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나는 살고 싶다

2014.12.02 22:27

김영강 조회 수:628 추천:14

 

나는 살고 싶다 



  두 주일 전쯤부터 얼굴이 부으면서 불긋불긋한 반점이 생겼다. 반점 부분에 버짐 같은 것이 피어 만지면 까끌까끌했다. 그리고 가려웠다. 눈도 가렵고 코도 가려웠다. 남편이 깜짝 놀라 ‘아니, 그거 대상포진 아냐?’하고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재촉했다. 주위에 대상포진에 걸려 고생한 이들이 더러 있어, 그 증세를 동원해보니 그건 절대로 아니었다.
  환절기에 나타나는 알레르기 현상이 틀림없었다. 그냥 나으려니 했는데 며칠 만에 더 심해졌다. 아침에 눈을 뜨니 눈두덩이 퉁퉁 부어 있었다. 왼쪽 눈은 쌍꺼풀 수술을 갓 한 것 모양 벌게져서 그 두께가 평상시보다 두배 세배나 커졌고, 오른쪽 눈은 이상하게도 쌍꺼풀이 아예 풀어져 단추 구멍이 돼버렸다. 애꾸가 따로 없었다. 부기야 가라앉기 마련이지만 쌍꺼풀이 안 올라가면 어쩌나 하고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병원에 가야 하나 하고 망설이다가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암만해도 닥터 A한테 가야 하는데, 그는 분명히 ‘아니, 아직도 CT를 안 찍었어요? 간 전문의한테도 안 가셨네요.’ 하고 핀잔을 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초음파 검사를 거쳐 간 CT를 찍었는데 거기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고, 폐에서도 뭐가 잡혔었다. 부분적으로 케비티 현상이 생겨 뿌옇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케비티라면 보통 충치에나 해당하는 말이지만 총괄적인 뜻은 구멍이 났다는 소리다.


  ‘폐에 구멍이 났다고? 근데 내가 이렇게 멀쩡할 수가 있단 말인가.’
  간 전문의한테 가서 정밀검사를 받고, 폐 CT를 다시 찍으라고 한 지가 벌써 두 달이 넘었는데도 나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중이었다. 다시 CT를 찍고, 또 전문의한테 가고····, 그래서 무슨 이상이 발견되는 경우, 그다음은? 그렇게 하나 이렇게 하나 남은 시간은 거기서 거기일 수 있다. 사실, 이제는 살 만큼 살았다.
  

  시일이 지나니 다행히 부기도 반점도 점점 나아갔다. 그러나 눈두덩의 부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아 눈은 여전히 애꾸눈 상태였다. 그러던 중, 닥터 A한테 갈 수밖에 없는 불상사가 생겼다. 아침 산책을 하다가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꼬꾸라진 것이다. 순간, 하늘에 떠 있던 해가 땅으로 툭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암흑 세계 속에서 뭔지 모를 깨알만 한 입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눈을 뜰 수도 없고, 일어날 수도 없었다. 숨이 가빠지면서 몸이 벌벌 떨렸다. 봄의 문턱에 들어선 엘에이 날씨치고는 쌀쌀한 편이었으나 추워서 떨릴 정도는 아닌데 이상했다. 턱이 덜덜거리며 뼈까지 뒤틀리는 것 같았다.
  

  엎어진 채로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겨우 몸을 꿈적거려 우선은 바닥에 퍼져 앉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날따라 산책로는 유난히 한산해 한둘 보이던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몸은 계속 떨리고 왼쪽 어깻죽지부터 손끝까지 쥐가 나면서 막 찌릿찌릿했다. 그중에서도 손바닥이 제일 심했다. 저리다는 감각을 넘어서서 세포 하나하나가 몸부림을 치며 톡톡 튀는 느낌이었다. 불에 덴 것같이 화끈화끈했다. 꼬꾸라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왼손을 콱 짚었는데, 온몸의 무게가 왼손바닥에 쏠렸던 모양이다. 그제야 손목의 통증이 느껴졌다.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고 겨우 일어났다. 양팔을 움켜잡고 벌벌 떨면서 발걸음을 떼는데 얼굴이 쓰라렸다. 꼬꾸라지면서 왼쪽 뺨이 시멘트 바닥에 쓸린 것이었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왼편 눈언저리 바깥에서부터 광대뼈, 그 아래로 뺨에까지 상처가 나 있었다. 부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또 상처를 입으니 얼굴이 참 가관이었다. 왼손을 짚지 못하고 그대로 얼굴을 시멘트 바닥에 박았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상상만 해도 소름끼친다. 오한이 나며 계속 몸이 떨려 나는 이불을 덮고 누웠다. 쓰라린 기운이 몰려들며 얼굴이 저절로 씰룩거렸다.    
  

