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의 수필 창작론/정용진 시인

by 정용진 posted Dec 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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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필 창작론

 

수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정용진 시인

1) 수필문학이란

 

우리의 문학사에서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은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과거엔 시, 시조, 소설, 희곡, 아동문학 등으로 구분하였으나 현대에 이르러서야 수필문학 또는 에세이로 정착 하였다. 수필가 윤재천 씨는 수필은 시와 산문의 성숙된 생활의 표현 양식이다. 형식을 초월하여 자신의 표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수필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자유롭게 공유 할 수 있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고 정의하고 생활문학으로서의 수필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다양한 사색과 인생을 새롭게 음미하는데 크나큰 의미가 있다.”고 역설한다. 또 수필가 윤오영 씨는 수필에서의 문맥의 의미를 감정의 줄거리가 곧 문맥이다.“라고 그의 수필문학 입문에서 강조하고 수필문학에서 문맥이 없으면 문리(文理)가 없다 라고 주장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기 이전엔 우리의 말은 있어도 글이 없어서 선비들은 한시나 시조로 문학을 형성 할 수 있었으나 일반 민중에겐 문학 부재의 상태였다. 한글 창제이후 한문이 진서(眞書)의 대접을 받는데 비하여 한글은 언문이라 하여 천대를 받았고 아녀자와 일반 서민들의 의사표시 정도로 통용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중 문학은 한글을 통하여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고 한글로 쓰여 진 서간 문학이 통용되면서 수필문학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 와서 국내외의 대학 입학 시에 자기소개서인 에세이가 필수 과정으로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수필문학의 중요성이 인정되기에 이른 것이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과거에 잡문으로 천대받던 수필문학이 문학의 한 장르로서 당당하게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2) 수필의 정의

 

많은 한국 사람들이 수필 하면 피천득을 생각하고 피천득 하면 수필을 연상한다. 피천득의 수필속에는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라고 푸른 숲을 껴안고 조잘조잘 흐르는 시냇물 소리같이 닦을 곳을 닦고 채울 곳을 채우고 비울 곳을 비우면서 그의 문장은 초연하고 여유 있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이희승편)에 보면 수필이란 생각나는 대로 붓 가는 대로 형식 없이 써나가는 산문의 하나라고 기록되어있다. 글이란 쓰는 사람의 사상과 체험 그리고 심미적인 안목에 의하여 탄생되는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한 예술이기 때문에 학자에 따라서 양식이 다를 수 있고, 필자에 따라서 주장이 상이 할 수 있으며 독자의 감상에 따라 표현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문덕수의 정의와 같이 무형식의 형식을 가진 비교적 짧으며 개인적이며 서정적인 특성을 지닌 산문형식의 문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특별히 주의해야할 것은 수필이 아무리 개인의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있다하더라도 자기 자랑이나 넋두리에 지나친 나머지 객관성을 잃거나 독창성에 흠집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글로 옮겨지고 이 글이 문자란 매체를 통하여 형상화 내지는 활자화 될 때엔 벌써 나를 떠난 너와 우리의 차원으로 변모되고 발전된 것이기 때문에 주관성을 초월한 객관성의 차원으로 승화되고 격상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수필이란 일반적으로 영어로는 에세이로 표현되고 있는데, 옥스포드 사전에는 글을 쓴 이에 초점을 맞춘 정교성을 지닌 글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에세이는 어떠한 주제, 또는 한 주제의 일  부분이 되는 것에 대하여 적절한 길이의 작문이다. 그것은 본래의 완결성의 부족을 내포하고, 규칙적인 것이 아니며 숙고되지 않은 것이어서 문장의 범위에 있어서는 제한이 있으나 문체에 있어서는 다소 정교성을 가지게 된 작문을 말하는 것이다.

시는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수필에 있어서도 내 자신이 먼저 감동하지 아니하고서는 남을 감동시킬 수가 없고 작자 자신의 외침이 강하지 아니하고서는 독자들이 따라오지 아니한다.

