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매듭

2012.05.12 12:58

김영강 조회 수:533 추천:159

  아버지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서전에 꼭 들어가야 하는 가족사에 대해선 일체 언급이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애초부터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혈육인 내게 관한 얘기도 없었다. 주로 학문적 사회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쳤고 가장 재미나는 부분은 유명 인사들의 인간관계였다. 자칫하면 사회 소설로 전환되어 딱딱한 얘기가 돼버리기 십상인데, 아버지의 글솜씨는 정말 대단했다. 단숨에 줄줄 읽혀 내려가면서 울리고 웃기고 하는 감동까지 있었다. 그가 직접 쓴 자서전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인정한다.

  자서전을 읽다가 깜짝깜짝 놀랄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민지민 박사가 제일 많이 놀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누가 보아도 거기에는 아버지가 민지민을 자신의 적이라고 간주한 것이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동거하고 있는 남자 친구, 형우의 아버지가 민지민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자서전은 씌어졌다.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아버지께 인사를 시켜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소용없는 일이 돼버렸다.
  이제,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책이 세상 빛을 본 바로 그날, 아버지는 숨을 거두셨다. 심장마비였다.
  
  민 박사가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의 성격은 아주 포악하다. 치사하고 비열한 면도 있다. 그리고 그는 남의 입장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 몰인정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민지민을 묘사한 구절들은 극도의 수식어를 붙여가면서 참으로 잔인하게 그려져 있었다. 형우한테서 들은 얘기와 딱 들어맞는 내용들이니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활자화하여 만천하에 공포한 아버지의 의도에 나는 놀랐다. 판매 금지 운운 하면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라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작자는 이미 고인이 돼버렸다.    
  나는 아버지의 질투와 증오의 대상이 민 박사라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이라는 단어는 머리에 떠올리지 못했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그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아버지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얼른 꺼버리곤 했다. 그는 귀공자 타입의 잘생긴 인물에 키 또한 헌칠하게 큰 아주 멋있는 분이었다. 같은 공학박사인데도 자기보다는 훨씬 앞서 가는 민지민에게 아버지는 늘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그 화살은 목표물을 향해 한 번도 날아가 보지를 못하고 언제나 엉뚱한 곳을 향해 쉴 새 없이 날아갔다. 그곳이 바로 내 가슴팍이었다.
  
  “너는 도대체 누굴 닮아 그렇게  못생겼니?”
  아버지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다. 그뿐만 아니다.
  
  “또 키는 왜 그렇게 작니? 난쟁이 똥자루만 해가지고····. 내가 창피해서 못살겠다.”
  그때마다 나는  목구멍에서 치솟아 오르는 말이 있었다.
  
  ‘누굴 닮긴 누굴 닮아요? 아버지 닮았죠. 왜 날 이렇게 낳아놨어요. 다 아버지 책임이에요. 아버지 책임이라고요.’
  
  그러나 나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속을 꾹꾹 누르며 내 방에 틀어박혀 있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방문을 열어보는 적은 없었기에 내 방은 내 유일한 안식처였다. 남 앞에 서기를 꺼려했기에 손님이 와도 나는 내 방에 콕 처박혀 있었다. 그게 편했다. 그러는 것이 아버지가 원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할 게 없어서 공부만 했다. 경쟁 상대가 없을 만치 나의 성적은 특출했지만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반에서는 최고 점수였으나 문제가 어려워 80점에 머물렀을 경우, 그는 시험지를 내 코앞에 내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너희 반에는 바보들만 모였어. 이게 뭐냐? 이게. 이건 선생한테도 문제 있어.”  
  
  공부뿐만이 아니라 책도 많이 읽었다. 한창 뛰어놀고 만화책이나 읽어야 할 나이에 나는 벌써 유명한 작가들의 소설을 읽었다. 어려운 과학 서적까지 읽었다. 책은 항상 아버지가 선정을 해주셨다. 그리고는 꼭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너는 커서 학자가 돼야 하니 책을 많이 읽어야 해. 시시한 학자 말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학자가 되어야 한다.”

