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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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안전 불감증

2014.04.30 08:08

최영숙 조회 수:281 추천:66

              안전 불감증

                              

  3월 중순, 부모님을 뵈러 한국에 나간 길이었다. 마침 좋은 계절에 한국에 간다하니 동창들이 시간을 내서 제주도를 가자고 야단이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 마당을 같이 밟았던 친구 다섯이 환갑 여행을 하자는 말이었다. 알고 보니 다섯 중에서 나를 포함한 세 명이 제주도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이었다.

시차 적응을 제대로 못해서 정신이 혼미한 중에 북한에서 동해상에 단거리 발사체를 25발 발사했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북한에서 쏘아대는 미사일, 로켓포가 실전처럼 하루 종일 쿵쿵 소리를 냈다. 게다가 북한 방송을 짬짬이 내보내기까지 해서 나는 이래저래 어리둥절해 있었다.  

3월16일을 지나, 22일 새벽, 23일, 26일, 연이어서 단거리 로켓과 탄도 미사일을 쏘아대는 일이 발생했다. 29일에는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포공항에 가야하는데, 기대해 왔던 것과는 달리 나는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미국 집에서는 아이들이 연신 이멜과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왔다. 22일 새벽에 단거리 로켓을 발사한 사실도 모르고 자고 있던 나에게 수도 없이 들어 와있는 카톡은 한국이 전시체제에 들어간 줄로 알고 몹시 놀란 가족들의 염려로 꽉 차있었다.

아이들은 빨리 미국 대사관에 나의 위치를 알리고 비상사태에 대비한 미국시민 피난처가 어디인지를 알아놓으라고 성화였다. 미국 대사관 웹 사이트에 들어가서 알아보니 지금은 비상시가 아니라는 안내와 함께 만일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미국 관공서에 속한 사람과 그들의 가족은 성남 비행장에서 바로 미국으로 대피하고, 일반시민들은 어떻게 하든지 기차를 타고 부산항으로 집결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그곳에서 배편으로 일본으로 대피하는데 만일에 배편이 부족하면 승선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안내도 같이 올라와있었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부산으로 갈 수도 없겠지만 가기 전에 무슨 일을 당해도 당하지 싶어서였다. 게다가 노쇠한 부모님을 팽개치고 나 혼자 살자고 부산까지 가겠나....

친구에게 전화해서 사태가 이런데 제주도를 갈수 있겠냐고 물어봤더니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염려 마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냐. 미국에서는 걱정 많이 하지? 근데 우린 안전 불감증이야. 근데 우린 정말 이러다가 무슨 일 터지면 앉아서 고대로 당할 것 같애.”

친구는 웃으면서도 자조 섞인 말을 내뱉으며 한숨을 쉬었다. 안전 불감증만이 아니라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친구의 한숨 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챘다.

시장에 나가보니 냉이와 씀바귀를 한 움큼씩 좌판에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네들도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고, 무쇠 솥 안에서 익어가는 찐빵은 무럭무럭 김을 피워 올리고,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한우가 들어왔다고 스피커를 대고 소리를 지르던 청년은 여전히 나를 보고 이모, 이모 불러댔다.

구두 수선 집을 기웃거리니 그 안에서 내 신발을 고쳐준 여자 분이 활짝 웃으며 구두 닦던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고 마주 웃었다. 역시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시장을 헤집으며 걸어갔다. 초등학교 동창이 경영하는 약국에 들르니 친구는 마침 운동을 하러가서 자리에 없고, 대신 친구 남편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바퀴벌레 잡는 약을 사들고 약국을 나선 다음, 시장을 일부러 멀리 한 바퀴 돌아서 집으로 걸어왔다. 사람이 별로 없는 한낮의 길거리는 졸린 듯 한가했고, 아무래도 동해상에 떨어진 로켓포탄은 소리 없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24시간 열려있는 텔레비전 뉴스를 빼고는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3월 말에 2박 3일의 제주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 온 나는 한 달 여의 한국행을 마무리하고 4월 17일에 미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4월 16일 아침이었다. 어머니가 즐겨보는 아침 드라마를 같이 보고 있는데, 화면 아래에 속보 자막이 떴다. 전남 진도 부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는 뉴스였다.

