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결혼 수정 연재 1

2012.07.08 11:05

김영강 조회 수:815 추천:124


아 버 지 의 결 혼


제 1 회


  아버지의 성화가 부쩍 더 심해졌다. 오래 전부터 반복되어 온 일이라 좀 있으면 잠잠해지겠지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더는 끌 수가 없으니 이제는 무슨 결판을 내야겠다는 것이다. 결판이란 이혼을 의미한다. 90을 눈앞에 둔 나이에 이혼이라니··· ···.

  눈만 마주치면 이혼 타령이라 슬슬 피하기도 해봤으나 계속 그럴 수도 없었다. 남편은 신문에 날 일이라고 허허 웃으며 망령기가 발동한 탓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라고 대수롭잖게 말을 하지만 정미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아버지는 앉기만 하면 “그게 눈만 뜨면 나가 싸돌아다닌다고. 시민권 공부한답시고 핑계를 대지만 어디 젊은 놈하고 눈이 맞았는지 알아?” 하고 역정을 냈다.

  70 노인이라도 아버지 눈에는 젊은 놈이다. 정미는 그럴 리가 없다고 수차 말했으나 그가 한 번 정해 놓은 마음은 바늘 끝조차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변호사한테 가서 물어보았더니 6개월 별거하면 자동 이혼이 되나, 지금 와서 그 여자를 쫓아낼 수는 없으니 아버지보고 집을 나오라고 했다 한다.

  그가 집을 나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만일 이혼이 가능하면 그는 누구하고 살아야 하나? 천생 두 아들밖에 없다. 그러나 두 아들이 순순히 아버지를 받아줄까? 역시 노인이 된 남편과 함께 원 베드룸 아파트에 사는 정미는 도저히 아버지를 모실 수가 없다. 더구나 지금, 정미는 아버지와 아래 위층에 살고 있으니 더 그렇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바로, 아버지를 위해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으나 요즘은 차라리 멀리 사는 것이 더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신청을 하고도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정미는 운이 좋았다. 이곳 로스앤젤레스의 올림픽 가, 한국 타운 중심부에 있는 이 노인 아파트는 깨끗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이 편리해 좋기만 한데 아버지의 성화 때문에 정미는 지금 속을 썩고 있는 것이다. 목구멍까지 치솟는 말이 있었다.

  “ 내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아버지 수발 다 들어주고 있으니 오빠들이 주는 용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 잡숫고 살았으면 되는 건데, 왜 재혼은 해 가지고 그래요?”

  아버지는 5년 전에 재혼을 했다. 그때 나이가 여든 둘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몇 달도 채 안 됐는데 이 여자 저 여자와 만나는 것을 눈치 챈 정미는 서운하기도 했지만 혼자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이해를 했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정미는 아버지가 재혼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안 했다. 소문을 들으니 아버지가 여자를 고른다는 것이었다. 70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60 안팎에서 고른다고 했다. 6, 70대에서도 재혼을 원하는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정미에게는 놀라웠다. 나이가 그렇게 많은데도 여자들이 줄줄이 서 있고 심지어는 50대 여자도 있다고 해 더더욱 놀랐다. 놀라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딴 세상 같았다.

  옆집 여자는 어디서 들었는지 쉰두 살짜리도 있는데 너무 젊어 아버지가 싫다고 했다며 수다를 떨었다. 쉰둘이면 정미보다도 한참이나 아래인데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물려줄 재산도 없다. 어떤 여자들이 그렇게 줄줄이 서 있는지 궁금했다.

  “영주권 때문에 그러지. 자식들한테 의지 안 해도 노후가 보장되니까 방문으로 왔다가 무작정 눌러앉아 영주권 받으려고 다들 야단이라고. 노인들 재혼하는 거, 요즘은 하나도 흉 아냐. 세상물정에 왜 그리 어두워? 지금이 뭐 이조시대인 줄 알아?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혼자만 순진한 척 내숭 떠는 거야?”