  그 말의 뒷면에는 ‘네 인물에 남자 만나 시집가기는 글렀으니 공부나 해라’라는 뜻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숨막히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했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한 번 호되게 당한 다음부터는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나는 아버지가 하는 말이 하도 말 같지가 않아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며 따지다가 뺨을 한 대 얻어맞았다. 그 전에도 손찌검을 자주 당했기에 처음으로 죽을힘을 다해 “왜 때려요? 왜 때려요?” 하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아버지는 혁대로 내 몸을 휘갈겼다. 나는 석쇠 위에 올려놓은 오징어모양 온몸을 돌돌 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비명을 질렀다.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열 살 적 일이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괜히 화를 내고 밖에서 일이 잘 안 풀리면 나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래서 하루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다. 다행히 공부가 날 살려주어 성인이 되기 전에 나는 아버지 곁을 떠날 수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미국 유학의 길이 열린 것이다. 아버지의 간섭 없이도 나는 나의 길을 잘 개척해 나갔다. 학비는 전액 면제였지만, 생활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꼬박꼬박 부쳐왔었다. 충분히.
  
  ‘사랑하는 아내를 나 때문에 잃어 그렇게도 나를 미워하나?’ 하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내게는 그런 기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혹시 엄마 사진이라도 있나 하여 온 집안을 뒤진 적이  있었으나 허사였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어머니에 대한 흔적은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머니라는 단어조차도 입에 올릴 수 없는 것이 우리 집에서는 불문율처럼 돼 있었다. 좀 커서부터는 일하는 아줌마가 자주 바뀐 기억은 나지만, 나는 늘 혼자였다.
  아버지가 다시 결혼하기를 나는 간절히 원했지만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결국, 나는 아버지의 뜻대로 생명공학 박사가 되었고, 미국에 눌러앉아 N대학의 연구진에 합류했다. 그리고 서른이 넘은 후에 형우를 만났다. 나보다 네 살이 연하였지만 여러 가지로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들어맞은 것은 2세를 세상에 남기지 않는다는 것과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이념이었다. 애길 하다 보니 그도 아버지로부터 두들겨 맞고 살아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좀 말썽꾸러기이긴 했으나 그렇게 심하게 맞을 짓을 안 했는데도 시시하면 아버지는 나를 팼다고.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에 미쳐 돌아다니는 내가 마음에 안 드셨던 게지. 이상하게도 난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싫었어. 어머니한테 함부로 하는 것도 싫었고. 한 번은 내가 아버지한테 맞대항을 한 적이 있었어. 두들겨 맞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아버지의 얼굴을 한 대 친 거야. 내 덩치가 꽤 컸는데도 아버지는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반 죽여 놨어. 온 얼굴이 피범벅이었으니까. 죽도록 얻어맞고도 나는 아버지한테 엎드려 몇날 며칠을 빌었어. 내가 뭐 빌고 싶어  빌었나? 엄마 때문에 빌었지. 속으론 이를 악물고 두고 보자 하고 벼렸었다고.”

  그러다가 결국 그가 집을 나와야 했던 큰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 입학시험에 낙방을 한 때였다. 공부는 하지 않고 사진에만 미쳐 돌아다녔으니 대학에 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땐 아버지보다 내가 힘이 더 셌지만 폭력은 쓰지 않고 아버지를 막기에만 급급했었다고.”

  한데, 갑자기 아버지가 골프채를 쳐들었다고 한다. 나는 깜짝 놀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래서  골프채로 때렸어?” 하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물론이지. 손으로 얼굴을 막으면서 뒷걸음을 치다가 얼떨결이 팔뚝을 두어 대  맞았지.”
  
  ‘내 아버지는 혁대였으나 그의 아버지는 골프채였다고? 참말로 너무하다. 자식을 때리는 데에도 내 아버지보다는 차원이 높아서였나?’

  “힘으로는 당할 수가 없으니 또 내가 옛날 모양 폭력을 쓸까 봐 골프채를 잡은 것 같아. 진짜 내 머리통이라도 갈길 것처럼 골프채를 내리찍으며 휘두르는데 무섭더라고. 어쩌겠어. 집 밖으로 도망을 치는 수밖에. 재수 없어 한 대 정통으로 맞았더라면 죽었을 거야.”

  나는 가슴에서 울분이 이는데 그는 아주 담담하게 얘길 이어갔다.