  골프를 끝내고 저녁 늦게야 집에 들어온 남편이 내 얼굴을 보고는 인상을 구겼다. 상처가 그리 심한 편이 아닌데도 시간이 지나니 퍼렇게 멍이 나오면서 눈언저리가 무겁고 골치까지 지끈거렸다.
  “당장 병원에 달려갔어야지, 하여튼 병을 키운다고 병을 키워.”
  이번에는 나도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의 상처는 둘째 문제이고 손목은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많이 낫긴 했으나 얼굴의 반점도 아직 흔적이 있고 부기도 다 빠지지 않은 상태이니 이참에 그것도 물어봐야 되겠다 싶었다. 그러다가도 그냥 침으로 해결이 될 것 같아 한마디를 했더니 남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당신이 뭐 의사야? 왜 맨날 혼자 진단하고 혼자 처방하고 그래?”
  이것저것 다 복합이 된 말인 것을 알기에 나는 잠자코 있었다.
  

  병원을 향하면서도 닥터 A가 CT 얘기를 꺼낼 예상을 하니 미리부터 스트레스가 쌓였다. 다행히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온몸의 무게를 손바닥 하나로 지탱을 했는데도 손목뼈에 이상이 없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그건 기적이었다. 닥터 A는 몸이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떨리고 저리고 한다면서, 만일 심장에 그 정도의 충격이 가해졌다면 바로 마비가 올 수 있는 불상사라 했다.
  얼굴이 부은 것도, 시멘트 바닥에 쓸려 난 상처가 멍이 시퍼렇게 들었는데도 그는 대수롭잖게 넘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화제는 금세 CT로 옮겨갔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속에 이상이 있는 것이 더 큰 일이라는 것처럼 그는 CT가 급하니 빨리 찍으라고 아주 짜증스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해달라고 해서 골치가 아픈데, 미세스 박은 꼭 해야 하는 것을 왜 안 하십니까? 공짜로 다 해주겠다고 하잖습니까?”
  보험에서 백 퍼센트 커버되지만 의사가 허락을 해야 되는 일이니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환자가 의사의 말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로서는 기분 나쁜 일이다. 미안해서 얼른 핑계를 댔다.
  “그동안 제가 다른 일 때문에 좀 바빴어요.”  
  “아니, 이보다 더 바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처방을 써주면서 날씨도 춥고 바람도 차니 산책도 하지 말고 당분간은 집 안에서 푹 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요즘은 환절기에 이상기온이라 독감이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노인네들은 감기가 폐렴으로 되기 쉬우니 각별히 조심하세요.”  
  노인네라는 단어에 잠시 주춤했다.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CT를 또 다시 찍을 필요가 없고, 전문의한테도 안 가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그 단어가 내게 생소하기 들렸으니 쓴웃음이 일었다.
  

