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아버지의 결혼 수정 연재 5

2012.07.12 11:15

김영강 조회 수:935 추천:153


아 버 지 의 결 혼


제 5 회



  언젠가는 정미가 막 들어서는데 아버지가 뭔가를 황급히 감추어 그냥 예사롭게 넘겨버렸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이 돈이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는 5백 달러를 옷장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없어졌다고 해서 숙자 씨가 없을 때 찾느라고 법석을 떤 적이 있다. 물론 못 찾았다. 그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정미는 “할머니가 못 믿어우면 나한테 맡기고 타 쓰세요.”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뱉지는 못했다.

  어느 날, 양복 단추를 다는 중에 어쩌다 안주머니를 엿보게 되었다. 한쪽에는 20달러짜리가 족히 열 장은 넘게 들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1백 달러짜리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돈을 넣어 놓고도 잊어버린 것이다. 돈을 꺼내 들고 아버지에게 내밀었더니 주머니는 왜 뒤지느냐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정미는 아버지한테 돈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감춰놓다 보면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못 할 테니 잃어버리고도 모를 수도 있다. 100달러가 80달러로 둔갑을 했더라도 ‘80불이었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다. 그렇게 되더라도 숙자 씨가 아버지한테만 잘해준다면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니 손해날 것은 없다.

  언젠가 한 번은 참말로 어이없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게 그동안 나하고 살면서 방세도 한 푼 안 냈다고.”

  법적으로 묶여진 어엿한 부인한테 그런 망발이 없다. 숙자 씨가 이불을 똘똘 말아 쥐기 때문에 아내라는 감정이 없어 그럴까? 돈으로 따지자면 자신의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는 할머니한테 도리어 아버지가 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그는 방세 운운하면서 돈타령을 했다.

  아버지의 이혼 타령은 그칠 줄을 몰랐다. 들어줘야 하는 상대는 항상 정미이니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 입에서 이혼 말이 안 나오게 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좋은 안이 떠올랐다.

  “아버지, 요즘 돈 받고 하는 계약결혼 때문에 단속이 굉장히 심하대요. 아버지가 지금 이혼을 하면 이민국에서 당장 조사가 나온다고요. 영주권 받자마자 이혼했다고 할머니는 추방당할 게 뻔하고, 아버지한테까지 화가 미쳐요. 자칫 잘못되면 감옥 갈지도 모르니 제발 이혼 소리 이제 그만하세요.”

  그냥 해본 소리이지만 해놓고 보니 좀 심했다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응은 담담했다.

  “걱정 마라. 내가 그런 것도 안 알아봤을까 봐 그래?”

  그리고 한심한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웬만한 일에도 벌컥벌컥 화를 내는 아버지이니, 집이 떠나가게 소릴 질러야 마땅하건만 그는 조용했다. 정미는 더 불안했다.

  드디어 아버지는 결단을 내렸다. 우선은 큰아들 집에 들어가 6개월 별거를 하겠다는 것이다. 가족회의를 열었다. 가족회의는 항상 그녀가 나가고 없을 때 열린다. 그러나 아버지는 큰아들한테 한마디로 거절을 당했다. 아내가 퍽 오래전부터 온 전신이 저린 병에 걸렸는데 하와이에 용한 한의사가 있어 치료를 받으러 간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팔에 힘이 없어 파도 제대로 자르지 못한다고 한다. 몸이 약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런 병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혼자 있을 수 있다면서 계속 고집을 피웠다. 통하지를 않자 큰아들은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양로원을 들먹거렸다.

  “아버지 혼자 밖에 나갔다가 길 잃어버리면 순경이 잡아가요. 잡아가서는 그 다음 날로 당장 양로원으로 보낼 텐데, 아버지 양로원 가시고 싶어요?”

  큰아들한테 그렇게 화를 내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어디서 그런 큰 소리가 나오는지 아파트가 떠나가는 것 같았다. 아비가 늙었다고 이제 양로원에 갖다버리려고 한다면서 큰아들한테 달려들었다. 형님 말뜻은 그게 아니라고 작은아들이 아버지를 이해시키려고 애를 썼으나 너도 똑같은 놈이라고 욕을 하며 머리를 벽에다 쾅쾅 찧으면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울고불고했다.

