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廢家)
오연희
빅베어(Big Bear) 산길 오르다 보면
길가 무성한 나무 사이로 언뜻
거무튀튀한 알몸 한 채 보인다
몸을 닫고 싶다는 듯
아니 열고 싶다는 듯 통째 입이 되어
가는 이 불러 세운다
스르르 커튼 열리고 환호하는 숲 속의 생명들
집 짓는 남정네의 콧노래 소리 풋풋하고
아낙의 몸인 듯 통나무 결 굴곡지다
탱탱하게 익어가는 집
햇살 같은 아이 잉태 때마다 온 숲 웅성거린다
몸담을 집 짓고 마음 담을 아이 낳고
아, 별빛 반짝하는 순간이라니
제 갈 길 찾아 숲을 떠나는 아이들
아이 기다리던 어미.아비도 총총 이 땅 떠나고
이생의 내력 들려주려는가
풍화되기 직전의 알몸 한 채
땅을 꽉 붙든다
- 2016년 미주문학 여름호-
오연희<폐가(廢家)>는 소멸로 향해가는 폐가의 적막한 아름다움을 "풍화되기 직전의 알몸 한 채"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가족들의 웃음과 활기참으로 가득 채워졌을 한 채의 집이 그 소명을 다하고 쓰러져가는 애잔함, 시인의 상상력은 그 다 쓰러져가는 몸채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어떤 건축가는 "자신이 세운 집이 시간에 따라 소멸하기를 바란다"는 뜻밖의 진술을 한 바도 있지만, 이 시는 집 짓는
남정네의 콧소리가 들리고 통마무 결처럼 굴곡진 아낙의 몸과 햇살같은 아이의 잉태를 불러옴으로써 그 집이 한창 융성했을 때의 "별 빛 반짝이는 순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과 있습니다.
빈집이 일탈을 꿈꾸는 시적 순간입니다.
폐가를 채워왔던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시인의 사유(思惟)를 같이 따라가면서 어느덧 노년으로 접어든 독자인 나도
그 "이생의 내력"을 골똘히 생각해봅니다.
김현자 교수의 시평 (2016 미주문학 가을호)