  운동량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늘어난 것 같다. 운동이라야 걷기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이 악성이라 하더라도 수술이나 치료 같은 것은 않는다고 맘먹었으나 어쨌든 간에 사는 날까지는 몸의 상태를 자연적으로 향상시켜 보자는 마음이 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병실을 나오기 전에 간호사로부터 주사를 한 대 맞았다. 닥터 A는 대기실까지 따라나와  남편한테 인사를 하며 다시 강조했다. CT, 빨리 찍으라고. 남편이 혹시 그 뒷말을 이을까 봐 나는 ‘네 곧 찍을게요.’ 하고 말한 후, 얼른 그의 팔을 잡아끌며 부리나케 병원을 나왔다.
  “왜 그렇게 질질 끌고 있지? 내일 당장 가자고.”
  남편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얼마간 잠잠하더니 또 시작이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제발 좀 가만있어요.”
  “알아서 못 하니까 그러지. 이제는 뭐 인생 다 살았다고? 요새는 100세 시대라고 100세. 자알 하면 앞으로 30년은 너끈히 살 수 있는데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왜 그딴 소릴 하지? 진짜 이젠 난 몰라. 당신 일은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운전대를 잡으면서 그는 화까지 냈다.
  의사한테는 핑계 삼아 바쁜 일이 있었다고 말했지만, 실은 나는 요즘,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눈이 퉁퉁 부은 것도 컴퓨터에 너무 매달려 있은 탓이 작용을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소설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직장 생활하랴, 애들 넷 키우랴 등등, 젊었을 적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문학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20여 년 전에 늦깎이 중의 늦깎이로 소설가가 되었다. 주위에서 ‘책 안 내세요?’ 하는 얘기를 많이 했고, 나 역시 책을 출간하고 싶었으나 망설이기만 했다. 이제는 이것저것 정리할 단계에 들어섰구나 하고 마무리를 해보니, 책 출간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침 뭔가가 탁 하고 머리를 쳤다. 정신이 움찔했다. 간에 혹이 있고 폐에 구멍이 나고, 또 성인병이란 성인병은 다 붙어 있다는 사실이 돌덩어리가 되어 나한테로 굴러온 것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내 생애에 책을 한 권은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리나케 컴퓨터를 열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동안에 써놓은 단편들이 책 세 권 정도는 족히 될 만했다. 이미 끝을 낸 장편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단편집을 먼저 낼까? 아니면 장편을 먼저 낼까? 또는 두 권을 한꺼번에 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으나 우선은 단편집을 먼저 내기로 결정을 보았다. 작품은 그 색깔이 아주 다른 것으로 열 편 정도가 쉽게 선정이 되었다.
  장편도 곧 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구성에서부터 수없는 퇴고에 이르기까지 3년에 걸쳐 완성된 소설이고, 인터넷에 연재로 올려 독자와의 소통이 이루어졌기에, 읽는 이들이 웬만큼은 감동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느낌을 갖고 있기에 더 그랬다.
  지난 20여 년 동안, 참 열심히도 소설을 썼다. 줄줄 나올 때는 밤을 홀딱홀딱 새 가면서 한 달에 서너 편을 쓴 적도 있다. 하룻밤에 끝이 난 소설도 있어 내 자신이 놀라기도 했다. 자다가도 문장 한 줄 때문에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6개월 전에 보험을 바꾸게 되어 주치의가 된 닥터 A는 남편의 대학 후배이다. 이번에 바꾼 H 보험은 기존의 메디케어 보조보험과는 달리 의사가 한정되어 있었는데, 마침 닥터 A가 거기에 속해 있었다. 어느 해인가 연말파티에서 만나 같은 테이블에 앉은 적이 있었는데 남편과는 얘기가 아주 잘 통했다. 왠지 아는 닥터는 별로 내키지를 않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인데, 남편은 나와는 반대로 아는 사람이니까 더 좋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 간에 그는 용한 의사라고 소문이 나 있고, 또 10여 년 전 친구 아내의 증상을 딱 잡아낸 적이 있어, 더 좋아라 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그녀가 설사병에 걸렸었다. 다른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도 낫지를 않았는데 닥터 A가 한방에 잡아낸 것이다. 내과에 올 병이 아니니 빨리 산부인과로 가보라고 그는 말했었다. 난소암이었다. 난소암은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녀의 경우는 이미 난소를 다 덮치고 장에 전이가 된 후였다.
  

  닥터 A에게로 옮긴 후의 첫 피검사 결과가 아주 나빴다. 콜레스테롤이 그렇게 높게 나올 줄은 몰랐다. 오랜 세월 동안 약을 복용해, 항상 정상 유지를 해왔었기에 한 달을 건너뛰었다고 해서 400에 육박하리라고는 상상 못 한 일이다. 닥터 A가 펄쩍 뛰면서 ‘이대로 가다간 심장마비가 당장 올 수 있습니다.’ 하고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당수치는 콜레스테롤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7.0을 넘었으니 약은 계속해서 먹어야 할 팔자임에 틀림없다.  
  “간은 저번보다 좋아졌네요.”
  약을 끊은 결과가 분명했다. 그는 약을 끊어서 그리 된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쪽 병원에서 보낸 기록을 훑어보면서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보험을 옮기기 바로 전, 약이 떨어졌었는데 다시 주문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었다. 한데 이번 기회에 약을 한 번 끊어볼까 하는 마음이 강하게 치솟았었다. 혈압은 200을 오르내릴 적이 있으니 겁이 나서 어쩔 수 없었고, 콜레스테롤약과 당뇨약을 끊어 시험해본 결과. 약 복용 여부가 그대로 반영이 된 것이다.
 

