나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언니 간병인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요.”

   “염려 안 하셔도 될 거예요. 참, 그리고 강 작가님이 새 간병인을 어찌나 마음에 들어 하는지, 이담에 자기 죽으면 유산은 다 그 여자한테 물려준다고 그러면서 조건이 있다고 했어요. 제이슨을 책임지고 돌봐줘야 한다고요.”

  만나지 못하고 살아도 잊고 살아도, 사람은 이렇게 한순간에 연결이 돼버릴 수 있다는 자체가 맘을 뒤흔들었다. 기쁨인지 서글픔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간병인이 탄 차가 출구로 막 빠져나갔다. 나는 계속 차 안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머리를 뒤로 기댄 채 한참을 더 앉아 상념에 잠겼다.  

   ‘혹시 크리스틴이 이민우와 강미경이 부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나와 얘기를 하는 동안 간병인의 입에서는 한 번도 이민우라는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었다. 강미경에 관한 얘기들을 설명해줄 때 크리스틴에게도 제이슨 아버지, 또는 사장님으로만 호칭했는지 모른다. 강미경이 그리도 좋아한다면서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해요.’ 하고 예날 얘기를 할만도 한데 그런 얘기는 없었다. 크리스틴이 모르는 게 확실하다. 언젠가는 밝혀질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러나 나만 알고 그 진실은 이제 영원히 묻히게 되었다. 이제는 강미경이 크리스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까 봐 더 못 털어놓게 돼버렸다.

  ‘내가 진작에 이민우와 크리스틴의 관계를 털어놓았더라면 크리스틴의 운명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까?’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톡톡’ 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주차요원이 차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큰 충격을 받은 내 모습이 뭔가 달라 보였던 모양이다.

   “괜찮아요. 곧 갈게요.”

   그는 나를 진정시키기나 하듯이 한 손을 들고 경례하는 시늉을 하고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우중충하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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