  흉을 본 것이 아니라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도 그녀는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얼굴을 구겼다. 정미의 아래위를 훑어보는 눈빛이 아주 기분 나빴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굉장히 건강하시고 또 멋쟁이잖아? 모든 면에 박식하고 유머도 있고 말씀도 잘하시니까 여자들이 따르기 마련 아니겠어? 지난번에 보니까 쌀 두 포대를 양손에 들고 끄떡없이 걸어가 누군가 했더니 바로 할아버지더라고. 뒷모습이 어찌나 꼿꼿한지 꼭 청년 같더라니까.”

  옆집 여자는 자기가 아버지한테 반하기라도 한 것처럼 침까지 튀겨가며 열을 올렸다. 청년 같다는 그녀의 말에는 과장이 심했으나 어쨌든 아버지의 건강은 과히 놀라울 정도다. 돋보기 없이는 신문도 못 보는 정미에 비해 그는 아직도 맨눈으로 신문을 줄줄 읽으니 하늘이 내린 건강을 타고난 특수 체질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한 번은 병원에 갔다가 벽에 붙은 시력검사표를 괜히 줄줄 읽은 적이 있다. 곁에 있던 간호사가 깜짝 놀라 “어마나, 군대 가셔야 되겠어요.” 하고 농담을 던져 다들 웃었다.

  정미는 아버지 연세가 지금 몇인데 결혼을 하겠느냐고, 절대 결혼 같은 것은 안 할 것이라고 그녀의 말을 막았다. 돌아서는 정미의 뒤통수에다 대고 옆집 여자는 목청을 높였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마음은 젊은 사람하고 똑같다니까. 자식이 돼 갖고 어찌 그리 부모 마음을 몰라? 지난번에 회장 얘기 듣고서도 그러네. 그 광고지 당신도 봤잖아.”

  8층짜리 이 노인 아파트에는 워낙에 한국 사람이 많아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도 열리고 회장, 부회장 등 간부도 있다. 그 회장이라는 여자가 좀 말이 많은 편이라 자기 오빠 얘기를 떠벌리고 다녀 그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녀의 오빠는 아내가 죽은 지 겨우 한 달 지났는데 자신의 신상명세서를 프린트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광고지 돌리듯 건네준다는 것이다. 정미 같으면 쉬쉬하겠건만 회장은 오빠한테 무슨 억한 심정이 있는지 광고지를 온 아파트 사람들에게 돌렸다. 물론 정미도 보았다. 그래도 그녀의 오빠는 아버지보다 10년이나 젊은 나이였다.

  나이 72세, 키 170, 학력 예일대 졸업, 재산 백만장자, 그리고 한 달 고정 수입에다 또 쌓아놓은 연금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사진도 나와 있었는데 아주 허여멀건 하게 잘생겼었다. 거기에다 전 부인이라는 타이틀 아래 ‘이 아무개’ 하고 이름까지 적혀 있어 아연실색할 노릇이었다. 그녀가 한국 사회에서는 좀 유명한 여자여서 정미도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줄리아드 음대를 나온 피아니스트였다. 회장이나 그 오빠나 그 집안에는 치매기가 빨리 오나 하고 정미는 한참을 어리둥절했었다.

  배우자 자격은 나이는 55세 이하여야 하고, 학력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야 하며, 키 160 이상으로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야 한다고 못을 박아 놓았었다. 광고지를 받은 주위의 친한 사람들이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어 아들이 아버지에게 충고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 지금은 너무 이르니 조금만 참으세요.”

한데, 아버지라는 사람의 말이 걸작이었다. 내지르는 목청이 하늘을 찔렀다.

  “뭐 조금만 참아? 얼마나? 1년? 2년? 난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몸이야. 하루가 급하다고. 네가 내 생각을 조금만 해도 아버지 등 떠밀며 ’빨리 결혼하세요.’ 그래야지. 뭐 너무 이르다고? 이 불효막씸한 놈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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