   닥터 A가 간 초음파 검사를 권했다. 근 20여 년 동안이나 콜레스테롤약을 복용했고, 더구나 혈압약은 그 훨씬 이전부터였고, 현재는 세 종류나 복용하고 있다. 거기다가 당뇨약까지. 그러니 간이 어지간히 힘들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나는 그의 제안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 왜 하느냐고 거절을 했다.
  “간수치가 지난번보다 더 좋아졌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구태여 검사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예전 병력도 있고 하니····.
  “그때 아무 이상 없다고 나왔는데요?”
  예전에 CT 찍은 얘기를 괜히 했다 싶었다. 20여 년 전에 간 CT를 찍은 적이 있다. 이유는 확실히 몰랐지만 콜레스테롤약 부작용이 아니었나 싶다. 조콜이라는 약을 먹었었는데 의사가 그 약을 끊으라고 한 다음, 간 초음파 검사를 한 후 CT를 찍었다. 어쨌든 검사결과는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났었다. 닥터 A는 그 후 오랫동안 한 번도 검사를 안 했고, 또 나이도 있고 하니 지금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진작 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 닥터 A는 뭐가 집히는 게 있는지 “혹시 체중이 줄지 않았습니까?”하고 물었다.
  사실 체중이 줄긴 했다. 보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말랐어요?’하는 소릴 했고, 심지어 어떤 이는 ‘병원에 한 번 가보세요.’라는 말까지 했다. 속으로는 좀 찔끔했으나 나는 그냥 쪼금 빠진 것 같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보기에는 말라 보여도 체중은 그리 내려가지는 않았다. 소금기는 아주 멀리하면서 채식을 주로 하고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이라는 쪽으로 내 생각은 기울어졌다.  
  

  그 사흘 후, 보험회사에서 허락서가 날아왔다. 무슨 검사를 하거나 전문의한테 가야 할 경우는 주치의가 병원을 정해주고, 보험회사로부터 허락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 H 보험의 규율이다. 그리고 허락서 유효기간은 석 달 동안지만 언제든지 재발송 받을 수 있다. 주치의가 다 알아서 해주니 도리어 편했다.
  당장은 안 해도 되는 검사이니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리고 검사를 해서 무슨 이상이 있을 경우는 CT를 찍어야 하고, 또 무슨 이상이 있을 경우는 조직검사를 해야 하고, 또 그다음은 수술 그리고····. 생각을 해보니,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의사가 하래면 하지 왜 그러지? 그리고 결과 나온 다음에 어떻게 하든 간에 그때 또 생각을 해보자고. 분명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남편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정 고집을 부리면 애들한테 이르겠다는 것이었다. 남편도 몰랐으면 좋았을 걸, 하필 내가 부재중에 허락서가 날아와 그도 알아버렸다. 그래서 애들한테는 암말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초음파 검사도 안 한 생태에서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만일, 무슨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절대로 치료는 받지 않는다.’ 하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러다가도 ‘설마 나한테 무슨 일이 있을라고. 설마 나한테…….’ 하는 자신감이 붙었다.
  닥터 A가 지시한 방사선과 병원으로 가서 닥터 B로부터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검사 도중 그가 물었다.
  “예전에 이런 검사 받은 적이 있습니까?”
  “네, 한 20여 년 전에····.”    
  그때 어디를 검사했는지를 물어 나는 간이라고 한마디를 한 후에, 곧이어 “근데 결과는 다 정상으로 나왔었어요.”하고 강조를 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하면서 의사가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일 때는 내내 눈을 감고 있다가 대답을 하면서 나는 실눈을 뜨고 의사의 얼굴을 엿보았다. 표정이 심각했다. ‘뭐가 이상이 있어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검사를 끝내고 의사는 사라졌다. 밖으로 나오니 결과는 주치의를 통해 연락이 갈 것이라고 직원이 말해주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계속 찜찜했다. 아니나 다를까? 간에 뭐가 보이니 CT 촬영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초음파 검사를 한 이틀 후인 목요일이었다. 나는 아들 집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휴대폰이 울려 받으니 뜻밖에도 남편의 짝꿍이었다.

  그는 남편과 30년을 한 직장에 근무하면서 매일 한 차로 출퇴근을 하다가 한날한시에 정년퇴직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퇴직을 한 후에도 정기적으로 골프를 치며, 둘이서 나가 다니며 쇼핑도 하고, 거의 매일 아침마다 맥도날드에서 만난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그들을 짝꿍이라고 부른다. 지금 남편이랑 같이 있지 않다는 말에 그는 나한테 건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연락이 안 돼 기다리고 있으니, 닥터 A에게 빨리 전화를 하라는 것이다. 사연인즉, 나도 남편도 통화가 안 돼, 그 친구에게까지 전화를 한 것이었다. 물론 그도 닥터 A 병원에 다닌다. 우리가 보험을 바꾸니 그도 바늘에 실 가듯 따라왔다.  
  