  “그리고는 집을 나와 빌빌거리다가 운이 좋아 미국으로 굴러왔는데, 알고 보니 내 미국행은 아버지가 주선을 해준 거였어. 남들 보기 창피하니,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라는 의도였을 거야. 한국을 떠날 때, 엄마 때문에 많이 가슴이 아팠는데 오래 안 보니까 생각에서도 멀어지는 것 같아. 엄마도 지금쯤은 많이 늙으셨겠지? 우리 엄마 굉장히 미인이시거든. 그렇게 미인 와이프를 두고도 아버지는 바람을 피웠다고. 어찌나 엄마를 무시하는지, 버러지를 대하듯 하는 그 눈빛과 말투에 내가 울분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그래도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꼼짝을 못하고 사셨어. 도무지 이해 못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어디 파티에 동반할 때는 최고로 꾸며서 같이 가고 말야. 오랜만에 엄마 생각을 하니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네.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속을 무지하게 썩고 사셨는데 말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어떤 분인지 꼭 보고 싶었다.
   결국 형우는 자유 방랑자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그의 모든 것을 다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끊지 못한 족쇄를 일찌감치 끊어버리고 그 길에서 도망을 친 것도, 아버지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향해 반기를 들고 혁명을 시도한 것도 내게는 매력적인 행위로 비춰졌다. 마음을 터놓고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풀어내며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말한  적이 없었고, 나 또한 관심 밖이었는데 같이 산 지 한참 지난 후에, 하루는 느닷없이 그의 아버지 이름을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 민지민의 이름 석 자를 듣는 순간, 물론 나는 놀랐다. 그러나 그는 나의 아버지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자서전이 드디어 베스트셀러 계열에 올랐다. ‘이상태 자서전’이라는 제목아래 실물보다 훨씬 잘 나온 그의 얼굴이 표지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아버지’ 하면 항상 찡그린 표정만 떠올랐는데, 참 보기가 좋았다. 광화문 거리의 빌보드에서도 아버지의 활짝 웃는 얼굴이 전광판으로 뱅뱅 돌아가면서 반짝거렸다. 하루  아침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가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T.V에서, 영화계에서 그리고 번역 계에서도 계약을 맺기 위해 나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정도였다.
  ‘죽은 후에야 아버지는 민지민 박사를 이긴 것일까?’
  
  여행 중인 형우에게는 연락이 닿지가 않았다. 또 어디 산속 깊이 들어가 사진 촬영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형우는 ‘코리아’라는 이름을 알릴 정도로 유명한 사진작가가 되었다. 일류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떠나서라도 이제 민 박사는 아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형우도 나처럼 한을 남기지 말고 하루 빨리 아버지와의 매듭을 풀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모든 절차를 끝낸 다음, 나는 형우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으로 묶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나의 시어머니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장례식 때, 나는 혹시 민지민 박사가 왔나 하여 두리번거렸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10여 년 전 학회 차 한국에 나왔을 때 딱 한 번 형우 어머니를 본 적이 있다. 형우와 동거한 지 일 년이 좀 지난 후였다. 미인이라는 말은 형우한테서 들어 알고 있었으나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미인이었다. 유난히 흰 피부에 쌍까풀이 진 깊은 눈, 그리고 오뚝한 콧날에 갸름한 얼굴을 가진 그녀는 여자가 보아도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은 그런 미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대했다. 아들보다 나이도 많고 무지하게 못생긴 여자친구라, 맘에 들지 않아서겠지 하고 씁쓸한 생각이 들었으나 가만히 얘길 해보니 그건 아니었다. 차츰차츰 내 마음이 편해진 것을 보면 교양미도 있는 분이었다. 웃음기만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표정에는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서려 있었다. 그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어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남편이 딴 여자의 품으로 아주 가버린 것일까?’