놀라긴 했지만 먼 바다가 아닌 곳에서 일어난 일인데다 뉴스에 올라왔으니 구조는 당연히 그보다도 먼저 진행되었겠지 하면서 여전히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어머니가 커피 한잔 하자고 해서 커피를 끓이려고 주방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얘! 빨리 와봐! 저게 뭐니?”

급히 다가가보니 정규 방송이 중단되고 침몰하는 여객선이 어느 새 반이나 기운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렇게 비극은 눈앞에서 시작되었다. 어머니와 나는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화면을 지켜보았다.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타고 있다는 소식 때문에 우리는 가슴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구조하지 못한 학생들 때문에 탄식을 하고 있는데, 자식을 일곱이나 키운 우리 어머니는 먼저 아이들의 어머니를 걱정했다.

너무 조마조마해서 텔레비전을 껐지만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다시 켜고 그러다가 끄기를 반복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나절에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런 비극이 어디 있니... 아이들 영혼이 울부짖는 것 같아서... 생각하면 정말 내가 어른인 게, 인간인 게 부끄럽고 혐오스럽다. 너 먼 길 가야하는데...너도 맘 편히 못 가겠구나...어쩌니?”  

마치 나라가 배와 함께 침몰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나라 전체가 상복을 입은 듯이 컴컴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구조 소식을 묻는 내게 기사는 이제 알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고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누구 탓이라고 분노할 때는 그래도 희망이 있어서였다. 서서히 절망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상황을 직시하는 일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돌아와서 구조 소식을 들여다보는 중에 “환갑여행 동창생”이란 기사 제목을 보게 되었다. 인천 용유 초등학교 28회 졸업생들이 환갑을 맞아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가다가 17명 가운데 5명만 구조 되었다는 기사였다. 나와 동갑인 그들이 나처럼 환갑기념으로 제주도를 가다가 참변을 맞았다는 기사는 젊은이들의 분통한 죽음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평생을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을 저들이 이제 잠시 일손을 놓고 어린애가 되어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며 배 안에서 즐거워했을 모습을 상상해본다. 환갑이란 이제 무슨 이야기든 벌거벗고 나누어도 흉이 되지 않는 나이를 말한다.

인생을 한 바퀴 돌아봤으니 산전수전 안 겪은 일이 무엇이 있겠나. 이제야 세상사는 이치도 좀 알고, 남에게 욕 안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만한 나이이다. 이제부터 시난고난 살아 온 인생에서 풀려나 유채 꽃밭에 나란히 서서 사진도 찍고, 성산 일출봉에 허위허위 올라가 바다를 내려다보며 세상이 그래도 살만했어, 하면서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을 것이다.

누구의 아버지이고, 누구의 남편이며, 누구의 할아버지이고, 누구의 형이며 아우이고 친구이고 이웃이고 단골손님이었을 그들이 순간에 사라진 자리에는 이제 남아있는 자들의 눈물만이 남아있다.    
    
토요일이 되어 유대인 크리스챤 교회에 참석한 나는 랍비가 하는 설교를 유심히 들었다. 왜냐하면 랍비가 1997년에 괌 공항에서 있었던 KAL기 추락 사고에 대해서 말했기 때문이었다.

악천후 속에서 경보장치와 부기장이 하는 경고를 무시한 기장이 일직선으로 하강하다가 비행기가 공항이 아닌 산언덕에 추락하는 바람에 일어난 사고였다고 한다.

비행기 동체가 두 동강이 나고 화염에 싸여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였는데, 가장 큰 원인은 공항의 착륙 유도장치가 고장 났던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장이 미리 유도장치가 고장 난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예를 들면서 랍비는 무엇보다도 문제를 발견했을 때 입을 열어 알려야하고, 그 경고를 받아들여서 문제를 바로잡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랍비는 그 날, 레위기 19장 17절,18절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는 말씀으로 설교를 마쳤다.

나는 랍비가 무엇에 대해 말하려고 했는지 알아들었다. 견책하는 일이 없으면 같이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망이나 복수가 아니라 사랑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 있어야하고 그것을 또한 바르게 받아들여야만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누구라도 그 배의 이름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직시하는 일은 고통이고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지도 모른다. 큰 사고는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분명 작은 것에서 시작했을 잘못을 지적하여 고치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무시해서 큰 사고로 이어지게 만든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그 배의 이름은 슬픔에 앞서 부끄러움으로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인 것이 부끄럽고 사람인 것이 부끄럽고 그 모든 일이 우리의 책임이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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