  아들 집이 아주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휴대폰이 안 터지는 경우가 많아 그렇게 돌아서 내게 연락이 되었다. 음성 메일을 점검하니 간호사가 두 번이나 메시지를 남겨놓았었다. 뭔가 딱하고 감이 잡혔다. 얼른 화장실에 가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연결이 안 되더니 서너 번 만에 통화가 되었다.
  “아이고, 왜 그렇게 연락이 안 돼요?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가신 줄 알았어요.”
  간호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닥터 A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더를 해놨으니 허락서가 오면 바로 정밀검사를 하라는 그의 설명이 기분에 거슬렸다. 물론 걱정을 해주는 것은 고마우나, 아직 CT도 촬영 안 한 상태에서 간 전문의한테 가봐야 된다는 등, 조직검사까지 들먹이며 겁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네네, 알았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한 후, 전화를 끊었다.  
  어쨌든 허락서를 받으려면 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걸리니, 그다음 날 금요일 아침에 알려주어도 충분히 되는 일을 닥터 A가 너무 서둔 것 같았다. 남편의 짝꿍에게까지 전화를 걸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신경을 써준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남편한테는 그냥 아무 말 않으려고 하다가 짝꿍이 ‘와이프는 어때?’ 하고 물을 것이 뻔해, 그날 저녁에 나는 자초지종을 그에게 보고했다.
  “암이 아니면 다행이고 만일 암이라 해도, 수술이니 뭐니 그런 거 안 하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거야. 사람이란 언젠가는 가는 건데 이만함 살 만큼 살았잖아.”
  “그딴 소리 하지도 마. 분명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허락서가 날아왔다. 한 장이 아닌 두 장이라 눈여겨보았더니 간 전문의한테 가는 것까지도 미리 보냈었다. 초음파 검사 결과, 나타난 것이 악성종양처럼 보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미루고 있는데, 어쨌든 CT는 찍어봐야 한다고 남편이 성화를 부렸다. 일단 찍어보고, 그 다음 일은 어찌하든 간에, 결과가 나온 후에 상의를 하자는 거였다. 그러면서 또 애들을 들먹였다. 나는 안다. 내가 아무리 신신당부를 해도 입을 다물어 줄 그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에는 안 찍겠다는 맘이 강했는데, ‘에라 일단 찍긴 하자. 이상이 있대도 치료를 안 하면 그만이지 뭐’ 하는 배짱이 생겨 방사선 병원을 향했다.  
  다시 피검사를 한 결과, 모든 것이 CT를 찍는 데에 별 하자는 없었다. 당수치도 내렸고, 콜레스테롤도 확 내려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약의 효능은 대단했다. 닥터 B가 내 기록을 보면서 알레르기, 천식, 혈압, 당뇨 등의 사항에 관해 물었다. CT를 찍을 때,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나의 경우는 혈압과 당뇨에 문제가 있으니 부작용이 따를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그냥 알려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심각한 얼굴로 콩팥이 확 망가지기라도 할 듯이 설명을 해 덜컥 겁이 났다. 괜히 들쑤셔서 도리어 병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고. 방사선 후유증도 작용을 한다고 해 더 그랬다.  
  그리고 주사를 맞지 않고 찍는 경우도 있지만 주사를 맞아야지만 선명하게 잘 나온다면서, 최후의 결정은 환자인 본인이 하라는 것이었다. 그의 심각한 표정이 내게 무슨 문제가 있어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주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작용은 감수해야 되고, 현재의 내 몸 상태를 잘 아는 닥터 A가 지시를 한 것이니 믿고 따르기로 결정하고 촬영실로 들어갔다.
 