  그러나 그녀의 깊은 우수에 잠긴 그 표정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때, 이미 오십이 넘은 나이인데도 몸매까지 팔등신이었다. 이십대에는 얼마나 예쁘고 멋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쳤다. 남자라면 누구나 첫눈에 반할 것만 같았다. 외모에 열등의식이 있는 나는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보는 것 같아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같이 살고 있다는 말에도 별 대꾸가 없었다. 아들 앞에서도 그녀는 담담했다. 모든 세상사를 초월한 사람 같았다. 오히려 형우가 눈물을 보였다. 그녀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한 번 본 것으로 끝이 났다. 그날 일을 돌이켜보면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의문은 우리가 떠날 때쯤 그녀가 현기증으로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린 것이다. 이상태 박사가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집안에 들어설 때 일하는 아주머니가 그랬다. 그녀는 치매증세가 심해 나를 못 알아볼 지도 모른다고.
  “치매라고요? 연세가 몇이신데 벌써?”
  나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그녀의 나이는 이제 육십  중반이다.
  “벌써 오래됐어요. 내가 이 집에 오기 좀 전부터이니 근 10년은 된 것 같아요.”  
  민지민은 학회 세미나 참석차 외국에 출타 중이었다. 10년 전, 인사차 왔을 때도 그는 외국 여행 중이었다. 아주머니 말이 민 박사는 1년에 6개월은 외국에서 지낸다고 했다. 형우 어머니와 일하는 아줌마만 남아 있는 커다란 집에 서려 있는 냉기는 차다  못해 온몸이 오싹할 정도였다. 썩은 물속처럼 정체되어 있는 견딜 수 없는 분위기에 엉성하게 배치된 가구들조차도 지겨워서 가출을 해버릴 것만 같았다.

  10년 전에는 너무나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던 집안이었다. 안주인 없는 집에서 어수선하게 살던 나는 미국 생활을 하면서도 책이며 서류들을 여기저기 늘어놓고 살았다. 그래서였는지 형우 집의 첫 방문에서 나는 ‘와, 이렇게 잘 꾸며놓은 집도 있구나.’ 하고 감탄을 했었다.  
  집의 변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형우 어머니는 더 이상으로 변해 있어 못 알아 볼 정도였다. ‘혹시 그의 할머니인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 정도였다. 그녀는 몰라보게 늙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말라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해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퀭하니 움푹 파인 두 눈만이 온 얼굴을 차지하고 있었고 마른 목이 머리를 지탱하기도 힘든 모습이었지만 거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 그녀의 눈은 빛났다.  한 번밖에 본 적이 없는 나를 분명 알아보고 있었다. 누굴  찾는 듯 얼른 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니 아들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10년 만에 어찌 저렇게 변할 수가····.’
  
  그녀의 증세는 치매가 아닌 정신병이었다. 가끔씩 정신을 놓아버릴 때가 있으나 여느 때는 지극히 말짱해 일상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돌발 사고가 도래할지 몰라 병원에 갈 때나 외출 시에는 반드시 아줌마가 동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형우 어머니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미소를 머금고 내 손을 살그머니 잡았다. 차가울 줄 알았던 손이 의외로 따뜻했다. 온기가 내 가슴에 전해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그렇게도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니····. 그녀는 10년 동안에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 버렸다. 그동안에 민지민 박사는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자기가 버린 자식이라고, 엄마와의 인연까지도 끊게 했단 말인가.’

  사실, 내가 형우 집을 방문한 것은 그의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한 번 본 것으로 인연이 끝난 것은 확실한데 왠지 언뜻언뜻 그녀 생각이 났었다. ‘어머니라는 사람은 아버지 몰래 연락을 할 수 l있지도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를 하다가 혼자 쓴웃음을 지은 적도 있었다.

  그날 밤, 형우 어머니는 자꾸 좀 더 있다 가라면서 나를 붙잡았다. 내 손을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한 번밖에 안 본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무슨 정이 있다고’ 하는 생각에 의아하긴 했으나 사랑하는 남자의 어머니이니, 내게도 어머니 냄새가 조금은 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아니라고 부정하며 살아왔으나, 아마도 내 깊은 잠재의식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어찌 살고 있느냐는 얘기에서부터 내 어릴 적 얘기까지 듣고 싶어 해, 나는 있는 그대로 대답을 했다. 아버지한테 구박받은 얘기는 빼버렸으니 다 좋은 얘기들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구박이 아닌 학대였으니 그런 얘기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남자 친구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내가 성장한 배경이 궁금한 건 당연한 이치이니 듣기 좋은 소리만 한 것이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아들에 대한 안부는 묻지 않았다. 왜 같이 안 나왔냐는 질문쯤은 한 만도 한데 일언반구가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고 관심도 없어 보였다.
  
  ‘아, 그렇지 시어머니는 환자이지.’

  나는 꽤 진지하게 얘기를 했으나 그녀는 듣는  둥 마는 둥, 이미  한 얘기를 자꾸 묻고 또 물었다. 이런저런 자신의 얘기를 시작한 그녀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명백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다 들어주자. 그냥 들어주면 된다. 오죽 외로웠으면····.’  
  