  아버지는 며칠을 끙끙 앓았다. 하늘같이 믿었던 큰아들로부터 단단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양로원 이야기를 자꾸 들먹거렸다.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분한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양로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이제부터라도 양로원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아 드려야 한다. 하늘이 내린 건강이라고 자타가 공인하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언젠가는 아버지도 가야 할 곳인지 모르기 때문이다.아버지는 계속 큰아들 욕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엉뚱한 말을 던졌다.

  "돈, 다 뺏어 먹고 나더니 이제 나를 헌신짝처럼 버리려고 해?”

  정미는 깜짝 놀랐다. 돈을 뺏어 먹다니··· ···.

  아버지는 뜻밖의 사실을 고백했다. 한국서 가지고 온 돈을 큰아들에게 몽땅 주었다는 것이었다. 정미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담담해지려고 노력을 했으나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아버지, 큰오빠한테 돈 준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해요? 아버지가 큰오빠보고 다른 형제들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라고 하셨을 텐데 왜 아버지가 그 얘기를 하세요?”

  아버지의 사업이 완전히 도산하고 살던 집마저 은행으로 넘어가고 미국으로 왔기에 정미는 아버지에게 돈이 한 푼도 없는 줄 알았다. 미국에 온 후에도 큰오빠가 생활비를 댄다고 해 그런 줄 알았다. 나 죽으면 그래도 큰아들이 제사를 지내줄 것이고 또 앞으로 여생을 큰아들한테 맡겨야 하겠기에 있는 돈 다 줬는데 그놈이 배신했다고 치를 떨며 분해했다. 이제는 작은아들한테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단다. 그런데 돈이 조금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불쌍했다. 아들한테 돈을 주어야만 당신 한 몸을 의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안됐었다. 그렇다면, 딸인 정미는 아버지를 도저히 못 모실 형편에 처해 있으니 돈을 한 푼도 줄 필요가 없다는 답이 나온다. 정미는 아버지한테 돈이 얼마 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3만 불”이라고 또렷이 말했다. 정미는 깜짝 놀랐다. 3만 달러라면 정미에게는 무지하게 큰돈인데 아버지는 ‘조금’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큰오빠한테 도대체 얼마를 주었을까? 가물에 콩 나듯 가끔 와서는 개밥 주듯 던져주는 1백 달러짜리 한 장, 코빼기도 안 내미는 큰올케를 생각하면 껄끄러운 기분이었으나 그래도 정미는 고맙게 받았었다. 그게 다 아버지 돈이었다고 생각하니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버지는 이제 돈 3만 달러를 들고 작은아들네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작은며느리는 좋은 점을 많이 가진 여자다. 할 말은 다 하면서도 자신의 의무에는 충실하고 또 아주 싹싹하다. “아버님, 아버님” 하면서 시아버지를 자상스럽게 대해주어 아버지는 작은아들은 제쳐놓고 며느리에게 이런저런 상의를 한다. 무능한 남편 때문에 거의 평생을 직장 생활을 하며 혼자서 가계를 꾸려나가고 있지만, 그녀는 늘 명랑하다. 어릴 때부터 큰아들만 편애한 시아버지를 은근히 원망하면서도 그런 내색은 안 한다.

  그 바쁜 중에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정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걸고 정미한테도 수고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위층에 사는 딸의 고충도 잘 알아 늘 위로를 해준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시아버지를 모실 작은며느리는 결코 아니다.

  “아버지, 한국 사람도 없는 외딴 데서 온종일 집 안에 갇혀 어떻게 사신다고 그러세요? 작은 오빠네는 아버지가 계실 방도 없잖아요?”

  아버지는 얼른 방을 하나 들이면 된다고 했다. 돈 3만 달러가 있으니 방 들이는 값은 당신이 부담하겠다는 뜻일 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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