  촬영실에 들어가자마자 허연 액체 한 병을 마셨고 모든 준비를 끝낸 다음에 또 한 병을 마셨다. 주사를 맞을 즈음에 닥터 B가 들어왔다. 조금 전의 심각했던 얼굴이 많이 완화되어 있었다.
  “물 많이 드시면 주사약이 다 씻겨 내려가니 괜찮을 겁니다. 연세치고는 콩팥이 아주 양호합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더럭 겁나게 만들더니 이제는 그 겁을 싹 씻겨 내려가게 해주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촬영이 끝났다기에 바로 일어나려고 하니 테그니션이 좀 더 누워 있으라고 했다. 가운을 여미면서 매무새를 고치는데 문이 열리면서 닥터 B가 들어왔다. 그리고 아주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물혹이네요. 간 뒤에 딱 붙어 있기에 나는 그게 암인 줄 알았거든요.”
  용수철이 튕기듯이 나는 발딱 일어나 앉았다. 암이 아니고 물혹이라는 것이 참말로 다행이고 기쁘다는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어마, 선생님 감사해요. 근데 금세 그렇게 알 수가 있어요?”
  “그럼요. 제가 확실하게 봤습니다.”
  CT 사진을 본 결과 암이 아닌 물혹이라고 판정이 난 것이다. 아주 자신만만하고 확신에 찬 태도였다. 그가 암세포를 물혹으로 전환해주기나 한 듯이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내가 알기로는 검사결과를 그 자리에서 알려주지 않고 항상 주치의한테서 먼저 보내는 것이 원칙인데, 그는 바로 알려준 것이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초음파상에 나타난 종양을 보고는 닥터 B도 암이라고 생각을 했고, 닥터 A와도 그렇게 의견을 나눈 것이 분명했다.
  닥터 A가 하도 급하게 굴어,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하고 태연하고 의연했던 나이다. 그런데 물혹이라는 말에 용수철이 튕기듯이 발딱 일어나 앉았으니, 의연하고 태연했던 것은 나의 가면에 불과했단 말인가? 남편 앞에서 큰소리 친 것도? 간 전문의한테 가는 허락서도 무시해버렸다. 닥터 A한테 전화를 걸어서 결과를 다시 확인해야 마땅하지만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는 분명히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할 것 같았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간뿐이 아니었다. 폐에도 이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닥터 A는 기침이 나느냐, 식은땀이 나느냐, 가래가 끓느냐 등등을 물어봤으나 내게는 그런 증상이 전혀 없었다. 그는 허락서가 곧 올 테니, 받으면 지체하지 말라고 힘을 주며 말했다.
  초음파 검사를 한 후에 폐에 대한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아마도 간 CT 찍을 때 폐의 일부가 찍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간 얘기가 다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빨리 전문의한테 가서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닥터 B가 얘기해준 것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분명히 물혹이라고 했는데요?”
  그러나 닥터 A 말은 그게 아니었다. 악성인지도 모르니 조직검사는 꼭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해졌다. 간에 혹이 생기고 폐에 구멍이 나고····. 이것들이 다 약 부작용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인터넷에 들어가 약 부작용을 살펴보면 무시무시하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약들도 마찬가지다.  

  닥터 A한테 다녀온 다음부터는 뭔가 숙제를 미루어놓은 것같이 가슴이 답답했다. 간 전문의한테도 가고, 폐 CT도 찍어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몸이 떨리는 것도 안정되었고 왼팔 전체가 찌릿찌릿하고 손이 저리는 것도 많이 없어졌다. 손목도 시큰거리지 않았다. 얼굴의 멍도 빠지고 상처도 딱지가 떨어져 말끔해졌다. 그러나 부기가 약간 남아 있어 오른쪽 쌍꺼풀은 여전히 풀어진 채로였다. 만일의 경우, 한쪽만 쌍꺼풀을 한다 하더라도 양쪽 눈이 똑 같아지리라고는 장담 못 할 일이라 마음이 찜찜했다.  
  ‘이젠 살 만큼 살았으니 암이라 하더라도 수술이나 치료는 안 하겠다며? 그러면서 뭐, 눈꺼풀 내려왔다고 쌍꺼풀 수술을?’  
  컴퓨터 앞에 앉으면 온갖 잡념을 잊을 수가 있어 좋다. 이제 출판사도 결정했으니 원고만 넘기면 된다. 몇 년 동안이나 망설이기만 하던 일을 실행에 옮기고 나니 염려가 기쁨으로 전환이 되었다. 교정을 보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렸다.
   수없이 퇴고를 한 작품인데도 수정할 곳이 눈에 띄었고, 어느 것은 아예 구성을 바꿔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도 더 낫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 참 신기했다. 한창 소설 쓰기에 몰두할 때였다. 한 친구가 그랬다.
“그러다가 암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니? 좀 쉬어가면서 슬슬해라.”  