 

3) 주제의 설정과 소재의 선택

 

좋은 수필을 쓰려면 주제의 설정과 소재의 선택을 통한 작품의 내용들을 필자 자신의 용광로 속에 오랜 시간과 고뇌를 통하여 용해한 이후라야 걸작품이 비로 서 탄생되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표현과 같이 침묵의 체로 거르지 않은 말은 사실 소음이나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너무나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수필은 비 전문성 속에서 문학으로 지향되는 장르이고, 형식이 자유로우며 글을 통하여 필자의 개성이 강하게 나타나게 됨으로 작자의 사상, 정서, 양식 등이 자유분방하게 표현되는 문학형식인 것이다. 수필문학의 공통적인 특성을 살펴보면

첫째로 개성이 강한 문학이기 때문에 내용과 상황이 같을지라도 작품은 작자의 개성에 의존하게 된다.

둘째로 무형식 속의 형식문학이므로 시나 소설에 비하여 구성과 표현이 자유로워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작품을 쓸 수가 있다.

셋째는 산문문학이란 점으로 시가 창조적인 농축의 과정 속에서 탄생되는데 비하여, “수필은 구성적인 분산의 과정 속에서 생성된다.”고 보는 점이 영국의 H. 리드의 주장이다.

넷째로 수필은 다양한 소재의 문학이다. 어떠한 내용과 주제라도 필자의 결정에 따라서 자유롭게 취사선택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다섯째 수필은 해학적이고 비판정신을 갖춘 문학이다. 시나 소설과는 달리 수필 속에서는 필자의 자질과 역량에 따라 다양한 유머와 윗트가 함께 희비애락이 병존할 수 있으며 지성을 통하여 용해, 여과된 풍부한 정서와 심오한 예지가 재치 있게 번득일 수 있다.

여섯째 수필은 심미적이며 예술적 가치의 문학이란 점이다. 기법이나 문체에 의하여 심미적 가치와 예술성을 통한 사유나, 일상생활 속에서 얻은 철학적 가치와 사상이 혼연일체를 이룬 문학이란 특성을 지닌다.

수필이 인간의 사상을 제시하고 삶의 의식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철학성이 혼화 되어야 하지만은 수필이 문학성에 근간을 둔다는 사실에 입각하면 예술성의 중요함을 잊을 수가 없다.

 

4) 수필의 종류

 

수필의 종류에 있어서 문덕수시인은 제재, 주재, 논점 등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과학적 수필, 철학적 수필, 비평적 수필, 역사적 수필, 종교적 수필, 개인적 수필, 강연집, 논설집. 8종으로 분류하였다. 내용의 경중을 들어 경수필, 중수필로 구분하기도하나 거의가 대동소이함을 알 수가 있다.

 

5) 현대인과 수필문학

 

현대인은 물질문명 속에서 경제적인 부와 생활의 편리를 얻은 반면에 정신적인 안정과 평안을 빼앗겨 불안과 스트레스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안심입명과 천분지족을 일러준 선인들의 교훈이 담겨진 책을 멀리하고 눈앞에 보이는 재미에 빠져 빵과 써커스로 만족해하는 반 지성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다. 영육이 갈등에 빠진 채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탈출하려면 등촉을 밝히고 고전을 읽으면서 선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청한(淸閑)의 삶이 필요한 것이다. 육신의 공동화(空洞化)는 영양섭취와 운동으로, 영혼의 공동화는 신앙심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정신의 공동화는 독서와 수양 그리고 취미생활 밖에는 극복할 길이 없다. 여기에 시나 소설처럼 전문성이 요구되지 아니하는 수필문학의 설자리가 있음을 알아야한다.

나를 남에게 알리고 남을 바로 알 수 있는 길이 수필문학을 통하여 분명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천득은 그의 명작 수필말미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십분지 일 까지도 숫제 초조와 번잡에 다 주어버리는 것이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뼈에 구멍이 생기는 골다공증도 몸을 망치는 중병이지만 마음에 구멍이 뚫리는 정신 다공증은 더욱더 무서운 병이기 때문이다.

 

6) 맺는 말

 

풍요로운 오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서는, 나는 너의 인생을 바라보며 너는 나의 삶에 눈길을 돌리면서 서로 관심을 가지고 동행하는 그 길이 가장 아름다운 길인 것이다. 글은 인간 그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수필문학이 얼마나 고귀한 인생의 덕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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