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자매들

posted Oct 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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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왔다. 작년 초 네 자매 함께 여행하자고 했을 때는 합류하지 않아 우리를 서운하게 하더니 남편과 딸 부부, 한 살 된 외손녀까지 데리고 미국에 왔다. 주재원으로 미국 온 아들 부부의 마중을 받으며 입국하는 모습을 보니 언니의 지난 날이 한편의 영상처럼 떠오른다.

막내며느리로 시집간 언니, 시어머니 봉양에 집안의 대소사도 주관하며 남매 키우느라 얼마나 알뜰살뜰 규모 있게 생활하는지 혀가 내 둘릴 지경이었다. 세월이 흘러 연로하신 시어머니 병 구완과 임종도 언니가 지키고 장례 후의 일까지 깨끗하게 잘 마무리했다며 뿌듯해 하는 언니 표정에 마음이 찡했다. 슬하의 남매 모두 잘 자라 흡족한 사위와 며느리 맞고 한국 미국 가족이 모여 미국 여행길에 올랐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맏며느리처럼 살아온 언니는 친정에서도 일찍 세상 떠난 오빠 대신 맏이 역할을 감당한다. 우리 동생들은 적은 돈이나 몇마디 말로 때우는데 언니는 그것에 더하여 수시로 곰국 끓여 밑반찬과 함께 넣어 드리기도 하고 계절이 바뀌면 에어컨이나 커튼을 점검하는 등 집안 곳곳을 세세하게 살펴 드린다.

가족 여행 후 딸 부부는 직장 때문에 한국 돌아가고 언니 부부는 여행사 통해 두루두루 다니고 골프도 치면서 행복한 9월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언니는 우리 집보다 아들 집에 있는 것을 더 편안해 하는 것 같다. 아들 직장 나가면 며느리랑 있는 것보다 우리 집으로 오는 게 좋지 않으냐고 권해도 "짐은 아들 집에 두고…" 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그리고 은근히 며느리 자랑이다. 곁에서 지켜봤으니 칭찬에 백번 공감하는 바이지만, 언니 가족 쪽으로 완전히 기운 것 같다.

문득 '너희 할머니와 우리 할머니가 자매지간이셨어' 라며 가까운 사이임을 내 비치시던 먼 친척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한 부모의 자식으로 인연을 맺었다가 각자 일가를 이루어 곁으로 쭉쭉 뻗어 나가는 튼튼한 가지가 눈앞에 그려진다. 아무리 애틋한 형제 자매였다 해도 몇 대 내려가면 그저 남보다 조금 친근한 눈빛을 주고받거나 아예 모르고 살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자매끼리 지지고 볶으며 살아온 기간이 결혼 이후의 삶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린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함께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난 그 시절의 연장선 위에 있는 듯 생각하며 행동했다. 인천 공항에 내리면 당연한 듯 언니 집으로 직행했다. 친정 식구 모임도 언제나 언니 집에서 이루어졌다. 언니는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다음 한국 방문부터는 언니 집안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미리 알아보는 등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온갖 젓갈과 깻잎 무말랭이 등을 꼼꼼히 챙겨온 언니. 겨우 사흘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요리하는 내 모습이 어설픈지 연신 주방을 기웃대더니 한국서 가져온 곤드레나물로 밥을 꼭 해 먹이고 싶다며 결국 부엌을 접수해 버린다. "아휴 저 못 말리는 맏이 근성, 나도 솥뚜껑 운전 경력 만만치 않다니까!" 해 봐야 소용이 없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