  간의 혹에 대해서 닥터 A는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으나 닥터 B는 분명히 물혹이라고 했다. 나 역시 분명히 물혹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전문의한테 못 갈 것도 없었다. 폐 CT는 좀 미루더라도 간 전문의한테는 가봐야 되겠다고 결정을 했다. 결정을 하고 나니 도리어 기분이 가벼워졌다. 허락서 만기가 겨우 나흘 남았을 때였다.
  위장 전문의인 닥터 C는 CT 사진은 볼 필요가 없다면서 결과 서류만을 한참 들여다봤다. 간의 종양에 대해서는 내가 잔뜩 기대하고 있는 물혹 얘긴 하지 않았다. 당장은 조직검사를 안 해도 될 것 같으니 한 석 달 후에 그 진행과정을 지켜보자고 했다. 만일 간염이 있을 경우는 심각한 우려가 있으나 현재 상태는 양호하니 좀 더 두고 보자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그는 말끝에 깜짝 놀랄 한 마디를 했다. 간이 문제가 아니라 더 시급한 것이 있다고 했다. 폐의 구멍에 관해서겠지 하고 그의 말을 기다리는데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왼쪽 신장 바깥에 아주 큰 혹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두 개나. 그러면서 서류 아래쪽 한 부분에 동그라미를 쳤다.
  “간에 있는 것보다 더 큽니다. 전문의한테 빨리 가봐야 합니다. 분명히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할 테니 당장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닥터 A는 신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닥터 C가 가장 시급하다고 하는 것을 그가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닥터마다 견해가 다른가? 닥터 C 또한 폐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었다. 검사 결과 서류를 작성한 닥터 B한테 쫓아가서 꼬치꼬치 묻고 싶었다.
  닥터 C는 또 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혈전이 많습니다.” 하고. 확인하는 의미에서 혈전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얼른 ‘아니 그것도 몰라요?’ 하는 식으로 나를 바라봤다.
  “응어리들이 핏줄을 타고 떠다니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피가 혼탁한 거지요.”
  응어린지 덩어린지 기분이 더러웠다. 간 CT에 별 게 다 잡힌 모양이다. 안 그래도 가끔 심장이 둥둥거릴 때가 있다. 파르르 떨린다고 표현을 해야 되나? 오래전에 심장 정밀 검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의사가 판막이 좀 늘어나 있다고 한 것만 기억이 난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격이 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간 CT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았다. 결과가 나온 지 석 달이나 됐는데도 그간에 나는 그걸 꺼내보기가 싫었었다. 아주 깨알 같은 글씨로 뭐가 잔뜩 있었지만, 골치가 지끈거려 그대로 넘기고 사이즈가 표기된 부분만 눈여겨보았다. 간의 종양은 2.5x2cm 정도이고, 그 외에도 자잘한 것이 많았으며, 폐에도 작은 구멍들이 여러 개 있고 제일 큰 것은 간의 종양만 했다. 닥터 C가 동그라미 친 부분을 보았다. 그는 신장 바깥이라고만 말했으나 서류에는 부신이라고 나와 있었고, 왼쪽 신장 부신에 두 개의 혹이 있었다. 하나는 3.5 X 2.3cm, 하나는 2.3X1.5cm 이며 ‘기능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라고 적혀 있었다.  혈전에 관한 것은 쉽게 눈에 띄지가 않아 그대로 넘겼다.
  맨 아래에는 닥터 B의 사인이 두 살짜리가 볼펜을 쥐고 벽에다 낙서를 해놓은 것처럼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가슴과 복부 CT를 추천한다고 씌어 있었으며. CT를 찍으라는 허락서에는 가슴과 복부를 명시하고 주사를 맞고 찍으라는 것을 덧붙여 놓았다.
서류를 덮었는데, 부신에 있는 두 개의 혹이 가슴에 걸려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보았다. 다행히도 그것이 암이 될 확률은 0.01% 이고 4.5cm가 넘을 경우에는 정밀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나와 있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초음파 검사를 하기 전에 나는 만일에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에 따른 모든 조치는 거부하겠다는 쪽으로 결정을 했었다. 한데 사람의 마음이 이리도 간사한 것일까? 시일만 질질 끌었지 나는 의사의 지시에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복부와 폐 CT 촬영날을 예약했다. 허락서의 효능이 끝나는 하루 전이었다. 방사선과는 역시 닥터 B의 병원이었다. 닥터 B와 면담 시에 여러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의자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허락서를 보면서 “CT는 왜 찍지요?” 하고 물었다. 그는 나를 기억 못 했다. 첫날, “아이고, 물혹이네요.” 하고 나를 기쁘게 해준 그가 아니었다.
  “선생님, 석 달 전에 간 CT 찍었는데요, 거기에 다른 장기에서도 뭐가 보인다고 했어요.”
  간호사가 간 CT 결과 서류를 가지고 왔다.
  ‘그럼 폐나 신장 부신에 대한 거는 닥터 A랑 상의 안 하셨나요?’
  이렇게 물어보려고 하는데 그가 말을 바로 이었다. 이번에는 주사 맞지 말고 그냥 찍자는 것이었다. 반가웠다. 그가 금세 사라지려고 해, 나는 얼른 간의 종양 얘기를 꺼냈다. 전문의도 물혹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기에 그로부터 물혹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는 사무실을 향해 뒷걸음질을 치면서 말했다.  
  “간 얘기는 이미 나하고는 끝났습니다. 그건 그쪽 분들과 상의하세요.”
  말이 끝났을 때는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자기랑은 상관없으니 알 바 아니라는 식이었다. 그에게 닥터 A한테 묻지 못한 것들을 이것저것 좀 자세하게 물어보려고 했던 내 계획은 몽땅 수포로 돌아갔다. 촬영실로 들어갔다. 허연 액체도 마시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으니 촬영은 금세 끝났다. 촬영실을 나오면서 테크니션에게 물었다.
  “방사선이 몸에 굉장히 나쁘다고 하던데, 석 달 전에 CT 찍고 오늘 또 찍었으니 뭐가 좀 안 좋아지겠지요?”
  그는 싱긋이 웃으며 이 기계는 최신형이라 방사선이 아주 조금만 체내에 미치니 아무 염려 말라고 했다  이제 닥터 A가 하라는 것은 다 했다.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트레이드 조 마켓에 들렀다. 먹기 좋게 만들어 진열해놓은 온갖 먹거리가 구미를 당긴다. 그 중에서도 내 시선을 끄는 것은 단연,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다. 예전에는 유기농만 먹는 친구를 우습게 봤는데, 요즘은 내가 유기농만 골라 담는다. 그리고 ‘오늘은 뭘 먹지?’ 하고 먹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열심히 걷고 열심히 챙겨먹으니 몸도 가뿐하다. 이제는 부상의 여운도 사라졌다. 얼굴도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도 풀어진 쌍꺼풀이 제자리를 찾게 되어 감사했다.  
  그간에 단편집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고, 또 장편 교정도 보았으니 몸도 마음도 더 가뿐해져 하늘을 훨훨 날을 것 같다.
  