  “하루 종일 가도 말 한마디 안 하시는 분인데 오늘은 완전히 딴 사람 같으세요. 기분이 상당히 좋으신가 봐요.”
  
  아주머니가 한마디를 하며 지나치니 형우 어머니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러더니 “아참, 내가  너한테 꼭 할 얘기가 있어” 하고는 아주  옛날 얘기를 끄집어냈다. 어떤 남자가 죽기 살기로 자기 뒤꽁무니를 쫓아다녔다는 얘기였다. ‘연애한 얘기가 하고 싶은가 보다’ 하고 나는 맞장구까지 쳐가면서 열심히 들어주었다.  
  
  “그런데 그만 임신이 돼버렸지 뭐냐. 그때 내 나이 겨우 스물이었으니 그 어린 게 뭘 알았겠니?”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이어지는 말 같지는 않았다.

  “그냥 그 집에 들어가서 살았는데 시집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남편이 어찌나 의처증이 심한지 나를 옷장에 가두어놓고 막 때리고 그랬어. 이거 봐. 지금도 이렇게 멍든 게 그대로 있잖아.”

  그녀는 팔소매를 둘둘 걷어붙이고 지극히 말짱한 팔뚝을 내밀면서 어젯밤에 두드려 맞은 사람처럼 울먹거렸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직장에도 못 나가게 했어. 그때 내가 간호사였거든. 병원에서 일손이 모자라 나오라고 야단을 했고, 아기도 시어머니가 봐주는데도 나를 꼼짝 못하게 했어. 의사가 나를 채갈까 봐 그랬단다. 사실 내가 간호학교 졸업해서 병원에 취직했을 때, 의사들이 다 나를 좋아했거든. 자기는 돈도 못 버는 학생이었으니 열등의식이 많았던 것 같아. 괜히 닥터 누구하고 “했지. 했지.”하고는 막 때리고 그랬어. "

  그녀의 말은 앞뒤가 조리 있게 다 들어맞았다.

  “그래 놓고 그 다음날은 막 빌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면서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거야. 친구 집에 숨어 있기라도 할 때면 사방팔방으로 나를 찾아 헤매고 말야.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온다고 했어. 그래서 난 독일로 갔단다.”
  나는 점점 그녀의 얘기에 빠져들었다.

  “그때 독일에서 간호부들을 모집했었거든. 지금 생각해도 내가 독일 간 거는 참 잘한 일이었어. 거기서 민지민을 만났으니까. 그 당시, 민지민은 박사까지 딴 노총각이었는데 날 보고 한눈에 반한 거야. 도리어 전화위복이 된 거지.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갓난쟁이를 두고 온 것이 맘에 좀 걸리기는 했지만 말야.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기를 두고 온 건 아냐. 시어머니한테 아기를 뺏긴 거지.”

  울상을 짓던 표정을 금세 바꿔 그녀는 깔깔 소리까지 내고 웃으면서 떠들다가 마지막 구절에 가서는 또 정색을 하고, 변화무쌍한 표정으로 나를 혼란케 했다.  

  “그런데 민지민은 내 과거를 하나도 몰라. 고백을 하면 내가 딱지 맞는 건 뻔하잖아. 할 수 없이 속였지 뭐. 지금도 통 몰라. 내가 너를 믿고 하는 얘기니까 절대 비밀이야. 형우한테도 말하면 안 돼.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하는 너와 나만의 비밀이야. 알았지? 민지민 박사는 지금도 나를 끔찍이 사랑한다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 눈에 서려 있는 이상한 광채에 나는 온몸이 오싹해졌다. 도르르 소름이 일어났다. 조금 전, 나를 처음 봤을 때 반짝하던 그 눈빛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는 계속 지껄였다. 그리고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손뼉까지 쳐가면서 뱉어낸 그 다음 말에 나는 그만 심한 현기증을 느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한데 말야, 내가 결혼 전에 딸까지 낳았고, 그 애 아버지가 이상태라는 사실을 알면 민지민이 얼마나 놀랠까? 이상태랑 민지민은 서로 친구거든.”

  부엌에 있던 아줌마가 놀래서 뛰어왔다.

  “아니, 사모님이 밀쳤어요? 발작이 일어나면 가끔 그래요.”

  어디선가 여자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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