  복부와 폐 CT를 찍은 다음 날이었다. 아침나절에 닥터 A의 전화를 받았다. 결과가 벌써 나왔나 하고 수화기를 들었는데, 그의 목소리가 급하게 이어졌다. 그의 말이 워낙에 빠르고 약간 고음이긴 하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귀어 거슬렸다. CT 결과가 안 좋았다. 석 달 전에 찍은 것에 비해 눈에 띄게 나빠졌다는 것이다. 어디가 어떻게 나빠졌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않고 무조건 전문의한테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만 지시했다.
  “빨리 정밀검사를 해야 합니다. 이대로 계속 진행을 할 수도 있으니 질질 끌지 마시고 오늘 당장 가세요.”
  나는 얼른 “아직 허락서도 안 받았는데요?” 하고 반문했다.
  “허락서랑 검사 결과는 이미 전문의한테 가 있으니 그냥 몸만 가시면 됩니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다시 물으려고 하는데 간호사의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두 전문의의 전화번호를 주면서 간 전문의한테도 꼭 가야 한다고 했다. 허락서는 그날 오후에 받았다. 석 장이었다. 간, 폐, 그리고 신장이 아닌 호르몬 전문의였다. 참 빨리도 보내주었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내가 급해야 할 상황인데도 나는 닥터 A를 향해 구시렁거렸다.
  “그것들이 자란다 하더라도 하루 사이에 얼마나 자란다고····.”
 

  허락서를 받은 지 두어 시간 후, 나는 닥터 오피스로부터 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호르몬 전문 병원이었다. 내일 아침 아홉 시까지 오라는 것이다. ‘정말로 내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나? 부신의 종양 두 개가 4.5cm를 넘었나? 그러니까 조직검사를 하자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얼굴이 붓고 붉은 반점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하고 잠시 반문해보았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이제는 말짱하게 다 나았으니까.
  갑자기, 한 편의 드라마가 떠올랐다. 그때 난, 길가다가 잠깐 지나친 환자 하나를 찾기 위해 그토록 정성을 쏟는 병원 측의 배려에 감동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우쳐준 드라마였다. 왈칵, 닥터 A에게 고마운 마음이 솟구쳤다.  
  이제 나는, 연극이 끝날 즈음이라 하더라도 무대 위에 쪼르르 올라온 세 닥터들을 환영해야 한다. 먼저 호르몬 닥터부터. 그리고 퇴장 여부는 그다음에 결정해도 될 것이다.

  도대체 실감이 안 났다. 건강이 더 좋아진 것 같은 요즘이다.
  ‘속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바깥으로는 이렇게 멀쩡할 수가? 나이가 들면 종양도 더디 자란다고 하는데, 혹시 다른 사람과 바뀌지나 않았나? 아니면 혹시 검사에 무슨 착오가 있지 않았나?’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잇는데, 불현듯 ‘저절로 나아버릴 수도 있어.’ 하는 희망의 끝자락이 어렴풋이 보였다. 설사 그것이 허망한 꿈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끈을 꼭 붙들고 싶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문득, 장기에서 나타난 이 현상들이 지금에야 내 현실로 다가온 것이 다행이라 여겨졌다. 이제는 아이들 넷 다 제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있으니 그렇다.
  적막한 밤이라 그런가? ‘쿵! 쿵! 쿵! 쿵!’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닥터 C가 언급한 응어리들이 핏속에서 요동을 치는 듯하다. 살고 싶어 몸부림을 치는 것일까?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장편도 곧 출간해야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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